149화
주문전으로 들어선 고진유와 인양은 가주 모용남을 만났다.
“북해빙궁에 갔다는 소문을 들었소.”
“그곳에 잠시 볼일이 있어 다녀왔습니다.”
“다녀온 일은 잘됐소이까?”
“그럭저럭 좋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좋은 구경 하고 왔습니다.”
“잘됐다니 다행이구려.”
좋은 구경이라는 말에 모용남은 웃음이 나왔다.
북해빙궁은 중원인이 함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그곳 분위기는 어떻게 보였소?”
모용남이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간단했다.
마교가 중원에 나오기 전 가장 먼저 부딪치는 문파가 곤륜파인 것처럼, 모용세가는 북해빙궁이 중원에 나온다면 먼저 상대해야 하는 곳이었다.
고진유 또한 모용세가에 이런 사정을 미리 묵경에게 들었다.
“당분간 그들은 나올 생각이 없을 겁니다.”
“……알겠소.”
스윽.
그때, 모용남의 옆에 앉은 모용현이 고진유를 보며 물었다.
“화산도협께서는 그들과 어떤 사이인지 물어봐도 되겠소?”
“그들과 본도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사실대로 말을 해줘서 고맙네.”
“별말씀을.”
모용남과 모용현은 대화를 나누면서 고진유의 성격에 대해 알 듯했다.
‘상당히 직설적이군.’
이런 성격을 지닌 인물과는 대화를 편하게 할 수 있었다.
“화산파 일행과 따로 움직이는 이유가 있소이까?”
“개인적 일로 누구를 찾고 있습니다.”
개인적이라 함은 더는 묻지 말아달라는 뜻이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본 가에 온 이유는 무엇이오? 혹시 개인적인 일과 연관이 되는 것이오?”
“호기심입니다. 심양으로 들어오면서 한 가지 소문을 들었습니다.”
“소문이라는 게……?”
“북천의적이란 인물에 대해 상당히 많이 들리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본 가에서도 그 자에 대해 조사를 진행 중이오.”
“그에 대해 알아낸 것이 있습니까?”
“아직은…… 워낙 신출귀몰한 인물이라서 도저히 잡을 수가 없었소.”
“음…… 평범한 인물이 아니군요. 모용세가도 그에게 당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일개 도둑이 모용세가의 추적을 따돌리지 않습니까?”
모용현은 인상을 쓰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망신을 당했네. 최대한 빨리 북천의적을 잡을 것이오. 한데…… 그에게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소?”
“의적 놀이를 하고 있어 어떤 인물인지 궁금하더군요. 혹시나 모용세가라면 어느 정도 알고 있지 않을까 싶어 오게 됐습니다.”
“미안하게 됐소.”
“아닙니다. 따로 그에 대해서 알아보고 있으니 조만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화산도협께서 그의 신상에 대해 알게 된다면 본 가에 가장 먼저 알려주실 수 있소이까?”
“가주님의 말씀대로 그를 알게 된다면 바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고맙소.”
모용남은 혹시나 그들이 먼저 잡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심양에서 모용세가가 하지 못한 일은 그들이 한 번에 해낸다면, 그것 또한 망신일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언제 떠날 생각이오?”
“당분간 심양에서 그를 찾을 때까지 지낼 생각입니다.”
“허허, 잘됐군요. 내일 저녁에 지역 주민들과 석 달에 한 번씩 여는 작은 연회가 있소이다. 참석하면 어떻겠소?”
“모용가주님께서 초청을 하시는데 당연히 참석해야지 않겠습니까. 혹시 세가에서도 다섯 공자들 전부 참석하는지요? 이번 기회에 인맥을 넓일 생각입니다.”
“허허허. 그렇게 하도록 하겠소이다. 화산도협이 연회에 나온다고 하면 다들 나올 것 같군요.”
* * *
묵경은 인양을 따라 대장간으로 움직였다.
대장간에는 아침부터 강한 열기가 흐르고 있었다.
꽈아앙!! 꽈아앙!!
불에 달궈진 철을 내리치는 소리가 울렸다.
“묵경 님,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증거를 찾아야지. 모용지가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는 완벽한 증거.”
“그냥 잡아다가 족치면 안 됩니까?”
“흠, 그것도 좋은 방법이긴 하지만, 나중에 우리가 고문을 해서 강압적으로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하면 진유 아우가 곤란해지잖아. 녹검 씨의 몸값으로 황금 백만 냥을 부른 건 이제 자신의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야. 진유 아우의 위명을 생각해서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
‘내가…… 그분의 사람이라고?’
녹림야검의 표정이 환해졌다.
“알겠습니다. 그분의 이름을 더럽히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좋아. 그런 마음가짐이면 돼. 일단 저 녀석을 계속 지켜보고, 수상한 짓을 할 때 덮치자고.”
두 시진 동안 대장간을 지켜보았다.
안에선 오직 녹이고 두드리고 녹이고 두드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묵경은 옆에 누운 채로 졸고 있었다.
툭툭.
“묵경 님.”
그때, 녹림야검이 얼른 묵경을 건드리며 깨웠다.
“어어…… 뭐야?”
“지금 집안에서 천에 싸여 있는 물건을 들고 나왔습니다. 수상합니다.”
묵경은 눈을 비비며 야장을 자세히 보았다.
그는 천으로 감싼 물건을 안고 있었다.
‘흐음, 귀중한 물건을 다루는 것 같은데…….’
쉬이이익-
그는 물건을 내려놓더니 화덕 안으로 풀무질을 했다.
“흠…… 이 정도 온도면 됐어.”
야장이 천에 싸여 있는 물건을 그대로 화덕에서 녹이기 위해 도가니에 내려놓을 때였다.
“동작 그만.”
갑자기 웬 목소리가 대장간을 울렸다.
야장은 몸을 움찔했다.
“그대로 천천히 돌아선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대로 그는 천천히 돌아섰다.
휘이익!
녹림야검은 야장의 손에 들린 물건을 재빨리 낚아채듯 빼앗았다.
“누…… 구요?”
그는 떨린 목소리로 묵경과 녹림야검을 보았다.
“그건 알 필요 없고, 우선 이게 뭔지 봐야겠군.”
스르르-
녹림야검이 천을 풀자, 황금으로 된 거북이가 나타났다.
“묵경 님, 이건……?”
“맞아. 신민상회에서 잃어버렸다는 물건이군.”
야장은 몸이 떨며 바닥에 덥석 주저앉았다.
“녹검 씨, 일단 딴짓 못 하게 해야겠어.”
“알겠습니다.”
핏핏핏.
녹림야검은 바닥에 앉은 야장의 혈을 눌렀다.
황금 거북이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북천의적과 관련된 인물이 확실했다.
“후후후. 이보다 완벽한 증거는 없겠지. 데리고 가볼까?”
녹림야검이 곧바로 힘없이 쓰러진 그를 어깨에 들어 올렸다.
* * *
고진유와 인양은 어둠이 내려올 쯤 신민상회로 돌아왔다.
“복스럽게 생겼군.”
녹림야검이 찾아낸 대장간에서 발견한 황금 거북이.
고진유는 상회주 교중에게 황금 거북이를 보여주었다.
“찾던 것이 이게 맞습니까?”
“넵……! 맞습니다!! 거북이 배 아래를 보면 교현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의 말처럼 황금 거북이를 뒤집자 아랫부분에 두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이 보였다.
“찾게 되어 다행입니다.”
“감사합니다……!! 조부님의 유품을 잃어버린 줄로만 알았는데…….”
“상회주께서는 우선 다른 사람들에게 이걸 찾은 것을 비밀로 해주십시오. 이걸 훔쳐간 인물은 이 일을 모르고 있거든요.”
“당연하지요.”
교중은 존경의 눈빛으로 고진유를 보았다.
하루 만에 잃어버렸던 황금 거북이를 찾아낼 줄 몰랐다.
“혹시 모용세가에서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까? 지역 유지들과 연회를 한다고 하더군요.”
“네. 석 달에 한 번씩 열고 있습니다.”
“상회주께서도 참석을 하는군요.”
“그렇습니다.”
“잘됐네습니다. 내일 우리와 함께 가도록 하죠. 그리고 이건 걱정하지 마시고, 잠시 우리가 가지고 있다가 돌려 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에, 그럼요. 괜찮습니다. 화산도협, 그럼 내일 뵙도록 하겠습니다.”
교중은 밖으로 나간 뒤, 방에는 네 사람과 대장간에서 잡아온 야장만이 남았다.
“우선 본도가 누군지 알려주지요. 본도는 고진유라고 하오.”
“화…… 산…… 도협이십니까?”
“그렇소. 야장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오?”
“아, 안공철이라 하옵니다.”
“안 야장, 혹시 이걸 가지고 무엇을 할 생각이었소?”
“……그걸…… 녹여서 금 조각으로 나누려고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한 것이오?”
“그렇…… 습니다.”
“흠. 이걸 받는 백성들은 좋겠지만 잃어버린 사람의 마음은 어떻겠소이까?”
“……죄송…… 합니다. 이것이 없어도 그들은 먹고살 수 있다고 해서…….”
“그건 아니지요. 그들도 이걸 모으기 위해 열심히 일했소. 당신들은 그들의 오랜 노력의 결과를 훔친 것이외다.”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 합니다.”
“모용지와 그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 것이오?”
흠칫!
이들의 입에서 모용지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 그건…….”
“당신들을 잡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오. 잡고자 했다면 굳이 안 야장에게 묻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
“본도가 찾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를…… 찾습니까?”
“모용지가 물건을 훔친 뒤 남긴 이름이 있더군요.”
만능소자.
그도 무슨 이름인지 잘 알았다.
“만…… 능자…… 님을 찾습니까?”
“잘 아는군요. 맞소이다. 그분을 찾고 있소.”
“그건…… 저도 뵌 지가 이십 년이 넘었습니다. 반년 전에 오 공자가 갑자기 그분의 제자라 말하면서 소인을 찾아왔습니다…….”
“그렇다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군요.”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생각보다 쉽게 만능자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는 인물을 만났다.
“그분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은 모용지요?”
“그건……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분의 제자라고 해서…… 도와준 것뿐입니다.”
“모용지가 만능자의 제자라는 것은 확실한 것이오?”
“그렇습니다. 만능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안공철은 자신들을 해치는 게 아니라 만능자를 찾고 있음을 알게 되자,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말해주었다.
“안 야장은 내일까지만 여기서 지내도록 하시오. 모용지를 만난 뒤 돌아가도록 해주겠소이다.”
“예, 가, 감사합니다. 화산도협…….”
* * *
부가주 모용현은 연회장 밖을 계속해서 주시했다.
연회가 시작된 지 일각이 지났건만 그가 나타나지 않았다.
“부가주, 화산도협은 아직 소식이 없는가?”
“조금 늦는가 봅니다.”
모용현은 애써 얼굴을 펴며 말을 했다.
이공자 모용주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버지, 그놈이 이름이 있다고 우릴 무시하는 듯합니다.”
“이제 겨우 일각이 지났다. 함부로 말을 하는 게 아니다.”
첫째인 모용조가 중간에 나서며 그를 타일렀다.
“첫째 형님. 둘째 형의 말이 맞습니다. 먼저 와서 기다려야 마땅하거늘. 가문의 수장이신 아버지를 기다리게 하는 건 무시하는 게 맞습니다!”
이번에는 삼공자 모용오가 흥분한 듯 소리쳤다.
그때였다.
정문에서 수하가 황급히 달려왔다.
“가주님, 화산도협께서 신민상회 상회주와 함께 도착하셨습니다.”
“신민상회주와……?”
잠시 후, 연회장으로 다섯 명의 일행이 다가왔다.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 집중되었다.
“화산도협이시다.”
“와아…….”
앞서 걷는 고진유를 보면서 감탄이 나왔다.
무인이 아닌 그들조차 범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는 것을 보며 탄성이 나왔다.
연회장에는 있는 여인들은 당연히 일행 중 한 명에게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면구를 벗은 묵경의 얼굴은 절로 여인들의 감탄을 불러일으켰다.
“정말 풍류옥협이시다……!”
“너무너무 잘생겼어!”
묵경은 오랜만에 환호하는 소리를 듣자 기분이 좋았다.
스윽.
여인들을 돌아본 후 손을 가볍게 들어주자,
“아아악……!!”
“꺄아아!!”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모용지는 연회에 참석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화산도협이 아니라면 굳이 참석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화산도협이 왔다는 말에 앉은 자리에서 고개를 돌렸다.
‘……저…… 자가?’
모용지는 자신도 모르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신민상회주와 나란히 들어오는 청년.
외조카라 했던 그가 분명했다.
모용남에게 다가간 고진유는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
“가주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니오. 괜찮소이다. 얼마 지나지 않았소이다.”
신민상회주 교중이 얼른 앞으로 나섰다.
“가주님을 뵙습니다.”
“교 상회주도 오셨소이까? 한데…… 두 분은 서로 아시는 사이인지?”
“본도가 잠시 신민상회에서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화산도협께서 교 상회주와 친한가 봅니다.”
“이번 기회에 외숙부로 모실까 중이지요.”
고진유는 말을 하면서 모용남의 뒤편에 선 모용지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렇소이까? 허허, 교 상회주는 좋겠소이다. 천하의 화산도협을 외조카로 얻게 되었소.”
“저에게는 영광입니다.”
“하하하! 어서 자리에 앉지요.”
모용남은 그의 옆으로 다섯 명의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스윽.
일공자 모용조가 일어나 고진유의 앞으로 다가왔다.
“모용조라 합니다. 화산도협의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꼭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도 힘이 있었다.
모용조에게 고진유는 분명 나이가 어렸지만, 무공의 고하에 나이는 의미가 없었다.
“반갑습니다. 모용 형님이시군요. 정대한 심공을 익히신 듯합니다.”
“칭찬해 주시니 고맙습니다.”
모용조가 물러난 후 연이어 세 명의 자식들과 인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 오 공자 모용지가 다가왔다.
“모용지라 하오.”
“우린 안면이 있지 않소이까?”
“…….”
“두 번이나.”
모용지는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내가…… 누군지 알고 있어.’
스윽.
고진유는 그의 앞으로 붙어서 가볍게 모용지의 어깨를 건드렸다.
질끈.
모용지는 따끔거리는 고통에 인상을 썼다.
“만나게 되어 반갑소이다.”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