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8화
밤이 깊었다.
휘익!
신민상회 밤하늘 위로 복면인이 날아올랐다.
마치 야조(夜鳥)와 같은 움직임.
발이 지붕 위에 떨어지지 않은 채 날아다니는 것처럼 신법을 펼쳤다.
스륵-
복면인이 공중에서 사뿐히 내려앉았다.
‘훗, 철갑을 숨겨놔 봤자 결국 여기밖에 없지.’
상회주 침실 외에 숨길 장소가 없었다.
복면인은 지붕에서 내려온 뒤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서 모든 기척을 죽였다.
그가 지나가는 움직임 뒤로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마치 바람이 움직이는 듯했다.
‘흠. 잘 자고 있군.’
방으로 들어서면서 침상 위를 먼저 확인했다.
‘저번에는 저기에 있었지.’
복면인은 황금 거북이를 숨겨놓았던 장소를 살폈다.
‘하긴. 멍청한 놈이 아니라면 다시 여기에 숨기진 않겠군.’
그는 침실 주위를 가볍게 돌아보면서 어디에 숨겨놓았을지 재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쪽 벽부터 유심히 주의 깊게 살폈다.
순간, 복면이 꿈틀거렸다.
‘제법인걸.’
침상을 제외한 삼면의 벽을 모두 살폈지만, 철갑을 숨길 만한 장소는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는 잘 숨겼어. 못 찾겠는걸.’
복면인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만일 황금이나 돈을 훔치려고 왔다면 포기하고 조용히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원하는 물건은 돈이 아니었다.
낮에 보았던 철갑. 그 자체를 원했다.
‘깨워야 하나?’
철갑의 존재를 아는 인물은 상회주 교중밖에 없을 터.
그는 침상으로 다가섰다.
‘깨워서 가지는 수밖에…….’
협박을 하더라도 물건을 가지고 가야 했다.
그가 손을 뻗어 침상에서 자는 상회주를 깨우려는 순간,
스으윽-
갑자기 침상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복면인은 몸이 굳어진 듯 멈췄다.
‘저…… 녀석은……!’
침상에서 일어난 인물은 상회주 교중이 아니었다.
낮에 소개를 받았던 그의 외조카가 자신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복면을 쓴 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도둑이다!!!”
고진유는 밤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질렀다.
‘젠장!!’
얼마나 소리가 컸는지 침실이 흔들거릴 정도였다.
‘빨리 신민상회를 벗어나야 해!!’
그는 신법에 자신이 있었다.
신민상회의 무사들이 몰려오고 있었지만, 아직 약간의 여유는 있었다.
‘빨리 제압한 다음 철갑을……!’
타앗!!
“도둑놈이 감히!!”
고진유는 그를 잡으려 다가오는 복면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풋!”
‘단순한 애송이 주제에……!!’
복면인은 짧은 실소와 함꼐 고진유를 옆으로 쳐내고 제압하려고 했다.
하지만,
쿠우웅!!
‘커어억!!’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았다.
막아내기 위해 손을 뻗기도 전에 상대의 주먹이 벌써 쇄도해 있었다.
어깨를 맞으며 황당한 표정과 함께 뒤로 넘어진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어깨가 부서지는 고통이 밀려왔다.
“도둑이다!! 도둑이 들었다!!”
고진유는 밖으로 달려 나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다다다다-
밖에서 무사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제기랄!!’
휘이익!
복면인은 어깨를 감싸며 그 자리에 곧바로 신법을 펼치고 사라졌다.
“……후후.”
고진유는 복면인이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스윽.
곧이어 상회전으로 묵경이 들어섰다.
“인양과 녹검이 쫓아갔다.”
“조만간 그의 정체가 확실하게 밝혀지겠군요.”
“모용지, 그 녀석이 맞겠지?”
“알게 되겠죠.”
“정말로 북천의적이 모용지라면 대박이지 않냐?”
“재미있겠어요.”
고진유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보며 흥미롭다는 듯 웃었다.
* * *
‘빠른데?’
인양과 녹림야검은 신법을 펼치며 복면인의 뒤를 미행했다.
‘모용세가로 가는 길이 아냐. 어디로 가는 거지?’
복면인은 마을을 벗어나더니 외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휘익!
그러고는 오래된 사당 입구에 내려섰다.
“망할…… 놈.”
고진유에게 맞은 어깨가 점점 부어오르고 있었다.
최소한 뼈에 금이 간 듯했다.
복면인이 사당에 들어섰다.
[저곳에 들어갔어요.]
[내가 가볼까?]
[여기에서 지켜보고 있죠. 혹시 눈치챌 수 있으니까요.]
그가 사당으로 들어간 지 일각.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들렸다.
인양과 녹림야검은 숨을 죽이며 내려다보았다.
‘맞군.’
밖으로 나온 인물.
낮에 신민상회로 찾아왔던 모용지가 틀림없었다.
야밤이라 해도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는 주위를 살펴본 후 신법을 펼쳤다.
[사당을 조사해 보세요. 전 저자의 뒤를 끝까지 미행할게요.]
[알겠어. 조심해라.]
휘리릭!
인양은 사라진 모용지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녹림야검은 곧바로 사당에 내려가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음…… 누군가 올 것 같은 분위기인데?’
살수 생활을 하다 보면 감이라는 게 있었다.
그리고, 제대로 그의 감이 맞아떨어졌다.
일각이 지나기도 전에 사당으로 다가오는 검은 그림자가 있었다.
‘무림인은 아니군.’
사당에 다가선 사내는 머뭇거리지 않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번에는 황금소라고 했지? 어디 한번……!”
그는 단상 뒤를 돌아가더니 아래에 손을 넣어 더듬었다.
“……?”
그러더니 곤란한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뭐지? 분명 신민상회에서 황금소를 가지고 온다고 했는데. 오늘이 아닌가?”
사내는 잠시 생각에 잠긴 뒤 사당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일인지 내일 연락을 해봐야겠는걸.”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사당을 벗어났다.
‘저자가 누군지 확인해야겠군.’
녹림야검은 사내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 * *
모용지는 신법을 펼치며 모용세가에 들어섰다.
야간이라 하지만 세가에는 기에 능통한 고수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거리낌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신법에 자신이 있었다.
‘내가 익힌 신법은 중원 최고임에 틀림없다.’
그의 제자가 된 게 운이 좋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에게서 익힌 무공이 신법 외에는 없다는 것.
그 외 익힌 것들은 무공이 아니었다.
‘난…… 도적이 될 생각은 없어. 중원 무림에 무림인으로 당당히 내 이름과 내 업적을 알릴 거라고.’
위로 네 명의 배다른 형제들.
그들을 모용세가의 무공으로는 이길 수 없었다.
결국 포기하고자 할 때, 우연히 그를 만나 사부로 모셨다.
사부에게 익힌 신법은 중원 최고라 일컫는 시공신법(時空身法).
‘완벽하게 익히면 상대의 공격을 전부 피할 수 있는 신법이야. 그런데…….’
그의 주먹을 피하지 못했다.
‘욱…….’
잠시 잊고 있었던 어깨의 고통이 밀려왔다.
모용지는 인상을 쓴 채 전각으로 내려섰다.
‘확실하군. 모용세가의 인물이 맞아.’
인양은 미소를 띠며 안으로 들어간 그를 지켜보았다.
* * *
녹림야검은 사당에 나타났던 중년 사내를 뒤쫓았다.
사내는 미행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듯, 거리낌 없이 사당 반대편인 외곽 지역 근처로 움직였다.
‘저기는…….’
멀리서도 뜨거운 열기로 가득한 곳.
중년 사내가 도착한 장소는 대장간이었다.
‘제법 크게 노는 녀석들이군.’
지금까지 북천의적이 훔친 금들은 유통되기 힘든 큼직한 것들뿐.
하지만 대장간이 등장하는 순간, 녹림야검은 어떻게 나누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저 녀석은 됐고. 사당에 무엇이 있는지 한번 확인한 뒤 공자님께 돌아가야겠어.’
휘이이익!
녹림야검의 모습이 사라졌다.
* * *
모용지를 미행했던 인양과 녹림야검이 순서대로 돌아왔다.
녹림야검의 손에는 복면인이 입었던 복면과 야행의가 들려 있었다.
“녹검 씨부터 말해보시죠.”
“넵, 공자님. 그는 이곳을 나간 뒤 모용세가가 아니라 마을 외곽에 있는 사당으로 향했습니다. 상당히 신법에 자신이 있는지 우리가 미행하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옷을 갈아입은 뒤 모용세가로 떠났습니다. 인양 동생이 그를 미행하기로 하고, 전 사당으로 들어가려다가 잠시 멈췄습니다. 누가 나타날 것 같았습니다.”
“좋은 판단을 했군요.”
“감사합니다. 역시 사당으로 누군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무림인이 아니라 일반인이었습니다.”
녹림야검은 그를 따라간 뒤 알게 된 내용을 자세히 보고했다.
“대장간이라…… 괜찮은 방법이군. 황금을 녹여 전혀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거야. 머리들 좋은데.”
묵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게요. 내일 형이 녹검 씨와 같이 그곳에 가서 무엇이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알겠다.”
녹림야검의 이야기가 끝이 난 뒤 곧바로 인양이 보고했다.
특별한 건 없었다.
사당에서 나온 그가 곧바로 모용세가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본 뒤 물러났다고 했다.
“두 사람 모두 수고했습니다. 늦었지만 푹 쉬고, 인양은 나하고 모용세가로 가는 걸로 하자.”
“알겠습니다.”
묵경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미소를 띤 채 고진유를 보았다.
“왜 그런 표정입니까?”
“너를 무조건 따라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 벌써 재미있는 일이 생기잖아.”
“난 조용하게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내가 장담하건대 넌 절대로 조용하게 지낼 수 없다니까.”
“무슨 악담을 하십니까.”
“후후후. 악담이라면 어쩔 수 없고. 피곤하다. 그만 잘게.”
묵경은 손을 흔들며 녹림야검과 함께 옆방으로 들어갔다.
* * *
‘여기가 북방의 패자라 불리는 모용세가군.’
고진유와 인양은 모용세가 정문에서 십여 장 떨어진 앞에서 멈췄다.
정문 위사 분현초가 두 사람을 수상하게 노려보았다.
“저 녀석들 보이지?”
“음. 뭐 하는 녀석들이지?”
동료 위사 적훙도 수상한 듯 쳐다보았다.
“잠시 기다려 봐.”
분현초는 한 손으로 검을 잡고는 매서운 눈빛을 보이며 인상을 썼다.
“이봐. 지금 여기서 뭣들 하는 거야?”
“모용세가의 웅장한 경관을 구경하고 있소이다.”
“……그래?”
“한번 돌아서 보시오.”
분현초는 인상을 펴고 뒤로 돌아섰다.
늘 보아오던 광경이지만 이상하게 특별하게 보였다.
“뭐, 경관이 웅장하다는 건 당신들 말이 맞구먼.”
그러고 보면 수없이 봐오면서도 이 자리에 멈춰 모용세가를 쳐다본 적이 없었다.
“근데 댁은 누구요?”
“본도는 고진유라 하오. 안에 기별을 해주면 좋겠소이다.”
“……!!”
분현초는 갑자기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을 정도로 가슴이 뛰었다.
휙!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방금…… 누구라 했소이까?”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하오.”
고진유의 복장을 살폈지만 일반 경장이었다.
“모용세가는 복장으로 사람을 판단하시오?”
“죄, 죄송합니다.”
온몸을 압박하는 무형기.
그의 후각을 자극하는 매화 향기가 상대의 내력에서 피어올랐다.
‘지…… 진짜다.’
그는 정문을 통과하면서 동료 적훙에게 소리쳤다.
“적훙, 빨리 저분들을 얼른 모시게!”
위사 적홍 또한 다급하게 경내로 달려가는 그의 모습을 보며 두 청년이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천천히 정문으로 다가오는 두 명의 청년을 보면서 허리를 숙였다.
“모용세가에 잘 오셨습니다.”
“반갑소.”
“달려갔으니 안에서 금방 나올 것입니다. 안으로 들어오셔서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휘이이익!!
얼마 지나지 않아 멀리서 바람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급히 누군가 달려왔다.
적홍은 달려오는 인물을 보며 더 놀랐다.
‘대, 대체 누구길래 부가주께서 직접 오시지?’
정문으로 달려온 부가주 모용현은 두 청년 중 허리에 검을 찬 인물이 고진유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보았다.
척.
그가 먼저 정중하게 포권을 했다.
“그대가 화산도협이시오? 본인은 모용현이라 하오. 본 가에서 부가주의 직책을 맡고 있소이다.”
“처음 뵙겠습니다. 고진유라 합니다.”
포권을 하는 고진유의 모습에 감탄이 나왔다.
흐트러짐이 없는 동작과 그에 따른 내력의 절제가 완벽하게 어울렸다.
“안으로 드시지요.”
“고맙습니다. 부가주께서는 본도를 편안하게 대하시면 됩니다.”
“하하하. 그렇소?”
모용현은 고진유와 나란히 걸으며 내당으로 들어섰다.
* * *
고진유와 인양은 홍귀전으로 안내를 받았다.
모용세가가 갑자기 흥분한 듯 시끄러워졌다.
이유는 당연히 화산도협 고진유의 방문 때문.
부가주 모용현은 혹시나 그들에게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도록 세가 전체에 명을 내렸다.
“홍귀전에 본인의 허락 없이 절대로 출입을 금한다. 만일 어길 시 상관의 명을 거역한 죄에 해당하는 벌을 받을 것이다.”
모용세가의 무인들은 화산도협을 만나고 싶었지만 모용현의 엄포에 홍귀전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흐음, 상당히 체계가 잘 잡혀 있는데.”
“형, 그를 바로 만나러 갈 건가요?”
“우리가 찾아가서 놀래주는 것보다 그를 불러서 놀라게 만드는 게 더 재미있지 않을까?”
“그게 더 충격적이긴 하겠네요.”
“가주를 우선 만난 후 전부 한자리에 모이도록 자리를 만들면 되겠군.”
고진유는 모용지가 어떤 얼굴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