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47화 (147/425)

147화

허억, 헉, 헉.

신민상회주 교중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후다닥!

총관이 조용히 집무실로 전한 말에, 교중은 빠르게 청화각으로 올라섰다.

사전에 주의를 시켜놓았는지 주위에는 하인들조차 보이지 않았다.

“상회주입니다.”

그는 문밖에 선 채 안으로 조심스럽게 보고했다.

드르륵-

안에서 문이 열리며 굵직한 사내의 얼굴과 시선이 마주쳤다.

한쪽 목 옆으로 길게 뻗은 검흔.

녹림야검이 옆으로 비켜섰다.

“들어오시오.”

교중은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휴우.’

마음을 진정시키며 안으로 들어섰다.

‘저…… 분인가?’

젊은 청년이 일어난 채로 그를 맞이했다.

교중은 무림인이 아니었지만, 상회를 운영하면서 많은 무인들을 보아왔다.

‘차원이…… 그들과 차원이 다르다.’

첫눈에 그가 화산도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본도가 고진유라 합니다.”

“화산도협님,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교중이라 합니다.”

“교 상회주이시군요.”

고진유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함께 온 인물들을 보았다.

“저기…… 세 분께서는?”

“여긴 본도의 의형이신 묵경 형님이고, 의제인 인양 아우입니다. 방금 본 친구는 동료인 녹검이라고 합니다.”

“아…… 네에…….”

교중은 의형이라 소개한 묵경을 보았다.

‘의형이라면 소문에 듣기에는…… 송옥보다 더한 미남자라고 하던데……?’

그가 묵경의 얼굴을 보면서 약간 의심스러운 표정을 짓자,

“아.”

스윽.

작게 감탄사를 뱉은 묵경이 면구를 벗었다.

“이런 얼굴로 나를 소개하면 당연히 사기라고 생각하겠군요. 미처 생각지 못했소이다.”

“……!”

면구 속에서 나타난 묵경의 진면목에 교중은 얼른 사죄의 말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고인들을 보는 눈이 아직 멀었나 봅니다.”

“아닙니다. 이해합니다. 사실 지금 신분을 속인 채 조용히 다니는 중이라 면구를 쓰는 중이지요.”

“아하…….”

그는 면구를 다시 쓰는 묵경을 보았다.

‘흐음. 흐음.’

교중은 더는 의심하지 않은 채 의자에 똑바로 앉았다.

묻지 않아도 저들이 먼저 찾아온 이유를 말할 것이었다.

그의 생각처럼, 바로 고진유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교 상회주께서는 본도가 찾아온 이유가 궁금할 것이라 봅니다.”

“아…… 예.”

“얼마 전 북천의적에게 귀한 물건을 잃어버렸다고 들었습니다.”

“……!”

돈을 떠나 황금 거북이는 그의 조부께서 물려주신 물건이었다.

아끼고 아꼈던 물건이라 꼭 찾고 싶었지만, 북천의적에게 도둑을 맞은 이상 쉽게 찾을 수 없다고 낙심을 하던 중이었다.

“의적이라는 건 부당하게 취한 물건들을 다시금 백성들에게 돌려주는 것이라 본도는 알고 있습니다.”

“예에…….”

교중은 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긴장되었다.

“본도가 알기에 교 상회주께서는 그런 인물이 아니실 텐데요.”

“고, 고맙습니다.”

그 또한 구두쇠처럼 장사하긴 했지만 상도를 어기지 않고 상회를 운영했다고 늘 생각했었다.

“많은 사람이 그를 의적이라 하지만 본도가 보기에는 도적일 뿐입니다.”

“아…… 고맙습니다. 화산도협님의 말씀을 들으니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 같습니다.”

“본도가 찾아온 이유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상회주께서는 상회에 일하는 사람들에게 한 가지 소문을 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후후후. 그건…….”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교중에서 소문을 낼 이야기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신민상회에서 시작된 소문은 마을로 흘러들어간 뒤 하루가 넘어서자 심양 전체로 번져 나갔다.

-신민상회에서 북천도적에게 당한 뒤 절대로 열지 못하는 철갑 상자를 구입했다고 하더군.

-상회주가 이번에는 그 안에 황금소를 넣어두었다고 했어. 그러딘 세상에 어떠한 도둑놈도 철갑을 열고 황금소를 가지고 갈 수 없다며 호언장담을 했대!

심양의 백성들의 모든 시선이 신민상회로 집중되었다.

과연 북천의적이 철갑을 열고 황금소를 가지고 갈지 모든 관심이 쏟아졌다.

그 소문은 모용세가에도 전해졌다.

스윽-

서책을 덮은 사내의 얼굴에 비웃음이 걸렸다.

“제법 오기가 있는 사람이군. 신민상회주가 화가 많이 났나 봐. 황금 거북이를 스스로 찾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인가?”

모용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로 신민상회에서 철갑을 새로 구입했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하인이 얼른 허리를 숙였다.

“오 공자님, 어디 나가시는 것입니까?”

“밖에 볼일이 있어.”

“소인이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별일 아니야. 혼자 갔다 와도 돼.”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모용세가주의 다섯째 아들, 모용지는 세가에서도 다른 형제들에 비교해 가장 온화한 성격을 지녔다고 알려진 인물이었다.

역시나 성격처럼 평소에는 무공 수련보다는 서책을 보며 지내는 시간이 많았다.

모용세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그런 그를 가장 좋아했다.

모용지는 세가 밖으로 나왔다.

그의 걸음은 무인들의 가벼운 발걸음과는 다르게 바닥을 끌듯 느긋했다.

“…….”

그렇게 한참을 벗어난 그는 잠시 제자리에 선 뒤 주위를 살폈다.

‘아무도 없군. 이제 움직여볼까?’

파앗!!

모용지가 신법을 펼치며 제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다.

* * *

한 시진 뒤.

모용지가 신민상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저어…… 어떻게 오셨습니까?”

연황의를 입은 사내가 정문 앞에 나타나자 정문을 지키던 무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사내가 입은 연황의가 모용세가의 의복이라는 것을 모르는 심양의 사람은 없었다.

“모용세가에서 오셨습니까?”

“그렇네. 본인은 모용지라고 한다.”

“그럼, 모용세가의 오 공자가 맞습니까?”

“본인이 굳이 확인을 해줘야 하나?”

“죄송합니다. 절차를 지키지 않는다면 소인이 총관님께 야단을 맞습니다.”

처억.

그가 소매 안에서 신패를 꺼내 보여주었다.

“됐는가?”

“고맙습니다. 소인이 얼른 상회주님께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곧 교중은 정문으로부터 모용세가에서 오공자 모용지가 찾아왔다는 전언을 받았다.

심양에서 장사를 하는 처지라 모용세가에 가끔 들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오공자인 모용지와 왕래는 없었다.

“화산도협님, 이상합니다. 모용세가의 일 공자라면 모를까, 오 공자와는 거의 얼굴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저하고 같이 가죠.”

“함께 말입니까?”

“음…… 본도를 하북에 사는 외가 쪽 조카라 하세요. 말했던 것처럼, 그 이유로 철갑을 가지고 왔다고 하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가볼까요?”

교중은 고진유와 함께 정문으로 향했다.

정문으로 가는 도중 세상에 이보다 든든한 기분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저자인가?’

정문 앞 경내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내.

대략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고진유보다 두세 살 정도 많아 보였다.

교중과 고진유는 곧장 모용지 앞으로 다가섰다.

“제가 상회주입니다. 모용세가에서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모용지라 하오.”

“오 공자이시군요.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하하하, 그렇소이까?”

모용지는 크게 웃으면서 그의 옆으로 함께 온 고진유를 가리켰다.

“같이 온 청년은 누구인지?”

“저의…… 외조카입니다.”

“그렇소? 많이 닮지는 않았소이다.”

“그건…….”

“하하하. 그대의 외조카가 상회주의 친가를 닮지 않아서 다행인 것 같소이다.”

“아…… 네. 그렇습니다.”

그는 고진유의 아래위를 살폈다.

단단한 체격을 먼저 본 듯했다.

“으음. 자네를 보아하니 무가 쪽 같군.”

“반갑습니다. 본 가는 멀리 형유 쪽에서 작은 무가를 하고 있습니다.”

“형유라면 제법 멀리서 왔군. 근데 여기까지 무슨 일로 왔는가?”

“상회를 꾸리시는 외숙부를 위해서 철갑을 가지고 왔습니다. 얼마 전에 외숙부께서 도둑을 맞으셨다고 들어서 말입니다.”

“철갑이라면…… 혹시 소문에 난 그 물건을 말하는 모양이지?”

“그렇습니다.”

모용지는 눈빛이 변했다.

“혹시 그 물건을 볼 수 있는가?”

“그건…… 비밀리에 숨겨놓았습니다. 어찌 함부로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음…… 그야 그렇긴 하지만 정말로 그런 게 있는가 싶어 궁금한 것이네.”

“아…… 그렇다면 일각 뒤에 청화각으로 오시지요. 그때 잠시 가지고 와서 보여 드리겠습니다.”

“좋네. 그렇게 하세나. 소문처럼 열 수 없는 철갑인지 궁금해서 그러네.”

고진유는 돌아서며 교중을 불렀다.

“외숙부, 잠시 철갑을 가지고 오시는 게 좋겠습니다. 들어가시지요.”

“어…… 그렇게 하자꾸나.”

교중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난 모르겠다. 이분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일각 뒤.

모용지는 빠른 걸음으로 청화각에 들어섰다.

“여기 앉으시지요.”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도 탁자 위에 놓인 철갑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생각보다 작아 보였다.

“혹시 철갑이라는 게 이것이오?”

“그렇습니다.”

“음, 한 번 만져봐도 되겠소?”

“괜찮습니다.”

모용지는 철갑을 든 후 살폈다. 처음에는 별것 없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점점 얼굴이 굳어져 갔다.

그는 여전히 철갑을 손에 들고 있었다.

마치 돌려주지 않으려는 듯한 표정으로 고진유를 보며 물었다.

“이것을 어디서 얻었는가?”

고진유는 모용지의 손에서 가볍게 철갑을 빼낸 뒤 가져왔다.

‘뭐지? 이 녀석!’

언제 그의 손이 다가왔는지 보지 못했다. 철갑은 어느덧 고진유의 손에 들려 있었다.

“제 사부께서 주셨소이다. 저에게 주시면서 귀한 물건이 있으면 넣어두면 된다고 하셨지요.”

“……그 물건을 나에게 팔 수 없는가?”

“안 됩니다. 사부님께서 주신 물건이라 외숙부께서도 이 물건을 절대로 팔지 않았습니다. 잠시 빌려 드린 것입니다.”

“그렇군. 알겠네.”

그는 포기하는 듯했지만 시선은 철갑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스윽.

모용지는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난 가겠네.”

“벌써 가시는 것입니까?”

“소문처럼 대단한 물건인지 궁금해서 왔을 뿐일세. 물건을 잘 봤으니 돌아가야겠지.”

“제가 밖으로 안내를 하겠습니다.”

“됐네. 혼자 가지.”

그는 일이 있는 듯 빠르게 청화각을 나섰다.

신민상회를 나가는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한 가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 물건은…… 분명 천공공(天工工)이 만든 게 확실하다.’

모용지의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정문을 나선 그가 신법을 펼치며 사라지자,

스윽-

정문에서 사라진 모용지를 지켜보던 시선이 모습을 드러냈다.

‘진유 형 말대로 수상해.’

인양은 그의 뒤를 따라갈까 물었지만, 고진유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기다리면 북천의적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면서.

‘지금도 진유 형 말대로 정말 알아서 찾아왔잖아.’

* * *

천문전에서 나온 전언에 흑화전주 배조경이 찾아왔다.

그는 나하중을 향해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나하중 님을 뵙습니다.”

“배 전주, 어서 오시게. 오랜만에 오는 것 같군.”

나하중은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한 오 년 정도 된 듯합니다.”

“허허허…… 바로 눈앞에 있으면서도 오 년 동안 보지도 않았다니.”

“서로 그동안 바쁘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긴 하지. 자리에 앉게.”

배조경은 그의 반대편 자리에 앉았다.

쪼르르르-

윤여림이 그의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따르자, 배조경은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네도 오랜만일세.”

“네.”

윤여림은 차를 따른 뒤 뒤로 물러났다.

“드세나.”

“감사합니다.”

배조경은 입술을 살짝 묻힐 정도로만 축인 뒤 찻잔을 내려놓았다.

“저를 부르신 이유가 무엇인지요?”

“허허. 급한 일이 있는가? 차를 다 마시지 않고?”

“무슨 이유로 부르셨는지 모르는데 차가 넘어가겠습니까.”

“흑화전주가 약한 모습을 보이다니 믿기지 않는구려.”

나하중은 단숨에 차를 마셨다.

“오늘 배 전주를 부른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화산도협에 대해 의논을 하고자 하고 싶어서 불렀다네.”

“나하중 님께서는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이십니까?”

“철갑을 그 녀석이 가지고 있는 이상 잡아야지.”

나하중이 그동안 그를 가만히 놓아둔 이유는 철갑의 존재를 찾기 위해서였다.

“극일천의 이름으로 중원에 직접 나선다는 뜻입니까?”

“아직 시기상조일세. 본 천의 계획은 이 년 뒤였네. 모든 것이 그때 움직이기로 하지 않았나. 만일 지금 본 천이 나선다면 중원에 모이는 힘을 이길 수 있겠나?”

“…….”

무림을 무너뜨리기 위해 긴 세월 동안 많은 간자들과 세작들을 중원 무림에 심어두었다.

“중원도 중요하지만 무구천도 있지 않습니까?”

“클클클…… 그렇군. 무구천도 있었지. 귀찮은 놈들이야…… 하지만 신경 쓰지 말게. 어차피 우리가 겁이 나서 숨은 채로 움직이는 놈들이지 않나.”

나하중은 웃음을 지으면서 슬쩍 윤여림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얼굴은 전혀 변화가 없이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무림에서 꿈쩍하지 않은 천검궁도 있습니다.”

“흠…… 조용히 있는 게 좋지 않은가? 천검궁은 무림이 어떻게 되든지 상관하지 않는다네.”

“…….”

“그리고 봉문을 풀리는 날까지는 아직 이 년이나 더 남았지. 우리에겐 충분한 시간이라고 할 수 있네. 중원인들은 모르겠지만 무신 초일군이 천주님과의 비무에서 오백 초를 넘지 못했기에 이십 년의 봉문에 당하지 않았나.”

“그 전에 중원 무림을 끝장내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천주님께서도 아직 폐관을 끝마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보게, 배 전주. 천주님께서 왜 철갑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지 모르는가? 그분은 무림에 더는 관심이 없네. 상대가 없는 무림은 그저 심심할 때 소일거리라 생각하시고 계시지. 그분은 오로지 한 가지 목표밖에 없으신 분이야.”

극일천의 천주가 원하는 일에 대해 흑화전주 배조경도 잘 알았다.

“무림을 차지하는 일은 모든 것이 나하중 님의 뜻입니까?”

“무슨 말을 하는가? 내 뜻이 바로 천주님의 뜻이라네.”

배조경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마치 그가 천주라는 말처럼 들리지 않은가.

“허허…… 표정을 보아하니 본인을 오해를 하는구먼. 내가 말한 뜻은 그분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본인이라는 것이네.”

“…….”

“……이번에 화산도협에게 석가장이 당하지 않았는가?”

배조경이 코를 실룩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최근 그가 석가장을 제대로 들썩거리게 했다.

“어떤가. 흑화전에서 제대로 한번 해볼 텐가?”

“……알겠습니다. 본 흑화전에서 그를 잡아오도록 하겠습니다.”

“굳이 살려 데리고 올 필요도 없네. 철갑만 제대로 가지고 오면 될 뿐이야.”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흑화전 배조경의 눈에 살기가 솟구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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