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46화 (146/425)

146화

“음…… 분명 이곳으로 움직인다고 했는데?”

북소연은 인상을 쓰며 관로를 지나가는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살폈다.

북해빙궁에서 화산파 일행이 중원으로 내려왔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들이 고원으로 온다는 소식에, 반나절 전 도착한 그녀는 마을 초입에 세워진 객잔에서 기다렸다.

‘드디어, 왔군.’

그리고, 마을로 들어서는 언덕 위에서 화산파 일행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북소연의 표정이 환하게 밝아지려고 할 때였다.

‘뭐지?’

일행 속에 그 얼굴이 없었다.

혼자만 보이지 않는 게 아니었다.

‘없어. 그들이 없어.’

의형제라 알려진 세 사람.

고진유와 함께 묵경, 그리고 인양의 모습이 화산파 일행 사이에서 보이지 않았다.

‘중간에 사라졌어.’

휘이익!

북소연은 재빨리 신법을 펼치며 객잔을 내려갔다.

* * *

“헛, 호진 사형.”

장두총은 모습을 드러낸 채 달려오는 북소연을 발견했다.

‘역시 사제 말대로 알아서 찾아오는군.’

헤어지기 전, 고진유는 중원을 내려가는 도중 북소연이 찾아올지 모른다고 일행에게 귀띔했다.

그리고 그가 말한 것처럼 지옥혈림의 북소연이 찾아왔다.

북소연은 다가오면서 혹시나 고진유가 뒤에 오지 않을까 살폈지만, 그녀가 찾는 얼굴은 끝내 보이지 않았다.

“호진 도사님. 여기에서 뵙게 되는군요.”

“우릴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네. 맞아요. 화산도협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녀는 사실대로 말을 했다.

“근데 제가 만나야 할 사람이 보이지 않네요.”

“호정 사제를 찾는다면 잘못 온 것 같소.”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호정 사제가 말하기를, 당신이라면 자신이 중원 어디에 숨어 있다고 해도 알아서 잘 찾아올 것이라 하더군요.”

“…….”

“근데 우리 앞에 소저가 나타난 것을 보면 사제를 찾지 못하는 것 같군요.”

북소연은 당황했다.

고진유에게 만리향조차 일부러 알려주면서까지 추적을 자신했다.

‘한데 존재를 완전히 놓쳤어……?’

앞으로는 그가 몸을 숨긴다면 찾아낼 수 없을 것이었다.

“사제가 말한 인물에 대해서는 알아냈소이까?”

‘이들에게 그 사실까지 알려준 모양이군.’

철갑에 대한 일은 극비 중의 극비.

우종성이 지금 이 자리에서 철갑에 대해 말을 꺼내는 것을 보면, 일행 모두 알고 있는 것이 확실했다.

우종성의 물음에 그녀는 더 당황했다.

비밀은 많은 사람들이 알면 소문이 나게 마련 아닌가.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그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서 기다렸어요.”

“많이 기다린 듯한데 안타깝구려. 사제는 석림에서 우리와 헤어져 따로 움직였소이다. 어디로 갔는지는 우리도 알 수 없다고…….”

그녀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그들조차 모른다면 당장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리 말을 해보라고 하더군요.”

“……!”

분명 그녀를 놀리는 것 확실했다.

‘이…… 진짜…… 사람이 왜 그래?’

북소연은 차분하게 다시 물었다.

“호진 도사님께서는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는 말씀처럼 들리네요.”

“그렇소이다.”

“사제나 사형이나 어째 똑같군요.”

“본도는 그저 사제의 부탁을 따랐을 뿐이오.”

“…….”

북소연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놀리라고 시키는 사람이나 그걸 그대로 하는 사람이나 그녀가 보기에는 똑같았다.

“다 놀렸으니 이제 됐지요? 그는 어디에 있나요?”

슥슥-

우종성은 발바닥으로 글을 썼다가 바로 지웠다.

북소연은 어디를 가리키는지 바로 알아챘다.

“고마워요. 그럼…… 도사님들은 어딜 가시는 건가요?”

“본 문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먼 길 가시는 모양이군요. 조심해서 돌아가세요.”

북소연은 화산파 일행과 인사를 한 후 빠르게 사라졌다.

“지옥혈림의 인물에게 안부를 듣는 날이 오는구나.”

“그러게요. 저 여자를 보면 지옥혈림도 썩 나쁜 놈들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장두총이 옆으로 나왔다.

“호정 사제 말대로 자신에게 잘해주면 착한 놈이고, 못하면 나쁜 놈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종성의 말에, 사형제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 녀석과 같이 다니다 보니 요즘 들어 정사의 개념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혁자영도 예전과 생각이 변한 자신을 알았다.

“후후후, 이런…… 이대로 본 문으로 돌아갔다간 이상한 생각에 빠졌다고 큰일 나는 것이 아니냐?”

* * *

고진유가 따로 길을 떠났다는 장소는 고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았다.

‘이곳도 본 림에서 지키고 수하들이 있었는데…… 그들을 발견하지 못했어.’

아무런 일도 없이 만안국(萬眼局)을 뚫고 지나가는 게 가능했던가?

그녀는 마을로 들어섰다.

‘오긴 왔는데…… 어디로 가야 하지?’

우종성은 그녀에게 위치만 가르쳐 줬을 뿐이었다.

일단 알려준 곳에 오긴 왔지만 어디서부터 찾아야 할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휘익. 휘익.

그때, 저 멀리 고목 아래에서 손을 흔드는 인물이 보였다.

북소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뭐야? 괜히 마음 고생했네.’

그녀는 고목 아래로 다가서면서, 이 장 정도 곁에서 쉬고 있는 인물들을 보았다.

예상대로 의형제들인 묵경과 인양이 함께하고 있었다.

그리고 뜻밖에도 녹림 출신의 인물도 보였다.

“여기서 뭐 하고 계신가요?”

“기다리고 있는 게 보이지 않소이까?”

“그렇네요.”

북소연은 조금 떨어져 있는 일행 사이에서 녹림야검을 가리켰다.

“저기 두 사람이야 알겠는데 저자는 왜 같이 있어요?”

“녹림에서 받을 돈을 못 받았소.”

“돈도 꽤 많으신 분이 산적들 호주머니까지 털 모양인가 보군요.”

“남의 사생활에 관여하는 게 아니외다. 우리 일이나 합시다.”

그녀가 찾아왔다는 것은 만능자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북소연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여기에 올 때부터 반겨줄 거라고는 생각 안 했으니까.”

북소연은 눈을 흘깃 보면서 찾아온 용건에 대해 말을 꺼냈다.

“저번에 부탁한 대로 만능자에 대해서 알아봤어요. 신비한 인물이더군요. 분명 실존하는 인물이긴 한데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을 찾기 힘들었어요.”

“음, 실존 인물이라면 그래도 그에 대해서 단서는 찾은 것 같군요.”

“맞아요. 만능자란 인물을 찾지는 못했지만, 그와 연관된 인물에 대해 알아냈어요. 최근 도둑들 사이에 유명한 인물이더군요. 물건을 훔친 뒤 만능소자라는 흔적을 남긴다죠.”

“역시…… 믿고 있었소이다.”

고진유의 칭찬이 바로 나왔다.

“……뭐야? 조금 어이가 없네요. 나를 믿는다고 했나요?”

“본도의 표현이 이상했소?”

“됐어요. 다행히 여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가 누구란 말이오?”

“반년 전부터 요녕성 심양에 처음으로 나타난 인물이에요.”

“그렇군.”

“그를 잡으러 갈 건가요? 굳이 안 가도 될 텐데요.”

“지옥혈림에서 벌써 잡은 거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쯤이면 잡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쪽에서 방해만 하지 않는다면 상관없으니 맘대로 하시오.”

고진유는 몸을 일으키자, 그를 따라 다른 세 명도 일어섰다.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 * *

두두두두두두-

마을 사이로 열 필의 기마들이 빠르게 내달렸다.

관로에 있던 사람들은 재빨리 옆으로 물러나면서 웅성거렸다.

“보아하니 북천의적께서 또 한 건 하셨군?”

“모용세가의 무인이 나서도 그분을 잡기는 힘들지.”

“그분께서 손을 대면 열지 못하는 물건이 없다고.”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듯 하던 일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객잔의 난간에 서서 그 장면을 내려다보는 시선들.

고진유와 함께 세 사람은 요녕성으로 바로 넘어왔다.

묵경은 너무 잘생긴 얼굴을 가리기 위해 평범한 얼굴로 면구를 만들어 쓰고 있었다.

“진유 형, 북천의적이 유명한가 봐요. 그가 우리가 찾는 인물이 맞죠?”

요녕성에 들어선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인물의 이름이 북천의적이었다.

부자들의 집만 잠입한 뒤, 금이나 돈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준다나.

“저도 한때 의적이 되면 어떨까 생각한 적이 었었는데. 궁금하네요. 어떤 사람인지.”

휘익!

그때, 정보를 얻기 위해 마을을 돌아다녔던 녹림야검이 이 층으로 돌아왔다.

“공자님, 밖에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뭐죠?”

“북천의적이란 인물이 이번에는 모용세가의 물건을 훔쳤다고 합니다.”

“네에?”

인양의 목소리가 커졌다.

의적이라 하나 무림세가를 일개 도둑이 건드렸다는 것이 아닌가.

“허, 별 웃기는 놈이 다 있군. 무슨 도둑놈이 무림세가의 물건을 훔쳐? 그것도 북방의 패자라 부르는 모용세가를 건드리다니…….”

“간덩어리가 상당히 부은 놈입니다.”

묵경은 물론 녹림야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한때 중원 무림의 전역까지 영향력이 대단했던 모용세가였다.

이십 년간 중원 무림에서 주춤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북방에서는 최고의 무림 문파가 아닌가.

“평범한 도둑은 아니군. 보아하니 무림인이야.”

“진유 형, 북천의적을 말하는 겁니까?”

“맞아. 도둑놈이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무공을 못하면 모용세가에 들어갔다가 나올 수 없어.”

“진유 아우의 말이 맞아. 아무리 간이 크다고 해도 보통은 모용세가를 건드리지 않잖아.”

고진유는 녹림야검을 보며 물었다.

“녹검 씨. 모용세가에서 잃어버린 게 뭡니까?”

“그게…… 별게 아니라고 합니다만 보금당에 몰래 들어가서 은전이 든 돈상자 하나를 훔쳤다고 합니다.”

“그 정도면 모용세가에서도 타격은 없겠군.”

고진유는 입가에 미소를 짓고는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했다.

“자, 모두 앉으세요.”

세 사람은 고진유를 따라 식탁에 앉았다.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북천의적을 찾아보는 겁니다.”

“형, 그를 어떻게 찾아내죠?”

“별로 어렵지 않아. 쉽게 생각해 봐.”

세 사람의 시선이 고진유의 얼굴로 향했다.

“쉽다고요?”

“인양아. 내가 그의 행동을 본 바, 약간 관심 종자의 기가 있어 보여.”

“과, 관심……? 그게 무슨 말인가요?”

“힘들게 모용세가의 보금당에 들어간 놈이 겨우 은전이 든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그렇죠. 금전이면 모를까…… 모용세가 보금당이라면 그것보다 더 귀하고 비싼 물건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요. 못 여는 자물쇠가 없다는 인물이 가지고 나온 물건이 돈상자 하나라는 게 이해가 안 가네요.”

“그 말은 즉 돈에는 관심이 없고 자신을 알리고 싶다는 건가?”

이번에는 묵경이 물었다. 고진유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가능성이 많을 것 같네요.”

“아하, 좋아. 알겠어. 그렇다면 그를 찾는 게 쉽다는 뜻은 뭐냐?”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미끼를 던지면 됩니다.”

“무슨 미끼를?”

“그가 찾아올 수 있도록 만드는 미끼. 조금 이따가 바로 알게 될 겁니다.”

세 사람은 당장 궁금했지만 조만간 알게 된다는 말에 참았다.

“녹검 씨, 여기 근처 마을에서 북천의적에게 당한 곳이 있는지 한 번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당장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녹림야검은 곧장 일어난 뒤 다시 빠르게 객잔 박으로 사라졌다.

묵경은 그가 사라진 방향을 본 뒤 고진유에게 말했다.

“녹림에 돌려주긴 아까운 인물이야.”

“그러면 계속 데리고 다니죠.”

“음? 녹림에서 돈을 가지고 오면 돌려보내야 하잖아.”

“몸값을 올리면 돼요. 녹림에서 녹검 씨를 데리고 가려면 황금 백만 냥을 내놔라.”

“어엉? 뭐야? 황금 백만 냥이라고? 만 냥도 아니고?”

묵경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중원에서 몸값이 걸린 인물들 중 그보다 높은 인물은 없을 것이었다.

“음, 말이 나온 김에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겠어요.”

“뭘?”

“녹림야검의 몸값이 올랐으니 황금 백만 냥을 얼른 가지고 오라고요. 안 그럼 계속 오를 것이라고 하면 됩니다.”

“푸하하하하!! 녹림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한데?”

* * *

신민상회의 현판 아래에 네 명의 사내가 도착했다.

녹림야검은 조사한 내용을 설명했다.

“공자님, 북천의적에게 얼마 전 황금 거북이를 도둑맞았다고 했습니다. 백 냥 정도의 무게라고 합니다.”

“흠. 백 냥의 황금 거북이라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닐 텐데.”

고진유는 의심이 갔다.

의적질을 하는 인물이라면 백성들에게 골고루 나눠 주기 위해 황금 거북이를 쉽게 돈으로 바꿀 수 있어야 했다.

이런 정도의 물건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신중하지 않으면 신분이 노출될 수 있었다.

“그러게요. 그런 장물을 받아줄 수 있는 곳이 없으면 백성들에게 나눌 수 없잖아요.”

“아니면 그 정도의 물건도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데.”

고진유와 인양의 대화를 듣던 묵경이 물었다.

“혼자가 아니라는 말이야?”

“그런 것 같네요. 훔친 물건을 처리해 주는 인물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우. 대단한데? 바로 그것까지 알아내다니. 그럼 장물을 처리하는 사람을 찾아내면 그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군.”

“그렇죠.”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녹검 씨. 여기 신민상회 주인에 대한 평판은 어떤가요?”

“뭐라고 딱히 좋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전형적인 장사꾼입니다.”

“의적이 찾아올 정도의 나쁜 사람은 아니라는 거군.”

“네. 그렇습니다.”

“신민상회에 대해서 조사를 잘했군요. 수고했습니다. 아 참, 그리고 시간이 되는 대로 녹림에 연락을 보내세요.”

“……!”

녹림야검은 순간 멈칫거렸다.

‘얼른 돈을 가지고 오라는 내용인가?’

“다른 건 아니고, 녹검 씨의 몸값이 황금 백만 냥으로 올랐으니 한 푼도 깎을 생각을 하지 말고 빨리 준비해서 가지고 오라고 전하세요.”

그는 눈만 깜빡깜빡거렸다.

‘황금…… 백만…… 냥이라고?’

혹시 잘못 들었나?

“저어…… 황금 백 냥이 아니고 백만…… 냥이 맞습니까?”

“몸값이 너무 적소? 좀 더 올려줄까요?”

“아…… 닙…… 니다. 그냥…… 너무 많아서 놀랐습니다.”

녹림야검은 계속 머릿속에서 황금 백만 냥이란 금액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했지만, 떠오르지 않았다.

“그럼 들어가 볼까요?”

고진유는 신민상회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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