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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43화 (143/425)

143화

백빙군의 일천 빙궁 무인들이 빙화전을 포위한 뒤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빙화전 안으로 화산파 일행에게 항복하도록 권유한 지 하루가 지났다.

육 척의 장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

빙궁은 외부와 달리, 춥지 않다고 하나 거의 얇은 겉옷만을 입었을 뿐인 백빙군장 한정웅은 그 강인한 육체만으로도 무력의 수위를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얼마 남았지?”

“일각이 남았습니다.”

한정웅 앞으로 부관 청음석이 허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지금까지 연락이 없는 것을 보아하니 나올 생각이 없는 것 같군.”

“백일대가 바로 준비 중입니다. 군장님 명령이 떨어진다면 바로 안으로 들어가 정문을 확보할 것입니다.”

“백일대만으로 가능할지 의문이군. 화산파 도사들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다.”

“일대주 견후태의 능력이라면 정문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습니다. 상대는 이십 명도 되지 않습니다.”

“좋아. 견후태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 지 볼 기회가 되겠어”

“명을 내려주신다면 당장 움직일 준비를 하겠습니다.”

“일각 뒤 바로 움직여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청음석은 서너 걸음 앞으로 나선 뒤 번쩍 손을 들며 신호를 보냈다.

빙화전의 앞에서 신호를 주시하던 인물.

백일대 대주 견후태의 눈빛이 빛났다.

‘공격을 준비하라는 신호다.’

표정에 나타난 만족스러운 미소.

자신의 능력을 보일 기회가 찾아왔다.

‘내가 제일 먼저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빙화전으로 단숨에 들어가서 정문을 확보한 뒤, 백빙군장에게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일각이 지나가기를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번쩍!

견후태의 눈이 크게 떠졌다.

최후까지 기다렸지만 빙화전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백일대는 지금 당장 정문을 확보한다. 나를 따르라!”

파아앗!!

견후태가 선두에서 움직였다. 그 뒤로 일백 명의 백일대가 새처럼 날아올라 빙화전 아래로 내려섰다.

하지만,

‘뭐지?’

내리선 동시에 다가올 반격을 예상했건만, 주위에서는 어떠한 움직임도 없었다.

‘이상한데?’

이상함을 느꼈지만 일단 임무를 완수해야 했다.

“정문을 열어라!”

백일대 수하들이 빠르게 정문을 확보한 뒤 문을 열었다.

두두두두두-

백빙군이 기다렸다는 듯 빙화전으로 쏟아져 들어섰다.

견후태가 빠르게 다가섰다.

“군장님. 안에 아무도 없습니다! 화산파의 도사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당장 건물 안을 확인해라!”

한정운의 명에 견후태는 빙화전으로 향했다.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았다.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방문들을 모두 열어젖혔지만,

‘없어…… 대체…… 어디로 갔지?’

수하들도 밖으로 나오면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로 사라진 거야?”

견후태는 환장할 노릇이었다.

화산파 도사들이 빙화전에 들어간 이후부터 주위를 완전히 포위했다.

그들이 움직인 기미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휘이익!!

부관 청음석이 안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그의 얼굴 표정처럼 목소리 또한 다급했다.

“견 대주. 무슨 일이지?”

“부관님. 전부 사라졌습니다. 전부 찾아보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공녀께서는?”

“……그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견후태는 화산파 도사들에게만 신경을 썼다.

빙화주의 주인 설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망했군.”

빙궁주에게 어떻게 이 사실을 알려야 할지 머릿속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뭐 하는가? 다시 한 번 수색하게!”

“아, 알겠습니다!”

견후태는 빙화전의 모든 방을 재차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 * *

빙궁주 설무청은 빙화전에서 들어온 한정웅의 보고를 받았다.

“도사 놈들이 사라졌다고? 게다가 그 아이의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그의 목소리에 빙궁전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송구하옵니다. 빙화전을 샅샅이 조사했지만 공녀님도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설무청은 거친 호흡 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 아이가 데리고 나갔군.’

빙화전의 비상 통로.

북해빙궁을 몰래 빠져나갈 수 있는 비상통로의 존재를 아는 인물은 빙궁에서 세 명밖에 없었다.

‘빙화전에 도사 놈들이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도망갈 것을 대비해야 했어. 실수했군.’

하루 전에 비상 통로를 통해 북해빙궁을 나갔다면, 설동(雪洞)으로 가고 있을 게 확실했다.

‘빨리 움직인다면 따라잡을 수 있다.’

“한 군장, 지금 당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녀석들로 뽑아 설천산으로 가라. 그곳에 그들이 있을 것이다. 당장 잡아오도록.”

“궁주님. 만일 공녀께서 그들의 편에 서신다면…….”

“빙궁으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한다면 변절자는 필요 없다.”

설무청의 대답은 단호했다.

“존명.”

한정웅은 빙궁전을 나온 뒤 빠른 신법을 펼칠 수 있는 수하들을 차출했다.

그리고 설천산을 향해 이백 명과 함께 내달렸다.

* * *

쉬이이이이-

휘이이이익-!!

고진유와 인양은 내력을 끌어 올리며 신법을 펼쳤다.

호충신법을 극성으로 펼친 두 사람을 따라올 자는 없었다.

그들을 미행하던 기들은 하북성을 넘어서자 느껴지지 않았다.

북해빙궁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설원을 지나야 했다.

하지만 무작정 설원을 달릴 수 없었다.

“형, 저곳이 설원초림이라는 곳인가 봐요.”

설원이 시작되는 초입의 장소.

이곳을 지나면 더는 나무를 볼 수 없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진 장소였다.

‘설원초림에 누가 나와 있을지?’

주위를 둘러보던 고진유는 한 그루 나무 아래서 눈에 익숙한 사내의 얼굴을 발견했다.

‘냉풍…….’

고진유의 이마에 주름이 미세하게 잡혔다.

‘그가 나왔다면, 가장 좋지 않은 예상대로 되었군.’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허공에서 한 번 더 튕기며 설원초림으로 향했다.

‘허어…… 역시 형이다.’

인양은 지금까지 움직임보다 더 빨라진 고진유를 보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슈우우우욱-

멀리서 태풍이 불어오는 듯했다.

냉풍은 눈을 깜빡거리는 순간 눈앞에 나타난 고진유를 보며 눈이 커졌다.

“오랜만입니다.”

끄덕.

“여기에 온 지 얼마 됐소이까?”

고진유의 질문에 냉풍이 손가락 하나를 가리켰다.

하루를 가리키는 말.

“하루 전이오? 아니면 하루가 지났소?”

냉풍은 손가락을 아래로 가리켰다.

‘다행이군. 하루 전이다.’

고진유는 다시 물었다.

“우린 빙궁으로 가는 것이오?”

냉풍은 고개를 옆으로 흔들었다.

‘흠.’

고진유의 검미에 주름이 잡혔다.

“설동으로 가는 데 얼마나 걸리겠소?”

냉풍은 다시 손가락을 하나 올렸다.

“어디로 가면 되오? 방향만 가르쳐 주시오.”

절레절레.

냉풍은 고개를 저었다.

방향만 알고 간다고 해서 쉽게 찾아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지만 고진유는 다시 물었다.

“괜찮소. 똑바로 갈 수 있소. 방향만 가르쳐 주시오.”

냉풍은 잠시 망설인 후 손을 뻗어 설원을 향해 가리켰다.

미세하게 보이는 검은색 그림자.

“저기 설산 방향으로 가면 되는 것이오?”

슥슥.

냉풍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알겠소. 설산의 오른쪽이라…… 고맙소. 여기서 기다렸다가 인양과 함께 천천히 오시오. 그럼 먼저 가겠소.”

타아앗!!

고진유의 신형은 그가 가리킨 설원을 향해 화살처럼 튕겨 나갔다.

‘……벌써 안 보이는군.’

잠시 후, 냉풍의 뒤로 인양이 다가왔다.

“처음 뵙습니다. 진유 형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형이 없는 걸 보니 벌써 간 모양인가 봅니다.”

끄덕끄덕.

그는 인양을 보며 화산도협의 의제임을 알았다.

“우리도 빨리 가죠.”

냉풍은 신법을 펼치며 설동으로 향했다.

쉬이이익-

빠르게 달리던 그는 문득 뒤에 따라오는 인양의 나이가 약관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는 걸 떠올렸다.

‘설풍이 강한데 제대로 따라올 수 있을지 모르겠군.’

너무 멀리 떨어지지 않는지 뒤를 돌아보는 순간.

‘…….’

냉풍은 잘못 생각했음을 바로 알았다.

너무나 여유롭게 신법을 펼치며 따라오는 인양과 눈이 마주쳤다.

“저기…… 좀 더 빨리 가면 안 될까요? 너무 느린 것 같습니다.”

‘……이 어린 녀석도 괴물이구나.’

* * *

설미와 함께 비상 통로를 통해 빠져나온 화산파 일행은 설천산으로 도착했다.

그들이 목적지는 설동이라 했다.

“여기에…….”

군성창이 설미가 가리키는 얼른 앞으로 달려 나간 뒤 설동을 찾기 시작했다.

“여기 있습니다!”

눈에 덮인 바위 뒤편으로 동굴이 보였다.

이중으로 겹쳐 있었기에 멀리서는 동굴의 입구가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설동으로 삼 장 정도 들어서자 동굴 끝에 석문이 나타났다.

끼이이익-

군성창과 두 명의 특사들이 얼른 문 앞으로 나서며 문을 당겼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았는지 문 사이에서 녹이 슨 소리가 들렸다.

일행은 안으로 들어서며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비상시에 지낼 수 있는 곳이에요.”

“확실히 며칠 동안 지낼 수 있도록 마련되어 있군요. 빙궁주도 여기를 알고 있소이까?”

“네에. 하지만 문을 잠그면 설동으로 쉽게 들어올 수 없어요.”

“음…… 일단 이곳에서 호정 사제와 만나기로 했으니 기다리기로 하지요.”

우종성은 일행을 보며 두 사람을 가리켰다.

“우선 호경과 군 특사가 먼저 밖에서 망을 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사형.”

“넵. 알겠습니다.”

장두총과 군성창은 곧장 설동 밖으로 나갔다.

설동은 빙궁의 비상시를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안식처.

음식은 충분히 저장되어 있었다.

나머지 인원들은 각자 자리에 앉아서 편안하게 휴식을 했다.

이제 고진유가 오기만을 기다리면 될 뿐이었다.

녹림야검과 특사 네 명은 설동이 궁금한지 주위를 서성거리면서 자연스럽게 살펴보고 있었다.

‘음…….’

설미는 너무나 여유로운 일행을 보면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당 언니. 저어…… 걱정이 안 되세요?”

“뭐가?”

“아직 빙궁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잖아요. 어쩌면 아버지께서 이곳으로 무인들을 보낼 수 있어요.”

“온다고 해도 여긴 쉽게 못 들어온다며?”

“네에. 그렇긴 하지만…….”

“그럼 됐어. 호정 사제가 오고 있잖아. 기다리고 있으면 돼.”

“……그분께선 혼자 오시는 게 아닌가요?”

“어…… 인양과 파 특사도 같이 올걸?”

“…….”

“걱정 마. 우리 사제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잖아.”

당우희는 여전히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웃음을 보였다.

“저어…… 언니, 공자님은 언제쯤 오실까요?”

“지금쯤 거의 도착했을 것 같은데.”

“어떻게 아세요?”

“그냥. 느낌이 와. 음…… 설미는 잘 들어. 사제에 관한 이야기는 중요한 거잖아.”

끄덕.

그녀는 얼굴이 붉어지면서 당우희의 말에 집중했다.

“뭐라고 할까? 옆에서 지켜보면 대충 얼렁뚱땅 넘어가는 듯 보이겠지만 그게 아니야. 얼마나 철저하게 계산적인지 모를 거야. 성격이 그래.”

“그게…… 무슨 말인가요?”

“우리가 하북팽가에서 헤어지면서 북해빙궁까지 도착한 시간을 계산했을 거야.”

“제가 대충 걸리는 시간을 알려줬어요.”

“혹시나 이런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면서 사제와 이곳에 대해 사전에 이야기했다고 했지?”

“네에…….”

“그렇다면 사제는 분명 최악의 상태를 예상했을 거야. 그래서 최소한의 시간을 머릿속에 계산하고 항상 움직였을 게 분명해. 제때 맞춰 오기 위해서 말이지.”

“…….”

설미는 함께한 연자련을 보았다.

그녀가 한 말이 맞는지 물어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그건 나도 몰랐네. 그러고 보면 호청도 호정 사제에 대해서 상당히 잘 아는구나.”

“당연히 제 사제이니 관심이 많죠.”

당우희는 미소를 띠며 어깨를 들썩거렸다.

“그러니깐 설미는 걱정하지 말고 푹 쉬고 있어. 걱정 많으면 얼굴이 슬퍼지잖아. 사제에게 잘 보여야 할 거 아니야?”

“……!”

설미의 얼굴이 단번에 붉어졌다.

그녀들의 대화를 듣던 우종성과 묵경도 감탄이 나왔다.

“우 형, 저건 나도 몰랐던 사실이네.”

“나도 그렇소. 그냥 사제가 막연히 올 것이라 믿고 있었을 뿐인데…… 요즘 사제나 사매들을 볼 때마다 새로운 면들을 보여 깜짝 놀랍니다.”

“후후후. 놀랐다고 하면서도 표정은 기분이 좋은 것 같군요.”

“당연하지요. 사제들이 강해진다는 건 화산파가 강해지는 것이 아닙니까.”

“우 형의 말이 맞소. 혼자만 강하다고 해서 문파가 강한 것은 아니지요. 서로 함께 강해져야만 진정한 강한 문파라고 할 수 있지요.”

묵경의 말이 사실이었다.

문파에선 절대적인 무인의 존재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런 존재를 함께 받쳐주는 힘도 강해야만, 진정으로 강한 문파라 할 수 있었다.

현재 최고의 세력인 천검궁(天劍宮)이 그러했다.

무신 초일군과 천검궁 소속의 무인들의 가공할 무위가 합쳐져 천하제일문파라 불리는 것이다.

‘천하제일문파…… 점점 기대가 되는구나.’

우종성은 사제와 사매들을 보며 빙그레 웃었다.

* * *

설동에 들어선 지 두 시진이 지나갈 무렵.

휘이익!

설동 밖에서 망을 보던 혁자영이 들어왔다.

“호진 사형, 나와서 확인을 해봐야겠습니다. 빙궁에서 오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들의 수는?”

“녹검이 확인하기 위해 갔습니다.”

우종성과 묵경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우선 설동으로 오는 적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 확인한 뒤 움직이는 게 좋을 듯하오.”

“그럽시다.”

설동의 문을 잠그고 기다려야 할지, 아니면 달려오는 빙궁의 무리를 상대로 싸워야 할지.

휘이이익!

그때, 적들의 상황을 살피러 갔던 녹림야검이 돌아왔다.

“녹검, 적의 수는 얼마나 되던가?”

“최소 이백 명은 되어 보입니다.”

“이백이라…… 제법 많은 수가 몰려 왔군.”

일행은 설동 밖에 서서 멀리서부터 달려오는 백빙군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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