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화
두두두두-
석가장의 정명무군 오백 명의 무인들이 빠르게 내달렸다.
그들의 목표는 하나.
화산도협 고진유를 잡거나, 죽이는 것.
팽병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이미 정명무군을 가까이 대기시켰다.
이내 석가장에서 출정 명령이 떨어졌다.
오백 명의 무인들과 오백 필의 기마에서 쏟아진 거친 입김들이 안개처럼 앞을 가릴 정도.
무군장 석하주의 머릿속에는 오직 화산도협을 잡을 생각밖에 없었다.
‘반시진만 더 달리면 따라잡을 수 있다.’
그들이 쫓는 두 명의 인영.
신법만으로 장거리를 움직이다니.
적이지만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짧은 거리는 신법으로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내력의 한계에 부딪히기 때문에,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하는 데는 신법만으로 움직일 수 없다.
내력이 아무리 높다고 한들, 사람은 끊임없이 내력을 끌어낼 수 없으니까.
결국 튼튼한 말을 타고 움직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히이이잉!
석하주는 말을 달리면서 하늘 위를 올려다보았다.
이틀 전부터 북쪽으로 가던 추격조(追擊鳥)가 방향을 틀어 남쪽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직 화산도협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만이 그를 지배했다.
‘멈췄다.’
추격조가 한 자리에서 계속해서 원을 그리며 돌고 있었다.
쉬지 않고 달리던 그들이 드디어 신법을 멈춘 듯했다.
“후후…… 이제 지칠 때도 됐지.”
표정이 밝아진 석하주가 수하들을 향해 소리쳤다.
“저놈들이 지쳤다. 단숨에 따라잡는다!!”
고진유와 인양은 신법을 멈췄다.
며칠 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추격조가 나타나더니 두 사람을 계속 따라다녔다.
고진유와 인양의 신법이 아무리 빠르다 한들, 어디론가 숨지 않는 이상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추격조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형, 지금쯤 열심히 달려오겠죠?”
“우리가 지쳐서 멈췄다고 생각하고 있겠지.”
“석가장에서 꽤 열심히 하네요. 여기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면요.”
“명분이 만들어졌으니 나를 죽이려는 생각밖에 없는 것 같군.”
“그놈의 명분이라는 게 죽음으로 가는 길인 줄 모르는가 봐요.”
“놈들이 극일천이라는 확실한 증거지.”
“적의 수를 보면 상당히 많은 것 같아요.”
인양은 이제 후방에서 달려오는 기를 완벽할 정도로 느꼈다.
계속해서 상대의 기를 찾는 수련을 하면서 실력이 올라가고 있었다.
적의 인원이 대규모인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인양은 두렵지 않았다.
그의 옆에는 고진유가 함께하고 있었다.
“확실히 날 잡기 위해 혈안이 돼 있군. 저 정도의 인원이니 자신만만하게 올라오지. 앞날이 어떻게 될지도 모르면서.”
“그러게 말이에요.”
고진유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는 천천히 걸었다.
“우리가 정말로 지친 줄 알겠지?”
“저들의 머릿속에는 형밖에 없잖아요. 지금쯤이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게 맞을 텐데…… 멍청하네요.”
“인양, 저들을 보면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 배워야 해. 무리를 이끄는 수장이 냉정하지 않으면 결국 이런 일이 생기는 법이지.”
“넵. 항상 머릿속에 새겨 넣겠습니다.”
“가자. 지금쯤이면 그분도 도착했을 거야.”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고진유와 인양은 충분히 그들을 따돌릴 수 있었지만, 석가장의 무인들이 따라올 수 있을 정도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유지했다.
석가장은 두 사람이 계속해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했다.
속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유인한다는 의미.
자신들의 앞에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이니까.
* * *
정명무군장 석하주는 표정이 더욱더 밝아졌다.
‘드디어 지쳤군. 천천히 움직이고 있어.’
이제 한계에 다다랐음이 틀림없었다.
“좀 더 힘을 내라!”
석하주는 수하들을 향해 다그치며 달려 나갔다.
잠시 뒤면 화산도협을 그의 손아귀에 떨어질 것이다.
‘……이상해.’
하지만 그와 달리, 부군장 변붕은 말을 달리면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점점 깊은 어둠 속에 잠기는 듯한 기분.
심해에 빠져 허둥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맞는 건가?’
오로지 전방만을 보며 달려가는 군장 석하주를 당장에라도 말리고 싶었다.
하나 그는 애써 그런 느낌을 무시하며 지우려고 했다.
정명무군이 쫓아가는 상대는 겨우 두 명.
그의 일행은 이미 북해빙궁으로 올라갔다.
멀리 떨어져 있는 화산파 도사들은 도움을 줄 수 없다.
‘이제 하북 땅에서 그들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굳이…… 정말 굳이 찾자면…….
‘헉……!’
변붕은 갑자기 머리가 쭈뼛거리며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하북팽가다! 이것이었어. 젠장, 당했다. 저들은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어!’
화산도협의 뒤를 따르면서 가슴이 무거웠던 이유.
정명무군은 그들은 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인을 당한 것이었다.
‘어서 군장님께 가야 해!’
앞서 달리는 석하주에게 이 사실을 알려야 했지만,
‘저들은…….’
전방에 나타난 무리를 보며 그는 이미 늦었음을 깨달았다.
펄러럭!
하늘 위로 하북팽가의 표기가 선명하게 빛났다.
* * *
이틀 전.
하북팽가 융화지부에서 보낸 전서가 긴급하게 날아왔다.
석가장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던 하북팽가에서는 정명무군이 움직이는 사실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
다만 그들이 무슨 이유로 북쪽으로 움직이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때 전서를 받은 팽가주는 곧바로 도성 팽하벽을 불렀다.
그로부터 반시진이 지나기도 전, 도성 팽하벽은 혼원무력군을 이끌고 융화지부를 향해 달렸다.
그리고 만나기로 한 장소에서 고진유와 인양을 만났다.
“화산도협, 석가장 놈들이 모습을 나타냈소이다.”
고진유와 함께 나란히 선 도성 팽하벽의 눈빛에 살기가 번쩍거렸다.
그는 석가장이 팽병진을 다시금 이용했다는 말에 살기를 내뿜었다.
“더러운 놈들. 가여운 녀석을 가만히 둘 것을…….”
팽하벽의 목소리에 노기가 가득했다.
“하루라도 빠르게 하북팽가를 기만한 죄를 갚고자 했거늘, 본인에게 기회를 주니 기분이 좋소이다. 화산도협께 고맙다는 말을 해야겠소.”
“아닙니다.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주고받으면 좋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그대의 말이 맞소.”
팽하벽과 고진유는 점점 가까이 다가올 때까지 지켜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멈출 기세 없이 달려오던 석가장의 정명무군이 황급하게 멈췄다.
무군장 석하주도 전방에 나타난 표기를 보며 하북팽가 무인들을 확인했다.
“하북팽가가 왜 저 녀석과 같이 있지?”
“군장님! 우리가 함정에 빠진 듯합니다!!”
“함정이라니…… 그게 무슨 말이냐?”
“화산도협에게 유인을 당한 겁니다!”
“유인을……!”
석하주의 표정이 놀랐다가 점점 굳어졌다.
고진유만을 상대할 것으로 생각하고 왔었다.
그런데 하북팽가를 상대해야 하는 이상한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어떻게 하지?’
그는 물러나야 할지, 싸워야 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석 군장, 오랜만에 보는군.”
그 순간, 하북팽가의 진영에서 도성 팽하벽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 목소리는…… 망할, 도성이 왔군.’
하북팽가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
이렇게 되면 자신이 중원오성의 도성 팽하벽을 상대해야 했다.
팽하벽은 천천히 앞으로 나섰다.
무형의 기가 석하주를 강하게 압박했다.
“이곳은 본 가의 관할이다. 석가장에서 대군을 이끌고 몰려온 이유가 뭔가?”
“다른 뜻은 없소. 화산도협을 쫓고 있었소이다.”
석하주는 긴장한 채로 대답했다.
“화산도협은 하북팽가의 은인이다. 그를 쫓는 이유가 무엇이오?”
“그가 석가장의 조카를 죽였기 때문이오! 누님의 넷째인 팽병진을 죽였소이다! 그는 그대에게도 조카가 되지 않소이까?”
피식.
팽하벽은 곧바로 비웃음을 지었다.
“석 군장, 정말로 모르고 내뱉는 말이오? 아니면 아직도 본 가가 눈 뜬 장님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석하주의 몸이 흠칫거렸다.
‘누님에 대해 들킨 모양이군. 근데……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팽하벽의 눈빛은 분명 석화린의 정체와 비밀을 알고 있는 듯했다.
“정말로 궁금하군. 석가장이 본 가뿐 아니라 중원에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말이야.”
‘역시…… 알고 있어.’
석하주의 표정은 심각할 정도로 굳어졌다.
도성 팽하벽이 알고 있다는 것은 하북팽가 전체가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본 가를 기만한 죄를 네놈을 시작으로 물을 것이다.”
“도성, 석가장과 전쟁을 원하는 거요?”
“왜, 못할 것 같은가?”
“……무림에서 가만히 있을 것 같은가? 정파 무림에서 무림맹의 허락 없이 먼저 싸움을 걸면 공적이 된다는 것을 모르진 않을 텐데?”
“가증스럽군. 네놈들이 정파라고 말하는 것이 더러워서 듣질 못하겠어.”
“도성! 하북팽가가 석가장을 치고 싶다면 무림맹의 인가부터 받아야 할 것이오!”
스윽.
그때, 팽하벽 옆으로 고진유가 다가섰다.
“당신 말대로 무림맹의 인가를 받으면 문제가 없다는 말이군요.”
“화산도협?”
“본인이오.”
드디어 화산도협을 만나볼 수 있었다.
석하주는 그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저건…… 자연무형기(自然無形氣)?’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지만 주위의 모든 기를 압도하며 조절하고 있었다.
고진유는 무공이 강한 젊은 사내가 아니었다.
화산도협은 이미 무림의 거인이었다.
‘이…… 정도의 인물일 줄은 몰랐다.’
공마령체가 된 팽병진이라도 당할 수밖에 없었다.
“도성님, 저자의 말에 의하면 무림맹의 인가를 받을 경우 석가장을 쳐도 문제가 없다는 것인데, 맞습니까?
“화산도협, 그렇소이다.”
“혹시 무림맹주께서 허락을 하신다면, 그것도 가능합니까?”
“무림맹주의 뜻이 곧 무림맹의 뜻이외다.”
“잘 알았습니다. 진작 알았다면 하북팽가에 인가를 내어주는 것인데 몰랐군요. 본도가 오늘 이 시간부터 하북팽가와 석가장의 싸움을 허락하는 바이오.”
고진유의 말에 석하주가 발끈했다.
“화산도협! 그대가 무슨 자격으로 허락한다고 말하는가?!”
“무림맹 특사조의 자격이외다. 본인의 명이 무림맹주님의 명이기에 가능한 것이오.”
“……그건…… 말이 안 된다.”
“말이 되고 안 되고는 맹주께서 확인해 줄 것이고.”
고진유는 도성 팽하벽을 향해 돌아섰다.
“도성께서는 마음껏 움직여도 좋소이다. 하북팽가에서 석가장과 싸운다고 한들 무림맹에서는 관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소이다.”
팽하벽은 두 손으로 포권하며 머리를 짧게 숙였다.
석하주의 얼굴은 더는 구겨질 수 없을 때까지 일그러졌다.
‘하북팽가와 전면전으로 싸우게 된다면…….’
둘 중 한 곳은 멸문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석 군장, 더는 우리 사이에 걸리는 문제가 없을 것 같군.”
팽하벽의 목소리에 살기와 함께 싸우고자 하는 결심이 느꼈다.
‘처음부터 작정하고 나왔어.’
방법이 없었다. 목숨을 걸고 싸울 수밖에.
“도성, 당신의 혼원도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 번 받아보겠소.”
“나 또한 정명무군장의 석명장(石冥掌)을 견식해 보고 싶었소.”
결전만을 남겨둔 채, 팽하벽과 고진유는 하북팽가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샤아아아악-
팽하벽이 혼원도를 잡은 뒤 당겼다.
혼원벽력기를 단숨에 끌어낸 그가 도를 하늘 높이 치켜세웠다.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도를 들어라!”
채애애앵!!
채애애앵!!
그의 목소리가 하북팽가의 진영으로 퍼져 나가는 동시에 수많은 도가 솟구쳤다.
“하북팽가를 기만한 저들에게 본 세가의 도가 어떠한지 똑똑히 보여주고자 한다!!”
“와아아아—!!! 도성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북팽가를 위하여! 적들을 죽여라!!”
타앗!
팽하벽은 바닥을 차며 가장 먼저 석가장의 정명무군을 향해 달렸다.
다다다다다--
그 뒤를 따라 하북팽가의 무인들이 달려 나갔다.
고진유와 인양도 하북팽가의 무인들과 함께 움직였다.
“형, 저놈들도 극일천이죠?”
“맞아.”
“알겠어요.”
인양의 말은 간단했다.
“인양, 싸움이 끝나기 전까지는 절대로 자비를 베풀지 마라.”
“명심하겠습니다.”
고진유와 인양의 신형이 빛줄기처럼 석가장 사이로 들어갔다.
* * *
퍼어어엉!
파아아악!!
혼원도와 석명장이 부딪히면서 폭음이 터졌다.
짧은 시간에 주고받은 세 번의 초식.
“혼원벽참.”
팽하벽의 혼원도가 번쩍이며 석하주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석하주는 양손을 하늘을 떠받치듯 석명장을 올려 쳤다.
“석명호우.”
하늘로 솟구치는 석명장의 장강은 혼원도의 도강과 또 한 번 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아—-
콰앙!!!
둘의 싸움은 누가 먼저 지치는지를 기다리는 듯, 공격과 방어가 계속 이어져 나갔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다급해진 인물은 석하주였다.
“아아악!!”
“커어억…….”
정명무군의 무인들이 피를 뿌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저놈들이…….’
극강의 무공으로 수하들의 목숨을 끊는 두 사람.
고진유의 사의검이 지나갈 때마다 두세 명의 수하들이 쓰러졌다.
그리고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수하들의 목이 부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중간중간 화산도협의 목소리가 울렸다.
“석가장 놈들은 단 한 놈도 살려주지 않겠다!”
석하주는 점점 조급해졌다.
화산도협의 무공을 막아낼 수 있는 수하들은 없었다.
자신이라도 그를 상대로 싸워야 했지만, 눈앞에선 팽하벽이 여전히 혼원도를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석 군장. 이제 우리도 마지막을 준비해야 할 것 같군.”
“…….”
그는 이곳에서 개죽음을 당하고 싶지 않았다.
수하들은 얼마든지 새롭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이 죽으면 모든 게 끝이었다.
‘기회를 틈타…… 물러난다.’
팽하벽은 석하주의 표정이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한 무리의 수장이라는 사람이 수하들을 버리고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군.”
“무…… 무슨 말을 하는 것이오?”
“내 말이 틀렸소?”
“…….”
석하주는 그의 눈빛을 보는 동시에 몸을 뒤로 날렸다.
하지만,
“목숨에 연명하다니 구차하군.”
스걱.
사의검이 움직이는 듯했다.
‘뭐야? 아무것도 아니잖아.’
석하주는 전혀 감각을 느끼지 못했다.
‘기회다.’
무방비 상태로 선 고진유를 보며 석명장을 뻗어내려고 했다.
‘어…… 어…….’
그의 생각과 다르게 몸이 옆으로 넘어졌다.
“내…… 몸이…… 왜……?”
털썩.
석하주는 눈을 뜬 채 숨이 끊어졌다.
팽하벽이 곁으로 다가서자, 고진유가 죽은 시신을 가리켰다.
“도망가기에 손을 썼습니다. 죄송합니다.”
“괜찮소. 누가 죽이든지 이놈을 죽이면 그만이지 않겠소.”
주위에 널려 있는 시신들.
다행히 하북팽가의 무인들은 두 사람이 함께 싸워주었기에 많이 다치지 않았다.
“도성님. 지금부터 시작일 겁니다. 앞으로 석가장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걱정 마시오. 본 가도 절대로 만만치 않을 것이오.”
하북팽가와 석가장의 부딪침.
중원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