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40화 (140/425)

140화

공마령기는 극마의 기였다.

순수한 마기의 힘을 끌어낼 수 있는 마정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결정체가 공마령의 힘이었다.

상대의 내기가 제대로 발휘되지 못할 정도로 압박을 주며 죽음이라는 공포심을 심어주는 극마의 기.

하지만 상대는 고진유였다.

공마령기를 거부하지 않고 흘려보낼 뿐이었다.

‘일반 사람의 몸으로는 절대로 펼칠 수 없는 기야.’

천마의 마성지체(魔性之體)가 아니고서는 공마령을 육신에 완벽하게 스며들게 만들 수 없다.

‘결국 내력을 끌어 올릴수록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가만히 두면 스스로 무너질 것이었다.

‘그렇다면 상대하면서 무리할 이유가 없어.’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내력을 펼치는 순간부터 그의 육신이 무너져 내릴 것은 정해진 운명이었다.

휘익!

휙! 휙!

고진유는 호충신법을 펼치며 공마령기를 뿜어내는 팽병진의 공격을 피했다.

“화산도협!! 두려운 모양이지?!”

도망가기 바쁜 고진유의 모습을 보며 팽병진은 고함을 질렀다.

슈우우우--!!

팽병진은 공마령기를 계속해서 끌어올렸다.

“언제까지 도망 다닐 수 있을까!!”

양손을 옆으로 펼치자 전신에서 뻗어 나온 공마령기가 고진유를 감싸기 시작했다.

완벽하게 둘러싸면서 물러날 공간이 차단되었다.

“크크크…… 드디어 잡았다…….”

팽병진이 괴소를 흘렸다.

공마령기에 스치는 순간 세상에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녹아서 사라지게 되는 모습을 지켜봐 주마!!’

그 순간,

번쩍!!

“크헉……!!”

마치 벼락이 터진 것처럼 공마령기를 향해 떨어진 일검.

위에서 아래로 이어진 일직선이 갈라지며 공마령기가 흩어졌다.

“이, 이럴…… 수는…….”

스걱-

고진유는 재차 앞으로 나오는 동시에 사의검을 연이어 휘둘렸다.

“커억!!”

팽병진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지만, 복부에서 피가 흘렀다.

“어…… 떻게? 난…… 완벽한 공마령체가 되었는데…….”

“된 게 아니라 된 듯 보였겠지.”

“그…… 게…… 무슨 말이냐?”

“신기조화(身氣調和)를 모르는 모양이군. 네가 공마령기를 담을 수 있는 신체로 만들어졌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는 법이지. 네 신체의 한계는 진작 뛰어넘었어. 공마령체는 물론 공마령기 또한 억지로 만들어진 네놈의 몸뚱이가 당연히 조화될 리 없잖아.”

“…….”

“결국 깨어지게 마련이지. 내력을 올리면서 방금 느꼈을 텐데.”

마지막, 공마령기를 펼쳤을 때 몸에 충격이 있었다.

“그만 끝을 내지.”

“크아아아아………!! 나아아아안 죽을 수 없어!!!!”

팽병진은 괴성을 지르며 마지막으로 최후의 공마령기를 끌어 올렸다.

“검신일체. 신기조화.”

고진유의 조용히 중얼거렸다.

몸과 사의검이 하나로 변하는 순간 이미 그들의 싸움은 끝이 났다.

무(無).

팽병진은 텅 빈 공간에 홀로 서 있었다.

한참을 가만히 선 채 있을 뿐이었다.

‘……보인다.’

서서히 빛이 들어오면서 눈앞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화산…… 도협…… 그렇군. 난 이 녀석과 싸우고 있었지.’

주루루룩…….

팽병진은 눈물과 함께 몸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알았다.

세상이 원망스러웠다.

‘모든 게…….’

자신의 신분.

‘난 그때 어렸다.’

그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차라리 죽는 게 나았을지도.

한 번만이라도…… 마지막 기회가 있다면…….

* * *

휘익!!

정명당으로 다급하게 전령이 들어섰다.

전령은 곧바로 바닥에 부복하며 보고했다.

“당주님. 보고드립니다.”

“무슨 일이지?”

“그가 당했습니다.”

석풍은 손이 멈추며 전령을 내려다보았다.

“죽었나?”

“화산도협에게 심장이 찔러 목숨이 끊어졌습니다.”

“쯔쯔. 공마령체로 만들어주었는데도 이기지 못하다니. 쓸모없는 놈은 끝까지 쓸모가 없군.”

그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제대로 사용해 보지도 못하고 버렸어.”

그는 팽병진을 마치 물건처럼 취급했다.

“할 수 없지. 다음 계획대로 가는 수밖에.”

팽병진의 죽음은 석가장이 움직일 수 있는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밖에 없는가?”

그의 소리에 문밖에서 호위무사가 들어섰다.

“당주님, 부르셨습니까?”

“정명무군장에게 연락을 해라.”

“곧바로 연락하겠습니다.”

호위무사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후후후. 정명무군이라면 네놈이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는 절대로 이기지 못할 것이다.’

석풍은 자신 있었다.

오백 명의 정명무군이 움직인다면 질 수 없다고 확신했다.

* * *

스으윽-

객실로 들어서는 인기척.

인양은 등에 메고 온 자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형, 담아서 왔어요.”

“수고했어.”

“주위에 사람이 있던가?”

“네. 한참 지켜보다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한 후 떠났습니다.”

“보자.”

인양은 자루를 풀었다.

스으윽.

자루에서 나온 익숙한 얼굴.

고진유에게 죽임을 당했던 팽병진이 틀림없었다.

고진유는 바닥에 그를 똑바로 눕혔다.

푹. 푹푹. 푹.

그러고는 팽병진의 머리에서부터 혈을 누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무런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아래 단전으로 넘어가자 미세한 변화를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반각이 지난 후, 팽병진의 손가락이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형, 깨어나는 것 같아요.”

“명은 참 길군.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자고.”

고진유와 인양은 뒤로 물러난 뒤 팽병진을 유심히 살폈다.

“쿠욱. 쿡…….”

팽병진의 입에서 거친 신음 소리가 튀어나왔다.

“허어억…….”

숨이 막혔던 기도가 풀리면서 가슴이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팽병진은 감았던 눈을 떴다.

‘여기는…… 어디지?’

눈앞에 보이는 것은 방 안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저승도…… 이런 곳이 있나?”

“기대를 깨서 미안하지만 저승은 아냐.”

“……!”

머리 위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

슥슥.

손바닥으로 바닥을 만져보았다.

감각이 느껴졌다.

팽병진은 바닥에 누워 있는 것을 느꼈다.

“아직 안 죽었으니 일어나시오.”

“……!!”

‘내가 안…… 죽었다고?’

벌떡!!

팽병진은 상체를 일으키며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리자 의자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사내와 시선이 마주쳤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내가 왜?”

“죽일까 하다가 당신 아버지가 걱정하던 얼굴이 생각나서 말이지.”

“…….”

“당신을 살리기 위해 가주직까지 내려놓겠다고 했다면 믿겠나?”

“……!”

팽병진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분이 시간이 흐른 뒤 서로 웃는 얼굴로 다시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시더군.”

“……그게 정말이오?”

“할 일 없이 왜 거짓말을 하겠소. 다만 공마령체를 지우기 위해 단전을 완전히 파괴했소. 무공을 못한다고 섭섭하게 생각하지 마시오.”

“……고…… 맙소이다…….”

팽병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신의 마지막 소원.

다시 산다면 이전의 생과 다른 삶을 살고 싶다.

‘나는 그를 버렸는데…….’

그는 자신을 버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 * *

칼바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차가운 바람만 스쳐도 날카로운 예기에 살이 베어지는 느낌이었다.

“으으으……!! 북해의 바람은 소문처럼 정말 매섭구만.”

장두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북해빙궁 관할에 들어선 화산파 일행은 처음 맞이하는 차가운 바람에 혼이 나갈 정도였다.

반면 설강과 설미는 오히려 중원에 있을 때보다 얼굴색이 좋아 보였다.

일행을 보며 설강이 걱정스레 물었다.

“추위는 견딜 만합니까?”

“설 공자, 거 춥긴 하군요.”

묵경은 한 마리 털 동물처럼 얼굴만 보인 채 털옷으로 싸여 있었다.

“그 녀석, 이럴 줄 알고 중간에 빠진 것 같은데? 그렇지? 내 말이 맞지?”

“……묵 형의 말이 맞는 듯하오.”

우종성도 다른 것은 몰라도 추위를 이겨내는 건 힘들었다.

내력으로 몸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피부에 닿는 차가운 느낌만은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본궁이 나올 것입니다.”

“설 공자, 빙궁에 가도 이렇게 추운 것은 아니겠지요?”

“당연히 아닙니다. 약간 싸늘하긴 하겠지만 이 정도는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묵경은 안심이 되었다.

“자아, 벽이 있는 곳으로 빨리 갑시다!!”

휘이이잉--!!

사방을 둘러봐도 똑같았다.

설원의 안내는 냉풍이 맡았다.

무작정 걷는 듯 보였지만, 설원을 걸은 지 반 시진 정도 지나자 드디어 북해빙궁이 모습을 드러냈다.

설미가 아래를 가리켰다.

“저곳이 본궁이에요”

“우와…….”

“아름다워…….”

저절로 감탄이 나올 만큼 아름다웠다.

일행은 투명할 정도로 빛나는 빙궁을 보며 시선을 떼지 못했다.

“들어가시죠.”

설강은 앞장서며 북해빙궁으로 걸었다.

우우우웅-

빙궁의 거대한 설문에서 기계적인 소리가 울렸다.

설문이 위로 올라가면서 백색의 무리들이 안에서 쏟아져 나왔다.

두두두두-

백의빙궁인들이 모습을 드러내며 달려 나왔다.

“저들은 백풍대(白風隊)입니다.”

설강은 선두에 멈춘 채 긴장했다.

빙궁으로 오는 동안 단 한 번의 공격도 없었다.

과연 이들이 누구의 편을 들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저자는…… 한천 대주.’

백풍대의 선두에서 달려오는 사내, 백풍대주 한천이 설강 앞에 멈추며 섰다.

“소주를 뵙소이다.”

다행이었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한 그를 보면서 안심이 되었다.

“한 대주께서 마중을 나오셨군요.”

“무사히 돌아오셔서 다행이십니다.”

북해빙궁에 이미 소문이 난 듯했다

“어떻게 아셨소이까?”

“소주께서 당하신 소식을 빙소전에서 들었습니다. 곧바로 백풍대를 이끌고 중원에 내려가려고 했지만 빙소전주가 북해빙궁으로 오는 길이라 해서 기다렸던 것입니다.”

“그렇게 된 일이군요.”

스르륵.

설강의 뒤로 설미가 다가왔다.

“궁주님께서는 어떠신가요?”

“얼마 전에 폐관에서 나오셨습니다.”

“……?!”

설강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폐관에서 나오신 게 맞소?”

“네. 그렇습니다.”

“무탈하시던가요?”

“네. 전혀 문제가 없으신 듯 건강하십니다.”

설강은 시선을 돌려 설미와 마주쳤다.

‘……뭐지?’

어이없는 표정과 허탈한 기분이 들면서 몸에서 기운이 빠졌다.

해독제를 구하기 위해 중원에 내려간 뒤 큰 고욕을 당했다.

“……오라버니.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아버지를 만나보고 알아보는 게 좋겠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상황은 분명 위급할 만큼 어려웠었다.

그를 만나뵙지 않고서 결론을 내릴 문제는 아니었다.

그건 화산파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빙궁주가 중독에 당했다고 해서 중원 무림과 두 사람을 돕기 위해 북해빙궁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당사자가 중독을 당한 게 아니라면 굳이 힘들게 북해빙궁까지 와야 할 이유가 없었다.

“이거…… 조금 황당한데?”

묵경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지금 저희들도 어떤 상황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도 당장 대답할 수 없었다.

“설 소저의 말처럼 빙궁주를 만나보는 게 제일 확실할 것 같소.”

일행은 조용히 그들을 따라 경내로 들어섰다.

빙궁의 경내로 들어서자 차갑게 불어오던 냉풍이 사라졌다.

‘흠…… 빙궁 주위로 진법이 펼쳐져 있는 모양이지?’

곽우는 주위를 살폈다.

진법은 아닌 듯하면서도, 진법이 아니고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날씨의 온도를 조절하는 진법이라…… 신기한 곳이야. 외부인지 내부인지는 모르나 진법에 의해 분명 바람을 막아주는 게 있어.’

앞서 가던 백풍대주 한천의 걸음이 멈췄다.

내원과 외원의 경계였다.

“소주님. 화산파 일행께서는 설향정으로 모시라는 궁주님의 명이 계셨습니다.”

설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이분들을 빙화전에 모시도록 하겠어요.”

“궁주님께서…….”

설강이 그의 말을 중간에 막았다.

“한천 대주. 누이의 말대로 하겠소. 이분들은 본인의 은인들이니 빙화전에 직접 모시는 것이오.”

“아…… 알겠습니다.”

그는 설강의 강한 뜻을 이길 수 없었다.

“그분은 빙궁전에 계시오?”

“그렇습니다.”

“한 대주는 그만 물러가도 좋소이다. 여기부터서는 본인이 안내를 하겠소. 빙궁전에는 곧바로 들어가겠다고 전해주시오.”

“궁주님께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한천은 백풍대와 함께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설강은 그들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빙화전으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잠시 뒤, 일행은 설강과 설미를 따라 빙화전으로 들어섰다.

한동안 비어 있던 빙화전이었지만 미세한 먼지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었다.

“지내시는 데 불편하신 게 있다면 말씀하세요.”

“하하, 우린 복 받은 것 같소이다. 중원의 어느 누가 한미화의 빙화전에서 지낼 수 있겠소이까!”

묵경은 한마디에 분위기가 밝아졌다.

“묵 형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중원에 나가면 모든 사내들에게 자랑하고 다닐 것입니다.”

장두총도 얼른 한마디 거들었다.

“후후, 좋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편히들 쉬고 계세요. 저희들은 아버지를 뵙고 오겠어요.”

“궁주님께서 괜찮으시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다만 어떻게 된 일인지 궁금하군요.”

“다녀와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설강과 설미는 빙화전을 나서면서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그녀는 앞서가는 설강을 보면서 심란했다.

‘대체…… 아버지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 건지…….’

“설 공자를 한 달 동안만 지옥수에 잡아놓아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하더군요.”

“의뢰자는 빙궁주라 했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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