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화산도협이 상국에 왔단 말이지?’
천하상국에 고진유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알아서 굴러온 돌인데…….’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까웠다.
얼마 전 산순벽에서 일어난 사건을 들었다.
공각원주의 죽음은 믿기지 않았지만…….
‘훗, 공각원에서도 잡지 못하는 그를 잡는다면 나하중 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시겠지.’
사내는 미소를 지었다.
‘상국에 본 천이 인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거야. 방심하고 있을 때 제대로 한 방을 노리는 거지.’
그는 자신이 생겼다.
이미 머릿속으로 화산도협을 어떻게 잡을 것인지 모든 계획이 세워졌다.
‘큭,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화산도협.’
* * *
부단주 혁준상이 실무자와 함께 회의를 하는 동안, 고진유와 인양은 고화당에서 머물렀다.
천하상국에서 상국주가 직접 나온 이상 큰 문제는 없었다.
두 시진 후, 회의에 참석했던 혁준상이 고화당으로 돌아왔다.
안으로 들어선 그의 얼굴은 밝아 보였다.
“후후후, 잘된 모양이군요.”
“전부 화산도협께서 도움을 주신 덕분입니다.”
“본도가 한 건 별로 없습니다. 부단주께서 하신 것이지요.”
“아닙니다. 화산도협께서 계시지 않으셨다면 이 모든 것이 본 상국에 유리하게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진심으로 예를 다해 포권을 했다.
“저…… 그리고 저녁 식사에 상국주께서 개인적으로 초대하신다고 전해달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본도 혼자 말하는 것입니까?”
“네.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것 같더군요. 곧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알겠소이다.”
그리고 날이 어두워질 무렵, 상국주가 보낸 인물이 찾아왔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서 상금전으로 향했다.
사십 대 중반의 나이.
상금전의 관리총관 창홍이라 소개를 했다.
그는 앞서 걸으면서 말이 많았다.
“화산도협, 위명은 정말 많이 들었습니다. 소문처럼 대단한 분이신지 늘 만나 뵙고 싶었지요.”
“직접 보니 어떻습니까?”
“소문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중원 최고의 무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고맙소이다.”
고진유는 감사의 인사를 했다.
저벅저벅.
고화당에서 창홍을 따라나선 지 반각이 지났다.
저벅저벅.
충분히 상금전에 도착할 시간이 지났다.
“지금 어디를 가는 길인가요?”
“상금전에 가는 길입니다.”
“상국이 정말 큰가 보군요. 좀 멀어 보여서 물었소이다. 얼른 갑시다.”
고진유는 더는 묻지 않고 창홍의 뒤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창홍은 걸음을 멈추며 상금전의 지붕을 가리켰다.
“저기 상금전이 보이지 않습니까?”
“그렇군요. 난 이상한 곳으로 가는 줄 알았소이다.”
그 순간, 창홍이 멈춘 자리에서 발밑을 툭 건드렸다.
슈우우욱-!!
고진유가 서 있는 좌우로 아래에서부터 철망이 솟구쳤다.
철컥. 철컥, 철컥.
좌우로 솟구친 철망이 전방만 뚫린 채 조립되었다.
고진유는 철망에 완전히 갇혔다.
휘이이익!
휘이이익!!
창홍의 뒤로 오십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내는 동시에 화살을 쐈다.
팟팟팟팟팟--!!
피이이이이잉-!!
절대절명의 순간.
‘잡았다.’
창홍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퍽퍽퍽퍽퍽!
‘이거 쉽잖아. ……어?’
철망으로 날아간 화살들이 텅 빈 바닥에 꽂혔다.
화살에 박혀 죽어야 할 화산도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헉…… 어디냐?!’
절대로 도망갈 수 없었다.
스팟-!
순간, 창홍은 허리에 따가운 느낌을 받았다.
‘뭐지?’
첫 느낌은 아무렇지 않았다.
“커억!!”
하지만 점점 쓰라린 고통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주륵-
허리에서 뜨거운 피가 흘러나와 점점 다리에 힘이 빠지며 몸이 휘청거렸다.
쿵.
“아아악!!”
“으으으으…….”
연이어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하나둘씩 바닥으로 쓰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눈앞에서 펼쳐진 살육의 현장.
번쩍!
봄도 아니거늘, 매화잎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검을 휘두르는 그의 모습은 머뭇거림이 없었다.
‘잔…… 인하다.’
창홍은 힘겹게 서 있으면서도 몸이 떨렸다.
‘이 정도의 무공이라면…… 육십사괘무장이 당할 수밖에 없었어…….’
그는 마지막임을 알았다.
“강…… 하다.”
“당신들이 약했던 거야.”
오십 명을 아무렇지 않게 죽이고도 담담한 표정.
고진유의 목소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네놈은 강금전 근처에서 상국의 인물을 죽였어…… 나를 죽인 뒤 상국에 어떻게 보고할 생각이지?”
“죽을 사람이 별 걱정을 다하는군. 내가 알아서 걱정할 테니 당신은 죽으면 돼.”
“내,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은가?”
스팟-
“커어억!”
사의검이 창홍의 심장을 지나갔다.
“극일천이면 됐어. 어차피 모두 죽일 테니까.”
쿠우우웅.
창홍의 몸이 뒤로 넘어졌다.
“휴우우…….”
고진유는 숨을 크게 쉬었다.
아무리 극일천이라 해도 사람을 죽이는 일은 매번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내 손이 더러워져도 사부님과 파 특사의 복수를 해야겠지.”
휘이이익!
멀리서 상금전의 친위 무사들이 소란을 듣고 달려왔다.
친위장 은형조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놈들은…….’
바닥에 피를 흘리며 죽은 시신들은 관리총관 창홍과 용병들.
화산도협이 상국의 사람을 죽였다.
“화산도협, 대체 어떻게 된 일이오?”
“창홍 이자가 본도를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유인했소.”
“…….”
은형조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준비했던 금쇄철망과 용병들의 곁에 활과 화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관리총관이 길을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말이 맞는 것 같군. 하지만…… 왜?’
다만 창홍이 왜 그를 유인한 뒤 죽이려고 했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궁금하겠지만 본도가 직접 상국주께 이유를 알려 드리겠소.”
“알…… 겠소이다.”
* * *
상국주 막금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고진유에게 들은 무림의 비밀.
창홍과 수십 년을 함께했다.
그런 사람이 무림의 비밀 세력에서 잠입한 변절자이자 간자라니.
“……화산도협, 본인은 도저히 믿기지 않소이다.”
“쉽게 믿지 못하는 게 당연합니다.”
“허어……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상국에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르겠소.”
“평소와 같이 하시면 됩니다. 다만…… 만일을 위해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알겠소이다.”
화산도협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상국에 오지 않았다면 훗날 큰일을 당했을 게 확실했다.
“화산도협께 큰 은혜를 받았소.”
“아닙니다. 상국주님께서 본도의 말을 믿어줘서 다행입니다.”
무림에서 전혀 알려지지 않은 극일천과 홀로 싸우고 있다는 말에 감동했다.
‘얼마나 대단한 청년인가. 중원 무림을 위해 홀로 싸우고 있다.’
고진유를 보면서 막금만은 점점 더 욕심이 생겼다.
“화산도협, 실례되는 질문을 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슨 질문입니까?”
“혹시 미래에 함께할 여인이 있소이까?”
“아…… 제 나이를 물어본 것도 그렇고 상국주께서 좋은 여인을 소개해 줄 생각이신가 봅니다만…….”
“…….”
“약속한 여인은 아직 없습니다. 당분간 바쁜 일이 많아서 사귈 여유도 없습니다.”
“아…… 그렇소이까?”
막금만의 표정이 밝아졌다.
당장 여인을 사귀지 않는다면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화산도협께서 바쁜 일이 해결될 때 본인이 누군가를 소개해도 될지 모르겠군요.”
“상국주께서 소개해 주신다면 당연히 저야 고맙지요.”
“하하하! 알겠소이다. 기회가 있다면 꼭 소개하겠소이다!”
‘흠. 기회를 만들면 안 되겠어.’
* * *
척척척.
석풍은 지하로 내려갔다.
‘쯧…….’
코를 찌르는 악취가 진동했다.
그는 목만 밖으로 뺀 채 공마령액에 잠겨 있는 팽병진을 내려다보았다.
“몸은 어떠냐?”
“지금 이 기분이라면 당장에라도 하늘을 무너뜨릴 것 같습니다.”
“다행이군. 성공했어.”
공마령체의 성공 확률은 만 명 중 한 명이었다.
“모든 게 외숙부 덕분입니다.”
“그건 아니지. 네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한 놈만을 생각했습니다. 그 녀석이 없었다면 제가 그 고통을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팽병진은 화산도협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석풍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찾아왔다.”
“화산도협의 일입니까?”
“맞다.”
우우우웅-
팽병진의 내기가 움직이면서 공마령액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외숙부, 그놈은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천하상국에 있다고 하더군.”
“크크크…… 잘됐습니다. 여기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군요.”
팽병진의 몸이 공마령액 위로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 * *
툭툭.
고진유는 걸으면서 가슴을 두드렸다.
“인양아, 마음이 푸근하구나.”
“그러게요.”
그의 가슴에는 상국주 막금만에게 얻은 전표로 가득했다.
인양은 사양하지 않고 전부 받아온 고진유의 모습이 오히려 보기 좋았다.
그의 무공은 이미 사람이 펼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것만 보면 언제라도 세상에 미련 없이 선계로 떠날 수 있는 경외의 대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돈을 받은 뒤 즐거워하는 모습은 세속적인 일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공돈도 생겼는데 담에는 맛있는 요리나 시켜 먹자.”
“알겠습니다.”
“다시 달려볼까?”
“넵!”
고진유와 인양은 내력을 올리는 동시에 신법을 펼쳤다.
휘이이익!
휘리리리릭!.
바람 소리를 내며 그들의 신형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고진유와 인양은 장가구에 들어선 뒤 하루하고 반나절을 달려 강보에 도착했다.
“내일이면 석림으로 들어갈 거야.”
“형, 두꺼운 옷을 준비해야겠죠?”
“아마도…… 설 소저 말로는 엄청 춥다고 하던데. 한 번도 안 가봐서 알 수 가 없군.”
“제가 동복을 사면서 한 번 물어볼게요. 얼마나 추운지.”
“부탁해.”
인양은 북해빙궁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동복을 구하러 객잔을 나섰다.
고진유는 먼저 북해빙궁으로 떠난 일행이 보고 싶었다.
“어디쯤 갔을지 궁금하네.”
시간상으로 봤을 때 일행이 빨리 움직였다면 북해빙궁에 이미 도착했을 수도 있었다.
고진유는 탁자에 앉아 밖을 구경했다.
‘남방과 북방은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데.’
객잔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남방의 사람들보다 컸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면 성격도 대범하면서 시원시원해 보였다.
‘가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사람 구경도 재미있지.’
인양이 돌아올 때까지 딱히 할 일은 없었다.
툭툭.
그는 허리에 싸맨 철갑을 가볍게 건드렸다.
하루에 한 번씩 철갑을 열기 위해 살폈지만, 마치 출구가 없는 곳에 갇힌 것처럼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썬 방법이 그것밖엔 없군.”
북소연에게 만능자를 찾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지금까지 찾아내지 못한 걸 보면 찾기 어려운 모양이긴 하지만.’
전설상의 인물.
정말로 그런 인물이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두목의 말을 믿은 게 잘못인가? 부풀려서 말하긴 했지만, 이런 거짓말은 잘 안 하는 편이었는데.’
철갑을 열기 위한 최대의 관건은 만능자의 존재 여부였다.
그렇게 인양이 밖으로 나간 지 반 시진이 되어갈 때쯤이었다.
‘이건…….’
반각 전부터 객잔에서 기분 나쁜 느낌이 계속 느껴졌다.
‘목표는 나인 것 같고.’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객잔에선 많은 사람이 식사하는 중이었다.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좋겠지.’
객잔을 나선 뒤 인적이 드문 장소를 찾았다.
“저곳이 좋겠군.”
휘이이익!
고진유는 신법을 펼치며 사라졌다.
* * *
대나무 숲에서 고진유는 걸음을 멈춘 뒤 기다렸다.
“크크크크…….”
잠시 뒤, 괴소와 함께 한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누군가 했더니 아는 얼굴이었군.”
고진유의 앞에 나타난 사내.
하북팽가에서 쫓겨난 팽병진이었다.
공마령체가 된 그를 고진유는 단번에 알아챘다.
“화산도협, 내가 올 줄은 몰랐겠지?”
“그동안 몸에 이상한 짓을 했나? 차라리 조용하게 사는 게 더 좋았을 텐데.”
하북팽가에서는 모두 그를 죽이고자 했지만, 가주 팽직도는 그의 단전만 폐했을 뿐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해주었다.
“화산도협, 조용하게 사는 게 더 좋았을 것이라 했나?”
“살고 싶다며 팽가주께 눈물을 흘리며 용서를 빌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살고 싶다는 놈이 왜 나타났지?”
“크크크크. 누가 죽는다는 거야? 내가? 난 지금 세상 누구와 싸워도 이길 수 있다!”
“불쌍한 놈. 자신의 몸이 어떤 상탠지도 모르는군.”
“닥쳐라!!!”
슈우우우욱-
팽병진의 전신에서 공마령기가 뻗어 나갔다.
푸쉬쉬…….
푸른빛을 띠고 있던 대나무 숲이 단번에 누렇게 변했다.
“역시 대단해. 네놈에게는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군.”
호신강기로 감싸인 고진유에겐 공마령기가 제대로 미칠 수 없었다.
“예전보다 내력은 조금 강해졌나.”
“크크크. 조금이라고? 네놈은 이게 조금으로 보이나?”
“내력이 강해지면 좋긴 하지. 하지만 힘이 세진다고 진정 강해지는 건 아니야. 힘만 센 꼬맹이라고 할까?”
팽병진의 얼굴이 붉어졌다.
한마디로 무시였다.
“지금……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나?”
“확인해 줄까? 네가 몸에 얼마나 멍청한 짓을 했는지.”
“크아아아아!!!!”
괴성을 지른 팽병진이 공마령기를 극성으로 끌어 올리며 고진유를 향해 노려보았다.
“네놈이 말한 멍청한 짓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낄 것이다!!”
슈우우우우우-
팽병진의 전신에서 공마령기가 솟구치며 고진유를 향해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