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화
“루루루루…….”
휙휙휙!
기분이 좋은 듯 흥얼거리는 전황의 손이 바빴다.
따끈하게 만든 음식 위로 준비해 온 극독을 뿌리기 시작했다.
무향, 무색, 무미, 무취의 극독.
“크크크…… 요걸 먹는 순간…….”
“어떻게 되는데?”
“죽게 되지…… 어어엉?”
전황의 눈이 커지며 몸이 움찔거렸다.
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나며 경계 태세를 보였다.
“어, 어떻게……?”
객실에 있어야 할 고진유가 싱긋 웃고 있었다.
“예전부터 당신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니 놀랄 것 없소. 애매한 위치라서 당신을 잡을 수 있을지 확신도 없었고, 잡아봤자 또 다른 자가 나타날 것 같아서 가만히 놓아두었을 뿐이지.”
‘내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절대로 일어나면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우문전 최고의 살수였다.
삶의 의욕이 확 떨어졌다.
하지만 이내 활력을 되찾았다.
‘이놈만 죽이면 돼.’
팟팟팟!
전황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삼장무적비검(三丈無敵飛劍).
‘삼 장 안에서는 대라신선도 살 수 없다!’
소매 속에서 수십 개의 독비검이 고진유를 향해 날아갔다.
“좀 더 빨리 못 던지나?”
고진유는 마치 눈앞에서 멈춘 듯한비검들을 보며 가볍게 그 사이로 지나갔다.
움찔!
전황은 눈이 더욱더 커졌다.
비검을 피하며 다가오는 상대의 모습이 한 줄기 빛처럼 보였다.
“컥……!!”
손만 뻗어도 될 만큼의 앞까지 다가왔다.
‘물러나야 해.’
하지만 간절한 머리와 달리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쉬이익!!
고진유는 손을 뻗었다.
그저 간단한 움직임이었지만 전황의 눈에는 절대무공처럼 느껴졌다.
퍽! 퍽! 퍽!
얼굴과 명치와 단전에서 둔탁한 소리가 났다.
“크어헉!!”
전황은 비명과 함께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주방은 한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크으윽……!!”
전황은 쓰러졌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일어나긴 했어도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듯 고진유가 흐릿하게 보였다.
“후후, 정신없는 모양이군.”
휘리리리릭!!
어디선가 긴 타원을 그리며 날아오는 소리가 났다.
전황은 흐려진 시선을 빠르게 돌리며 주위를 살폈다.
번쩍!!
하지만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정면에서 날아온 고진유의 주먹에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쿵.
전황은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뒤로 넘어지며 바닥에 쓰러졌다.
* * *
석가장의 역사는 대대로 하북의 땅에 석씨의 성을 가진 토착인들이 만든 상단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세월이 흘러 상단의 위세가 점점 커지는 과정에서 지역명을 그대로 상단명으로 사용하며 무림세가로 성장했다.
가주전으로 들어선 중년 사내들의 표정은 심각했다.
석가장을 이끌고 가는 네 명의 당주들인 사대석인(四代石人).
이들 네 명을 석가장의 장주 석충이 천천히 둘러보았다.
주화당주 석지홍의 두꺼운 입술이 먼저 움직였다.
“본 장은 흑화전의 명을 어길 수는 없습니다.”
며칠 전 날아온 급서.
내용은 간단했다.
<화산도협에게서 철갑을 찾아라.>
역무당주 석곤동이 목소리를 높였다.
“잘됐습니다! 그자에게 누님의 원수를 갚아야 합니다.”
하북팽가에서 전해온 서신에는 석화린이 평소에 지병이 있어 끝내 이기지 못한 채 병사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석가장에서 그 사실을 믿는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석충은 여전히 굳은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멍청하게…… 하북팽가를 너무 만만하게 봤어.’
석화린은 팽가주가 모를 것이라 여기며 자신만만하게 지냈었다.
‘조심했어야 했지만…… 그럼에도 의외로군. 지금까지 우리 뜻대로 쉽게 움직이던 녀석에게 갑자기 당한다고?’
그렇다면 팽가주는 오래전부터 이미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화산도협의 말을 따랐을 것이고 말이다.
거기다 하북팽가에서 온 연락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하북성의 하북팽가의 관할지에서 운영하던 석가장 사업체를 전부 철수하라는 통보까지.
하북팽가를 집어삼킬 계획이 허무할 정도로 완전히 실패한 셈이었다.
‘쯧, 곧바로 움직인 걸 봐선 우리와 부딪치는 것도 불사하려는 게야.’
팽가주는 지금껏 알고 지냈던 유약한 인물이 아니었다.
가문을 이끄는 추진력과 결단력이 없이는 내릴 수 없는 결정이었다.
석곤동이 그를 불렀다.
“장주님. 제 말을 들었소이까?”
“……잘 들었네. 좋아. 당연히 누님의 원수를 갚아야지. 역무당주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당장 본 장의 무인들을 이끌고 가서 그에게서 철갑을 빼앗은 뒤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무슨 명분으로 석가장의 무인들을 이끌고 나갈 생각인가? 명분 없이 화산도협 한 명을 죽이기 위해 석가장에서 수십 수백의 무인이 달려든다고 하면, 중원인들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
석곤동은 대답을 못 했다.
“화가 나는 건 이해하네. 하지만 늘 신중하게 움직여야 하는 법이지. 지금 화산도협에겐 중원인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지 않은가. 함부로 나설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네.”
장주 석충의 말이 맞았다.
“장주님, 그 문제라면 쉽군요. 명분을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얼굴색이 붉은 중년 사내, 정명당주 석풍이 나섰다.
“석가장이 나서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정명당주, 그게 뭔가?”
“팽병진, 그놈을 이용하면 됩니다. 화산도협에게 도전하도록 만들지요.”
석충은 그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만일 팽병진이 화산도협에게 다치거나 죽게 된다면, 그의 외가인 석가장에서 나설 만한 명분을 얻을 수 있다.
나쁘지 않은 의견이었다.
“좋아. 지금 그 녀석은 어디에 있지?”
“단전이 부서진 채 돌아다니는 것을 잡아 와서 공마령체로 개조시키는 중입니다.”
“그놈에게 공마령체의 기연을?”
공마령체를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값을 떠나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수많은 영약과 독들이 필요했다.
“누님의 아들이니 한 번 정도는 본 장에서 안아야지 않겠습니까?”
“……음…… 그렇긴 하지만…… 나중에 우리 말을 잘 따를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만일을 위해 그 녀석의 머리 안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도록 제재를 심어 놓았습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지. 성공할 수 있겠나?”
“공마령체가 된다면 화산도협을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만약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에게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그렇군. 이번 일은 정명당주가 맡아주도록 하게.”
“알겠습니다. 화산도협은 제가 맡도록 하겠습니다.”
* * *
고진유와 인양은 객잔에서 나온 뒤 곧장 북쪽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평산을 지나 곧바로 보정으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우회하는 방법보다 직접 대청강을 배를 타고 넘어가는 수로가 이틀 정도 시간을 단축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대청포에 도착한 후 보정으로 넘어가는 배를 알아보았다.
“아직 반 시진 정도가 남았어요, 형.”
“그럼 슬슬 포구나 구경하고 있자.”
“넵.”
백색과 회색의 가벼운 경장 차림인 두 사람은 건장한 체격에 윤이 흐르는 피부 때문인지 포구에 모인 여인들의 시선들을 한 몸에 받았다.
“묵경 형이 받는 느낌이 이런 거구나.”
여인들의 시선은 은근히 부담되면서도 기분이 좋은 느낌이었다.
“기다리는 동안 가볍게 차 한잔 마실까?”
“네, 알겠습니다.”
포구 주위에는 간단하게 차를 마실 수 있는 노점 찻집들이 많았다.
고진유는 그중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가 좋겠어.”
전망이 좋아 대청강을 보면서 분위기 있게 차를 마실 수 있는 곳이었다.
고진유와 인양은 비어 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문한 차가 나왔다.
“음…… 시원한데?”
고진유는 차 맛이 마음에 들었는지 연이어 차를 따랐다.
입속에 시원한 향이 감돌았다.
찻잔을 내려놓은 후 포구에서 배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을 한동안 쳐다보았다.
포구에는 일반 백성들보다 표국이나 상단의 장사꾼들이 대부분이었다.
“왜 장사꾼들이 많지?”
“한번 물어볼까요?”
인양이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돌아보려고 할 때였다.
스윽.
그들 자리로 다가오는 인기척이 들렸다.
조심스럽게 다가온 중년 사내가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치자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였다.
“공자님, 실례하겠습니다.”
“본인에게 무슨 볼일이 있습니까?”
“소인을 알아보지 못하시겠지만 중원상국에서 일하는 혁준상이라 합니다.”
“중원상국의 사람입니까?”
멀리 하북에서 중원상국의 인물을 만날 줄은 몰랐다.
고진유는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여기 앉으세요.”
“고맙습니다.”
혁주상은 자리에 앉으면서 정확하게 신분을 밝혔다.
“소인은 재용단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직책은 부단주를 맡고 있지요.”
“부단주이시군요. 하북 땅에서 중원상국의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소이이다.”
“네에, 저도 혹시나 했는데…… 공자님이 맞았습니다.”
“그런가요?”
혁준상은 매화도의를 입지 않은 것으로 봐서 신분을 숨기는 것임을 바로 알아차리고 그를 화산도협이라 부르지 않았다.
“부단주께서는 어딜 가는 길입니까?”
“보정에 들어가는 길입니다.”
“음, 그렇지 않아도 궁금했는데. 포구에 장사하는 사람들이 많군요.”
“공자님, 보정에는 천하상국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늘 상인들이 많습니다.”
“아하…… 그렇군요. 정말 몰랐소이다. 그래서 표국이나 상단의 상인들이 포구에 많았군요.”
“무림인이시라 몰랐던 것 같습니다.”
“고맙소이다. 궁금했던 게 풀렸소이다.”
고진유는 찻집 주위를 살폈다.
“근데 중원상국의 상단은 보이지 않는군요.”
“소인은 강북 지역의 물류에 대해 천하상국과 의논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위 무사와 두 명의 실무 담당자만 함께 동행하는 길이었지요.”
“그렇군요. 여하튼 이렇게 만나게 되니 기분이 좋습니다.”
“소인도 공자님을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상국에서 인사를 드릴 기회가 없었으니까요.”
“후후후. 그때 많이 바빴지요. 차라도 마시면서 배가 들어오기를 기다리죠.”
“좋습니다.”
* * *
그들을 태운 배는 대청강을 가로지르며 보정으로 도착했다.
포구에 내린 고진유와 인양은 중원상국 일행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천하상국에서 마중을 나온다고 하니 우린 먼저 가도록 하겠습니다. 부단주께서는 일을 잘 본 뒤 상국으로 조심해서 내려가시지요.”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공자님.”
휘이이익!!
고진유와 인양은 신법을 펼치며 포구에서 벗어났다.
‘허어…… 순식간에 사라지는구나.’
혁준상은 잠시 멍한 시선으로 서 있을 뿐이었다.
스스스스-
포구를 나선 고진유와 인양은 바닥을 스치며 달리다, 순간 전방에서 거친 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기마들이군.’
거친 말발굽 소리를 내며 기마 무리가 달려오고 있었다.
두두두-
기마 무리 위로 천하상국기가 펄럭거렸다.
오십 필 정도의 규모.
“…….”
고진유는 천하상국의 기마대를 지나친 후 신법을 멈췄다.
“형, 무슨 일이 있나요?”
“방금 저들 봤지?”
“네. 천하상국기가 있는 걸로 봐서 부단주 일행을 마중하기 위한 무리 같아요.”
“안 이상해?”
“안 그래도 이상했어요. 마치 싸우러 가는 듯한 기세라고 할까요?”
“맞아. 저들을 보니 손님을 접대하려는 목적이 아닌 것 같은데.”
중원상국의 일이 아니었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었다.
“한 번 지켜볼까? 어떻게 나오는지.”
고진유는 포구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부단주님, 천하상국에서 옵니다.”
호위 숙번조가 빠르게 다가오는 기마 무리를 보고 흠칫했다.
‘뭐지? 이건…….’
느낌이 이상했다.
자신들을 봤으면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다가와야 했다.
하지만 속도를 줄이지 않고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저놈들이…….’
호위 무사 숙번조와 원부는 굳은 얼굴로 혁준상의 앞에 나섰다.
저들은 삼 장 앞까지 멈출 생각이 없는 듯했다.
히이이이잉-!!
거친 말 울음소리와 함께 기마들이 멈췄다.
오십 필의 말이 주는 압박에 혁준상의 등에 땀이 흘러내렸다.
기마 선두에서 중년 사내가 아래로 내려섰다.
“하하하. 놀랐소이까?”
휘익.
사내는 입가에 실소를 지었다.
“본인은 내정 이총관님의 부관으로 강두후라 하오.”
“재용단 부단주인 혁준상이외다.”
“아하. 혁 형이시군요.”
“…….”
혁준상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와 동시에 숙번조가 목소리를 올렸다.
“강 부관께서는 말을 함부로 하는군요. 재용단의 부단주 신분은 그대가 모시는 이총관과 같은 직책이오.”
“하하하. 그렇소? 이총관님께서 본인을 보낼 때 그런 말씀이 없었소이다.”
“…….”
“나이도 비슷한데 서로 편안하게 그냥 혁 형이라 부르는 게 좋지 않겠소?”
“지금 중원상국을 무시하는 것이오?”
숙번조가 인상을 쓰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다각. 다각.
기마들 사이에서 흑마가 앞으로 나왔다.
흑마 위에 탄 중년 사내가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훈계하듯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소리를 죽이는 게 어떻겠소이까? 서로 기분 좋게 대하자는 말이외다. 비룡도객께서는 본 상국의 뜻을 모르고 있는 것 같구려.”
“본인을 알고 있는 그대는 누구시오?”
“별로 대단한 이름은 아니지만, 무림의 동도들이 본인을 하북십검의 추광쾌검이라 부르고 있소.”
‘이자가…… 하북십검 중의 추광쾌검?’
숙번조는 단번에 기운이 빠졌다.
추광쾌검 금도엽.
그는 분명 자신보다 한 수 위의 무인이었다.
게다가 그의 뒤로 오십 필의 기마대가 압박을 주고 있었다.
‘쳇. 이럴 줄 알았다면 우리도 무력단과 함께 올 것을.’
중원상국의 일행은 당황했다.
강두후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이총관님의 계획이 성공했어. 일단 기를 꺾어놓았으니 회의는 우리 본 국에 유리하게 돌아갈 것이다.’
혁준상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 갈 때였다.
“부단주, 본인이 조금 늦었소이다.”
“…….”
길옆에서 불쑥 나오는 두 사람.
바로 전에까지만 해도 굳어졌던 혁중상의 얼굴이 환하게 퍼졌다.
‘분명 먼저 떠나셨던 분이신데……!’
스윽.
고진유는 앞으로 나오며 숙번조의 어깨를 가볍게 잡았다.
“오면서 들었는데 누가 건방지다고 한 것 같았소이다. 그게 누구요?”
“아…… 저자는 이총관의 부관이라는 자인데, 본 상국의 부단주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이런, 그런 일이 있었소? 그러면 안 되지 않소?”
“네. 절대로 안 되는 일입니다. 일부러 그랬다면 본 상국을 무시하는 행동입니다.”
“흠…… 무시라…….”
고진유는 돌아서며 강두후를 보았다. 그리고 한 걸음씩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