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35화 (135/425)

135화

슈우우욱-!!

그의 살형기가 광폭했다.

‘큰…… 일 났다.’

수곡자는 처음 보는 광경에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나하중을 곁에서 모신 지 오십 년이 넘었다.

반 갑자의 세월 동안 이보다 강한 노기를 품어낸 모습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늘 차분하게 평상심을 유지하던 그였기에 이번 일은 더욱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크크크크…….”

온화하던 그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붉게 물든 눈동자와 치켜 올라간 눈매가 현재 그의 기분이 어떠한지 알려 주었다.

후우우우우…….

호흡을 크게 내쉬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정말 대단한 놈이지 않나?”

“…….”

“어이없을 정도로 대단해. 북해빙궁으로 가는 척하면서 철갑을 찾으러 섬서로 내려왔어. 죽일 놈…….”

나하중의 전신에서 살형기가 재차 폭발했다.

콰아아앙-

기의 폭풍으로 인해 여의정이 이기지 못하고 천정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저, 전주님!”

수곡자는 다급하게 소리를 쳤다.

우두두두-!!

천정이 무너지면서 여의정은 완전히 내려앉았다.

완전히 부서진 여의정을 먼지가 솟구치면서 덮였다.

“쯧쯧…….”

수곡자는 신음을 내며 누렇게 솟아난 먼지를 지켜보았다.

여의정은 그가 천문전에서 가장 아끼던 정자였다.

그만큼 얼마나 화가 났는지 단편적으로 보여주었다.

나하중은 여전히 부서진 여의정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여길 며칠 내로 똑같이 지을 수 있겠지?”

“알겠습니다. 예전처럼 같이 짓도록 하겠습니다.”

“오래되긴 했어. 안 그런가?”

“네, 그렇습니다.”

“부탁하지.”

나하중은 부서진 여의정을 내려왔다.

휘익!

백사건이 뒤로 휘날리면서 윤여림이 다가왔다.

그의 시선이 나하중과 함께 뒤에 무너진 여의정의 잔해를 번갈아 보았다.

“천주님,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허허허. 별일 아니네. 잠시 열이 났을 뿐이었지.”

“…….”

윤여림은 얼른 수곡자에게 전음으로 물었다.

[대체 무슨 보고를 했소이까?]

[공각원주가 화산도협에게 죽임을 당했소이다.]

[그, 그렇군요.]

공각원주의 죽음.

여의정이 부서진 이유가 바로 이해되었다.

공각원주 무신해는 천문전주가 가장 신임하는 수하 중 일인.

그의 죽음은 화가 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철갑은 이젠 그 녀석이 가지고 있다. 어떻게 빼앗아 올 테지?”

나하중은 매서운 시선으로 윤여림을 노려보았다.

“현재 그의 무공은 중원오성과 대등하다고 여겨집니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육십사괘무장의 특무괘장도 쉽게 이길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흐음. 다른 방법을 생각한 모양이군. 자네의 생각이 뭔가?”

“하북의 석가장을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석가장이라……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군.”

얼마 전 하북팽가에서 일어난 보고를 받았다.

흑화전의 일이기는 하지만 천문전은 십전을 총괄하는 임무 또한 지니고 있었다.

“흑화전의 배 전주가 받아들일까?”

“상대가 화산도협이라면 당연히 받아들일 것입니다.”

“후후후. 그렇겠지. 자네는 흑화전에 가서 내가 한번 만나고 싶다고 전하게.”

“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윤여림은 뒤로 물러난 뒤 흑화전으로 향했다.

* * *

고진유와 인양은 신법을 펼치며 산양을 빠져나갔다.

휘이익!

바람 소리조차 두 사람의 신형 뒤에서 울릴 뿐이었다.

고진유는 뒤를 돌아보았다.

“힘들지 않아?”

“괜찮습니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까지 충분히 달릴 수 있습니다.”

“좋았어. 그럼 쉴 때까지 마지막으로 속도를 더 올려도 되겠지?”

“네. 알겠습니다.”

피이이이이잉-!!

고진유의 신형이 앞으로 튀어나가자 화살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진유 형이야. 그럼 나도!’

타아앗!!

인양도 남아 있는 내력을 짜내며 신법을 펼쳤다.

‘후후후.’

고진유는 앞서 달리면서 뒤에 따라오는 인양의 기를 느꼈다.

‘좋아. 기를 잘 유지하고 있어.’

신법은 펼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동작과 동작 상호간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함이었다.

게다가 내력으로 신법을 펼친다면 흥분을 해서는 더욱더 좋지 않았다.

‘이 정도면 신법은 굳이 더 깊게 가르칠 필요는 없어. 이제는 인양에게 필요한 건…… 무공이군.’

화산복호권을 가르쳐 주었지만 극일천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완벽한 무공이 필요할 시점이었다.

‘시간이 나는 대로 화산복호권을 기본으로 권법을 제대로 가르쳐야겠어.’

고진유는 마을 초입까지 다가선 뒤 속도를 줄이며 들어섰다.

“형, 어떻게 할까요? 오늘은 이 마을에서 하루 보낼 건가요?”

“그게 좋겠다. 우선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아보자.”

“제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안 가도 돼. 저기 보이네.”

마을 안에는 어둠을 밝히는 등이 하나둘씩 켜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객잔의 등도 바로 찾을 수 있었다.

“저기서 하루 보내자.”

두 사람은 객잔으로 움직였다.

“도사님. 한 푼 적선해 주시면…….”

‘도사라…….’

현재 자신은 도의를 입지 않았다.

스윽.

길옆에서 고개를 숙인 거지가 동냥 그릇을 들어 올렸다.

‘훗.’

고진유는 눈가에 웃음이 나왔다.

동냥 그릇 안에 적혀 있는 글자.

-천양원으로 오세요.

고진유는 동전 한 닢을 동냥 그릇에 던져 주었다.

“고맙습니다.”

거지는 동냥 그릇을 품 안에 넣은 뒤 일어나 멀리 사라졌다.

‘천양원이 어디인지 물어봐야겠군.’

* * *

고진유와 인양은 무너질 것 같은 대문 앞에 섰다.

천양원(千陽院).

예성현에서 이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의원이었다.

이곳의 환자들은 대부분 돈이 없는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삐그덕-

잔잔한 바람에도 대문이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형, 잘못 건드렸다가 무너질 것 같습니다.”

“조심해서 들어가자.”

고진유는 먼저 안으로 들어섰다.

‘의원이 맞긴 해.’

약재 냄새가 천양원 전체에 묻어 있었다.

노의원은 환자를 진료하던 도중 안으로 들어온 인기척에 고개를 내밀었다.

“거기 누구요? 아픈 것 같지 않은데 무슨 일로 왔는가?”

“사람을 만나러 왔습니다.”

고진유는 사실대로 말을 했다.

의원은 자신의 머리를 툭툭 치면서 웃었다.

“허허. 머리가 아픈 게로군. 의원에는 아픈 곳을 치료받는 곳이네. 사람을 찾으려면 다른 곳에 가야지.”

“……죄송합니다. 잘못 찾아온 듯하군요. 그만 가보겠습니다.”

“잠깐만. 보아하니 젊어서 힘 좀 쓰겠구먼. 올라와 보게.”

“…….”

“허허. 젊은 사람이 몸이 무거워서 되겠나.”

고진유는 얼른 진료실로 들어섰다.

‘흐음.’

병상에는 덩치가 큰 성인 사내의 왼쪽 다리가 퉁퉁 부어 있었다.

“여기 와서 이 사람이 못 움직이게 잡아주게.”

“……그러죠.”

고진유는 사내의 어깨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허허. 지금 뭐 하는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잡고 있습니다.”

“……무림인이군. 잘 잡고 있게.”

찌이이익-

노의원을 날카로운 칼로 사내의 부은 부분을 찢었다.

“아아아악!!”

사내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몸을 비틀었지만 고진유의 손에 잡힌 채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엄살은…… 고름을 더 짜야 하니 조금만 더 참게나.”

“어어어어어억!!”

그는 신음을 내며 몸을 계속해서 비틀고자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내의 눈동자에 흰자만이 보일 정도로 곧 정신이 넘어갈 것처럼 보였다.

잠시 뒤 노의원은 고름을 짠 부위에 붕대를 감았다.

사내의 온몸이 땀으로 젖어들었다.

“며칠 동안 조심해서 지내면 괜찮을 것이네.”

“네…… 감사합니다요…… 의원님.”

“그리고 당분간 금주일세. 살고 싶으면 술을 마시지 말게. 허허허.”

노의원은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진유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 도움이 많이 됐어.”

“도움이 됐다니 잘됐습니다.”

“저기 약재실로 가보게나.”

“알겠습니다.”

노의원이 가리킨 천양원의 약재실.

약재실은 진료실에서 십 장 정도 떨어져 있었다.

‘흐으으음. 약재실이라 향이 더 진한데.’

약재실로 올라간 뒤 손잡이를 잡고 당겼다.

쓰으윽.

약재실의 문이 가볍게 열렸다.

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주위를 살폈다.

“형. 저기 깊숙한 곳에…….”

약재실의 한쪽에 손을 올리며 아는 체를 한 여인이 있었다.

‘아무리 봐도 신기한 여자야.’

고진유는 손을 흔들고 있는 그녀의 곁으로 다가섰다.

“여기서 뭐 하고 있소?”

“혹시 예뻐지는 약재가 있는지 찾고 있었지요.”

“…….”

“그 눈빛은 뭔가요? 못생긴 게 별짓 다 한다는 표정처럼 보이는데. 비웃는 건가요?”

“글쎄요. 그건 당신이 알아서 판단하면 되오.”

“쳇. 농담도 못 하겠군요.”

“난 진담인 줄 알았소만.”

스윽.

북소연은 약재통 하나를 건드리며 밀었다.

드르르르륵.

약재실 아래로 비밀 통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약재실 안에 비밀 통로라니.

“여긴 뭐 하는 곳이오?”

“의원이자 본 림의 비밀 지국이에요.”

“……너무 어이없고 뜬금없군요.”

“호호호, 이 정도가 되어야 비밀 지국이라고 할 수 있죠. 이젠 두 사람이 알아 버렸으니 비밀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만.”

“다른 장소로 옮기겠다는 말처럼 들리는군요. 비밀은 지켜줄 수 있소이다.”

“비밀 지국은 수시로 옮겨야 진정한 비밀이라고 할 수 있죠. 내려가죠.”

북소연은 먼저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를 고진유와 인양이 바짝 따라붙었다.

* * *

약재실 아래 비밀 방은 십여 명이 앉아 있을 정도의 크기였다.

빛이 들어오지 않는 방이지만 야명주에 의해 충분히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소문을 들었어요. 극일천의 인물들을 모두 죽였다고 하더군요.”

“그들은 본인의 사람을 죽였소이다. 당연히 죽어야 했소.”

“…….”

복수했다는 말에 그녀는 표정이 굳어졌다.

고진유에게 본 림은 아직도 복수의 대상인 듯했지만 확실히 물어보기 겁이 났다.

북소연의 시선이 인양에게 향했다.

“동생분을 만났네요. 잘 지냈어요?”

“아…… 네에.”

인양은 갑자기 던진 그녀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 물건은 어디 있나요? 찾았나요?”

“찾았소이다.”

그가 사실대로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정말인가요?”

“그렇소이다.”

고진유는 장삼 자락을 한쪽으로 젖히며 그 안에 묶어놓은 천을 풀었다.

타악.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이것이오.”

북소연의 눈동자에서 빛이 났다.

“천을 풀어봐도 되나요?”

“보고 싶으면 봐도 괜찮소.”

“고마워요.”

스르륵.

그녀는 천을 풀어 천천히 당겼다.

그리고 철갑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진한 흑색의 철갑.

오직 작은 구멍 하나만이 밖에서 보일 뿐.

북소연은 철갑의 존재에 실망한 듯 보였다.

“정말로 이게 맞나요?”

“사부님께서 숨긴 철갑이 확실하오.”

그녀는 철갑을 유심히 살폈다.

슥슥.

고진유가 했던 방법으로 구멍 안에 뾰족한 침을 넣고 휘저어 보았다.

‘사람은 다 똑같군.’

“이걸 어떻게 여는 건가요?”

“본도도 모르오.”

“부수면 되지 않을까요?”

“철갑을 억지로 연다면 안에 든 용액이 터져 내용물들이 사라진다고 하더군요.”

“흐음.”

북소연은 철갑을 내려놓았다. 열지도 못한 철갑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녀를 부른 것은 아닐 것이었다.

“저를 부른 이유가 뭔가요?”

“한 사람을 찾아주시오.”

“본 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우린 사람을 찾는 일을 하지 않아요.”

지금까지 많은 부탁을 들어주었지만, 이번에는 사람을 찾는 일이었다.

그녀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철갑을 열고 싶지 않소?”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걸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으나 본도가 아는 사람 중 중원에서 자물쇠를 가장 잘 만드는 사람이 있소.”

“그가…… 누구길래요?”

“만능자. 본도도 그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이오.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도둑의 세계에서는 가장 유명한 인물이기도 하오.”

“그를 찾을 수 있다면 철갑을 열 수 있다는 말인가요?”

“확실한 건 모르겠소. 하지만 가능성은 매우 높을 것이오.”

북소연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만능자를 찾아야 했다.

“알겠어요. 그를 찾도록 하겠어요.”

“고맙소. 부탁하겠소이다.”

“그럼 철갑은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가지고 다니면 잊어버릴 수 있는데…….”

그녀의 속뜻을 모를 리 없었다.

“걱정 마시오. 본도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빼앗기지 않을 테니. 만일 누군가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면 약속을 한 당신에게 주겠소.”

고진유의 말에 그녀의 표정이 밝아졌다.

“알겠어요. 비록 완전한 진실은 아닌 것 같지만, 당신 말을 믿겠어요. 지금까지 거짓말을 한 듯했지만, 오늘 보니 또 아닌 것 같기도 해서요.”

스윽.

북소연은 철갑에는 더 관심이 없다는 듯 고진유에게 밀어주었다.

“이른 시일 내에 찾도록 하지요.”

“고맙소. 만일 그를 찾게 된다면 본도를 찾아오면 되오.”

“어디에 있을 거죠?”

“앞으로 별일이 없다면 북해빙궁으로 갈 생각이오.”

“……한미화 때문인가요?”

“내 사람들이 거기에 가기 때문이오.”

“흐음…… 그냥 물어본 것뿐이에요. 다른 뜻은 없었어요.”

“그만 가겠소. 잘 부탁하겠소이다.”

“여기에서 하루 지내고 가세요. 밖으로 나가면 방을 준비해 놓았어요.”

고진유는 물끄러미 그녀를 보았다.

‘왜…… 나를 빤히 쳐다보지?’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오.”

“뭔가요?”

“아무리 철갑 때문이라고 하지만 본도를 도와주는 이유가 있소?”

“……모르겠어요.”

북소연의 대답은 사실이었다.

가끔 그녀도 생각해 보았지만 왜 그의 말을 자꾸 믿어주는지, 왜 도와주는지 자신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움직였다.

“그렇군요. 도움에 고맙기는 하군요.”

“그럼…… 우리 사이는 원수까지는 아니겠지요?”

“그건 아니오. 도움을 받는 것은 받는 것이고 원수는 원수인 게요.”

“너무하네요.”

“그만 올라가겠소이다.”

고진유는 일어나 계단으로 한 계단 올라서자 문이 열렸다.

“인양아, 가자.”

“알겠습니다.”

인양은 올라가기 전 그녀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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