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30화 (130/425)

130화

쓰으윽.

흑의인이 자신의 얼굴을 잡아당겼다.

면구가 벗겨지면서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났다.

“하아…… 오랜만에 면구를 썼더니 갑갑하네.”

흑의인의 얼굴 안에서 드러난 잘생긴 얼굴.

묵경이 가끔 잘생긴 얼굴을 가리고 중원을 조용히 다니고 싶을 때 애용하던 물건이었다.

“너언…… 풍류옥협……!”

석화린은 살기를 뻗어내며 묵경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홍빛의 혈수가 튀어나왔다.

“죽어라, 이놈!!”

“헛, 나를 너무 만만하게 보는구만.”

묵경은 연화무환보를 시전하며 그녀의 혈수를 가볍게 피하는 동시에 일장을 뻗었다.

그녀는 흥분한 탓인지 묵경의 공격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

퍼어억!!

연혼장이 그녀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커억……!!”

비명과 함께 옆으로 휘청거리며 밀려 나갔다.

“이…… 놈들이…… 내가 누구인지…… 알고…… 하찮은 놈들이……!!”

휘익!

고진유가 그녀의 앞으로 다가섰다.

“말하기도 힘들 텐데 그만하는 건 어떻소?”

“그를…… 어떻게 했지?”

“글쎄요. 어딘가 잘 있겠죠.”

“크으…… 도둑놈 새끼…… 여기 있는 놈들을 모두 죽여 버리겠다!!”

석화린의 얼굴은 물론 전신이 점점 붉어지기 시작했다.

찌이이익-!!

거추장스러운 옷을 찢어버리자,

슈우우욱-

그녀의 붉은색 손톱이 고진유의 가슴을 향해 길게 뻗어 나왔다.

“화산도협, 혈사조일세! 피하게!!”

팽하벽은 다급히 소리쳤다.

일백 년 전 혈녀궁의 독문무공이 석화린의 손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호호호! 피하기엔 너무 늦었어!”

그녀는 자신만만했다.

기습이라면 아무리 고직유라도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녀가 뻗어낸 혈사조가 순식간에 고진유의 가슴을 파고 들어가는 듯했다.

순간,

“늦은 게 아니라 굳이 피할 이유가 없으니까.”

고진유의 냉소가 들렸다.

스걱-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혈사조가 긴 손톱이 잘려 나갔다.

“아아악!!”

그녀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타앗!

고진유는 연이어 앞으로 달려 나가며 사의검을 뻗어냈다.

하나의 동작에 무극심매의 초식과 매화자명의 초식이 합쳐지면서 그녀를 감쌌다.

샤르르르르-

석화린의 전신을 매화검기가 휘몰아치며 돌았다.

‘젠장…… 천무괘무장들이 당한 이유가 있었어……!’

한 번의 부딪침만으로 그녀는 고진유를 실력으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러나야 해.’

재빨리 물러날 기회를 엿봤다.

‘절대로 도망갈 수 없다.’

팽하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석화린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는 혼원도를 강하게 잡으며 신형을 날렸다.

사방에 휘날리는 매화검기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투명하게 변했다.

‘기회다. 빠져나가야 해.’

석화린은 매화검기 사이를 피하면서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스걱스걱-

매화검기들이 그녀의 전신을 스치고 지나가는 소리들이 들렸다.

‘크으으읏!!’

그녀는 고통이 밀려왔지만 살고자 하는 욕망으로 참아냈다.

‘이제 그대로 나가기면 하면 성공……!’

하지만, 그녀는 더는 물러날 수 없었다.

“어딜 가시오?”

뒤를 막아선 인물.

“도성……!”

“당신은 여기서 끝을 내야 할 것이외다.”

도성을 보는 그녀의 표정이 순간 애처롭게 변했다.

“미안해요……! 당신은 믿지 못하겠지만, 제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당신……!”

슈우우욱-

혈사조가 기습적으로 팽하벽을 향해 뻗어갔다.

파아아앗!!

하지만 불완전한 그녀의 혈사조는 도성 팽하벽에게 위협을 주지 못했다.

“아아악!!”

“끝까지 구차하군.”

팽하벽의 혼원도가 혈사조를 뻗어낸 그녀의 팔을 잘랐다.

“네…… 놈이…… 나를…….”

“이부인, 난…… 오늘 같은 날이 오길 얼마나 바라고 있었는지 모르겠소.”

팽하벽은 혼원도를 다시 위로 쳐들어 단번에 석화린의 목을 베고자 했다.

그때,

“도성께서 그녀를 직접 베고 싶으시겠지만 가주님의 뜻도 아셔야지 않겠습니까?”

고진유의 목소리가 그를 멈추게 했다.

‘그래! 난 세 아이의 모친이야. 그라면 나를 살려줄지도 몰라.’

그녀는 당장 죽지 않으리라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생각은 착각이었다.

“아우, 가주로서 명한다. 가문의 변절자, 석화린의 목을 베라.”

팽직도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상공!!”

“아직도 더러운 입으로 본인을 부르는 것이오? 그대는 본인뿐만 아니라 세가를 기만했소.”

팽직도와 팽하벽은 시선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지만 수많은 것들이 지나갔다.

쉬이익!!

혼원도가 그녀의 목을 향해 떨어졌다.

* * *

하북팽가에 거대한 푹풍이 불었다.

하지만 내당주 팽홍만이 진실을 알 뿐 나머지 세가의 인물들은 가주전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했다.

“내당주, 수고가 많네.”

“아, 아닙니다……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자네가 옆에서 도와주니 편하군.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네.”

“가주님…… 저를 믿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허허. 자네도 그녀를 몰랐지 않았나. 우리가 전부 당했던 것이네. 내당주는 앞으로 석가장이 어떻게 나올지 확인하게나.”

“알겠습니다! 세가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하겠습니다!”

“그럼. 수고하게나.”

팽홍은 허리를 깊이 숙인 뒤 가주전을 나섰다.

집무실에는 이제 가주 팽직도와 도성 팽하벽, 그리고 고진유만 남았다.

모든 게 끝이 났다.

팽직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진유에게 두 손을 올렸다.

“고 대협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소이다.”

이번에는 팽하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본인도 형님과 같은 심정이외다. 세가의 큰 도움을 받았소이다.”

“이 정도로 끝난 것에 천만다행입니다. 앞으로 두 분께서 하북팽가를 더욱더 잘 이끌어 가실 것이라 믿습니다.”

고진유도 자리에서 일어난 뒤 두 사람을 향해 포권을 했다.

팽직도와 팽하벽은 무림에 암운이 가득 차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무림에…… 극일천이라는 세력이 있을 줄은 몰랐소이다.”

극일천이란 신비 세력을 직접 보았음에도 믿기지 않았다.

고진유가 아닌 다른 인물이 수백 년 동안 중원의 암중에서 무림을 지배한 세력이 있다는 말을 했다면 미쳤다고 확신했을 것이었다.

“이런 사실을 중원인들은 알고 있소?”

“거의 모르고 있습니다.”

“하아…….”

팽직도는 안타까움에 한숨을 내쉬었다.

“중원에 알려야 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가주님, 그걸 누가 믿겠습니까? 두 분이야 눈에 그녀를 직접 봤으니 믿겠지만…….”

“하긴…… 사실 지금도 믿기지는 않거늘. 누가 믿어줄지 모르겠소이다.”

고진유의 말에 두 사람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 대협. 우린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소이까?”

“세가에 분명 저들의 간자가 더 있을지 모릅니다. 최대한 찾아내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합니다.”

“알겠소. 내 아우와 함께 극일천의 무리들을 찾아낼 것이오.”

“내당주에게도 말했지만 석가장에 대해서도 항상 주의하셔야 할 것입니다. 이부인이 극일천의 사람이라면 석가장은 극일천의 세력이 맞을 것입니다.”

“꼭 명심하겠소이다.”

반시진 뒤.

고진유는 가주전을 나온 뒤 영빈정으로 향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하북팽가는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조용했다.

‘여하튼 일단락되어서 다행이야. 당분간 극일천은 하북팽가에서 움직이지 못하겠지.’

고진유는 영빈정에 도착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지?’

처음 보는 인물이 일행과 함께 있었다.

“진유 아우, 손님이 찾아왔어.”

“어디에서 온 손님인가요?”

묵경과 있던 사내가 고진유 앞으로 다가섰다.

“화산도협님을 뵙습니다. 하오문도입니다.”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그는 인사를 한 뒤 붉은색 종이를 한 장 내밀었다.

“이걸 보여주면 된다고 했습니다.”

“고생했군요. 잘 받았습니다. 나중에 따로 보답하겠소이다.”

하오문도는 붉은색 종이를 전해준 뒤 영빈정을 떠났다.

“호정 사제, 그게 뭐야?”

당우희가 물었다.

“이건 인양이 그 물건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아아……!”

사형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됐어. 그럼, 우리에게 오는 거야?”

“지금쯤이면 아마 저쪽도 인양의 존재를 알았을지 모릅니다. 분명 그들은 여기로 인양이 올 것을 대비해 우리 주위에 매복을 시켜놓았을 게 틀림없고요.”

장두총의 눈이 커졌다.

“여기 오면 인양이 위험하잖아!”

“그래서 사전에 약속했습니다. 대신, 제가 인양을 데리러 가기로요.”

“……북해빙궁은?”

장두총의 물음처럼 북해빙궁의 일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고진유에게 더 중요한 건 인양과 철갑이었다.

고진유는 우종성과 묵경을 보았다.

“제가 잠시 자리를 비우더라도 호진 사형과 묵경 형이 이끌어서 간다면 충분히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

“넌…… 그들을 혼자 상대할 생각은 아니겠지?”

“저를 잘 아시지 않습니까. 아무도 몰래 움직일 겁니다.”

“우리 일행에 네가 빠졌다는 것을 알면 우리를 지켜보는 놈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일행을 주시하는 많은 시선들.

묵경의 말대로 고진유가 보이지 않다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틀림없었다.

“묵경 형, 이번에도 부탁할게요.”

“몰래 움직인다는 말이 그것이었군. 알겠다.”

“설 공자와 설 소저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

우종성은 아무래도 그들이 마음에 걸렸다.

“제가 그들을 만나서 설명하겠습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 우종성과 묵경에게 전음을 보냈다.

[그리고 이건 아직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러고 두 사람에게 설강을 지옥혈림에 의뢰한 인물이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이걸 아는 사람은?]

[설미 소저에게만 알려줬습니다.]

[알겠다.]

고진유는 곧장 설강과 설미의 방으로 찾아갔다.

“안으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오시지요.”

설강과 설미는 하북팽가에서 큰일이 발생한 건 알았지만 정확한 내용은 알지 못했다.

“하북팽가의 일은 잘 끝났습니까?”

“네, 다급한 일은 정리가 된 것 같습니다. 일행은 내일 북해빙궁으로 출발하면 됩니다.”

“잘됐습니다.”

“북해빙궁으로 가는 일에 대해 두 분께 드릴 말이 있소이다.”

설강과 설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자신들에게 보고하지 않고 내일 떠나면 될 일이었다.

근데 찾아와서 할 말이 있다는 건 문제가 생긴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인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동생이 있습니다.”

“인양이라고 하던 동생분이신가 보군요. 잠시 멀리 나가 있다고 하시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오늘 그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잘됐네요.”

“그래서 하는 말인데, 제가 잠시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습니다. 위급한 일이 일어나기 전에 동생을 만나야 합니다.”

“…….”

두 사람의 표정이 굳어졌다.

“저 혼자만 가는 것입니다. 북해빙궁으로 가는 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호진 사형과 묵경 형이 충분히 두 분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사형들의 무공 또한 강하니까요.”

“동생분에게 다급히 가신다고 하는 것을 봐서는 매우 중요한 일이신가 보네요.”

“어쩌면 목숨이 달린 일이기에 제가 가야 합니다.”

“목숨이 위험하다면 당연히 가는 게 맞겠지요…….”

설강도 할 수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화산도협의 존재가 주는 무게감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럼, 더는 뵐 수 없는 것입니까?”

“동생을 만난 뒤 일행 뒤를 따라가겠습니다. 저에게는 모두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설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의 동생을 만난 뒤 북해빙궁으로 찾아오겠다고 했다.

“대협께서 꼭 동생분을 찾으신 후 북해빙궁으로 오셨으면 해요.”

“그리고…… 누군가 제 얼굴로 변용을 할 것입니다. 혹시나 놀라지 마세요.”

“네, 알겠어요.”

화산파 일행은 날이 밝는 대로 하북팽가를 떠났다.

일행을 주시하는 많은 시선들은 중간에서 움직이는 고진유에게 집중되었다.

‘역시 묵경 형의 솜씨는 좋아. 여기서 보니 전혀 모르겠는걸.’

고진유는 숨은 채로 하북팽가를 떠나는 일행을 지켜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최대한 빨리 인양을 만나야 한다.’

철갑을 찾는 즉시 화산파로 움직여 약속된 장소에서 만나기로 정했다.

‘아무 일 없어야 할 텐데…….’

* * *

“하하하하!!”

나하중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인양의 행방을 좇던 공각원주 무신해의 전서가 도착했다.

“드디어 찾았군.”

어제 날아온 전서는 대목장 이춘광이 불에 타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후후후. 난리가 났군.”

그리고 바로 전에 들어온 전서에는 이춘광의 죽음을 알아보는 사내들이 있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이춘광이 죽은 그날 이후부터 함께 일했던 목수 두 명이 동시에 사라졌다는 내용까지.

나하중은 어떠한 상황인지 단번에 알아챘다.

“사라진 두 명이 철갑을 훔쳐서 달아났고…….”

이춘광을 죽이고 달아난 두 명 중 한 명이 사천으로 가는 마을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고 했다.

‘어리석은 놈들. 욕심이 과하면 결국에는 죽음밖에 없지.’

그들은 탐욕으로 목숨을 잃었다.

철갑을 가장 먼저 훔쳤던 대목장이 죽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 대목장을 죽였던 둘 중 한 명도 처참하게 죽었다.

무신해는 이제 남은 마지막 한 명을 쫓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게 되겠군.’

나하중은 철갑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느꼈다.

‘클클클…… 화산도협. 네놈이 잔머리를 굴렸지만 본좌에게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결국 철갑은 주인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지.’

나하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어린놈의 정체를 파악한 이상 잠시나마 숨어 다닐 수 있지만 중원에서 영원히 도망칠 수 없지.”

그는 고개를 숙인 수곡자를 보며 명을 내렸다.

“지금 당장 그에게 머뭇거리지 말고 물건을 최대한 빠르게 확보하도록 명을 내려라.”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수곡자는 빠르게 천문전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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