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22화 (122/425)

122화

저녁이 깊었다.

인양은 파숙과 함께 지붕 위로 올라간 뒤 몸을 숨겼다.

밤하늘에 떠 있던 수많은 별.

밝게 빛나는 그대로 떨어질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야밤에 누워 있는 것도 오랜만이네.’

양산에서 그분을 만나기 전까지는 야숙을 자주 할 수밖에 없었다.

집도 없이 같은 처지에 있던 녀석들과 땅바닥에 누워서 눈을 붙이면 그곳이 방이었고 집이었다.

연주상단에 소개장을 들고 갔던 네 명의 동료들.

‘잘하고 있을지 모르겠네. 언젠가 만나보고 싶어.’

그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꿈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삼경이 시작될 때쯤.

어둠 속에서 움직이는 기척이 들렸다.

‘왔다.’

인양과 파숙은 숨을 죽이며 검은 그림자들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덩치 큰 십여 명의 사내들.

그들이 누구인지는 몸에 걸친 옷만으로 확인 가능했다.

[산적들이군.]

[녹림은 아니겠죠?]

[저런 덜떨어진 놈들은 녹림에서도 안 받아줘.]

[어떻게 하는지 보죠.]

산적들이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산적들의 인원은 정확히 열한 명.

그들 뒤로 허리를 숙인 그림자가 보였다.

[앗, 저기 보세요. 그 노인이네요.]

[후후후. 역시 생각대로 이놈들과 한패군.]

끼이익-

귀에 거슬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

살금살금 걸어오는 모습.

밤잠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충분히 깨어나고도 남을 만한 소리였다.

[저런 멍청한 산적 놈들.]

[어휴…… 저러고도 안 깰 거라고 확신하는 건가.]

자신감이 붙었는지 발뒤꿈치를 들며 대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두목 판두웅은 방을 가리키며 먼저 움직였다.

수하들도 뒤를 따라 보폭을 줄인 채 걸었다.

그들 나름대로 소리를 죽였다고 했지만 여전히 발소리를 지울 수 없었다.

판두웅은 방문 손잡이 잡고 문을 단숨에 뛰어 들어갈 준비를 했다.

“안에 들어가도 사람이 없을 텐데. 어쩌나?”

‘헉!’

등골이 쭈뼛거렸다.

그들 뒤에서 들린 사람 목소리.

지붕에서 내려온 인양은 곧바로 노인의 혈을 눌러 점혈했다.

“파숙 형, 일단 이놈들을 때려잡고 봐야겠죠?”

“그게 편하지.”

“알겠어요. 그럼…… 오랜만에 몸 좀 풀어볼까요?”

인양은 앞으로 서너 걸음 나섰다.

“이 새끼 봐라. 어린놈이 귀엽게 구는구만?”

판두웅은 팔자걸음으로 마루에서 당당하게 내려왔다.

“좋게 말할 때 가지고 있는 돈을 모두 꺼내라. 목이 잘리기 전에.”

“그도 목을 잘라서 죽인 모양이죠?”

“크크큭…… 어린놈이 제법이야. 똑똑한데?”

쉬이이익-!

충분히 거리를 좁혔다고 확신했는지 손에 들었던 대도를 휘둘렀다.

“크크크크으! 어?”

분명 도가 목을 지나쳤다.

한데 여전히 목이 붙은 채 그 자리에 계속 서 있었다.

“목이 잘렸을 텐데…… 뭐지……? 조금 짧았나……?”

쉭쉭쉭-!!

이번에는 대도를 세 번 연속으로 휘둘렀다.

정확히 목과 가슴, 그리고 허리.

“허어어억……!! 귀, 귀신이다!!”

대도가 몸을 통과하는 것처럼 보였다.

“귀신은 무슨.”

짜아아악!!

뭔가 휙 지나가더니 찰진 소리가 울렸다.

판두웅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덩치가 팽이처럼 핑 소리를 내며 돌았다.

“아악……!!”

바닥에 주저앉으면서 비명을 지르자 입안에서 이빨 다섯 개가 부러진 채 쏟아져 내렸다.

“내…… 이…… 빠아알…….”

“몇 개 더 뽑아줄까요?”

“저…… 노…… 믈…… 주기…… 라!!”

판두웅은 허겁지겁 엉덩이를 뒤로 물리며 수하들에게 제대로 나오지 발음으로 명령을 내렸다.

퍽! 퍽! 퍽!! 퍽!!

하지만 수하들도 얻어터지기는 매한가지.

파숙은 마당 구석에서 작대기 하나를 들고 산적들 사이로 뛰어 들어가 내리치기 시작했다.

“이게 바로 진정한 개타작이라는 거다!!”

포쾌 출신이 그가 무림맹 허창지부에 들어갈 정도면 제법 무공이 뛰어나다는 것.

게다가 고진유에게 특사로 차출된 후 간간이 가르침도 받았다.

다른 일행의 무공이 너무 뛰어나 파숙의 무공이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인 것이지, 산적들의 눈에 파숙이 든 나무 작대기는 개방전설의 황금타구곤보다 강했다.

“……!!!”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 얻어터지는 수하들을 보며 판두웅은 찍소리조차 내지 못하고 이가 사라진 입을 떡 벌렸다.

“아아아악!!”

“아악!!”

야밤을 깨운 산적들의 비명 소리는 목청이 터지도록 촌락 전체에 퍼져 나갔다.

* * *

날이 밝았다.

“아아아아우우우웅.”

인양은 기지개를 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늦게 잠이 들었지만, 오히려 몸이 개운했다.

옆에 파숙도 일어난 뒤 목을 좌우로 풀었다.

“오랜만에 과격하게 움직였는데도 가벼운데?”

“그러게요.”

인양은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마당에는 굴비처럼 엮어 있는 산적 무리들이 바닥에 앉아 있었다.

모두 제대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퉁퉁 부어 있었다.

파숙은 마루 끝에 세워 놓은 막대기를 잡았다.

“어…… 어……!!”

판두웅은 반사적으로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새어 나왔다.

“거기 영감, 일어났소?”

“……예, 대협…… 일어났습니다…….”

“내가 예전에 포쾌 생활을 좀 했소이다.”

“…….”

“그게 무슨 뜻이냐면, 두 번 물어보는 걸 싫어한다는 게요. 이해가 됐소?”

“네…… 에…… 알겠습니다요.”

“좋소. 우린 그놈만 잡으면 될 뿐이오. 다른 건 필요 없소.”

꿀꺽.

노인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이들이 찾는 인물은 이미 산속에 묻혀 있었다.

“그는 어디에 있소?”

“…….”

“이거 참. 분명 조금 전에 미리 말해주지 않았소?”

파숙은 자리에서 일어나 막대기를 들고 앞으로 걸었다.

퍽! 퍽! 퍽!

“아아악!!!”

비명은 노인이 아닌 산적 판두웅이 질렀다.

“늙은 사람을 때릴 수는 없고. 똑바로 못하면 대신 이놈이 계속 맞을 게요.”

판두웅은 깜짝 놀라 손을 들었다.

“저버…… 제…… 카…….”

“두목, 당신은 빠져. 말도 똑바로 못하면서.”

터진 입에 피를 흘리면서 죽일 듯 이 노려보는 판두웅의 시선과 노인의 눈이 마주쳤다.

“다시 묻겠소. 그는?”

“저, 저…… 자가…… 죽였습니다.”

노인은 고개를 돌린 채 손가락으로 판두웅을 가리켰다.

휙휙휙!!

판두웅은 손을 빠르게 내저었다.

“아니…… 미…… 다!! 저…… 여…… 가태니…… 가!!!”

“허어, 시끄럽게 하면 죽을 때까지 말을 못하게 만들어준다?”

파숙의 협박에 그는 얼른 고개를 숙였다.

“시체는 어떻게 했지?”

“저자가 산에…… 끌고 가서 묻었습니다.”

“망할 놈…… 결국 제 놈도 그렇게 될 것을.”

인과응보다.

포쾌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진리는 죄를 지으면 결국 본인에게 돌아오게 마련이라는 것.

없어도 그냥 죄를 짓지 않고 사는 게 가장 편하다는 것을 사람들은 알면서도 잊고 지냈다.

“그놈을 어디에 묻었지?”

“그건…… 저자가…….”

“그렇군. 그와 관련된 물건들은 누가 챙겼지?”

“그것도…….”

“영감은 됐소.”

파숙은 산적들 앞으로 다가섰다.

“일어나.”

“…….”

“어허. 못 알아들은 모양이지? 맞고 시작할까?”

“아…… 니…… 니다.”

* * *

한 시진 뒤.

땅에 묻었던 시신과 그에게서 빼앗은 목상자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이게 전부야?”

“그러…… 스…… 으미다.”

파숙과 인양은 마주 보았다.

두 사람이 찾던 철갑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몸에 지니고 있었을 게 확실한데 없다는 것은 한 가지 이유밖에 없다.

‘자신들이 죽였던 대목장처럼 미리 대비를 한 거야. 혹시 모를 일에 철갑을 뺏기지 않도록 다른 곳에 숨겨놓은 게 틀림없어.’

물건을 숨길 때는 가까운 곳에 숨겨 놓는 경우가 많다.

항상 볼 수 있는 장소.

‘그렇다면…….’

물건은 분명 집 안에 숨겨놓은 게 틀림없었다.

“영감, 저놈 신패를 꺼내.”

“네에…… 아…… 예에.”

노인은 추당의 시신에서 신패를 찾았다.

“우린 이것만 있으면 되니 돈은 필요 없어. 치료비로 알아서 해.”

“고…… 마…… 슴…….”

“힘들게 말하지 마. 우린 간다.”

산적 판두웅은 두 사람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살았어. 야차 같은 놈에게서 살아났다……!!’

* * *

하북팽가 창주지부는 난리가 났다.

정문에 들어선 화산파 일행.

최근 무림에서 가장 뜨거운 소문의 주인공들이 창주지부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떻게 하지?’

두철희는 일단 일행을 안으로 맞이했지만, 그다음은 머릿속이 텅 빈 듯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근데…… 왜 빨리 나오시지 않지?’

내원에 연락을 보낸 지 반각.

팽병진을 떠올리자 두철희의 이마에 짙은 주름이 생겼다. 긴장감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심장이 두근거려졌다.

‘설마 사고 칠 생각은 아니겠지?’

옆에 선 수하에게 조용히 물었다.

“사공자께 연락했나?”

“지금쯤이면 전언을 들었을 텐데…….”

“하아. 알겠다.”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다면 나올 생각이 없다는 것이다.

‘머저리 같은 놈 때문에…….’

능력이라도 있다면 그나마 덜 욕을 먹을 텐데.

짧게 인사를 나눴을 뿐인데도, 화산도협 고진유의 모습과 너무나 차이가 났다.

‘천외천의 인물이라는 말이 뭔 줄 이제 알겠다.’

후다다닥!!

그때, 내원으로 들어갔던 수하가 빠르게 달려 나왔다.

울상을 짓는 표정과 축 처진 어깨만 보더라도 무슨 말이 오고 갔는지 예상되었다.

“부장님.”

“사공자께서 뭐라고 하시던가?”

수하는 슬쩍 화산파 일행의 눈치를 살폈다.

“저어, 그게…… 겨우 화산파 삼대 제자가 온 것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면서…… 만나고 싶으면 직접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삼대제자가 아니라 무림맹의 화산대사라고 말씀을 드렸나?”

“그건……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

하나같이 멍청한 놈들밖에 없다.

잘들 돌아간다.

세상모르고 지내는 놈이나 생각 없이 들은 말만 전하는 놈이나 같았다.

두철희는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제가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가 말한 게 맞소이다. 우리가 대접받고자 온 것도 아니지 않소. 볼일이 있어 온 것이니 객이 주인께 인사하는 것이 맞소이다. 본도만 그에게 볼일이 있으니 안내하시지요.”

“알겠습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저벅.

‘아, 참.’

서너 걸음 걸었을 때 미처 묻지 못한 게 생각났다.

‘무슨 일로 왔는지 물어보지 않았어. 젠장…… 나도 똑같은 놈이군.’

내원으로 들어가면서 방문한 목적을 묻기에는 이미 늦은 듯했다.

두철희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 * *

의자에 앉은 채 인상을 쓴 사내.

팽병진의 시선은 내원으로 들어선 인물에게 꽂혀 있었다.

부장 두철희와 함께 들어온 사내.

‘저놈이 화산도협이란 녀석인가? 여기는 무슨 일 때문에 왔지?’

힐끗 봐도 잘난 놈은 맞았다.

잘난 놈들의 원조 격인 남궁세가를 개박살 내고 다니는 화산파의 삼대제자.

그때까지는 이 친구가 마음에 들었다. 만날 수 있다면 술이나 한 잔 사주고 싶을 정도로.

한데 점점 시간이 지나자 세가에서 그와 자신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화산도협은 겨우 약관의 나이에 중원 무림으로 위명을 떨치고 있거늘 네놈은 동네를 싸돌아 나다니면서 사고나 치고 있구나.”

그때부터 팽병진에게 화산도협은 남궁세가의 잘난 놈들과 매한가지 놈이 되었다.

‘하아…….’

두철희는 가슴을 졸였다.

바로 눈앞까지 다가왔는데도 사공자는 일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사공자님. 무림맹의 화산대사 고 대협이십니다.”

“그런가?”

팽병진은 고개를 비스듬히 치켜세우며 귀찮은 듯 대답했다.

‘흐음.’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그의 한마디 말과 행동에서 자신을 싫어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어떻게 반응할지 한번 건드려 볼까?’

“본도는 고진유라 하오. 그대가 하북팽가의 팽가사견이라 불리는 분이 맞소이까?”

“…….”

적막감이 밀려왔다.

꿀꺽.

두철희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미치겠네. 바로 터지겠어.’

팽병진의 얼굴색이 점점 붉어져 갔다.

“방금…… 뭐라고 했소?”

말하는 그에게서 빠드득 소리가 났다.

“본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것이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이다.”

“지금 나를 놀리는 것이오? 분명 나에게 말을 한 거 아니오?”

“누가 누구를 놀리는지 모르겠군. 본도가 무슨 말을 했다는 건지 말해보시오.”

“네놈이…… 나를 보며 팽가사……!”

팽병진은 제대로 끝까지 맺지 못하고 멈췄다.

“아하, 난 또 무슨 말을 했다고. 당신이 팽가사견이라고 본도가 물었소.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다면 말해주시오. 당장 바로잡겠소이다.”

“……!!!”

놀리는 게 분명했다.

네놈 정도는 언제든지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다.

‘건방진 놈……!’

한 번 더 건드리기만 한다면 폭발할 것 같은 일촉즉발의 상황.

분명 말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데…….

두철희의 몸이 앞으로 나서려다가 움찔거렸다.

‘이런 놈은 당해도 싸다.’

그는 결국 생각을 바꾸며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평소와는 달랐다.

팽병진은 화가 났지만 쉽게 덤비들지 못했다.

“……나를 놀리는 것을 보니 하북팽가를 무시하는 모양이군?”

바로 나서지 않고 대신 하북팽가라는 패를 꺼내 들었다.

네가 나를 건드리면 하북팽가를 건드리는 것이나 진배가 없다는 뜻.

“후후후, 하북팽가라…….”

고진유는 미소를 띠며 그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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