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13화 (113/425)

113화

‘이 녀석은 또 왜?’

남궁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등에 기다란 검을 묶은 채 나타난 인물.

조카들 중 가장 문제가 많은 녀석이었다.

할 일 없이 그의 거처에서 놀고먹는 게 하루의 일과였다.

남궁후진은 그의 눈빛을 읽었다.

‘나를 싫어하시는군. 하긴 숙부의 마음에 드는 짓을 하나도 한 게 없으니까!’

남궁후진이 미소를 띤 채 포권을 했다.

“숙부님을 뵙습니다.”

“후진, 네가 여기에 어쩐 일로 왔느냐?”

“아이고, 제가 늦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그는 능글맞게 인사를 한 후 이번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의 남궁무명을 향했다.

“이 고지식한 녀석. 넌 완전히 아버지를 빼닮았어. 어떻게 융통성이 하나도 없냐?”

“…….”

남궁파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쓸데없는 말을 할 것 같으면 빠져라.”

“자자, 두 분 잠깐만…….”

남궁후진은 허리춤에서 무엇인가를 찾는 듯 뒤적거리더니.

“여기 있군.”

청색의 패를 들어 남궁파와 남궁무명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특검신패라고 합니다.”

특검단이 눈앞에 나타났다.

어이없게도 남궁세가의 문제아라고 모두가 포기했던 남궁후진이 특검단주였다.

“하! 형님께서는 대체…….”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특검단의 등장에 남궁파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남궁천문이 자신들 모르게 얼마나 세가에 비밀을 만들었는지 궁금할 정도였다.

특검신패는 곧 태상주패(太上主牌).

특검단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을 가지고 있을 만큼 남궁세가에서 막중한 임무를 띤 비밀단이었다.

남궁세가가 멸하기 전까지 어떠한 조직도 특검단의 뜻을 거역하지 못한다고 할 만큼, 세가주에 의해 비밀리에 임명되고 운영되는 곳이었다.

“네가…… 태상주패령일 줄은 몰랐다. 그래서 일부러 천하태평으로 군 모양이군.”

“소질도 귀찮은 물건은 받기 싫었는데, 어느 날 던져주시더군요.”

“특검단주로서 나타난 이유가 있겠지?”

“숙부님께서는 세가에 복귀하시면 됩니다. 무명의 무공만 제외하고는 있는 그대로 비대위에 보고하십시오.”

“넌 알고 있었군.”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저 녀석을 잘 보살피라고. 남궁세가의 미래를 책임질 인물이라고 말입니다.”

“……돌아가도록 하마. 네가 특검단주라는 사실을 밝혀도 되겠느냐?”

“첫째 형님께는 당분간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조용히 계시면 좋겠다고 전해주십시오.”

남궁파는 싸우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명분이 생겨 마음이 놓였다.

“무명. 몸조심하게.”

“……!”

남궁파가 처음으로 남궁무명의 이름을 불렀다.

그건 자신의 조카로 완전히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살펴가십시오, 숙부님. 그리고 대연군을 죽인 범인을 찾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렇지 않아도 비밀리에 찾을 생각이다. 어떤 놈인지 밝혀내서 그들의 원수를 갚도록 하겠다.”

휘이익!

남궁파는 대연군과 함께 사라졌다.

갑자기 조용해진 장소에 남궁무명과 남궁후진만 남아 있었다.

“고맙다고 해야지? 내가 없었다면 끝장났을 거다.”

“……고맙다.”

“이거 엎드려 절 받기군.”

뽀옥!

남궁후진은 허리에 찬 호로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낡아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안에서 달콤한 주향이 올라왔다.

“아으, 급하게 달려왔더니 목말라 죽는 줄 알았다고.”

“…….”

입을 벌려 한 모금 마신 그가 남궁무명에게 호로병을 내밀었다.

스윽.

호로병을 받은 남궁무명이 고개를 들어 술을 마셨다.

“좋군.”

“그렇지? 몽혼향을 맡았으니 더 맛있었을 거다.”

“……!!!”

“그동안 힘들게 다녔을 텐데 잠시 잠이나 푹 자라.”

“미…… 친……!!”

남궁무명은 완전히 당했음을 알았다.

술을 입에 넣은 뒤 확인했지만,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근데 몽혼향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정신이 잃지 않으려 버텼지만, 수마를 이길 수가 없었다.

스르르-

그렇게 바닥에 쓰러지기 직전, 남궁후진이 그의 몸을 잡았다.

* * *

번쩍.

남궁무명의 눈이 떠졌다.

곧바로 몽혼향에 당해 수면에 빠졌다는 것이 생각났다.

“후진…… 이 망할 놈…….”

“어, 왜 불러?”

“……!”

남궁후진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렸다.

‘여기는…….’

남궁무명이 주위를 살피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객잔의 침실이 분명했다.

얼른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했지만, 다행히 전혀 문제가 보이지 않았다.

창천황검도 침상 옆에 놓여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그동안 피곤했을 것 같아서. 두 달 먼저 태어난 내가 형으로서 잠을 푹 재워줬지.”

“…….”

“그리고 후진 망할 놈이 아니고 후진 형님이라고 불러라.”

남궁무명은 그의 앞에 가 앉았다.

“왜 나를 재웠지?”

“내 동생을 살리려고. 내 동생이 혈사천에 혼자 가는 미친놈이더라고.”

“난…… 그를 이길 수 있다.”

“아니, 못 이겨. 창천황신공을 십이성 깨우치지 못하면 천살지인을 못 이겨.”

“후진, 네가 어떻게 알지?”

“천황검신께서도 천살지인과 두 번의 대결을 하셨다고 했지. 처음에는 십 성의 공력을 이룬 뒤 그와 싸워 비겼다고 했고, 그 후 완벽하게 십이 성의 공력을 이룬 뒤에야 비무에서 이겼어.”

처음 듣는 무림의 비사였다.

“내가 알기로 창천황신공을 십이 성 익히게 되면 손톱이 금색으로 변한다고 하던데. 넌 아직 멀었어.”

그의 말이 맞았다.

나머지 십이 성을 익히기 위해서는 폐관에 들어서야 가능했다.

하지만 호천수호대의 대주였기에 함부로 긴 시간을 비울 수 없었다.

“가자.”

“……어디를?”

“우리 아버지께서 창천황신공 십이 성을 대성할 때까지 너를 맡기셨거든?”

휘익!

남궁후진은 그에게 둥글게 말린 한 장의 서신을 던졌다.

“읽어봐.”

남궁무명은 붉은 실을 풀었다.

그리고 서신을 펼쳐 안에 적혀 있는 글을 읽었다.

‘아버지…….’

남궁천문의 글씨가 맞았다.

<아비인 나를 보듯 후진을 대하라.>

“알겠냐? 앞으로 나를 잘 모셔라.”

“…….”

히죽거리며 웃는 남궁후진을 보니 한 대 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 * *

고진유 일행은 소호객루를 떠나 북해빙궁으로 향했다.

그와 동시에 소호객루의 하늘 위로 전서구들이 날아올랐다.

검붉은색 말 위에 올라탄 고진유는 고개를 들어 사방으로 퍼져 나간 전서구들을 보았다.

‘많군.’

일행 모두 몸을 숨기지 않는 한 모든 행적들이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옆으로 묵경이 다가왔다.

“진유 아우, 이대로 가는 거야? 우리에 대한 주목도가 어마어마하던데.”

“하는 수 없죠. 조용히 가면 좋겠지만, 이왕 이렇게 된 이상 당당하게 올라가는 겁니다.”

“우리가 가고 있다는 건 북해빙궁에서도 알고 있을 텐데.”

“그렇겠죠.”

“어떻게 나올까?”

“조용할 겁니다.”

“조용?”

묵경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제만 해도 설강에게 단호한 결심을 하도록 강요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북해빙궁에서 움직이지 않을 거라니.

‘뭔가 있군.’

묵경은 앞서가는 마차 옆에서 함께 움직이는 설강의 뒤를 보았다.

“설 공자에게 왜 그랬어?”

“딱 한 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딱 한 순간이라…….”

고진유는 그들과 연관된 모든 상황을 고려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직은 말할 수 없고?”

“혹시나 내가 잘못 생각한 걸 수도 있으니까요. 미리 알고 있으면 모두 움직이는 데 불편할 것 같고.”

“그럼 됐다. 나중에 듣기로 하지.”

“고맙습니다.”

고진유의 예상처럼 북해빙궁으로 가는 여정은 평화로웠다.

중간중간 일행의 소문을 들은 무림인들이 찾아왔을 뿐, 싸울 일도 없었다.

어느덧 일행은 안휘성을 넘어 산동성으로 들어섰다.

두두두두두두두-

전방에서 나타난 수십 필의 기마들.

지평선 가득 누런 먼지들 하늘 위로 솟구쳤다.

말발굽 소리와 함께 기마 무리 위로 깃발이 펄럭거렸다.

“악성기(岳聖旗)군.”

선두에서 멈춘 장두총이 단번에 기마대의 표기를 알아보았다.

“산동악가에서 무슨 일이지?”

곽우가 옆으로 나오며 전방을 주시했다.

“내가 가서 확인하지.”

“그래.”

장두총은 뒤에 따르던 군성창을 향해 소리쳤다.

“특사들은 나를 따르게.”

“알겠습니다!”

장두총은 다섯 명의 특사들과 함께 산동악가의 기마대를 향해 달렸다.

선두에서 달리던 악천기마대주 악도가 그들을 보고 손을 올렸다.

“멈춰라!”

히이이힝!

거친 말 울음소리와 함께 기마대가 속도를 줄이며 멈춰 섰다.

검은빛 투구를 쓴 악도의 눈빛이 용맹스러웠다.

철컹.

그가 포권을 하자 철갑의에서 소리가 울렸다.

“본인은 산동악가 제자 악천기마대의 수장을 맡은 악도이외다.”

“화산파 제자 장두총이라 하오.”

“그대가 화산전협(華山電俠) 장두총이오?”

장두총의 입가가 씰룩였다.

“그렇소이다. 악 대협께서는 어쩐 일로 기마대를 이끌고 본 일행의 앞으로 오셨소이까?”

“본 가의 가주님께서 그대들을 귀빈으로 모시겠다는 말씀이 계셨소이다. 어려운 결정이겠지만 본인의 얼굴을 봐서 함께해 주시면 좋겠군요.”

산동악가의 초청을 전하기 위해 그가 왔다는 뜻이었다.

“무슨 말씀이신 알겠소이다. 잠시 기다려 주시오.”

장두총은 뒤를 돌아 군성창에게 명을 내렸다.

“화산대사께 방금 들은 대로 산동악가의 뜻을 전하게.”

“넵. 알겠습니다.”

군성창이 말고삐를 돌린 후 일행을 향해 달렸다.

후미에 있던 고진유는 묵경과 함께 이미 앞에 나와 있었다.

“싸우고자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군요.”

“그러게.”

장두총과 함께 나갔던 군성창이 돌아왔다.

“저들이 접근한 이유가 뭔가요?”

“산동악가에서 본 일행을 초청하겠다고 합니다.”

한시라도 빨리 북해빙궁으로 가야 하는 일정.

일행은 당연히 거절하리라 예상했다.

“호진 사형, 우리를 초청한다고 하니 한 번 산동악가에 가볼까요?”

“…….”

우종성은 고진유가 허튼소리를 하지 않음을 잘 알았다.

“우리 일행의 결정은 대사의 뜻을 따른다.”

고개를 끄덕인 고진유는 일행이 모두 들을 수 있도록 소리를 올렸다.

“가는 길이니 잠시 산동악가에 들르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군 특사는 호경 사형에게 제 말을 전하세요.”

“넵. 알겠습니다.”

군성창은 다시금 재빨리 말을 몰았다.

“저어…… 대협.”

고진유의 곁으로 설강이 다가왔다.

그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루빨리 북해빙궁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런 마당에 산동악가에 들르면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을 터.

“본 궁으로 빨리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설 공자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하루 늦는다고 해서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무림에 나온 김에 여러 곳과 인연을 만들면 분명 좋은 기회가 될 겁니다.”

“오라버니, 대협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너무 조급해지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이번 기회에 무림 명숙들과 인연을 맺는 것도 좋을 것 같구요.”

설미가 마차 밖에서 들려온 대화에 문을 열고 나왔다.

“대협, 저희들에게 많이 신경 쓰시는 줄 알고 있습니다.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설 소저께서 본도를 알아주시니 고맙소이다. 설 공자께도 말했지만, 정말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소녀는 대협을 믿습니다.”

그녀는 허리를 숙였다.

* * *

다각다각.

악도가 악천기마대를 이끌고 일행에게 다가왔다.

‘화산파의 제자라면…….’

그의 눈빛이 날카롭게 매화도의를 살폈다.

매화검인을 가리키는 세 개의 매화 문양.

“화산도협,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소이다. 악도라 하오.”

“악도 대협이시군요. 고진유라 합니다.”

두 사람은 마주 보며 포권을 했다.

고진유의 옆으로 많은 청년들의 모습이 보였다.

중원 무림을 진동시킨 인물들.

그들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얼굴, 전설의 미남자로 알려진 송옥이나 반악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을 듯한 사내가 보였다.

그 또한 십문세가였지만 묵경을 만난 것은 처음이었다.

‘이자가 풍류옥협 묵경인가 보군.’

지옥수대전 이후 묵경은 풍류미군에서 풍류옥협으로 별호가 바뀌었다.

“중원을 진동시킨 극월악진창의 명성을 많이 들었습니다. 만나뵙게 돼서 반갑소이다.”

“하하, 그대가 입에서 본인의 명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니 부끄럽군.”

악도는 웃음을 터뜨렸다.

“북해빙궁으로 가는 길에 괜히 귀찮은 일을 만든 것은 아닌가 싶소.”

“본 일행이 어디로 가는지 사전에 알고 계셨군요.”

악도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화산도협, 중원 무림에서 화산파 일행의 행보를 모를 사람은 없을 것이외다.”

예상은 사실로 밝혀졌다.

“본인이 앞장을 설 테니 뒤를 따라오면 될 것이오.”

“부탁하겠습니다.”

악도는 말고삐를 당겨 선두로 달렸다.

그의 뒤를 악천기마대가 빠르게 따라갔다.

“호경 사형, 우리도 달려볼까요? 앞장서시죠.”

“좋지!”

파아앗!

장두총이 먼저 말허리를 발로 가볍게 차며 악천기마대 뒤를 쫓았다.

그 뒤 일행이 차례대로 산동악가를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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