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10화 (110/425)

110화

콰아앙!

지옥수의 수장 북흑신왕 구종부의 노기가 폭발했다.

“흑선은 한 척만 남고 전부 폭발했고, 축여서는 놈들에게 잡혔다?”

수하의 보고를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화산도협, 이…… 놈이……!!!”

지옥수에 쳐들어온 인원은 이십 명도 되지 않았다고 했다.

“본 림을 얼마나 얕잡아 보기에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군! 전원 모두 집합시켜라!!”

“존명.”

둥! 둥! 둥! 둥! 둥!

흑나찰 간종고가 지옥수의 거탑에 올라가 비상 북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옥수 전역에 북소리가 울렸다.

감옥을 지키던 흑귀들까지 지옥수의 대광장으로 모여들었다.

북흑신왕 구종부의 뒤로 흑명군 나기허와 현구가 나란히 섰다.

두 명의 북흑명군은 무림에 출타 중이었다.

대광장으로 이백 명의 흑귀들과 이십 명의 흑나찰이 모여들었다.

* * *

노산도는 길쭉한 형태의 섬으로, 동서로 나뉜 지형의 중앙에는 양쪽 절벽 사이로 좁은 길이 생성되어 있었다.

그곳은 소벽(小壁)이라 불렀다.

이백 명의 흑귀들은 좁은 소벽을 통해 반대편 정박장까지 한꺼번에 몰려갈 수 없었다.

때문에 지옥수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소벽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선봉에 선 나기허와 현구가 빠르게 소벽을 향해 달렸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화산파 제자들이 먼저 도착한 상태였다.

“흥. 네놈들이 먼저 도착했다고 한들 지킬 수 있다고 보느냐?”

나기허는 양손에 단도를 들었다.

혈조검(血鳥劍)의 위명을 떨친 나기허의 무공.

그와 동시에 또 다른 흑명군 현구의 손에는 크기가 사람 머리만 한 부호만월(斧號滿月)이 치켜들려 있었다.

“와아아아아아아!!”

일백 명의 흑귀들이 괴성을 지르며 소벽으로 내달렸다.

곽우와 혁자영이 먼저 나섰다.

“내가 저자를 맡을게.”

곽우가 앞서 나오는 나기허를 향해 먼저 움직였다.

“어린놈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군!”

검도 없이 다가오는 곽우를 향해 그는 혈조검으로 마치 거대한 매가 날카로운 부리를 찍어내듯 휘둘렀다.

휘리릭!

곽우는 바람에 흩날리는 갈대처럼 그의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미꾸라지 같은 녀석이!”

좌우로 움직이며 혈조삼침(血鳥三針)의 초식이 쏟아졌다.

하지만 미리 공격 방향을 알고 있기나 한 듯 곽우는 피하기만 했다.

“이 자식이! 피하지만 말고 공격을 해라!!”

계속해서 도망만 다니는 곽우를 보면서 짜증이 솟구쳤다.

우우우우-

나기허는 단검을 돌려 잡은 뒤 혈조추격(血鳥追擊)의 초식을 펼쳤다.

그의 양손은 거대한 혈조의 날카로운 손톱처럼 곽우가 좌우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막아내며 달려들었다.

그때,

파아앗!

곽우의 신형이 순간 가속도를 붙이면서 나기허의 예상과 다르게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허억!’

곽우의 손바닥에 푸른빛의 원이 만들어졌다.

매화청심장(梅花靑深掌)의 푸른빛이 만들어낸 장강(掌罡)이 나기허의 가슴에 쏟아졌다.

콰아아아앙!!

한 번이면 족했다.

“목숨은 거두지 않았습니다.”

나기허는 입에 거품을 물고 정신을 잃었다.

마지막에 곽우가 이 할의 내력을 거두지 않았다면 청장강에 의해 심장이 터졌을 것이다.

흑귀들은 한 수의 장법에 쓰러진 흑명군 나기허를 보며 두려움에 떨었다.

타아앗!

그와 동시에 혁자영과 상대했던 현구 또한 부호만월을 잡고 휘두르던 손이 잘렸다.

‘공간에 검강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있다…….’

극성에 이른 매화절검의 잔영에 잘려 나간 것이다.

현구는 인상이 구겨진 채 건너편에 쓰러진 나기허를 보았다.

‘나는 지옥혈림의 흑명군이다…… 한데…… 화산칠협의 무공이 이 정도였나?’

현구의 신형은 점점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두 명의 흑명군이 밀리는 동안 다른 일행은 일백 명의 흑귀들을 상대로 일자진으로 펼쳤다.

네 명의 화산파 제자와 묵경, 다섯 명의 특사, 녹림야검과 반의중, 마지막으로 냉풍.

흑귀들은 점점 뒤로 후퇴했다.

‘직접 보고도 믿기지가 않는군.’

두 명의 흑명군이 당한 장면을 목격한 북흑신왕 구종부는 당황스러웠다.

‘나기허와 현구가 당했다.’

이십 명도 되지 않은 인원으로 지옥수에 쳐들어왔을 때는 미쳤다고 여겼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지옥수를 이길 수 있는 실력이 되고도 남았다.

‘근데…… 왜 하필이면 우리야. 지옥도에 가면 되잖아!’

화산도협과 지옥혈림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런데도 굳이 그가 지옥수를 택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결국 구종부가 중앙에 내려섰다.

“본인은 이곳을 맡은 구종부라 하네. 그대들의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고진유는 상황을 지켜보았다.

북흑신왕이 먼저 나왔다.

“이제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나왔군요. 가서 만나보고 오겠어요.”

고진유는 소벽에서 나선 뒤 구종부 앞으로 걸었다.

“본도는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하오.”

“본 림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을 설마 지옥수에서 마주 보게 될 줄은…….”

“아마 다른 곳에서도 보게 될 것이외다.”

“그대들의 무력이…… 지옥수의 본진을 능가할 줄은 몰랐소.”

“과찬의 말씀이시오. 하나 능가할지 안 할지는 붙어봐야 하지 않겠소이까?”

“…….”

고진유의 눈가에 머문 미소.

‘설마…… 패소(覇笑)?’

명문정파의 화산파 제자에게서 패성의 기가 느껴졌다.

“그대와 본 림이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하나 이렇게 쳐들어올 정도의 명분은 아니지 않소이까?”

“명분이라…… 사부님의 원수인 지옥혈림과 본도는 철천지원수니 명분은 이미 충분한 것 같소만.”

“…….”

“다만 약조가 있으니 자제하고 있는 중이오.”

“그렇다면 왜…… 본 림에 방문하셨소?”

“지옥수에 온 이유가 무엇이겠소? 친한 이를 이곳의 흑귀들이 잡아갔다고 하기에 모시러 왔지요.”

“……!!”

구종부는 순간 그가 찾으러 온 인물이 누구인지 눈치챘다.

‘젠장…… 탈이 날 줄 알았다.’

상부의 명을 어기면서까지 그들의 의뢰를 받았다.

북해빙궁 최고의 영약, 빙정(氷精)에 대한 탐욕에 순간 눈이 멀었다.

“어떻게 하시겠소?”

고진유의 물음에 어떻게 답을 해야 할지 구종부는 망설였다.

‘그를 내어준다면 지옥수가 생긴 이래 최대의 망신이 틀림없다. 하지만…… 화산도협과 붙을 수는…….’

슬쩍 본 고진유는 눈빛은 싸우기를 원하는 듯 보였다.

“지금까지는 지옥혈림과 약속 때문에 최대한 죽이지 않았소. 하나 그대가 그를 내어놓지 않는다면 얘기가 다르지. 본도의 친인을 잡아갔으니. 그때는 어느 누구도 목숨을 장담하지 못할 것이외다.”

고진유의 목소리에 날카로운 단호함이 쏟아져 나왔다.

완벽한 협박이 틀림없었다.

‘어린놈에게 협박을 당하다니…… 그래도…… 이놈과 싸울 수는…….’

고진유의 패도적인 눈빛이 점점 강해졌다.

결국 구종부는 꼬리를 내렸다.

“화산도협, 그를 내어주겠소. 하지만 이곳의 수장인 본인의 체면도 있지 않소?”

“어떻게 하자는 것이오?”

“그대에게 비무를 신청하는 바이오. 만일 그대가 이기면 그를 풀어주겠소. 반대로 본인이 이긴다면 지옥수에서 물러나시오.”

북흑신왕은 마지막 체면을 살리기 위해 비무 신청을 했다.

“좋소. 우선 비무를 하기 전에 그를 데리고 오시오. 그의 생사를 먼저 확인해야겠소”

“아, 알겠소이다.”

구종부는 얼른 그를 데리고 오도록 명령을 내렸다.

* * *

후다다다닥!

‘발소리?’

설강은 지하감옥으로 빠르게 달려오는 발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지하감옥이 흔들릴 정도로 큰 폭발음이었다. 분명 밖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

철컥.

순간, 감옥 문을 여는 소리와 함께 들어온 흑귀가 설강의 손과 발에 채운 족쇄를 얼른 풀었다.

“어서 나오십시오.”

‘존댓말?’

흑귀의 태도가 최대한 공손하게 보였다.

설강은 창살 밖으로 나왔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그는 일단 말없이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지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천천히 내디뎠다.

잠시 눈이 부셨다.

“하아…….”

오랜만에 깨끗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이쪽으로…….”

설강은 다급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확실히 자신과 연관된 일이 생겼음을 알았다.

‘여기까지 본 궁에서 올 리가 없을 텐데…….’

흑귀를 따라 한참을 걸었다.

‘이게 무슨…….’

눈앞에 지옥수의 전 흑귀들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흑귀들의 건너편에 대치하고 있는 인물들이 보였다.

‘냉풍!’

흑귀로 변복을 한 인물.

백발의 냉풍이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설미도……!’

설강이 앞으로 나서자 흑귀들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때, 건너편에서 낯익은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라버니!”

설미의 목소리가 확실했다.

주륵.

설강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구종부가 소리쳤다.

“확인했소이까?”

“확인했소. 그럼 시작해 볼까요?”

고진유와 구종부는 마주 보며 앞으로 나섰다.

* * *

두 사람은 삼 장의 거리에 두고 멈췄다.

고진유와 구종부는 서로의 애검을 잡았다.

우우우웅-

먼저 구종부가 내력을 일으키며 천혈마검에 내기를 흘려보냈다.

점점 핏빛으로 물들어가는 천혈마검에 사기가 진하게 진동했다.

‘훗.’

고진유는 곧바로 미소를 지었다.

휘리리릭!

압박하는 사기를 향해 손을 한 번 옆으로 내저었다.

손끝의 움직임에 따라 매화 향이 부드럽게 휘몰아쳤다.

사기가 뒤로 밀려나면서 구종부의 머리카락과 상의 옷자락이 흔들거렸다.

‘이렇게 쉽게 밀어내는군.’

한번 피어오른 매화향은 점점 짙어졌다.

고진유의 내력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내력으론 안 되겠어.’

구종부가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무림 후배와 비무 시 선수를 펼친다는 것은 부끄러웠다.

고수의 대결에서 화려한 초식은 내력의 소모만 있을 뿐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간단하면서도 위력적인 천혈마검의 움직임으로 상대해야 했다.

북흑신왕에 올라서기까지 그 또한 수많은 상대와 싸워 이겼다.

결코 그의 무공은 가볍게 생각할 수 없었다.

슈우욱.

천혈마검을 앞으로 내밀었다.

북흑신왕의 무공 역시 탈형의 초입에 들어선 무력.

고진유의 가슴을 뚫고 등 뒤로 검이 나온 듯했다.

샤르르르.

새벽안개처럼 신형이 흐릿하게 변하면서 사라졌다.

탈각신의 신법은 이미 정점에 올라선 듯했다.

‘기습할 모양이군.’

구종부는 내력을 올려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갑자기 나타날 경우를 대비했다.

그의 예상이 빗나갔다.

고진유의 신형은 처음 있던 위치에서 좌측에서 나타났다.

파앗!

구종부는 허리를 빠르게 돌리면서 천혈마검을 휘둘렀다.

채애애앵!!

고진유는 사의검으로 내려 간단하게 막아내며 내력으로 그를 밀어냈다.

가볍게 밀어낸 동작이지만 그 안에 매화광풍의 초식이 쏟아졌다.

쏴아아아아-

매화 잎이 검로를 따라 쏟아지면서 구종부의 눈앞을 가렸다.

‘뒤로!’

구종부는 신법을 펼치며 물러났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졌던 매화 잎이 사라지지 않았다.

휙휙휙휙!

매화잎을 없애기 위해 천혈마도를 휘둘렀다.

‘헉…… 가슴이다.’

구종부는 허공에서 손이 멈추며 가슴에 다가오는 차가운 검기를 밀어내야 했다.

쿠우우웅!!

내력에 무리가 갔지만 폭음공을 펼치며 매화검기를 중간에서 터뜨렸다.

‘우우욱.’

급작스러운 내공의 폭발로 그의 내부가 충격을 받았다.

입가에 선혈이 흘러내렸다.

이미 승패는 정해졌다.

하지만 상대는 그럴 마음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만영신을 펼치며 수십 개의 환영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언제부터인가 호충신법 또한 심의신행(心意身行)의 단계로 올라서 있었다.

호충신법도 화산파의 무공이라 착각했다.

‘화산의 무공이 이렇게 강했단 말인가?’

고진유의 환영이 만들어낸 각자의 검광은 태양이 눈앞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번쩍!

머릿속에서 빛이 폭발하는 듯했다.

구종부는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멍한 정신 속에서 어지럽게 백색 세상이 돌아가고 있었다.

흔들흔들.

누군가 몸을 흔들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눈을 뜨며 앞에 보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끄으응.’

정신을 잃은 모양이었다.

수하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왕님…… 수왕님…….”

구종부는 손을 들었다.

“조용히 해라. 일어났다.”

지옥수에 있는 모든 수하들이 보았을 것이다.

‘망할…… 완전히 망신살이 뻗었어. 앞으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겠군.’

“계속 누워 있을 거요?”

머리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알겠소. 일어날 것이오.”

구종부는 몸을 일으켰다.

‘내력에는 이상이 없군.’

먼저 단전을 확인했다.

두 팔과 두 다리는 붙어 있었다.

어느 하나라도 사라진다고 해도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우린 그만 돌아가겠소.”

설강은 이미 건너편에 있었다.

“아 참, 그리고 배는 미안하게 됐소이다. 타고 나가서 내려놓을 테니 알아서 가지고 가시오.”

구종부는 갑자기 화가 났다.

한 번 잘못 받은 의뢰에 지옥수가 박살이 났다.

이렇게 만든 그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화산도협. 그를 납치하도록 시킨 사람이 궁금하지 않소?”

“별로.”

고진유는 북해빙궁의 일에 관심이 없었다.

“…….”

말을 꺼낸 구종부가 민망해졌다.

“원래 의뢰를 청부한 사람 신원에 대해서는 비밀로 지키는 게 아니오?”

그의 말이 맞았다.

목숨을 잃어도 비밀은 지켜야 하는 일이었다.

지옥혈림이 지금까지 대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철저한 신분에 대한 비밀 보장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돌아가겠소.”

구종부는 소벽을 넘어가는 화산파의 일행을 멍하니 보았다.

그때였다.

귓가에 고진유의 전음이 들렸다.

[그가 누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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