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06화 (106/425)

106화

중원 무림의 수백만 야사꾼들.

그들의 눈은 세상에 닿지 않는 곳이 없고, 그들의 한마디 소문은 하루에 만 리를 날았다.

그런 그들의 입에서 화산칠협의 전설이 옮겨지기 시작했다.

화산파에서 고진유와 함께 내려온 여섯 명의 사형제들.

중원 무림인들은 화산도협을 제외한 여섯 명의 화산파 삼대제자들에 대해서는 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들의 중심에는 항상 고진유가 있었기에 여섯 명의 존재는 미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녹림대군 소소경.

녹림의 이인자로 알려진 초고수의 무인.

녹림에서 그와 직접 싸워 이길 수 있는 무인은 녹림대존 외에는 없었다.

그런 초고수의 무인이 고진유와 싸운 뒤 패했다.

뒤이어 화산칠협의 호경 장두총과 싸워 동수를 이루었다.

아무리 그가 방심했다고 해도 장두총에 펼친 한 수에 밀려났다.

야사꾼들의 입에서 뇌전화검의 위력은 하북팽가의 벽력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는 찬사가 흘러나왔다.

이후 중원인들은 화산파 삼대제자 호경 장두총을 화산전협(華山電俠)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호경 도사님, 고맙습니다.”

녹림야검은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황금 오백 냥쯤 별거 아니라는 듯 던져주는 장면이 뇌리에 깊이 각인됐다.

“됐소. 당신을 보내주면 나머지 황금 오백 냥을 못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니까.”

장두총은 한꺼번에 황금 천 냥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녹림야검을 풀어줄 수 없다고 통보했다.

고진유도 그에 대해 딱히 말을 얹지 않았다.

“저어…… 녹림에서 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녹림에서 황금 천 냥을 줄 리 만무했다.

더구나 녹림대군 소소경이 쫓겨가듯 사라졌다.

고진유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밑에서 황금 천 냥의 일을 해서 갚은 뒤, 가고 싶을 때 어디든지 가시오.”

“황금 천 냥의 일…….”

죽을 때까지 일해도 갚을 수 없을 금액에 녹림야검의 입이 벌어졌다.

“뭐, 걱정하지 마시오. 열심히 일하면 갚을 수 있을 테니. 혹시 돈값을 치를 만한 일이 생길지도 모르잖소?”

“네…… 알겠습니다, 도협.”

고개를 숙인 녹림야검의 얼굴이 밝아졌다.

* * *

곽우는 한참 동안 지도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호정, 우리 속도로 봐서 회남으로 가기엔 늦은 것 같다.”

“음. 바로 합비로 간다면 잡을 수 있을까요?”

“며칠 동안 쉬지 않고 간다면 모를까…….”

빠르게 움직이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지만 그 이상은 무리였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듯 휴식을 취해야 했다.

“알겠어요. 합비로 할 수 있는 한 빨리 가보도록 하죠.”

일행은 유동관의 별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안휘성에서도 화산칠협의 명성은 예전과 달라졌다.

그 덕분에 객잔에서도 일반 무인과는 대우가 달랐다.

“좋아, 좋아. 어때? 나하고 같이 한잔 마실 사람?”

장두총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하나둘씩 따라 일어나기 시작했다.

녹림야검도 그들 속에 함께했다.

설미와 함께 있던 냉풍도 슬쩍 입맛을 다시는 듯했다.

스윽. 슥.

고진유가 그에게 수화를 했다.

-같이 다녀오시오.

-아가씨를 지켜야 하오.

-그대가 올 때까지 내가 옆에 있겠소.

화산도협 고진유가 곁에 있다면 안심이 되었다.

“설 소저. 냉 호위도 사형들과 같이 한잔해도 괜찮겠소이까?”

설미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슥슥슥.

냉풍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잘 부탁하겠소이다.

“자! 한잔들 하러 갑시다.”

장두총이 앞장서서 별관을 나섰다.

우르르르-

그러자 파도가 바다로 쓸려 나가듯 한순간 별관이 조용해졌다.

“설 소저, 우린 차 한잔하시겠소?”

“네, 좋아요.”

별관을 담당하는 여비에게 차를 준비시켰다.

별관에 들어선 설미가 곧줄 쓰고 있던 면사를 벗었다.

‘흐음, 확실히…….’

고진유도 중원 사내들이 오미화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듯했다.

가늘고 짙은 눈썹 아래 맑은 눈은 차갑게 보였지만, 눈빛만은 따뜻했다.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소?”

“무엇인가요?”

“대답하기 싫으면 안 해도 좋소. 그대의 남매가 중원으로 몰래 나온 이유가 무엇이오?”

“…….”

설미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들을 위해 지옥혈림과 싸울 각오까지 한 화산파의 제자들이었다.

“……무례할지 모르지만, 당분간 혼자만 알고 계실 수 있으신가요?”

“우리 사형제에게는 비밀이 없소이다. 어떤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일행에게 밝히기 싫다면 말을 하지 않아도 좋소.”

“…….”

“이유를 모른다고 해서 그를 구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오. 맡은 이상, 최선을 다해 구해낼 거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군가 돌이킬 수 없이 다치거나, 다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빠진다면 곧바로 물러날 것이오. 이유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보다는 내 식구들의 안전이 더 중요하니까.”

설미는 고진유가 말한 의미를 이해하고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소녀가 그 이유를 가르쳐 드린다면…… 그 상황이 오더라도 목숨을 걸고 구해줄 수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약속하겠소.”

“……그대를 믿겠어요.”

설미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그들 남매가 북해빙궁에서 중원으로 몰래 내려와야만 했던 이유.

“해독제의 약재를 구하기 위해 왔어요.”

“누가 중독이 되었소이까?”

“본 궁의 궁주께서…… 한 달 전에 중독이 되었어요.”

“북해빙궁의 궁주라면 그대의 부친께서 중독되었다는 말이오?”

“네에…….”

설미의 목소리가 힘없이 들렸다.

“어떻게 중독이 되었는지 알고 있습니까?”

“의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선폐에 의해 내력이 흩어진 뒤, 단장초(斷腸草)에 중독된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군요.”

“병명을 안다면 바로 치료가 되지 않소?”

“특별하지 않다면 가능했겠지만…… 아버지를 중독시킨 단장초에는 특이한 성분이 들어 있다고 하더군요. 해독을 위해서는 한 가지 꼭 약재가 필요하다고 해서 오라버니와 함께 나온 것이에요.”

“구하고자 하는 게 무엇이오?”

“금은화(金銀花)라고 해요.”

“처음 듣는 약초군요.”

그녀가 어떤 경유로 무림에 나왔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왜 두 남매가 몰래 나와야 했는지 다시 의문이 들었다.

“북해빙궁의 사람들을 보내 구하면 될 것을, 몰래 나와야 할 만큼 문제가 있었소?”

말을 꺼낸 이상 북해빙궁의 사정에 대해 알려줄 수밖에 없었다.

“본 궁은 두 부류로 나누어져 있어요. 궁주를 위주로 한 친중파와 장로회를 위주로 한 반중파로요.”

중원과 친분을 가지며 평화롭게 지내자는 친중파와 천외사대세력들과 힘을 합쳐 중원을 공격하기를 원하는 반중파.

“아버지께선 중독되신 후 반중파에서 현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바로 폐관에 들어가셨어요.”

“그분의 상태는 어떠셨소이까?”

“의원의 말로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만일 반중파에서 아버지의 증상을 알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분명해요.”

“암살을 시도할 거란 말이오?”

“궁주의 임무를 할 수 없다는 핑계로 새로운 차기 궁주를 추대하려고 하겠죠.”

“새로운 궁주가 될 인물이라면…… 서열상으로 그대의 오라버니이겠군요.”

“맞아요.”

“하지만 그 당사자가 없다면…….”

북해빙궁의 상황이 눈앞에 펼쳐졌다.

반중파에서 원하는 것은 중원과의 평화가 아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친중파의 인물이 아닌 반중파에서 새로운 가주가 나와야 할 터.

차기 북해빙궁의 후계자 설강도 그들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반중파를 위해 사라져야 할 인물인 것이다.

“그분의 독을 해독하는 데 필요한 금은화라는 약초는 어디에 있소?”

“천주산에 약초가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비밀리에 안휘성으로 내려왔군요.”

그사이 반중파에서 누군가 지옥혈림에 의뢰를 한 것이다.

“알겠소.”

그녀의 눈빛이 항상 슬프게 보인 이유를 알았다.

“급한 일은 그대의 오라버니를 구하는 것이오. 구하고자 하는 약초는 구했소이까?”

“때마침 운이 좋아 맹주님께서 무림맹에 있던 금은화를 조금 나눠 주시기로 했습니다.”

“잘됐군요. 진작 맹주님께 연락하셨으면 쉽게 됐을 텐데.”

“비밀리에 움직이는 일이라서 저희끼리 해결하고자 했었어요.”

“이해는 합니다만 아쉬워서 하는 말입니다.”

상황이 제대로 파악되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차례대로 생각이 났다.

‘좋았어. 이왕 이렇게 된 거 제대로 해보자고.’

* * *

남궁세가 비대위에서 결정이 떨어졌다.

검황의 죽음에 연관된 배신자 남궁무명을 사로잡거나, 죽여도 상관없다는 공문이 안휘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젠장……! 젠장!!’

중년 사내는 무작정 달렸다.

한때 가장 자랑스러웠던 푸른빛의 경장은 선혈로 더럽혀져 있었다.

호천수호대의 부대주 반의중은 남궁세가에서 탈출했다.

갑자기 무인들이 호천수호대를 기습했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은 남궁세가 무력군인 제왕군과 창궁군 소속의 무인들이었다.

호천수호대의 대원들은 개인 무공은 그들보다 강했지만, 연합 무력군의 인원수와 창천기검 남궁허까지 나타나자 검을 던지며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오직 그만이 겨우 탈출할 수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반의중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왜 그들이 호천수호대를 포박하는지 아무도 이유를 몰랐다.

그가 할 수 있는 건 남궁세가로 돌아오는 대주 남궁무명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는 것뿐.

“헉…… 헉…… 헉.”

그들을 피해 얼마를 달렸는지 이제는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린 시간이 보름을 넘어서고 있었다.

체력이 강하다고 해도 사람에게는 한계가 있다.

그동안 잠도 자지 못하고 제대로 먹지도 못했으니, 온몸에 기운이 빠지면서 차라리 그들에게 잡혀 죽는 게 나을 듯싶었다.

털썩.

다리가 후들거리며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았다.

‘여기는 대략 합비를 지난 듯한데? 잠시…… 쉬었다 가야겠어.’

그는 가부좌를 한 뒤 운기행공에 바로 들어섰다.

하지만,

샷샷샷-

반의중은 운기를 도중에 풀 수밖에 없었다.

‘일각도 안 지났는데…… 벌써 여기까지?’

포위하며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들.

“드디어 잡았군.”

전면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인물.

제왕군의 부군장 남궁조후가 분명했다.

‘권청(拳靑)이 직접 오다니.’

더는 도망갈 수 없었다.

“이보게, 반 부대주.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위험한 일을 했더군. 그대로 있었다면 서로 아무 일도 없었을 텐데.”

“대체 호천수호대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잘못은 그대의 수장이 했지. 자네들은 조용히 얼마 동안 지내면 됐었네. 괜히 어렵게 일 만들지 말고 말이야.”

“그분은 세가에 나쁜 짓을 하실 분이 절대 아닙니다!”

“쯧쯧…… 마지막으로 자네에게 기회를 주지. 검을 버리고 돌아가세.”

손을 앞으로 내민 남궁조후를 보면서 그는 망설였다.

“세가로 돌아가기만 하면 돼. 자네와 자네의 부하들은 당분간 조용히 지내면 될 뿐이라고.”

“정말…… 그것만 하면 됩니까?”

“아, 물론 한 가지 부탁은 들어줘야겠지.”

“그게 무슨…….”

“우리의 뜻대로 대답했으면 하네.”

“…….”

반의중은 인상을 찡그렸다.

“호천수호대주가 딴 뜻을 가졌었다고. 그렇게 증언만 한마디 해주게.”

남궁무명이 변절했음을 거짓으로 고하라는 뜻이었다.

“누명을…… 씌우라는 것이오? 명예는 버렸소? 난 절대 그렇게 못하오!”

“이런…… 반 부대주. 정말 안타깝군. 못하겠다면 이 자리에서 자네는 배신자로 죽는걸세.”

“대남궁세가가 어찌 이런 추악한 짓을 한단 말이오!”

반의중은 가슴이 아팠다.

중원 최고의 검문으로 추앙받았던 남궁세가가 변했다.

‘……대주를 두 번 다시는 보지 못할 것 같군.’

제왕군의 무인들이 포위를 좁히며 압박을 가했다.

“크윽…….”

일백여 명의 무인들에게서 흐르는 내력의 기세에 가슴이 무거워졌다.

“저자를 잡아라!”

남궁조후의 명이 떨어지는 동시에 수십 명의 인물이 달려들었다.

타아앗!!

제왕군 소속의 무인들 손에는 이미 검이 뽑혀 있었다.

햇빛을 받은 그들의 검 끝이 빛을 발했다.

팟팟!

‘제기랄!’

포위 간격이 좁아지면서 뒤로도 움직일 수 없었다.

쉬이이익!!

등 뒤에서 거리를 줄이며 맹렬한 검들이 허공을 가르고 쏟아졌다.

채애앵!!

뒤를 돌아선 반의중이 다가선 검들을 가까스로 밖으로 쳐냈다.

반밖에 다스리지 못한 내력이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제왕무애소검진(帝王無涯小劍陣)…….’

휘청거리며 물러나는 상대를 곧바로 쫓아 따라가야 했지만, 좌우측에서 튀어나온 검들에 오히려 뒤로 물러나야 했다.

제왕군은 무리하지 않고 진을 펼쳐 공격과 수비에 적절히 변화를 주면서 압박했다.

반의중은 점점 내력이 약해져 갔다.

“후후후, 무리해서 빈틈을 만들어줄 필요는 없지. 이대로 이각만 지나면 쉽게 잡을 수 있겠어.”

부군장 남궁조후는 흐뭇한 미소를 띠며 검진에 갇힌 반의중을 주시했다.

챙!!

챙!

‘헉…… 허억…… 이제는 검을 들 힘도…….’

그의 허리가 점점 앞으로 숙여졌다.

“끝났군. 마지막은 내가 장식할까?”

파아앗!

남궁조후가 신형을 날렸다.

슈우우우욱-

반의중을 향해 제왕신권의 권강이 떨어져 내렸다.

권청이라 불리는 남궁조후의 제왕신권은 안휘제일권이라 불릴 정도로 강맹한 권공이었다.

반의중의 내력이 정상이라 해도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할 정도로

‘무인답게 죽는 건 아쉽지 않다.’

비록 상대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힘을 끌어내며 검을 잡았다.

다만 누명을 쓴 대주 남궁무명을 보지 못한 채 죽는 것이 아쉬울 뿐.

그때,

파아아아앙!!

권강과 권강이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누구…… 지?’

반의중은 앞을 막아선 사내를 보았다.

‘이 향기는……!’

중원 무림에서 매화 향이 흐르는 무공은 오직 한 곳, 화산파뿐.

타앗!

아래로 내려선 남궁조후가 소매를 털며 앞을 막아선 청년을 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매화도의가 그의 눈에 먼저 띄었다.

세 개의 매화 문양.

‘젊은 나이에 매화검인이라니……?’

척.

남궁조후는 포권을 하며 정중하게 물었다.

“본인은 대남궁세가에서 왔소이다. 남궁조후라 하오.”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하외다.”

‘고진유라고 하면…… 화산도협!’

미소를 띤 고진유의 얼굴.

남궁조후는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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