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05화 (105/425)

105화

두두두두두-

일행 뒤에서 세 필의 쾌마가 빠르게 달려왔다.

“누구지?”

장두총이 눈을 가늘게 뜨고 말 위에 탄 그들의 복장을 자세히 보았지만, 일행 모두 소속을 알 수 없었다.

오직 한 명만이 말 위에 탄 인물을 보면서 눈이 커졌다.

‘설마…… 녹림대군께서…….’

겨우 이 정도 일에 그가 직접 움직인다고?

“망했다…….”

녹림야검은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말이 툭 튀어나왔다.

그 순간, 화산파의 일행 앞에 세 필의 말들이 멈추다.

일행 후미에서 움직이던 장두총이 그들과 마주 섰다.

“어디서 오셨소이까?”

“녹림에서.”

사내의 태도는 당당했다.

“우리를 찾아온 걸 보니 녹림에서 돈을 가지고 왔군요.”

고진유가 말을 몰며 일행의 후미로 다가왔다.

“후후, 그렇네. 녹림대존을 협박할 만큼 간 덩어리가 큰 녀석이 있다면서?”

“그 간덩어리가 큰 녀석이 본도이외다. 고인의 성함은 어떻게 됩니까?”

“소소경.”

“녹림대군 소소경. 녹림의 이인자로 알려진 그대가 맞소이까?”

곽우가 확인차 물었다.

“내 신분에 대해서는 저기 저 녀석이 확인해 줄 걸세.”

소소경은 어쩔 줄 모르는 녹림야검을 가리켰다.

“저 모습을 보아하니 녹림의 인물이 맞는 것 같군요. 돈은 준비되었습니까?”

소소경이 미소를 띠며 뒤를 향해 손짓했다.

함께 온 두 명의 수하들이 상자를 내려놓았다.

“군 특사, 확인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군성창과 견대복이 각각 상자들을 열어 금액을 살폈다.

“대사님, 오백 냥입니다.”

“천 냥이 아닌가요?”

“넵. 오백 냥이 틀림없습니다.”

소소경은 환하게 웃었다.

“하하, 시간이 너무 급해서 말이야. 일단 황금 오백 냥을 먼저 준비했지. 조만간 나머지도 주겠다고 하시더군.”

“음…….”

“화산도협, 황금 오백 냥도 엄청난 금액이지 않은가? 우린 최선을 다하고 있네.”

그의 말대로 황금 오백 냥도 큰 금액이었다.

“하긴. 그렇게 따지면 고맙군요. 사실 별 기대는 안 했소이다. 나머지 금액은 못 받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흠?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아, 혹시 우리가 산적이라서?”

“맞소. 녹림은 신뢰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곳 아니오.”

“……크크큿, 본 림을 무시하는 게 지나치군.”

“무시가 아니라, 일반적으로 산적을 누가 쉽게 믿겠소이까? 한데 이 정도의 성의를 보여주었으니, 과연 녹림은 다르오. 그러니 나머지 금액의 반도 줄 것이라 믿어보긴 하겠습니다.”

녹림대군은 그를 보면서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이하기도 하고.’

정파의 많은 무인들을 상대했지만 처음 만나는 유형이었다.

“그대에게 줄 건 줘야겠지만. 녹림대존께서 하신 말씀이 있었네.”

“본도도 쉽게 줄 거라 생각은 안 했습니다. 조건이 뭐요?”

“나를 이겨.”

“…….”

“표정이 왜 그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됐나?”

“이해했습니다.”

“그럼 왜 반응이 없지?”

“너무 쉬운 듯해서.”

“쉬워? 내가? 풋, 푸하하핫!”

소소경은 대소를 터뜨렸다.

“젊은 놈이 정말로 간이 부었군. 아니면 제정신이 아니거나.”

안절부절못하게 된 것은 녹림야검이었다.

‘안 돼. 녹림대군께서 방심을 하고 계신다.’

말릴 수 있다면 당장 뛰어들어서 그를 붙잡고 싶었다.

화산도협과 싸우기 전까지는, 언제 싸워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보였다.

하지만 무공을 펼치는 순간, 그는 순식간에 달라졌다.

“여기서 시작하면 되오?”

“크큭, 많은 사람 앞에서 제대로 망신당하고 싶은 모양이지? 그대가 원한다며 여기에서 상대해 주마.”

휘익!

녹림대군은 말 위에서 뛰어내렸다.

그와 동시에 고진유 또한 그의 앞에 내려섰다.

“여긴 약간 비좁아 보이는군.”

“옆으로 조금 옮기죠.”

두 사람이 길옆에 위치한 공터로 움직였다.

“내가 쉬워 보인다니. 푸훗, 과연 그 말에 책임을 질 수 있을지 보고 싶구만.”

“원한다면 당장 보여 드리죠.”

고진유는 내력을 끌어 올렸다.

우우우웅-

단전에서 진동소리가 울렸다.

‘허, 이 정도를 가지고 허풍을 떨더니 배짱 하나는 인정…….’

그때였다.

고진유의 내력이 갑자기 증폭하더니 사방으로 뻗쳐 나왔다.

내기의 양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

“어떻소이까?”

내기로 이루어진 호신강기의 두께가 한 자를 넘어섰다.

‘이놈…… 대체 내력을 어떻게 익혔기에…….’

녹림대존과 비교해도 절대로 약하지 않았다.

“……이거 배짱이 있을 만하군. 하지만 내력이 무공의 전부는 아니지.”

녹림대군의 말처럼 내력만으로 상대를 이길 수는 없다.

그에 따른 무공의 성취가 동시에 이루어져야 했다.

위이이이우우웅-

잔백검(殘魄劍)에서 귀혼곡성이 울렸다.

‘도사 놈. 귀신의 혼령까지 벨 수 있는 검이다.’

소소경의 피부가 백색을 넘어 점점 투명하게 변해갔다.

“화산도협, 네놈의 혼을 잡아먹어주마!”

타아아앗!!

잔백검에서 귀혼령이 뻗어 나왔다.

‘이건…….’

고진유는 사의검을 앞으로 가볍게 올렸다.

‘너무 약하잖아.’

파아아앗!!

앞으로 겨눈 검신에서 터진 검광 속에서 매화가 피어났다.

퍼억.

퍽.

매화의 소용돌이에 잠긴 귀혼령이 하나둘씩 자취를 감추며 사라졌다.

소소경이 펼친 십 성의 잔백구유검법은 완벽했다.

하지만 첫 번째 공격이 너무 허무하게 막혔다.

고진유와 마주친 시선에서 강렬함이 느껴졌다.

‘쳇, 살성을 지우고자 했건만…….’

소소경의 새하얀 피부가 살기에 의해 붉게 물들어 갔다.

잔백구유검법의 살성이 담긴 잔백검이 움직였다.

위이이이잉-

고진유를 향해 달려드는 귀혼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샤아아아악-!!

정신없이 달려드는 귀혼들의 혼령들을 향해 고진유의 단전에서 매화 향이 퍼지며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정적.

해안가로 밀려온 썰물이 빠져나가는 것처럼 귀혼기가 사라졌다.

두 번의 공격이 허무할 정도였다.

‘이렇게 쉽게……?’

“이번에는 내 차례요.”

일보매화향천(一步梅花香天)이라 했던가.

고진유가 한 걸음 나서자 매화 향이 사방으로 진동했다.

‘……내력이 이 정도까지라고?’

척.

소소경은 두 손으로 잔백검을 고쳐 잡았다.

고진유의 사의검이 위에서 아래로 움직였다.

동작 하나하나에 매화 향이 퍼지며 붉은 꽃잎이 흩날렸다.

단순하게 보이는 일검의 움직임.

‘경로가 너무 단순한데?’

하지만 고진유의 일검은 탈형을 넘어섰다.

가볍게 내리치는 의지만으로 이십사수 매화검법의 모든 초식을 펼칠 수 있었다.

매화천하(梅花天下).

샤르르르르-

사의검의 검신에 붉은 검광이 비쳤다.

붉은 검광이 번쩍이더니 하늘하늘하게 떨어지는 붉은 매화가 세상을 가렸다.

털썩.

소소경의 손에서 잔백검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미…… 이자는 무공이 완성된 인물이야. 독 형님이 나서도…… 이길 수 있을까?’

허망하게 승패가 정해졌다.

“하하하하! 졌다!”

소소경은 우렁차게 대소를 터뜨린 후 항복을 외쳤다.

척.

소소경은 손을 뻗어 고진유를 가리켰다.

“다음에도 한 수 부탁해도 되겠는가?”

“도전은 언제든지 받아주겠소. 다만 그때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할 거요.”

“…….”

“오늘은 돈 때문에 비무를 한 것이니 그리 아시오.”

고진유의 눈동자에서 패기의 광채가 솟구쳤다.

‘하하…… 망할, 저 눈빛은 패왕명안이잖아? 정파, 그것도 화산파에게서 패왕지도를 걷는 인물이 나타났다고?’

소소경은 몸이 떨릴 지경이었다.

패왕기를 지닌 인물의 앞을 막아선다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북해빙궁 출신의 설미와 냉풍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화산도협의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라니…… 맹주님께서 적극적으로 추천을 하신 이유를 알겠어. 그는 일반 무림인과 달라.’

고진유를 보는 설미의 눈빛이 변했다.

끄으응.

녹림대군 소소경은 황금 오백 냥이 든 상자를 내려놓았다.

“여기. 가지고 가시오.”

“고맙소이다. 녹림으로 돌아가거든 좋은 곳에 잘 사용하겠다고 전해주시오. 나머지 금액도 잊지 말고 잘 부탁하겠소이다.”

고진유의 표정은 환했다.

“참 나, 도사가 너무 돈을 좋아하는 거 아니오?”

“본도가 세속에 관심이 많아서. 당연히 없는 것보다 있는 게 좋지 않소이까?”

고진유는 금화가 든 상자를 장두총에게 맡겼다.

“호경 사형, 요거 처리해 주세요.”

“오냐. 이건 내가 잘 챙겨놓지.”

장두총이 두 개의 상자를 얼른 챙겼다.

고진유는 가볍게 손을 올려 포권을 했다.

“혈성존께 한 번 더 고맙게 잘 받았다고 전해주시오.”

“그렇게 하겠소.”

“그럼, 계산을 마쳤으니 저자를 데리고 가면 됩니다.”

그러고는 일행 뒤편에 선 녹림야검을 가리켰다.

“그동안 고생 많았소.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오.”

“…….”

그의 허락이 떨어졌다.

한데, 이상하게 기쁘지 않았다.

‘당연히 녹림으로 돌아가면 좋아야 하는데…….’

돌아가는 게 아니라, 동료가 아니더라도 계속해서 이들과 함께 다니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야검, 뭐 하는가?”

“아, 알겠습니다.”

녹림야검은 움직이기 싫은 듯 느적느적거렸다.

소소경은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

‘이 새끼가……?’

표정을 보아하니 정말로 가기 싫다는 내색이 보였다.

녹림야검은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이 지나갔다.

황금 천 냥의 몸값.

녹림에서 자신을 구하려 했다기보다는, 녹천의 비밀이 알려질 염려가 있어 그에 상응한 대가로 지불한 것임을 잘 알았다.

‘녹림으로 돌아간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뻔하다…… 가고 싶지 않아.’

녹림야검은 애원의 눈길을 고진유에게 향했다.

하지만 유일한 구원자는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하아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숨을 내쉰 그가 소소경의 앞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잠깐만.”

고진유의 목소리가 그의 걸음을 멈췄다.

“가기 싫소?”

“…….”

“싫다면 안 가도 좋소.”

죽을상이었던 녹림야검의 얼굴이 펴졌다.

하지만 이내 소소경의 시선과 마주치자 또다시 굳어졌다.

“화산도협, 그게 무슨 말이지? 그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황금 오백 냥을 받지 않았는가? 이런 경우는 없네.”

“그러게 말이외다. 신경 안 쓰고 싶은데, 사부님께서 하셨던 말씀이 떠올랐소.”

“그게 무슨…….”

“무공을 익힘에 있어 가장 소중한 덕목을 가르쳐 주셨었소. 측은지심(惻隱之心)이외다.”

“허어? 갑자기 측은지심이라니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소리를…… 그는 녹림의 인물이고, 우리는 대가를 치렀소. 그대가 측은지심을 실천하고 싶으면 다른 인물을 찾으란 말이오.”

“측은지심을 실천하는데 사람을 고르는 일은 없소이다.”

녹림야검은 시선은 어떻게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녹림대군의 목소리가 울렸다.

“빨리 안 움직여?”

“…….”

다각. 다각.

그 순간, 녹림야검이 말고삐를 당겨 뒤로 물러났다.

소소경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야검, 본 림을 배신하겠다?”

“그, 그게 아닙니다. 조금 더 지켜보고 싶을 뿐입니다.”

소소경이 노기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네놈에게 든 몸값이 무려 황금 오백 냥이야!”

“…….”

“그 돈을 헛되게 만들 생각인가? 만일 따라가지 않겠다면 억지라도 끌고 가겠다!”

그때,

쿠웅!

쿵!

장두총이 황금 오백 냥이 든 나무상자들을 바닥에 던졌다.

“여기 있소. 가지고 가시오. 겨우 오백 냥으로 생색내기는…… 녹림은 생각보다 쪼잔한 곳이외다?”

“뭐?!”

소소경은 눈을 부릅뜨며 장두총을 노려보았다.

“뭘 그리 째려보시오. 내 말이 맞지 않소? 호정 사제가 굳이 말을 꺼내서 그렇지, 보아하니 황금 오백 냥은 떼어먹을 생각이지 않았소? 녹림에서 황금 천 냥을 못 구한다는 게 말이 되나?”

“……!!”

부들.

소소경의 손이 떨렸다.

화산도협의 아무리 무공이 강하다고 해도, 다른 떨거지마저 자신을 무시한단 말인가?

소소경의 얼굴이 붉게 변했다.

“이놈이…… 낄 때 안 낄 때 구분도 못 하는군…….”

타아앗!!

잔백검을 치켜든 그의 손에서 십 성의 귀혼령무이 펼쳐졌다.

고진유에게 당한 패배를 갚으려는 듯 잔백검에 살성까지 끌어 올렸다.

파지지지직-!!

장두총의 손에서 류화검은 이미 뇌전을 뿜어냈다.

눈앞으로 쇄도하는 잔백검의 귀혼들.

그에게 두려움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흥. 전부 튀겨주마!”

뇌전화검의 벽전화공(霹電花空) 초식.

번쩍!!

류화검에서 백광 폭음이 터졌다.

콰아아아앙!!!

“큭!!!”

녹림의 이인자, 소소경의 신형이 뒤로 날아갔다.

바닥에 강하게 떨어졌지만, 다행히 호신강기 덕에 정신은 잃지 않았다.

몸을 일으킨 소소경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화산파의 제자들을 바라보았다.

‘망할…… 대체 이 새끼들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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