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03화 (103/425)

103화

이른 아침부터 화산지 입구에 무림맹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입구에 세워 놓은 팻말에 한 장의 공고문이 붙어 있었다.

<당분간 화산관을 비우게 되었으니, 볼일이 있으신 분은 차후에 찾아오시면 고맙겠소이다.>

유하랑과 조여하는 팻말에 걸린 공고문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놈들이 빚쟁이 도망가듯이 사라졌군.”

“유 숙부님, 설마 우리를 피해서 사라진 것은 아니겠지요?”

“글쎄다. 워낙 특이한 인물이라서. 변 총관도 맹주에게 물어봤지만, 그들이 어디에 갔는지 말을 하지 않는다는구나. 하지만 조용히 사라지지는 못하겠지. 화산관의 전 인원이 움직이는데 들키지 않을 수 없지 않으냐.”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무림맹에 찾아온 목적은 그에게 철갑의 존재를 찾기 위함이었다.

그런 그가 사라졌다.

“우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소식을 기다렸다가 움직이도록 하자.”

“네, 숙부님.”

* * *

비맹전의 상황도 비슷했다.

사마추는 일어나자마자 부총관 청윤의 보고를 받았다.

화산관의 전 인원이 새벽 일찍 무림맹을 갑작스럽게 나섰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지금 어디에 있다고 했지?”

“무림맹을 나선 뒤 곧장 동화루로 갔다고 합니다. 그 뒤 소식은 아직 들어온 게 없습니다.”

“동화루라면…… 마을에 있는 객잔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흐음…… 객잔에 갔다면 의미는 하나밖에 없겠지. 그곳에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는 게로군. 게다가 그 인물은 화산관의 전 인원을 필요로 했을 테고…….”

사마추가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누가 그들 주위를 따르고 있는가?”

“홍영살경이 뒤를 쫓고 있습니다.”

“혼자서 미행한다는 말인가?”

홍영살경이 못 미더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화산도협은 미행하기에는 부족하다.

“걱정 마십시오. 그는 무영조 최고의 인물입니다. 화산도협의 무공이 강하다고 해도 홍영살경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할 것입니다.”

“부총관이 그를 확실하게 믿는 모양이군. 알겠네. 우선 지금 당장 동화루에서 화산도협이 만난 인물이 누구인지 확인하도록.”

“지금쯤이면 누구를 만났는지 확인했을 겁니다. 바로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청윤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흠…….’

사마추는 집무실에 혼자 남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철갑을 가지고 무림맹을 나간 것인가?’

중원대사직은 대부분의 각 문파의 장로들이 맡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에 일이 생겼을 때는 제자들에게 맡기는 게 대부분이었다.

중원대사직을 맡은 그가 외부에 나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제 식구들 전부 데리고.

이건 야반도주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맹주의 허락 없이 나가지는 않았을 터. 아니면 맹주가 부탁했을 수도.’

오랫동안 무림맹에 오지 않았던 제갈문도 신경이 쓰였다.

그가 오자마자 일어난 일이었다.

제갈세가는 항상 상대하기 부담스러웠다.

머리가 뛰어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갈세가의 인물들은 말할 수 없는 기이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특히 제갈문은 더 그러했다.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주눅이 들었다.

‘무림맹에서는 지켜보는 시선이 많아서 철갑을 열어볼 생각을 못 했겠지.’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외부로 나간 이상 철갑을 열기 위한 시도를 할 것이었다.

철갑은 억지로 열 수 없다.

열쇠는 오직 천문전주 나하중만이 가지고 있다.

철갑을 찾을 수 없다면 차라리 놈이 억지로 열어 안에 든 내용들이 사라지는 게 나았다.

지끈.

사마추는 인상을 찡그렸다.

두통이 찾아왔다.

옥병에서 환단 한 알을 꺼내어 씹었다.

“휴우…….”

그도 마찬가지로 신무선단을 일정한 기간 이내 복용해야 했다.

“이건 좋긴 한데 계속 복용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군. 그렇지 않은가?”

갑자기 사마추가 허공을 향해 읊조렸다.

그 순간,

스으윽.

사마추의 앞에 인영이 나타났다.

“크크크…… 그래도 몸에는 좋지 않소이까?”

귀를 거슬리는 강한 쇳소리였다.

“삼소, 그대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가?”

“사마추 군사. 아니…… 일소께 드릴 말이 있소이다.”

“그게 뭔가?”

“저번에 말씀하시지 않았소이까. 차라리 죽여버리면 된다고.”

“그를 죽이자는 것인가?”

나쁘지 않았다. 계속 그대로 두게 된다면 뒤끝만 나빠지게 될 게 분명했다.

“나하중 님께는 뭐라고 보고할 텐가?”

“그 일은 우문전주님께서 책임지실 것입니다.”

“…….”

사마추는 눈에 힘을 주었다.

삼소가 말한 우문전주는 그럴 인간이 아니었다.

“이보게, 우문전주가 그런 큰일을 책임질 인물인가?”

“…….”

“우문전주가 명은 내렸겠지. 똑바로 알게나. 그는 잘되면 자신의 덕이고 안 되면 남 탓을 하는 인물이라네.”

우문전주 시도정에 대한 사마추의 말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삼소, 그대가 우문전의 사람임은 몰랐었군.”

“…….”

“하긴 누군가에게는 붙어야지 않겠나. 이해는 하네. 하지만 우문전은 글쎄…… 결정은 자네가 하니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지만. 보아하니 이번 일도 내 허락과 상관없이 사고 칠 준비를 마쳤을 테고.”

사마추의 예상이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고진유가 밖으로 나온 이상 우문전에서 움직일 게 확실했다.

그가 찾아온 이유는 통보하기 위해 왔을 뿐 뜻을 함께하자는 것이 아니었다.

“알겠네. 우문전에서 하고 싶은 대로 하시게나. 난 잠시 구경이나 하고 있겠네.”

“고맙소이다.”

“그는 호락호락하지 않는 놈이네.”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것입니다.”

삼소는 자신감이 강했다.

우문전에서 나온 이들을 상대하지 못할 것이라 자신했다.

“그만 가보겠소이다.”

“그러게.”

사아아아-

바람 소리를 내며 그의 신형이 사라졌다.

‘훗, 우문전이 천문전을 의식하는 모양이군…… 예전에는 수면에 나오지 않았거늘.’

극일천의 조직은 방대했지만 벌어질 틈이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날의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각자의 욕심이 새어 나오는 듯했다.

‘욕심이 생긴다는 건 대업을 무리하도록 만들지.’

“후후후…… 우문전주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긴 하지. 앞으로 본 천도 같이 갈 사람은 가고, 떨어져 나갈 인물은 사라지는 것이 맞을 게야.”

그 순간, 그는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극일천 또한 무림과 마찬가지로 정리할 대상에 들어간 게 아닐까?

‘설마…… 천주님께서…….’

* * *

설강이 사라진 장소는 하남에서 가까웠다.

안휘성 박주의 과양현.

북해빙궁에서 그들 세 사람만 내려온 것은 누가 봐도 의심스러웠다.

일행은 동화루에서 설미를 만난 뒤 안휘성으로 향했다.

다가닥. 다가닥.

사륜마차가 소풍을 나온 듯 천천히 관로를 움직였다.

마부석에는 설미의 호위 무사인 냉풍과 함께 군성창이 나란히 앉아 마차를 몰았다.

마차 안에는 세 명의 여인이 앉아 있었다.

“헤헷, 설미. 마음 편히 있어도 돼.”

“네…… 우희 언니.”

“호정 사제를 믿으면 돼.”

“맞아! 지금 사제는 어떻게 할지 이미 계획을 세워 놓았을 거야.”

“아…… 네에.”

화산도협에 대한 믿음이 강하다는 것을 목소리에서 느껴졌다.

“우희야. 마차가 좀 느린 것 같지 않니?”

“그런가? 왜 천천히 가는지 물어볼게요..”

스륵.

당우희는 창문을 열어 고개를 내밀자, 마침 옆으로 장두총이 다가왔다.

“왜 늦게 가는 건가요?”

“호정 사제가 누굴 기다리고 있어.”

“누구?”

“있잖아. 사제를 따라다니는 그쪽 애들.”

“아항, 알겠어요.”

쏙.

당우희는 다시 마차 안으로 머릴 넣은 뒤 문을 닫았다.

“설미 오빠에 대한 정보를 기다리는 모양인가 봐.”

“…….”

“걱정 마! 다른 곳에 알린 게 아니야. 중원 무림은 우리가 누구를 찾는지 절대 몰라.”

“그럼 어떻게…….”

“제일 빠른 방법! 설미 오빠를 잡아간 당사자들에게 직접 물어보는 거지.”

“설마……! 지옥혈림에게요?”

“응. 사제가 잘 아는 애가 있거든. 말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만나볼 생각인가 봐.”

“그렇군요…….”

그녀는 대답하면서도 궁금했다.

지옥혈림과 원수라고 알려진 고진유가 그곳에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헤헤헤, 안 믿는 모양인데 곧 알게 될 거야.”

고진유는 선두에서 움직였다.

왼팔에 두른 붉은 띠.

동화루에서 나온 뒤 그녀의 귀에 들어갔다면 지금쯤 찾아올 게 확신했다.

씨익.

입꼬리가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방에 익숙한 기가 느껴졌다.

‘왔군.’

고진유는 고개를 돌렸다.

“형,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요.”

“알았다.”

휘익!

고진유는 말 위에서 그대로 신법을 날려 관로에서 십여 장 벗어난 장소에 내려섰다.

사방으로 넓게 펼쳐진 초원 한가운데, 북소연이 앉아 있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고진유의 왼팔에 두른 붉은 띠를 유심히 보았다.

“사실인가요?”

그녀의 시선이 어디에 있는지 알았다.

“아…… 이거 말이오?”

찍.

붉은 띠를 잡은 뒤 뜯어냈다.

그녀가 인상을 찡그렸다.

“역시 속였군요.”

“얼굴에 주름이 생기겠소.”

“농담할 때는 아니네요.”

항상 무시하는 그를 보면서 만나자마자 인상을 썼지만, 순간 피식 웃음이 나왔다.

철갑이 아니라는 것을 사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 물건을 찾았다면 굳이 화산관 전 인원을 끌고 안휘성까지 올 리 없었다.

“지금 내가 어디로 가는 것 같소?”

“그걸 내가 어떻게 아나요?”

“지옥혈림과 한판 뜨러 가는 길이외다.”

“……!!”

‘화산파가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그녀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졌다.

농담처럼 들렸으나 분명 농담은 아닐 것이었다.

“이, 이유가 뭔가요?”

“얼마 전에 박주에서 누군가 사라졌소.”

“……그래서요?”

“그를 찾는 중이오.”

“흥, 중원에서 사람이 없어지면 전부 우리 탓인가요?”

“주위에 흑귀들이 있었소.”

“…….”

흑귀가 있었다면 지옥혈림과 연관된 일이 틀림없었다.

“……제가 본 림의 사람이라도 모든 일을 알 수 없어요. 각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각자 의뢰를 받고 있으니까. 일을 처리한 뒤 보고는 올라오지만 한참 뒤에 여러 일들이 한꺼번에 올라올 때도 많아서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고 되는 경우도 많아요.”

“안휘성을 담당하는 곳을 알아보면 되지 않소?”

“그렇긴 하죠. 대체 누구를 찾는데 본 림과 싸울 각오를 하는 건가요?”

“북해빙궁의 설강.”

‘헉.’

북소연은 순간 숨이 멈춘 듯했다.

생각지도 못한 이름이 고진유의 입에서 나왔다.

“설강이라면 차기 후계자인 빙우검룡(氷宇劍龍)을 말하는 것인가요?”

“맞소이다.”

“그가…… 왜 안휘성까지 왔나요?”

“그건 나도 모르오. 그를 지옥혈림에서 잡아갔다는 게 문제지.”

이 말이 사실이라면 심각한 일이었다.

화산파의 오청석에 대한 의뢰.

그 또한 지옥도에서 독자적으로 의뢰를 받아 생긴 일이었다.

그 후 지옥혈림은 대문파와 연관된 의뢰는 각 지역에서 독단적으로 받지 못하도록 단단히 명을 내렸다.

‘분명 함부로 의뢰를 받지 못하도록 했거늘.’

이번 일은 북해빙궁이 문제가 아니라 상부의 명을 거역한 일이었다.

“그대가 믿을지 모르겠지만, 화산의 일 이후 대문파의 인물과 연관된 의뢰는 상부를 무조건 거쳐야 해요. 독단적으로 의뢰를 받아 움직이지 못하도록.”

“지옥혈림의 뜻이 아니라 누군가 독단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이오?”

“맞아요.”

“그래도 달라지는 건 없소. 지옥혈림에서 움직인 건 맞지 않소?”

북소연의 목소리는 이미 굳어 있었다.

“당신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소?”

“당신이 강하다고 해도 저들만으로 본 림과 싸워 이기지 못해요.”

“누가 우리만 싸운다고 했소?”

“……화산파를 말하는 건가요?”

“무림맹에 있던 우리가 함부로 움직였을 것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그럼…… 무림맹이 나선 일이라고?’

그의 말처럼 화산파가 아니라 무림맹이라면 지옥혈림에서도 무시할 수 없었다.

“정말로 무림맹이 움직일 거라고 하는 건가요?”

“맹주님께서는 지옥혈림이 함부로 움직이는 것을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고 하시더군요. 그동안 많이 참으셨나 봅니다. 그런 마당에 본도가 앞장서서 싸우겠다고 하니 얼씨구나 허락하시더군요.”

“…….”

“조용하게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부른 것이오.”

“……알겠어요.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헤어져야겠어요. 하루만 기다려 주세요. 저도 어떻게 된 일인지 확인을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그렇게 하시오. 이후 첫 번째 마을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찾아오시오.”

“그러죠.”

휘익.

북소연은 굳은 표정으로 먼저 사라졌다.

그녀의 사라지기 전 굳은 표정이 생각났다.

‘문제가 없는 곳이 없군. 심각한 것을 봐서는 내일 뭐라도 들고 오겠지.’

* * *

고진유는 일행에게 돌아왔다.

묵경과 사형제들이 모여들었다.

“만나봤어?”

“그쪽도 지옥혈림에서 그를 잡아간 사실은 모르고 있더군요.”

북소연이 지옥혈림에서도 매우 중요한 인물임을 모두 알았다.

“이해가 안 가는데? 북해빙궁과 연관된 의뢰라면 모르지 않을 텐데?”

“각 지역에서 독단적으로 의뢰를 받는 경우도 있답니다.”

“이번 일도 그렇다는 것인가?”

“지옥혈림 상부에서 예전 사부님의 일이 일어난 이후 대문파에 속한 인물의 의뢰는 독단적으로 받지 말도록 했다더군요.”

“누군가 사고를 친 것 같군. 사람은 어딜 가도 똑같구나.”

묵경의 말에 모두 같은 생각이었다.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니 마을에서 기다려 보죠.”

일행은 다시 정렬을 한 뒤 마을을 향해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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