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02화 (102/425)

102화

스윽.

저녁 늦은 시간.

고진유는 눈을 떴다.

침실로 들어선 인물에게서 살기는 보이지 않았다.

‘대단한 인물임엔 틀림없군.’

화산관 침실까지 들키지 않고 들어왔다.

사내가 최대한 침상과 떨어진 장소에 서서 허리를 숙였다.

“맹주님께서 보내셨습니다.”

고진유는 일어나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분은 어디에 계시오?”

“외부에 계십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외부에? 정말로 큰일인가?’

“알겠소. 잠시만 기다리시오.”

곧바로 일어나서 옷을 챙긴 고진유는 마지막으로 침상 옆에 세워 놓은 사의검을 들었다.

“앞장서시오.”

* * *

고진유는 사내의 뒤를 따라 무림맹을 벗어났다.

‘역시 여기에도 비밀 통로는 있군.’

무림맹 외부로 연결된 외소문(外小門)이 나타났다.

맹주전 소속의 친군이 직접 관리하는 문으로, 무림맹에서 맹주와 군사 외에는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문이었다.

드르륵.

두꺼운 철문이 열리며 외부가 나타났다.

“전 여기까지입니다. 맹주님께서는 동화루에 계십니다.”

“혼자 가란 말이오?”

“그렇습니다. 그곳 삼 층에 찾아가시면 됩니다.”

“알겠소.”

이미 어둠이 짙은 야밤이라, 마을로 들어서도 인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동화루는 거의 마을 끝에 세워진 객잔이었다.

휘익!

늦은 밤이지만 동화루에서 흘러나온 붉은 불빛은 밝았다.

동화루에 내기를 감추며 다가섰다.

‘음…… 삼 층에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군.’

미세하게 흐르는 기는 무림맹주 황보강이 분명했다.

‘대체 무슨 일이기에 은밀히 밖에서 보자고 하는 거지.’

한데 그의 주위로 다른 기들이 느껴졌다.

‘처음 보는 기운인데?’

황보강과 함께 있는 인물의 기는 차가웠다.

“화산대사, 도착했으면 들어오시게.”

객실 앞에 다가서자, 안에서 황보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륵.

열린 문 사이로 처음 보는 두 명의 인물이 보였다.

황보강과 마주 앉은 젊은 여인.

그 뒤로 백발의 중년 사내가 서 있었다.

고진유가 들어서자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쁘군.’

이십 대 초반의 젊은 여인.

첫마디로 예쁘다는 말이 튀어나올 정도로 미모가 뛰어났다.

청미화 조여하와 충분히 견줄 수 있을 정도의 미모였다.

그녀의 뒤에 선 백발 중년 사내는 차가운 내기가 가득했다.

“화산도협, 잘 왔네.”

황보강이 고진유를 맞았다.

“무슨 일인지 궁금하겠지만 일단 설미 소저와 인사를 하게나.”

고진유는 그녀를 향해 가볍게 허리를 숙였다.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설미라 해요. 북해에서 왔어요.”

“북해?”

고진유는 뜻밖의 장소가 나오자 황보강을 향해 돌아보았다.

“설미 소저는 북해빙궁 출신이라네.”

“아…… 그곳의 사람을 만난 건 처음입니다.”

말로만 듣던 북해빙궁의 인물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게다가 빙궁주의 여식이지.”

“그렇군요.”

황보강은 이 정도만 알려주면 그녀의 신상에 대해 알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진유는 별 반응이 없었다.

“이보게, 혹시 설미 소저가 누구인지 모르는 모양일세?”

“처음 본 여인을 어떻게 압니까?”

“중원 오미화에 대해서 모른다는 말인가? 어허, 한미화인 설미 소저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나?”

고진유는 고개를 돌려 그녀를 뚫어지듯 보았다.

“어쩐지 예쁘더군요.”

후후.

설미는 미소를 지었다.

저 도사가 여인에게 하는 말 중 어쩌면 가장 최고의 칭찬인 듯싶었다.

“허, 자네가 여인에 관심이 없다고 들었지만 사실일 줄은 몰랐네. 청미화 조 소저를 일부러 무시하는 게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그랬던 것이구만?”

‘청미화를 무시했다고?’

설미 또한 조여하에 대해 잘 알았다.

그녀는 신기한 듯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중원에서 오미화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사내는 처음 보았다.

게다가 청미화에게 관심이 보이지 않았다는 말에 호감이 더 갔다.

“인사는 대충 했으니 자리에 앉게.”

고진유는 자리에 앉기 전에 뒤를 가리켰다.

“저분은 누구십니까?”

“제 호위인 냉풍 님이세요.”

척.

“반갑소이다.”

“…….”

그는 고개를 숙일 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시한다고 생각할지 몰라 얼른 사정을 설명했다.

“냉풍 님은 소리가 들리지 않아요. 말도 못하세요.”

“입을 보고 알아듣는군요.”

“네. 맞아요.”

슥슥.

고진유는 그를 보며 수화를 했다.

-백발이 멋있네요.

씨익.

냉풍의 입꼬리가 올라가며 포권을 했다.

“화산도협, 수화를 언제 배웠는가?”

“벽화당 시절 때 같이 지내던 녀석 중 한 명이 말을 못 했습니다. 그때 몇 마디 배워두었죠.”

“허허. 자네는 볼 때마다 항상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구만.”

인사를 마친 황보강이 본론을 꺼냈다.

“이보게, 화산도협. 여기에 설 소저가 온 사실은 비밀이라네.”

“…….”

“왜 그런 시선으로 보는가?”

“정말로 비밀이라고 보십니까? 주위에 얼마나 눈이 많은 줄 모르시지는…….”

이번에는 설미가 대신 대답했다.

“맹주님의 말씀대로 저희는 극비로 여기까지 움직였어요. 본 궁에서도 한 명도 모르고 있어요.”

“음…… 모를 것이라 생각하시니 그렇게 알고 있죠.”

황보강은 다시 설명을 이었다.

“얼마 전에 빙궁주의 후계자인 그의 아들이 무림에서 사라졌다네.”

“……사라졌다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입니까? 스스로 사라진 것입니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사라진 것입니까?”

“누군가에 의해 사라졌다네.”

“납치라…… 근데 북해빙궁에 있어야 그가 중원에는 왜 나왔을까요? 후계자 정도라면 주위에 호위들도 많이 있었을 텐데.”

“그건 이유가 있다네. 중원에 나온 인원은 여기 설미 소저와 호위 외에는 없었어.”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겁니까?”

“사실이네. 몰래 중원으로 들어온 것이지.”

스윽.

고진유는 손을 반쯤 올렸다.

“우선 먼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

“그가 중원에서 사라졌다는 건 알겠습니다. 그런데 그를 찾기 위해 무림맹에서 나서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북해빙궁에 알려 찾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그들에겐 머나먼 중원에서 일어난 일이네. 당연히 무림맹에서 도움을 줘야 하지 않겠나? 북해빙궁과 우린 상호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거든.”

“화산파와는 아니고요?”

“…….”

고진유의 시선에 그는 할 말이 없어졌다.

“그건…… 아니지만, 그때도 자네의 사부를 찾기 위해 무림맹에서도 백방의 노력을 했다네. 만일 자네와 같은 인물이 곁에 있었다면 그에게도 당연히 부탁했겠지.”

“……보아하니 그를 나보고 찾아달라고 하는 말이군요.”

“크흠, 맞네.”

“여기서 한 번 더 묻겠습니다. 왜 저지요? 무림맹의 정보망을 이용하면 금방 찾을 수 있을 텐데.”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무림맹의 정보망을 통한다면 그를 찾는 게 더 빠를 수 있었다.

황보강 대신 그녀가 대답했다.

“그건 저희들이 본 궁의 사정을 알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게 무림에 세 사람만 나온 이유겠군요.”

“…….”

정확하게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변명을 하듯 말했다.

“설강 오라버니의 안위 때문입니다. 중원에서 시끄럽게 일을 벌인다면 오라버니를 잡아간 그들이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죽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어요.”

‘그럴싸하게 변명을 생각했군.’

고진유는 다시 물었다.

“소저의 말을 듣다 보니 그들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는 다시 황보강이 대답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사라졌던 장소에서 흑귀들을 봤다는 정보를 입수했네.”

고진유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지옥혈림에서 그를 납치했다는 것입니까?”

“목격자들에게 들은 말이네. 이제 그게 맞는지 확인을 해야 하겠지. 자네가…… 말일세.”

무림맹 정문에 누군가 맹주 앞으로 놓아둔 청홍기.

북해빙궁에서 긴급하게 만나고자 하는 쓰는 비밀 신호였다.

황보강은 설미를 만난 뒤 사정을 듣자마자 사건을 처리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생각났다.

무림맹 소속이면서도 어느 정도 자유로운 직책.

중원대사직이라면 지옥혈림과 엮여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듯싶었다.

‘지옥혈림과 연관된 일이니 화산대사 고진유라면 충분히 가능하지.’

고진유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요?”

“으응…… 그러하네.”

‘지옥혈림이라.’

그들이 독단적으로 사람을 납치하는 경우는 없다.

의뢰를 받지 않는 이상 움직이지 않는 게 그들의 방침이었다.

“지옥혈림에 납치를 의뢰한 자가 혹시 누구인지 알고 있소?”

“그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저희들도 궁금해요.”

“어렵게 생각 안 해도 됩니다. 후계자가 사라지면 누군가는 이익을 보는 사람이 있겠지요. 물론 그가 의뢰를 했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잘 생각해 보세요.”

그 순간, 설미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고진유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화산도협님, 소녀의 부탁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녀는 황보강과 객잔에서 먼저 만난 후 이야기를 나누었다.

화산도협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을 것이라 했지만, 그녀의 부탁을 들어줄지는 확신할 수 없다고 들었다.

무림맹에서 그동안 지켜본 고진유는 무림의 일에 관심이 없는 게 확실했다.

점창파을 도와준 일도 사실은 형산파와 마찰이 있었던 것이었고, 녹림과 부딪힌 것도 복우산채에서 먼저 건드렸기 때문이었다.

철갑 또한 무림을 위한다면 당장 내어놓아야 했지만, 전혀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알겠어요. 제가 그를 찾아드리죠.”

‘에에엥?’

고진유가 가볍게 수락하자 오히려 황보강이 깜짝 놀랐다.

“화산도협, 정말인가?”

“당연하지 않습니까? 설 소저께서 가족을 찾기 위해 저에게 무릎을 꿇었습니다.”

설미의 얼굴이 환하게 퍼졌다.

“고마워요. 화산도협님.”

“여기에서 기다리고 계십시오. 무림맹에 갔다가 내일 일찍 오겠습니다. 그가 언제 사라졌습니까?”

“다, 닷새 전에 연락이 끊어졌어요.”

“이런, 오 일이 지났다면 시간이 급할 수도 있겠군요. 이놈들은 분명 그를 어디론가 끌고 갈 것입니다.”

“아…… 제가 어떻게 하면 될까요?”

“빨리 움직여야지요.”

고진유는 황급히 무림맹으로 들어가야 했다.

“이보게, 정말로 이 일을 맡아주겠나?”

“특사조는 계속 유지되는 것이 맞습니까?”

“그렇네. 자네가 원한다면야…….”

“당분간 무림맹을 떠나도 되겠지요?”

“그거야…… 그를 찾아야 한다면 그래야겠지?”

“맹주님께서 허락하셨으니 바로 움직이도록 하죠.”

고진유는 바로 객잔을 나섰다.

씨익.

얼굴에는 미소가 나타났다.

‘잘됐어. 당분간 나갔으면 했는데 딱 마침 기회가 주는군.’

파아아앗!!

고진유는 호충신법을 펼치자 객잔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 * *

한밤중에 잠들었던 화산관이 깨어났다.

“아으…….”

눈을 비비며 회의실에 나오던 당우희가 고진유의 복장을 보았다.

“호정 사제, 어디 갔다 왔어?”

“잠시 마을에 다녀왔습니다.”

고진유가 무림맹을 나갔다가 온 사실을 아무도 몰랐다.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으응…… 알겠어.”

묵경은 물론 사형제들까지 한자리에 앉았다.

“방금 동화루에서 맹주님을 만나 뵙고 왔습니다.”

“맹주님과? 둘이서만?”

“그곳에 가니 맹주님과 함께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북해빙궁의 설미 소저라고 하더군요.”

번쩍!

다섯 사내의 눈이 뜨였다.

“어라? 전부 그녀가 누군지 알아요?”

“너어…….”

묵경은 손을 들어 고진유를 가리켰다.

“한미화를 몰라봤구나……?”

“대단하다. 어떻게 몰라볼 수 있지?”

“그러게 말이야. 그냥 봐도 엄청나게 예뻤을 텐데.”

“뭐어…… 조금 예쁘긴 하더군요. 그래도 저에게는 두 사저가 더 예쁘죠.”

“아하하!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네!”

장두총도 이어 말을 했다.

“나도 호정의 말에 동감이다. 우희가 더 예쁘지.”

퍽.

우종성이 옆에 있던 그의 옆구리를 가볍게 치고는 고진유를 재촉했다.

“호정, 계속 말해라.”

“하하, 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동화루에서 나누었던 대화 내용을 알려주자, 모두가 거의 숨소리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집중한 채로 고진유의 말을 들었다.

동화루에 다녀왔던 모든 내용을 알았다.

“진유 아우, 우리가 할 일은 뭐지?”

슥.

가장 눈치가 빠른 장두총이 손을 들었다.

“난 무조건 함께 간다.”

휘익!

동시에 사형제 모두 손을 번쩍 들었다.

고진유는 사형제와 한 명씩 시선을 마주쳤다.

화산관으로 돌아오는 길에 고민을 했었다.

설강을 납치한 인물이 지옥혈림이 맞다면 순순히 돌려줄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과 싸우게 된다면…….’

한 명이라도 인원이 많으면 좋았다.

“모두 함께 갈 것입니다.”

“우리 모두?”

“그를 구하는 과정에서 지옥혈림과 싸운다면 한번 신나게 붙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후후후, 자신이 있는 모양이구나?”

“붙어봐야 알겠지만, 우리가 질 것 같지는 않습니다. 사형들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사제가 안 진다고 하니 질 수 없지 않아? 사실 나도 지옥혈림과 붙어보고 싶었어. 그동안 놈들이 하는 짓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거든!”

“동의한다.”

혁자영도 한마디 했다.

무공이 강해진 이상 누구와 붙어도 질 것 같지 않았다.

장두총은 의욕이 솟구쳤다.

“잘됐군! 언제 떠날 거냐?”

“지금 바로 준비가 되는 대로 떠날 것입니다. 그가 납치가 된 지 오 일이 지났다고 합니다.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알겠다. 모두 호정의 말을 잘 들었지? 지금 바로 준비하도록.”

후다닥!

회의실에서 있던 사형제들은 하나둘씩 각자 침실로 빠르게 들어갔다.

마지막으로 묵경이 일어나 고진유를 보았다.

“……진짜 이유가 뭐야?”

순수하게 북해빙궁를 도와주겠다는 고진유의 말을 완전히 믿지 않았다.

“형은 진짜…… 하하.”

“처음에는 지옥혈림에게 복수하려고 그러나 싶었는데, 그건 아닌 것 같고. 그건 너무 단순하니까.”

“진짜 내 마음을 읽는 게 아닙니까?”

“뭐냐? 말해봐.”

“놈들이 철갑을 계속 달라고 하니 귀찮아서요. 밖에 나가서 잊어버렸다고 하려고요.”

“…….”

분명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고진유의 표정이 너무 진지했다.

“설마 그걸 믿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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