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사당을 짓는 신축 현장은 넓었다.
신주 지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가문에서 짓는 사당 공사.
평상시라면 바쁘게 움직여야 할 공사 현장이건만, 목수들은 힘이 빠진 채 서너 명씩 모여 있을 뿐이었다.
파숙과 인양은 현장을 도착한 뒤 주위를 둘러보았다.
“기운들이 빠진 모양인가 봐요.”
“작업을 지시하는 대목장이 죽었으니 당분간 일을 못하겠지.”
파숙은 무리 지은 채 앉아 있는 목수들 뒤로 가서 앉았다.
“이보게들.”
“누구시오?”
언제 머리를 감았는지 모를 정도로 머리카락이 덥수룩한 사내가 돌아섰다.
“하나 물어볼 게 있네.”
“…….”
사내는 기분이 상했다.
첫마디에 반말이라니.
스윽.
그가 파숙을 노려보며 앞으로 바짝 앉았다.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소?”
“없지. 처음 보는군.”
“근데, 왜 반말을 하슈?”
사내가 눈에 힘을 주었다.
피식.
파숙은 입가에 실소를 지었다.
“반말이 기분 나빴구만. 내가 나이가 많은 것 같아 실례했네. 포쾌 생활이 습관이 돼서…… 미안하게 됐소.”
“……!”
순간, 사내는 포쾌라는 말에 흠칫했다.
관부에서는 별 볼 일 없는 직책이지만, 일반인들에게 포쾌는 잘못 건드렸다간 큰일 나는 존재였다.
“아아, 놀라지 않아도 되오. 지금은 그만뒀소.”
“진작…… 말씀하시지요. 그, 무엇이 궁금합니까?”
포쾌는 그만뒀다고 해도 언제든 다시 복귀할 수 있으니, 사내의 태도가 누그러졌다.
“대목장이 죽었다고 들었소.”
“맞습니다. 어제저녁에 불에 타 죽었다고 들었지요.”
“잘 알고 있구먼. 혹시 그와 잘 알던 사인가?”
“사당의 책임자께서 데리고 온 인물이라 명성만 들어서 알 뿐 어떤 인물인지 잘 모릅니다.”
“그래도 그 하나가 빠졌다고 일을 아예 못하지는 않을 것인데…… 무슨 일이 있소?”
“대목장이 현장에 필요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렇지는 않지요. 우리가 일을 못하고 있는 건, 다른 목수 두 명도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외다.”
“두 명씩이나?”
“그렇소이다. 광동과 추당이라고, 평소엔 지각이라곤 하지 않는 녀석들이었는데…… 무슨 일인지 동시에 나오지 않았지요. 이게 무슨 난린지 원.”
‘그놈들이다.’
포쾌의 느낌이 왔다.
이춘광을 죽이고 불을 지른 두 명의 인물.
“자네, 혹시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짐작 가는 데가 있나?”
“혹시나 해서 사람을 보냈는데, 두 사람 모두 집에 없었다고 했소이다. 쌍눔의 새끼들이 또 투전판이나 간 게 아닌가 모르지요.”
“혹시 어디 간다고 들은 적도 없고?”
“어제저녁에 잠시 볼일 보러 간다고 한 뒤 들어오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더 묻지 않아도 알 듯했다.
파숙은 허리 뒤에 묶은 짐을 풀어 그 안에서 목탄과 두 장의 종이를 꺼냈다.
“잠시 내 일을 도와주면 술 한잔 거하게 사 주겠네.”
“술?”
술을 사겠다는 말에 사내들이 파숙의 곁에 바짝 다가앉았다.
“그 두 사람, 인상착의가 혹시 어떤가? 우선 추당이란 인물부터.”
파숙은 초상화를 그릴 준비를 했다.
“얼굴형은?”
“넓적합니다.”
“이마는?”
“음…… 약간 요 정도……?”
목수 하나가 손가락을 세 치 정도 벌렸다.
“아, 그리고 오른쪽 눈썹 위에 점이 하나 있지 않았나?”
“좋아.”
쿡.
파숙이 종이 위에 점을 찍었다.
“코는 어떤가?”
“크큭, 그게 작아서 코도 작습니다요.”
“입 모양은?”
“쭉 찢어진 입이라 메기를 닮았습니다.”
슥슥.
종이 위에 목탄이 움직이면서 얼굴이 점점 완성되기 시작했다.
“오오…… 와, 한 솜씨 하시는구만. 맞습니다. 이놈이 추당입니다요.”
사내들은 실물과 똑같은 초상화를 신기하게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광동이란 인물을 그려보세나.”
그리고 일각이 지나자 광동을 닮은 초상화가 완성되었다.
스르륵.
파숙은 초상화를 말아서 가슴에 넣었다.
“고맙군. 자자, 여기 나중에 한잔들 하게.”
허리에 찬 호주머니에서 은전 한 냥을 꺼냈다.
“이 정도면 실컷 마시는데 모자라지 않겠지?”
“아이고, 충분합니다요. 감사합니다.”
목수들의 입은 이미 귀에 걸려 있었다.
“저어, 근데 나리. 이 두 사람을 왜 찾습니까?”
“……이보게들. 내가 포쾌 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게 하나 있거든? 오래 살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가?”
“…….”
“봤어도 보지 않은 듯. 들었어도 듣지 않은 듯. 말하고 싶어도 벙어리인 듯. 마지막으로 내 일이 아니면 관심을 가지지 말라.”
“넵. 잘 알겠습니다.”
툭툭.
파숙은 사내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린 후 돌아섰다.
* * *
물건은 하나.
노리는 곳은 다섯.
‘중요한 물건임에는 확실하다.’
중원 무림에서 내로라하는 세력들이 철갑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다.
비밀이 아닌 비밀.
인양과 파숙은 무한으로 내려간 뒤 한 번도 연락이 없었다.
‘신변이 위험하거나 철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외에는 연락하지 않기로 약속했으니…… 아직 특별히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잘하고 있는 모양이야.’
똑똑.
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사님.”
군성창이 집무실로 찾아왔다.
“들어오세요.”
그가 안으로 들어서면서 허리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요?”
“청미화…… 아니, 조여하 소저께서 화산지 입구에 찾아오셨습니다.”
“유하랑, 그분도 함께 오셨습니까?”
“아닙니다. 혼자 오셨습니다.”
‘정말로 제집 드나들듯 오가려는 모양인데.’
“그렇군요. 알겠어요.”
“……?”
군성창은 조여하를 안으로 들여보내라는 건지, 아니면 그대로 두라는 것인지 망설였다.
“대사님, 조여하 소저를 안으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혼자 찾아온 그녀.
고진유는 달갑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그분과 함께 오면 만나주지 않을 거라 생각해서 혼자 온 모양엔데. 흐음. 군 특사, 만일 그대로 가만히 둔다면 젊은 사람들에게 수없이 쌍욕을 듣겠지요?”
“……그럴 겁니다. 갑자기 조 소저를 추앙하는 무리들이 생겼습니다.”
“별 웃긴 놈들도 다 있군. 좋은 밥 먹고 할 짓이 그렇게 없나?”
고진유는 고개를 저었다.
“접객실로 데리고 오세요.”
“저어…… 그곳에는 제갈 소저들이 있습니다.”
“그렇지. 접객실에 있을 줄은 몰랐군요.”
반시진 전 제갈서희와 제갈서하가 놀러왔다.
“어디로 모시면 되겠습니까?”
“매화정이 좋겠군요.”
“알겠습니다.”
그녀는 철갑에 관해 묻고자 찾아온 게 틀림없었다.
고진유는 집무실을 나선 뒤 생각에 잠긴 채 매화정으로 걸었다.
‘상당히 귀찮게 할 인물들이군.’
무구천은 다른 곳과 달리 끈질기게 철갑을 요구할 것 같았다.
이들을 떨쳐내기 위해서 좋은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고민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없으면 되잖아?’
복잡한 문제는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더 복잡해질 수 있었다.
아주 간단한 방법이 생각났다.
고진유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하하, 내가 생각해도 좀 똑똑한데.”
“또 잔머리 굴리고 있었구나.”
접객실에 있어야 할 묵경이 밖에 나와 있었다.
“들었습니까?”
“그렇게 큰 소리로 말을 하는데 당연히 들리지.”
“그렇군요. 생각하느라 옆에 있는 줄 몰랐어요.”
“무슨 생각을 했기에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냐?”
“나중에 말해줄게요. 근데 밖에 왜 나왔어요?”
“……몸 매무새를 정리할 일이 있어서.”
“왜요?”
“청미화가 왔다면서? 인사나 하려고.”
“형도 그녀를 추앙하는 무리 중 한 명은 아니겠죠?”
“무슨 말이냐? 내가 그녀를? 그냥 예의를 지키는 거지. 내가 누구냐? 중원의 모든 여인들에게 만인의 연인으로 추앙받는 이 몸이 그녀에게 잘 보이려고 굳이 신경 쓸 필요가…….”
“후후후, 맞습니다. 이각 뒤에 제갈 소저들과 같이 매화정으로 오세요.”
“왜?”
“서로 인사 나누면 좋잖아요.”
“……친하지 않을 텐데.”
“그건 그녀들이 알아서 하겠죠.”
“뭐, 알겠다. 그럼 여기서 기다릴 필요는 없겠네. 나중에 봐.”
* * *
조여하는 화산지로 들어선 후 매화정으로 향했다.
‘그다.’
정자 위에 홀로 앉아 있는 고진유가 보였다.
많은 사내를 만났지만, 자신을 무시하는 사내는 처음이었다.
인상을 쓴 채 매화정 가까이 다가섰다.
이마가 환하게 보일 만큼 앞 머리카락을 올린 모습은 처음 보았다.
눈썹 사이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콧등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내답게 생겼네.’
스윽.
고개를 돌린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
중원에서 오미화라고 하면 사내들에게 최고의 대우를 받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태껏 만났던 사내들의 시선과는 달랐다.
무관심.
‘쳇. 얼마나 잘났는지 두고 보자구.’
그녀는 매화정에 올라섰다.
“앉으시오.”
“…….”
고진유는 앉은 채 자리를 권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서 있었다.
“문제라도 있소이까?”
“일어나지 않는가요?”
“본도는 화산대사이외다. 예를 갖출 사람은 조 소저군요.”
“난 손님이지 않나요?”
“본도가 원하지 않는다면 불청객이지요. 매화정까지 부른 이유는 보는 시선이 많아서입니다.”
“흥…… 잘났군요.”
조여하는 앞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았다.
“그분은 어디에 계시기에 혼자 왔습니까?”
“맹주님을 만나고 계세요. 두 분은 많이 친하시거든요.”
“서로 친분이 있는 줄은 몰랐소이다.”
고진유는 그녀를 보지 않고 고개를 돌려 밖을 내다보았다.
“내가 여기에 온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지요?”
“마음에 들 리가 있소이까? 다른 이유로 왔다면 모를까. 무작정 물건을 달라고 요구하는 행동은 염치가 없소이다.”
“무림을 위한 일이 염치가 없는 일인 줄은 몰랐군요.”
“잠깐.”
고진유는 손을 올렸다.
무구천은 그들이 철갑을 찾는 일이 무림을 위한 일이라며 계속해서 주장했다.
“본도의 가슴에 무구천의 진정이 느껴진다면 무림을 위한다는 말을 믿겠소. 하지만 아직도 그대들을 믿지 못하겠군요.”
“왜 그런 생각을 하나요?”
“무구천은 본도에게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았소이다. 또한 극일천과 대항하여 싸운다는 증거도 없지요.”
“우리를 보면 믿을 수 있지 않나요?”
“풋. 소저도 농담을 할 수 있을지 몰랐습니다.”
“마, 말이 심하시네요.”
“오히려 반대이지 않습니까?”
“……!”
조여하는 기분이 상했다.
그에게서 철갑을 받아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대체 철갑을 어떻게 하실 생각인가요?”
“당연히 열어서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한 후 결정할 것이외다.”
“열쇠 없이는 함부로 열 수 없어요. 철갑을 열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다고요.”
“글쎄요. 본도의 감으로 좀 더 연구하다 보면 열릴 것 같은데…….”
“좋아요. 만일 그대가 철갑을 열 수 있다고 쳐요. 그럼 안에 든 물건을 우리와 공유할 수 있을까요?”
그녀는 이미 그 부분까지 생각한 뒤 찾아온 듯했다.
고진유는 피식 실소를 지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있소?”
‘이자가…….’
조여하의 손이 꿈질거렸다.
어딜 가더라도 놀림을 받은 적이 없었다.
“이봐요!”
앙칼지게 나온 목소리가 처음보다 커졌다.
단단히 화가 난 표정.
“당신이 아무리 강해도 홀로 그들을 이길 수 없어요.”
“본도는 혼자가 아닙니다.”
“화산파를 말하는 건가요? 화산파가 당신을 따라 줄 것이라 믿나요?”
“믿습니다.”
고진유는 바로 대답했다.
“바보 같군요. 극일천이 어떠한 곳인 줄 여전히 모르고 있어요.”
“소저가 본도를 뭐라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화산파는 믿을 수 있으니까. 그곳마저 믿지 못한다면 난 이미 무림을 떠났을 테지요.”
중원 무림에 극일천의 간자가 없는 세력은 없다.
심지어 무림맹에도 그들의 인물이 존재했다.
“화산파를 왜 믿는 건가요?”
“다른 이유는 없소. 사부님이 그리워하시고 사랑하셨던 곳이니까. 그리고 이제는 본도의 화산파이기 때문이지요.”
“그게 무슨…….”
“화산파는 내가 직접 끌고 갈 것이라는 말이오.”
“당신이 화산파의 장문인은 아니잖아요. 화산파를 어떻게 당신 뜻대로 움직일 수 있나요?”
“본 문을 천하제일문으로 만드는데 당연히 본도를 따라오지 않겠소이까?”
“천하제일문…… 이라고요?”
“그렇소. 내 목표가 바로 화산천하제일문이외다. 무림에서 최고로 높은 자리에 올라설 것이오.”
번쩍.
고진유의 눈동자에서 강렬한 눈빛이 쏟아졌다.
‘유, 유 사숙께서 말씀하시던…….’
패왕명안(霸王冥眼).
‘……내가 착각했어. 이자는 무림을 위해 싸우는 게 아니야.’
이제야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철갑을 주지 않는 이유.
그동안 무림에서 보여주었던 고진유의 행적들.
극일천과 싸우는 그를 보면서 무림의 평화를 위한다고 오해했다.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는 오직 한 길로만 걸었을 뿐이었다.
고진유와 부딪쳤던 사람들은 단지 그가 가는 길를 가로막았기에 싸우게 된 것이었다.
부딪치지 않았다면 그들을 먼저 건드리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자에게 무림의 안위는 상관이 없어…….’
그의 목표를 알았다.
화산파를 천하제일문으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
무림맹으로 오면서 유하랑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는 누구 말도 듣지 않아. 오직 자신만을 믿는 인물이지. 때문에 그를 상대할 방법은 두 가지뿐이다.”
그를 따르거나.
그를 이겨 무구천을 따르도록 만들거나.
‘이 사람은 절대로 우리와 같은 길을 가지 않아.’
중원의 많은 사람들이 속고 있었다.
그는 패왕의 길을 가야 하는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