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100화 (100/425)

100화

짝짝짝!!

화산관에 상주한 모든 인원들이 모였다.

녹림야검의 기습으로 부서졌던 매화정이 재완공되었다.

예전보다 더 멋진 정자가 만들어졌다.

“군 특사, 열심히 했어.”

“고맙습니다. 부서진 정자보다 더 좋게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정말요! 그동안 매화정이 없어서 불편했거든요.”

“고맙습니다.”

매화정으로 오르면서 군성창을 향해 수고했다면서 축하했다.

‘에이 씨, 저건 내가 전부 다 했는데…….’

군성창 뒤에 선 사내, 녹림야검은 입이 툭 튀어나왔다.

바닥과 기둥 전부 거친 결이 없도록 반들반들하게 잘 닦여 있었다.

“녹림 씨, 좋네.”

고진유가 매화정 아래에 앉아 있는 사내를 보며 엄지를 폈다.

“호민 사형. 여기 보수하는 데 비용은 얼마 정도 들었나요?”

“대략 은자로 백 냥 정도.”

“그럼 그동안 저자의 몸값과 숙박비,그리고 식량비까지 계산해서 금 백 냥을 요구하면 되겠네요. 녹림에 청구해 보도록 하죠.”

“녹림에 연락은 저 양반에게 물어보면 되나?”

“네.”

“공식적으로 비용 처리 요구서를 만들어서 보내면 되겠군.”

‘허…… 이런 어이없는 놈들이…….’

매화정 아래에 있던 녹림야검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봐. 녹림에 어떻게 연락해?”

* * *

파다다닥!

녹림구가 창가에 내려앉았다.

‘이건 녹림야검이 보낸 전서다.’

녹검당주 채마현은 전서통에서 빠르게 전서를 꺼내 들었다.

‘화산도협을 기습하는 데 실패했는데…… 탈출한 건가?’

전서를 빠르게 펼쳤다.

“야…… 이…… 망할 개놈의 도둑놈들이!!!”

채마현은 녹검당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일각 뒤.

녹천으로 들어선 채마현이 곧바로 대존원으로 향했다.

거대한 문이 그를 기다렸다.

“녹림대존을 알현하고자 하네.”

구우우웅-

천천히 열린 문 사이로 붉은빛이 흘러나왔다.

녹림대존 독영한의 적광기를 맞으며 그가 안으로 들어섰다.

“녹림대존님을 뵙습니다.”

“본존에게 찾아올 이유가 있는가?”

“무림맹에서…… 아니, 화산도협이 본 림에 서신을 보냈습니다.”

“화산도협이라 했는가?”

독영한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맞…… 습니다.”

“그가 어떻게 채 당주에게 서신을 보냈지?”

“녹림야검을 통해서입니다…….”

“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 정파 놈들이라 머리가 좋은가? 무슨 내용인지?”

“저어…… 그게…… 직접 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송구하옵니다.”

채마현은 그 자리에서 부복했다.

도저히 자신의 입으로 내용을 읽을 수 없었다.

독영한의 표정이 오묘하게 변했다.

“가지고 오게.”

채마현은 앞으로 다가선 뒤 두 손으로 서신을 내밀었다.

휘익.

독영한은 그의 손에 든 서신을 낚아채듯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서신을 소리 내며 읽었다.

“친애하는 녹림대존께. 흐음, 정파라 예의는 갖췄군.”

독영한은 다시 서신을 읽기 시작했다.

“귀 문의 인물이 여차저차해서 본관에 있는 매화정을 완전히 박살 내어 수리를 한 바…… 총 수리비와 귀문의 인질을 돌려주는 비용으로 금화 백 냥을 요구하는 바입니다.”

독영한은 말없이 서신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보았다.

“멋진 녀석이군.”

“…….”

“황당한 놈이고.”

“송구하옵니다.”

채마현은 다시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그만 일어나. 채 당주 잘못도 아니지 않은가.”

“아닙니다. 소신이 녹림야검을 보내 녹림대존님의 마음을 심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내가 허락한 일이니 신경 쓰지 마라.”

채마현은 조심스럽게 일어났다.

“어릴 적에는 그가 무영도수로 불렸다고 했나?”

“그렇습니다. 한때 벽화당이란 곳에서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럼 동문 출신이군.”

“…….”

“나도 산적이 되기 전까지는 마을에서 제법 손이 빨랐지. 이상하게 처음부터 정이 간 이유가 있었어.”

타아앙!

독영한은 녹림좌의 팔걸이를 내리쳤다.

“그 녀석에게 연락하게.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노, 녹림대존님.”

“대신, 우리도 받을 게 있으니 만나서 결정을 짓는 것이 어떠냐고 전하게.”

“알겠습니다. 바로 연락을 보내겠습니다.”

채마현은 가슴이 놓였다.

화산도협이 보내온 서신에 불같이 화를 낼 줄 알았건만 오히려 기분이 좋은 듯했다.

마음이 편해진 탓인지 녹천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쿠우웅!

대존원의 문이 닫혔다.

독영한은 자리에 앉은 채 인상을 찡그렸다.

두껍고 진한 눈썹이 거의 붙을 정도였다.

‘……신경 쓰이는군.’

주위를 맴도는 기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딱히 상황은 변화가 없지만, 점점 신경을 거슬리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녹림비를 풀어야겠어.’

* * *

‘이들이 왜?’

불청객이 불쑥 찾아왔다.

고진유는 매화정에 앉은 노인과 여인을 바라보았다.

고독기검 유하랑과 청미화 조여하.

두 사람의 등장으로 무림맹이 들썩거렸다.

두 사람과 인사를 하기 위해 무림맹의 많은 무인들이 화산지 앞에 모였다.

특히 그들 중 젊은 사내들이 유독 많았다.

“생각대로 반가운 표정이 아니군.”

두 사람도 고진유가 그들을 반길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유를 알지 않습니까.”

“…….”

무구천에서 원하는 것 또한 철갑이었으니까.

두 사람을 부른 이는 변후공이 분명했다.

“그가 두 분을 부른 것은 실수인 것 같군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달라질 게 없다는 뜻입니다.”

“허허. 그대는 초반부터 말을 못 하게 하는군.”

화산관을 주시하는 다섯 개의 기들.

‘극일천, 녹림, 지옥혈림, 무림맹, 마지막으로 무구천.’

다른 네 곳은 이미 어떤 방식으로든지 화산관을 찾아왔다.

고진유 또한 마지막으로 무구천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조여하는 불청객 취급하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들은 중원 어디에 가도 항상 귀빈 대접을 받았다.

“화산도협의 명성이 하늘을 뚫고 올라가더군요. 축하드립니다.”

“조 소저, 무림의 명성이 올라간들 무엇이 좋겠소이까? 그만큼 시기도 많아지는 법이니 딱히 축하할 일은 아니외다. 난 조용히 살고 싶은 사람이오.”

“흐음, 꼭 성인군자처럼 대답하는군요.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명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던데.”

“조 소저는 소인들만 만난 듯하군요.”

조여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지금껏 만난 사내들은 그녀에게 한 번이라도 잘 보이기 위해 항상 웃으며 아부를 떨었다.

하지만 그는 관심은커녕 오히려 늘 못마땅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흠흠.”

유하랑이 조여하를 말리려고 일부러 기침했다.

그녀는 눈을 흘기며 말문을 닫았다.

유하랑이 얼른 나섰다.

“그대가 이유를 안다고 하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겠네.”

“잠깐.”

고진유는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았다.

“무엇인가?”

“제가 굳이 두 분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유가 있습니까?”

“무림을 위한 일이기 때문이네.”

고진유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위한 게 아니라 무림을 위하는 거라는 말을 무림인들은 누구나 스스럼없이 했다.

하지만 정말로 무림을 위하는지 물어보고 싶었다.

무구천의 목적이 중원 무림을 위해 극일천을 막는 거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말하지만 그가 두 분을 부른 것은 실수한 듯합니다.”

“…….”

“제게서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무슨 말을 하더라도 지금과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화산도협, 이건 감정으로 결정 내릴 일이 아니네.”

“제가 무슨 한두 살 먹은 애도 아니고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겠습니까. 충분히 생각한 뒤 하는 말입니다.”

“허허…… 이거 참.”

유하랑은 할 말이 없었다.

너무나 단호한 뜻을 지니고 있었다.

“그럼 하나만 물어보고 가겠네. 이것만은 똑바로 말해주게.”

“물어보시지요.”

“철갑을 자네가 가지고 있는 게 확실한가?”

“……철갑을 보여 드릴까요?”

“……!”

유하랑의 눈빛이 고진유의 얼굴을 뚫어지도록 보았다.

“지금 나와 농담을 나눌 위치는 아니지 않은가?”

“농담을 나눌 위치라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그건 말일세. 바로 이것이라네.”

슈욱-

유하랑은 앉은 자리에서 손을 뻗었다.

무형지검.

타앗!

고진유가 눈앞으로 쇄도한 유하랑의 손을 가볍게 쳐냈다.

“간결해서 좋군.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게 있지.”

옆으로 비켜간 손 뒤로 반대편 손이 긴 타원을 그리며 옆을 노렸다.

유하랑의 특유의 무형검.

짧게 다가온 듯하면서도 길게 뻗어 나온 손이 고진유를 압박하는 데 성공하는 듯했다.

하지만,

휘익!

그의 무형검이 고진유를 그대로 지나쳐 갔다.

‘분명 허상이 아니었다.’

어떻게 벗어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많이 궁금하신가 보군요.”

“……!”

재빨리 방어하기 위해 손을 거두어들이는 순간, 유하랑의 가슴이 훤히 드러났다.

푹.

물러날 틈도 없었다.

고진유의 중지가 정확히 유하랑의 가슴을 겨눴다.

만일 손가락이 진검이었다면 단번에 즉사였을 터.

“이 정도면 서로 동등한 위치인 것 같습니다.”

“……!”

유하랑은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

중원상국에서 한 번 겨눈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제대로 싸운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검을 제대로 들어도 이긴다는 보장이 없겠군.’

고진유의 무공이 새롭게 보였다.

“강해졌군.”

그의 한마디 말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하랑은 혼란스러웠다.

그가 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허허, 늙은이가 놀랐으니 안정을 취해야겠구먼.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네.”

“또 오시겠다는 것입니까?”

“잠시 몸이 안 좋아서 가는 것이니 나중에 괜찮아지면 다시 오겠네.”

“힘드시면 굳이 오시지 않아도 됩니다. 나중에 온다고 해도 답을 같을 테니까요.”

“귀찮아서 그런가? 허허, 다음에 보세나.”

“화산지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번에는 인사차 받아드린 것입니다.”

“허허허. 알아서 하시게. 내가 이래 봬도 중원오기인지라 맹에서 가지 못하는 곳은 없네만.”

유하랑이 몸을 일으켰다.

“입구까지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고맙구려.”

“가시지요.”

고진유는 먼저 매화정을 내려와 화산지 입구로 향했다.

그 뒤를 유하랑과 조여하가 따랐다.

웅성웅성.

화산지 입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금세 소란스러워졌다.

청미화 조여하의 존재는 젊은 무인들이 관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오오…… 청미화다.”

“오미화를 직접 보게 되다니 이건 꿈일 거야…….”

화산지에 가까워지자 조여하의 입가에 환한 미소가 나타났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진유에게 똑바로 보여주고 싶었다.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고진유는 간단히 포권한 뒤 안으로 돌아갔다.

‘……흥. 잘난 체하기는.’

* * *

녹림에서 보낸 전서가 도착했다.

녹림야검이 전서를 꺼내 고진유에게 전해주었다.

과연 녹림에서 금화 백 냥을 준다고 할지.

이는 현재 화산관 최대의 관심사였다.

“……녹림대존이라는 사람도 보통이 아닌가 봅니다. 우리에게 받을 게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녹림에 빚 진 게 있던가?”

묵경도 마땅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묵경 형, 복우채를 박살 낸 것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아…… 근데 그건 무림맹에게 요구해야 하는 게 맞지 않나?”

“금화 백 냥을 주긴 주겠는데 녹림에서도 받을 돈이 있으니 서로 계산 뒤 정리하자는 뜻이군요. 쉽게 말해서 우리가 달라는 것을 그대로 주긴 싫다는 말이겠죠.”

“어떻게 할 테냐? 만나서 이야기하자고 하는데?”

고진유는 녹림야검 앞에 다가가 앉았다.

“녹림에서 당신 목숨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가 보오. 협상을 하고자 하는 걸 보니.”

“…….”

“그런데 난 굳이 당신네들과 협상할 생각이 없소.”

녹림야검은 풀이 죽었다.

어차피 기대조차 하지 않았지만, 녹검당주만이라도 혹시나 자신을 구하고자 하지 않을까 싶었었다.

“그래서 한 번 더 서신을 보낼까 합니다만, 혹시 녹림에서 거절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소? 대충 들어 보니 녹림은 천하의 요새라고 하던데. 몰래 들어갈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다든지? 굳이 알려달라는 건 아니고,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하고 싶소.”

“…….”

녹림야검은 마음이 흔들렸다.

적에게 잡혀 죽는 게 두렵지는 않았다.

그런데 녹림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았는데 그들이 자신을 이미 죽은 돌로 취급하는 것이 화가 났다.

“……방금 말한 것처럼 하나 있습니다.”

“그렇소? 잘됐군요. 어서 말해보시오.”

“…….”

녹림야검은 순간 잘못된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잠시 뒤.

녹림을 향해 전서구가 날아갔다.

<귀문이 통보했던 제안을 거절하는 바이오.

본인이 마지막으로 제안하겠소.

녹림에 몰래 침입할 수 있는 비밀 통로가 있더군요.

아직 본인밖에 모르니, 입을 막고 싶다면 직전에 통보했던 금액과 더불어 황금 천 냥을 보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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