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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99화 (99/425)

99화

화산관에 돌아왔다.

비맹전으로 갔을 때랑 다른 점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나?’

안으로 들어서자 평소처럼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었다.

“늦었네.”

수건을 어깨에 메고 욕실에서 나오는 곽우와 마주쳤다.

“호민 사형, 어떻게 됐어요?”

“예상대로 사제가 비맹전으로 가자마자 두 놈이 기어들어 오더군.”

“잡았습니까?”

“후후후. 당연히.”

“어디에 있습니까?”

“부식 창고에 던져놓았어.”

“수고하셨어요.”

“수고라고 할 게 있나. 확인도 안 하고 무작정 들어온 저놈들이 머리가 나쁜 거지.”

밖에서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리자 묵경이 나왔다.

“진유 아우, 왔어?”

“두 놈을 잡았다면서요?”

“아우가 돌아오면 심문하려고 그냥 두었어. 가볼까?”

“네.”

고진유와 묵경이 화산관을 나와 건물 뒤를 돌았다.

부식창고는 음식들을 보관하기 위해 석조로 되어 있었다.

창고 앞은 장두총과 군성창이 앉아서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고진유와 묵경이 오는 것을 보며 일어섰다.

“지금 오는 거냐?”

“두 분, 고생 많으시네요.”

“개미 한 마리 들어가지 못하게 잘 지키고 있는 중이다.”

“수고하셨어요. 한번 볼까요?”

군성창은 창고 문을 열기 위해 다가섰다.

끼이익-

순간, 문이 조금 열리는 틈 안으로 섬광이 번쩍거렸다.

“뭐, 뭐지?”

“키키키키키키…….”

잡아두었던 두 복면인이 바닥에서 전신을 비틀며 괴음을 지르고 있었다.

뚝.

그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뚝…… 뚜둑…….

다시 괴음을 낸 괴인의 목이 문 방향을 향해 천천히 돌아갔다.

“괴물……!”

“크, 크크, 크크크큭…….”

붉은 눈동자에, 이마는 마치 뿔이 튀어나온 것처럼 보였다.

“허억……!!”

군성창은 그들의 괴기스러운 모습에 저도 모르게 뒤로 물러났다.

“저, 저놈들이 여기 왜 있는 거야?”

화들짝 놀란 장두총이 검을 뽑았다.

타아아앗!

하지만 괴인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바닥에 기괴한 자세로 사지를 뻗어내던 두 괴인이 군성창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악!

장두총이 앞으로 나섰다.

“물러나지 못할까!”

그의 우렁찬 목소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천둥 같았다.

번쩍!

류화검에서 쏟아진 검광이 괴인들을 향해 떨어졌다.

“카아아아……!!”

장두총의 일검에 두 명의 괴인이 뒤로 밀려났다.

제대로 가슴을 벤 듯했지만 상처 하나 보이지 않았다.

“금강불괴인가? 이거 재미있겠어.”

장두총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파지지직- 파직-

류화검에서 강한 전기가 흐르는 소리가 강렬했다.

그동안 갈고닦은 뇌전화검.

화산의 검에서 가장 익히기 어려운 만큼, 팔 성을 넘어서면 적수가 없을 정도로 강한 검이었다.

“군 특사, 문 닫으시오.”

“도, 도사님……!”

군성창은 정말로 장두총만 창고에 혼자 두고 문을 닫아야 할지 망설였다.

그때, 뒤에서 고진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닫으세요.”

“아…….”

끼이이-

군성창은 창고의 문을 닫으면서도 그가 걱정이 되었다.

“사형을 믿으세요. 괜찮을 겁니다. 무공이 팔 성을 넘었으니, 웬만한 사람들은 사형의 뇌전화검을 받아내기 힘들어요.”

우우우웅-

류화검에 흐르는 뇌전기가 강해질수록 검신을 따라 퍼져 나간 빛이 강렬해졌다.

휙! 휘익! 휙!

괴인들의 움직임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놈들이 창고 안을 어지럽게 날아다니며 그의 빈틈을 노렸다.

타아아앗!

천장으로 튀어오른 괴인이 장두총의 좌우에서 동시에 아래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괴수를 휘두르고 뻗었다.

‘빠르지만, 사제의 주먹보단 훨씬 늦어.’

슈우우욱!!

피이이잇!!

장두총의 목과 가슴을 향한 괴수가 빗나가면서 허공을 갈랐다.

타아아앗!!

연이어 바닥에서 그대로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괴인들이 장두총의 정면을 향해 달려들었다.

치지지직-!!

류화검에서 강한 내력이 흘러나왔다.

“하하, 어떠냐? 이렇게 되기까지 내가 그 개고생을 했다고!!”

장두총은 스스로 뇌전화검을 택했지만, 한계에 부딪혔다.

뇌전화검을 완벽히 펼치기엔 내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국 그는 방법을 얻기 위해 고진유를 찾아갔다.

“사제,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가요?”

“호, 혹시 내력을 높이는 방법을 아, 아냐……?”

“사형의 무공은 내력을 높인다고 되는 게 아니던데요?”

“엉?”

“뇌전화검은 내력을 폭발시키는 무공 같더군요.”

장두총은 순간 머리를 강하게 맞은 듯 했다.

지금까지 무공을 펼치는 방법이 틀렸던 것이었다.

“제가 한 가지 수련법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많이 괴로울 겁니다.”

“수련이 고통스러운 건 당연하지! 방법이 있다면 뭐든 상관없어!”

단전에 새로운 단전을 만드는 시도.

고진유는 이를 겹단전이라 했다.

무림 역사상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미친 짓이 틀림없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장난인 줄 알았다.

하나 고진유는 진지했고, 며칠 뒤 장두총은 지옥을 맛봤다.

‘지금 생각해도 망할 놈이야.’

예전의 복수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장두총은 고진유와 비슷해지는 것은 이제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냥 사형제들과 비슷한 수준만 돼도 좋았다.

그리고 그 미친 짓은 성공했다.

그 과정에서 고진유가 곁에 없었다면 세상을 떠났을 테지만.

“마침 팔 성을 넘었으니 어디서 몸 좀 풀어보고 싶었다, 이놈아! 크하하하!!”

장두총의 웃음소리가 오히려 괴인들보다 더 컸다.

눈앞까지 쇄도한 괴인들의 괴수.

푹!

장두총은 류화검을 창고 바닥에 강하게 꽂았다.

쏴아아아아아-!!

창고 바닥에 피어난 투명한 매화가 뇌전을 일으키며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치지지지지직-

그리고 순식간에 괴인들의 전신에서 백색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아!!”

“카아아아악……!!”

괴인들은 창고가 떠나가도록 비명을 질렀다.

슈우욱.

장두총이 류화검을 뽑아 올린 순간, 허공에 떠 있던 괴인들이 시커멓게 탄 채 바닥에 떨어졌다.

‘허어…… 이 정도의 위력을 내가 냈다고?’

뇌전화검을 직접 펼치고도 믿기지 않았다.

‘호정, 그 녀석이 손만 대면 이상하게 변해서 겁이 날 정도야. 함부로 무공에 손을 못 대게 해야겠어.’

씨이익.

어느 정도 흥분이 진정되자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정도면 이제 민폐는 되지 않겠지. 다행이야.”

끼이이익.

창고 문이 열렸다.

군성창이 얼른 안으로 들어온 뒤 상황을 살폈다.

‘대사님의 말씀이 맞구나.’

창고 바닥에 괴인인 듯한 시신 두 구가 시커멓게 탄 채 널브러져 있었다.

휘익!

그리고 고진유와 묵경이 들어오기도 전에, 창고 안으로 연자련이 뛰어 들어왔다.

“호경……! 여기 왜 이래? 누가 그랬어?”

“아! 그게 내가 이놈들을 몽땅!!”

“아이 참! 굳이 안에서 왜 싸워? 밖에 데리고 나와서 싸워도 되잖아!”

“엉?”

“정말…… 여길 어떻게 다 정리하니? 완전 생난리도 아니네. 난리 친 사람이 치우는 거야. 알지? 네가 깨끗하게 다 치워야 해!”

“어…… 미안.”

장두총은 머리를 긁적거리며 그 자리에서 쏟아진 음식 재료들을 치우기 시작했다.

군성창은 슬쩍 눈치를 보다 그와 함께 떨어진 부식 재료들을 주웠다.

‘여기 대세는 호화 님이시구나.’

* * *

툭툭.

고진유는 불에 탄 시체를 건드렸다.

“갑자기 괴인의 몸으로 변했다면 창고 안에서 무엇인가를 복용했을 수 있겠군요.”

“그건 아니야. 창고에 던져놓기 전에 몸을 수색했어.”

곽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들의 옷은 물론 심지어 자살하지 못하도록 입안까지 살폈다.

“아니면 여기로 오기 전에 미리 뭔가를 장치했던가요.”

“그럴 수도 있겠군. 그건 그렇고, 호경에게 뭘 가르쳐 준 거야? 완전히 구워 버렸는걸.”

“뇌전화검의 위력이 대단하긴 하지만, 이 정도까지라곤 저도 생각 못 했습니다. 사방이 갇힌 상태에서 펼쳤기 때문인가 봐요.”

곽우와 고진유는 부식창고를 향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장두총은 아직도 정리가 끝나지 않은 듯 구시렁거리면서 청소를 하고 있었다.

“이 시체는 어떻게 하지?”

“한적한 곳에 묻어주죠.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러자.”

불에 탄 시신에서는 더 찾을 게 없었다.

“이젠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지 않겠지?”

“아마 전부 봤을 겁니다. 이제 죽고 싶지 않다면 쉽게 못 들어올 테죠.”

고진유의 말처럼 멀리서 그 장면을 지켜보는 시선들이 많았다.

‘빨리 보고를 해야겠어.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죽음이야.’

* * *

남궁한의 죽음을 슬퍼하는 인물은 없었다.

‘……비정하군.’

물론 검황 남궁천문이 살아 있었다면 분명 달랐을 것이었다.

하지만, 흑룡군의 군장 남궁진에겐 죽은 남궁한이 조카라는 것보다 세가주 검황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었다.

남궁한을 죽인 범인을 찾고자 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이는 남궁대사인 남궁강 또한 마찬가지.

현재 그의 관심사는 새로운 세가주였다.

“지금 바로 돌아가겠다고 하니 잘됐네.”

“…….”

남궁강의 표정은 밝았다.

그의 존재가 부담스러운 것이 보였다.

남궁관을 나서는 남궁무명의 가슴이 무거웠다.

그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다.

남궁세가에 돌아간다고 한들 마찬가지일 거라 확신했다.

‘그곳에 돌아가야 하나?’

이제 남궁세가에서 자신을 반겨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오직 유일한 가족은 돌아가신 검황 남궁천문뿐이었다.

이제는 그도 없었다.

‘돌아간다고 해도 더 이상 편히 지낼 순 없겠군.’

남궁무명의 걸음이 멈췄다.

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가 가야 할 곳은 남궁세가가 아니었다.

혈사천에 가서 천살지인을 만나 원수를 갚아야 했다.

그동안 기운이 빠진 듯 굽어 있던 그의 어깨가 펴졌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야 해.’

남궁무명의 걸음에 다시 힘이 들어섰다.

* * *

무림맹을 나선 뒤 빠르게 움직였다.

관로를 벗어난 뒤 인적이 드문 길에 들어설 때였다.

남궁무명은 신법을 멈췄다.

‘꼬리가 붙었군.’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주위에 흐르던 기 중 돌아가면서 나타나는 동일한 기가 느껴졌다.

전형적인 미행 수법.

‘어떤 놈이 나를 미행하지?’

무림에 나선 적도 없었다.

오직 호천수호대주로서 가주 남궁천문의 곁에 있었을 뿐.

무림맹에 오면서도 시비가 붙은 적이 없었다.

파앗!

남궁무명은 신법을 펼치며 신형을 숨겼다.

‘사라졌다. 어디로 갔지?’

숨은 채 지켜보던 열 명의 시선들이 눈앞에서 그가 사라진 장면에 당황했다.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미행 중이라 자신했으니, 목표가 사라져도 들켰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멍청한 놈들.”

‘뒤다!’

열 명의 무인들이 허리춤에 찬 검을 동시에 잡았다.

“거기까지. 만일 조금이라도 검이 움직인다면 죽는다. 돌아서라.”

‘남궁무명…….’

그는 호천수호대주였다.

가주의 호위를 담당하기 위해서는 무위가 강해야 한다.

그리고 검황 남궁천문은 그 자리에 남궁무명을 앉혔다.

“내 아들 중 가장 강하다.”

세가인들은 가주의 말을 인정했지만, 남궁무명이 정말 강한지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감히 검황의 말에 반박할 수 있는 남궁세가의 인물은 없었으니까.

“죽여라!”

한 명의 사내가 소리치며 검을 뽑은 뒤 돌아섰다.

휘이이익!

스걱.

그를 따라 아홉 명의 사내들도 뒤로 돌아서며 검을 휘둘렀다.

채앵!

남궁무명은 열 개의 검을 가볍게 쳐내며 상대를 밀어냈다.

그리고 상대를 확인한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당신들은……!”

살수 전문인 남궁 무력대의 대연군 소속.

남궁무명은 일대주 육홍을 보며 살기를 뿜어냈다.

남궁세가에서 자신을 죽이려고 했다.

“……이런 미친 짓을 한 인물이 누구냐.”

“…….”

육홍은 그의 살기에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세가에서…… 나를…….’

아무리 혼외 자식이라 하나, 그 또한 남궁세가의 사람이 맞았다.

무시를 할지언정 죽일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누구 짓이냐고 물었다.”

“그, 그건 말할 수 없소.”

“말을 해야 살 수 있을 것이다.”

“남궁무명, 우리와 싸운다면 세가와는 남남이 될 것이오. 조용히 마무리를 짓는 게 어떻겠소?”

“조용한 마무리라는 게 내가 죽어야 한다는 것인가?”

“…….”

“하…… 죽는 마당에 조용한 마무리라니. 웃기는군.”

척!

“대연살진을 펼쳐라!”

육홍이 주먹을 쥔 손을 올렸다.

팍팍팍팍팍!!

그를 포함한 열 명이 동시에 검진을 만들었다.

“이까짓 검진으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믿는가?”

남궁무명이 천천히 움직였다.

‘일부러 검진에 들어섰다……?’

핏핏핏핏!!

검진에서 남궁무명만을 노리고 쏟아내는 검기의 기운이 강렬했다.

하지만 남궁무명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육홍의 앞으로 한 걸음씩 내딛는 발자국 아래에서 황금빛의 기가 퍼져 나갔다.

‘이건…….’

육홍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창천황신공(蒼天皇神功).

남궁세가 최고의 기재라 알려진 남궁한조차 익힐 엄두가 내지 못했던 극강의 내공.

이제야 남궁천문이 했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알았다.

‘큰일 났다. 세가에서 안고 가야 할 인물을 내쫓아냈어.’

번쩍!

남궁무명의 검이 점점 황금색으로 물들었다.

“커억!!”

그의 검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한 번의 움직임에 검진이 깨지고, 뜨거운 검이 육홍의 가슴을 베고 지나갔다.

남궁무명의 검에 그들은 일초지적조차 되지 않았다.

“이 검이 무엇인지 아는가? 아버지께서 나를 아들이라고 부른 그날 주신 검이다.”

창천황검의 검끝이 그를 겨눴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네놈을 보낸 자가 누구냐.”

“…….”

“세가를 위해 목숨을 버리려는 충성심은 높이 사지. 다만 당신이 죽는다고 해서 그가 고마워할지는 의문이군…… 대연군부터 족치면 결국 내 목숨을 노린 자가 누구인지 알게 될 테니 입을 다물어도 상관없지만, 그때가 되면 그대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것이오.”

육홍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이내 그의 말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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