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95화 (95/425)

95화

“오늘을 그만들 마치세나.”

사당을 짓는 공사 현장.

날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십여 명의 목수들이 각자 도구들을 챙기며 하나둘씩 하던 일을 멈추고 일어났다.

“어이, 춘광이.”

사당 공사의 책임자가 다가왔다.

이춘광은 얼른 그를 보며 고개를 숙였다.

“대인, 오셨습니까?”

“사당 공사는 언제쯤 끝이 나겠는가?”

“아무리 못해도 다음 주 정도면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듯합니다.”

책임자는 사당을 둘러보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허, 그렇군. 역시 소문대로 솜씨가 좋아.”

“고맙습니다.”

“사당이 완성되면 어르신께서 자네들에게 후히 보답하겠다고 하시더군.”

“아닙니다. 지금 받는 돈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건 내가 주는 게 아니니 그때 이야기하세나! 허허, 내일도 잘 부탁하겠네.”

그는 이춘광의 어깨를 두드려 준 뒤 기분 좋게 돌아갔다.

스윽.

두 명의 사내가 이춘광의 곁으로 다가왔다.

“대목장님, 일도 끝났겠다, 좋은 곳에 가서 딱 한 잔만 마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어허, 이 사람들이…… 내가 저번에도 말을 하지 않았던가. 일을 하는 도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아 그냥 한 병만……!”

“됐네. 자꾸 그러면 내 현장에서는 일하지 못하네. 그만 돌아가게나.”

“…….”

이춘광은 그들을 뒤로 둔 채 먼저 숙소로 향했다.

“쳇. 뭐야? 솜씨 좀 있다고 뻐기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말이야. 우리보다 돈도 세 배로 받으면서 지금까지 술 한잔 사준 적 없잖아? 세상에 저런 짠돌이는 처음 봤다.”

휙휙.

그때, 얼굴 한쪽에 상처 자국이 있는 사내가 주위를 살피며 조용하게 말했다.

“……이건 비밀인데, 대목장이 자기 숙소에 엄청나게 많은 돈을 숨겨놓았다고 하더군.”

“어어? 그게 정말인가?”

“저번 쉬는 날에 우리 집 여편네가 대목장에게 음식을 주려고 가지 않았나. 그때 대답이 없길래 방에 넣어두고 가려고 문을 열었더니, 허겁지겁 돈이 든 상자를 숨기고 있었다는 거야!”

“돈 상자가 확실해?”

“그렇다니깐? 자네도 알지 않나, 우리 여편네가 눈이 얼마나 밝은지?”

끄덕끄덕.

순간 그들의 시선이 마주쳤다.

두 눈은 탐욕의 눈빛으로 가득했다.

* * *

슬금슬금.

어둠 속에서 복면을 쓴 두 명의 사내가 집안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날카로운 단검을 쥐고 있었다.

한 사람이 불이 꺼진 방을 가리켰다.

스으윽-

문을 조심스럽게 밀자, 방 안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두 사내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정도 어둠이 눈에 익었는지 방 안에서 자고 있는 이춘광이 보였다.

툭툭.

“으으…… 누구…… 허어억……!”

부스스 깬 이춘광의 눈앞에 단검이 들이밀어졌다.

“조용히 해라.”

눈을 뜬 그는 화들짝 놀라며 몸을 움찔거렸다.

“도, 도둑……! 커어억-”

복면인은 얼른 단검을 목에 가져다 대며 입을 막았다.

“조용히 안 하면 죽는다.”

“목숨…… 만은…….”

“조용히 해라. 우리 말만 잘 들으면 살려주겠다.”

“네…… 알…… 겠습니다.”

이춘광의 목소리가 떨렸다.

복면 도둑은 방 한구석을 가리켰다.

“이봐. 저기 안에 있는 물건들을 꺼내.”

‘저, 저긴 아무도 몰래 숨겨놓은 장소인데…….’

쿠욱.

복면 도둑들이 어떻게 그 사실을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단검이 이춘광의 목을 짧게 찔렀다.

목을 타고 뜨거운 피가 흘러내렸다.

“죽고 싶나? 빨리 안 움직이면 이게 목 뒤로 튀어나올 수 있다고.”

이춘광은 정신이 없었다.

목 바로 위에서 느껴지는 단검의 날에, 그들이 누구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살기 위해 재빨리 방구석으로 다가갔다.

“꺼내.”

이춘광은 공간 안에서 돈이 들어 있는 목상자를 꺼냈다.

“여, 여기 있습니다…….”

“저건 뭐야?”

목상자를 건네받은 복면인이 비밀 공간 속에 숨겨져 있는 또 다른 상자를 발견했다.

어둠에 잠겨 있었지만 언뜻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철갑.

“……아무것도 아닙니다.”

퍼억!!

복면인이 이춘광의 뒤통수를 내리쳤다.

“아무것도 아니라면서 왜 숨겨 놨어? 저것도 꺼내.”

“……저건…… 그냥…… 안 됩니다.”

“이 자식이……!”

“그냥…… 철갑입니다. 돈이 든 상자는 이거 하나밖에…….”

이춘광은 절대로 줄 수 없다는 듯 버텼다.

옆에서 돈이 든 상자를 확인한 동료 복면인이 다그쳤다.

“이봐. 뭐 하고 있어. 빨리 가자.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잖아.”

“광동이, 조금만 기다려 봐.”

“……?”

복면인은 순간 흠칫했다.

“뭐어…… 광동이?”

곧바로 이춘광이 복면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이 새끼들이……! 네놈들은 광동, 추당, 두 놈이 맞지? 감히 어디서 도둑질을!!”

그때,

푸욱!

“허억…….”

“커어어억…….”

이춘광이 흥분하면서 갑자기 움직인 탓에 목에 대고 있던 단검이 그대로 뒤로 관통했다.

주르륵-

방 전체로 피가 솟구치며 퍼져 나갔다.

숨이 넘어가며 바들거리던 이춘광은 온몸이 축 처지면서 바닥 위로 쓰러졌다.

‘젠장할…….’

돈만 훔치고 달아나려던 계획이 완전히 틀어졌다.

“망할……!!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아, 씨바. 어떻게 하긴. 빨리 가지고 나가야지. 어차피 우릴 본 사람은 없어!”

추당이 짜증을 내며 손을 뻗어 숨겨 진 철갑을 꺼냈다.

손에서 차갑고 묵직한 느낌이 났다.

괜히 만져서는 안 되는 물건을 건드린 것처럼 섬뜩했다.

‘이 물건 때문에 사람을 죽였어.’

추당은 방에 있던 이춘광의 옷으로 철갑을 감싼 뒤 밖으로 빠져나왔다.

먼저 나간 광동의 손에 횃불이 들려 있었다.

“그건 왜?”

“증거를 없애야지.”

“…….”

모든 것을 태워 버리겠다는 의미였다.

“광동, 그건 너무 심하지 않아? 다른 곳으로 번지면…….”

“네놈이 잡히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목상자를 넘기든지.”

“…….”

추당은 입을 다물었다.

휘이익!

둘은 돌아가면서 집에 불을 붙이기 시작했다.

* * *

‘나 참, 무림맹주가 오라고 하니 어쩔 수 간다만…… 너무 자주 부르는데.’

황보강의 급한 연락에, 고진유는 입이 툭 튀어나왔다.

귀찮았다.

뚱하게 맹주전 무림정자로 향하자, 멀리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한 명은 당연히 익숙한 무림맹주 황보강이었다.

‘어딜 가더라도 황보세가의 신력을 지닌 육체를 못 알아볼 수 없지.’

그 옆에는 처음 보는 노인이 앉아 있었다.

십 장 이상 떨어진 곳까지 노인의 기이한 느낌이 밀려왔다.

‘아…… 이런 느낌은 싫은데.’

은근히 주눅 들게 만드는 노인일 것이 분명했다.

가까이 다가서자 노인의 모습이 자세하게 보였다.

어디선가 마주친 듯한 익숙함.

‘……제갈세가의 어르신이군.’

중앙상국에서 만났던 신안 제갈기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화산대사, 올라오게나.”

황보강이 먼저 알은척을 하며 반갑게 맞이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어서 오게.”

황보강은 자연스럽게 친한 사이처럼 손을 뻗어 고진유의 어깨에 올렸다.

“여기 이분을 소개해 주겠네. 본 맹의 총군사이신 제갈문 어르신이시지. 한동안 제갈세가에서 지내시다가 조금 전에 무림맹으로 돌아오셨어. 오시자마자 자네를 보고 싶다고 하시더군. 귀찮은 줄 알지만 불렀다네. 하하하!”

“제갈문 총군사님을 뵙습니다. 화산대사 고진유라 합니다.”

“반갑네. 자네에 대해서 많이 들었지…… 앉도록 하게.”

자리에 앉으면서도 제갈문의 진득한 시선이 느껴졌다.

‘참 부담스럽네.’

스윽.

황보강이 찻잔을 내밀었다.

“몸에 긴장 풀고 한 잔 마시게나.”

“네.”

고진유가 차를 마시는 동안에도 제갈문은 말없이 그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가끔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호흡 소리처럼 미세했지만, 자세히 들으면 ‘괜찮아. 좋아’라고 읊조리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뭐가 좋다는 건지.’

고진유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모르는 척했다.

“……자네 사부가 검절이라고 했던가?”

“네, 그렇습니다.”

“제법 똘똘한 녀석이었던 기억이 나는군. 그의 사연을 들어보니 안되었어.”

“…….”

“그래서 제자인 자네가 무림맹에 그 물건을 가지러 온 모양이구먼.”

순간, 멀리서 바람이 불어와 정자 안에 앉은 세 사람을 쓸고 지나갔다.

‘놀래라.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군.’

무림맹의 인물이 철갑에 대해 알고 있었다.

하나 깜짝 놀란 것과 달리, 고진유의 표정에는 여전히 변화가 없었다.

“군사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물건이로다.”

제갈문은 기분이 좋은지 처음으로 크게 웃었다.

“제법이야. 아주 짧은 순간에 내력을 완벽하게 제어했군. 이 나이에 쉽지 않을 텐데…….”

황보강이 나섰다.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공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 상식을 벗어났습니다. 끝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습니다.”

“맹주의 말처럼 그런 것 같구려.”

제갈문은 마치 처음 보는 신기한 물건을 보는 것처럼 고진유를 바라보았다.

“게다가 무척이나 능청스럽구나.”

제갈문은 한마디씩 툭툭 던지듯 말을 이었다.

“당황하지도 않는군.”

“본도는 정말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허, 좋다. 사람이란 때로는 얄팍한 면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전 정직한 사람입니다. 사부님께선 항상 사람을 대하는 데 있어 진실하도록 가르침을 주셨지요.”

황보강과 제갈문은 서로 마주 보며 피식 웃었다.

“몇십 년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자네만큼 웃긴 사람은 보지 못한 것 같네. 참으로 재미있구려.”

“군사님께서 즐거우시다니 다행입니다.”

“이보게. 분위기도 좋은데, 있는 그대로 이야기를 나누어보세나.”

“말씀하시지요.”

“자네는 화산파에 애정이 많겠지?”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는 그 애정을 무림에 쏟으면 어떻겠는가?”

“지금도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더 해야 할 일이 있을지요.”

고진유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했다.

“방금 전에도 말하지 않았나. 그들이 찾고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네.”

고진유의 시선이 제갈문과 황보강의 얼굴로 향했다.

무엇인가를 갈구하는 그들의 눈빛.

고진유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무림맹에서도 나를 지켜보고 있었군.’

무림맹에 들어선 그날부터 왜 그가 이곳에 왔는지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 믿을 사람이 없다는 거야.’

고진유는 앞에 놓인 찻잔을 들었다.

“군사님께서는 그들이라고 하시는데,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허허허…….”

제갈문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당돌한 녀석이야. 들켰다면 당황이라도 해야 하거늘.’

급할 건 없었다.

이놈이 무림맹에 있는 한 지켜보면 될 일이니.

“알겠네. 그만하세나.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면 안 해도 되지.”

제갈문은 물러날 때를 정확히 알았다.

“화산파에 천복이 떨어졌군. 그대를 보니 앞으로 화산의 세상이 될 것이야.”

“감사합니다.”

“아, 그렇지. 자네, 제갈양이라고 아는가?”

“예전에 한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녀석들이 자네를 보고 싶다고 해서 함께 왔네.”

‘그 녀석들?’

“지금쯤이면 화산지에 있을지도 모르겠구먼. 젊은 사람들끼리 잘 지내보도록 하게.”

허허허…….

제갈문의 여상한 웃음소리가 무림정자 안에 울려 퍼졌다.

* * *

맹주전을 나오던 고진유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제갈문의 미소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고진유는 고개를 세차게 좌우로 흔들었다.

‘저분의 눈빛은…… 솔직히 부담스러운데.’

그 뒤에도 철갑에 대해 슬쩍 한마디씩 던지면서 물어왔다.

제갈문도 충분히 부담스러웠지만, 황보강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았다.

“그쪽도 대단한걸. 완전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줄 알았잖아. 하긴 명색이 맹주인데 정체를 정확히 알진 못하더라도 뭔가 이상하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겠지.”

여러 가지 생각이 잠기는 동안, 화산지에 거의 도착했다.

“대사님, 오셨습니까?”

입구에서 두일복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고생하는군요.”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습니다.”

“대사님, 화산관에 제갈세가에서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혼자 왔습니까?”

“아닙니다. 소저 두 분이 같이 오셨습니다.”

‘소저?’

그때 제갈양과 함께 객잔에서 만났던 두 여인이 생각났다.

“그렇군요. 알겠소이다.”

곧장 화산관으로 들어서자,

“오오, 도협 아우.”

제갈양이 손을 번쩍 들며 고진유를 맞았다.

그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 전혀 변한 게 없었다.

벌떡.

그의 옆에 앉아 있던 두 명의 여인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제갈서희와 서하 자매 또한 손을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고진유는 그녀들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그렇지 않아도 제갈문 군사님을 뵙고 오는 중이었습니다.”

“하하하, 할아버님을 만나고 왔군. 여기 와서 앉아.”

제갈양이 옆자리를 가리켰다.

“흐음…… 못 보던 사이에 멋진 사내가 됐어. 이젠 묵경보다 더 많은 여인이 따르겠는걸.”

“후후, 정말요! 도협께서 아직 사귀는 사람이 없다면 제가 곁에 있어드릴 수 있답니다.”

“우앗, 깜짝이야. 서하야, 이렇게 다짜고짜 들어오는 거야? 미안하지만 호정 사제 배필은 우리부터 통과해야 한다구.”

제갈세가의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던 당우희가 단번에 그녀의 말을 잘랐다.

“에게, 화산도협께서 무슨 어린애도 아니고…… 그리고 네가 왜 나서? 도협께서 네 말을 듣는다고?”

“후후, 무림엔 워낙 쟁쟁한 여인들이 많으니까, 사저 된 도리면 당연한 거지.”

“자련 언니까지?”

“후후후, 한번 물어보렴.”

제갈서희가 입을 삐죽 내밀고 고진유를 슬쩍 쳐다보았다.

“굳이 싫어하시는 일은 잘 안 하는 편이라서요.”

휘익!

고진유의 대답에 제갈서하가 빠르게 연자련의 곁으로 다가붙었다.

“호호호! 난 자련 언니가 제일 좋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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