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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94화 (94/425)

94화

우르르르르-

화산지 입구로 십여 명의 남궁지 무인들이 굳은 표정을 한 채 나타났다.

“물러나라!”

앞을 막아선 두 명의 특사를 향해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내력의 실린 보폭 위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남궁강의 전신에서 흐르는 살기.

군성창과 영조는 몸을 떨며 앞을 막아섰다.

“네놈들이 죽고 싶은 모양이지?”

“…….”

“마지막 경고다. 물러나지 않는다면 목을 벨 것이다.”

군성창은 당장에라도 옆으로 비켜서고 싶었다.

하지만 목숨이 아깝다고 해서 자신의 임무를 버린 채 물러날 수 없었다.

“남궁 대사께서는 기다려 주십시오. 대사님께 급히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군성창은 몸이 떨리면서도 해야 할 말을 멈추지 않고 했다.

“이제는 겨우 위사 놈들까지 남궁세가를 업신여기는군…….”

남궁강은 검을 잡았다.

위사 따위는 자신에게 일초지적도 되지 않았다.

슈우욱-!

남궁강은 검을 뽑는 동시에 군성창의 허리를 향해 휘둘렀다.

‘에엥…… 보여……?’

남궁강이 검을 잡는 모습을 또렷하게 보였다.

예전이라면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이었다.

‘막…… 을 수 있…… 다…….’

군성창은 검을 잡는 모습을 보는 동시에 검을 뽑으며 막아냈다.

까아아앙!!

군성창의 허리를 베기 전에 남궁강의 검이 막혔다.

‘이 새끼가……?’

남궁강의 눈이 커지면서 다시금 살기가 뻗어냈다.

“하, 제법이군. 겨우 위사 주제에…… 내 검을 막아내?”

후다다닥!

군성창은 숨을 돌리기 위해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내가…… 내가 남궁세가의 검을 막아냈어?’

생각지도 못한 일.

남궁강의 검을 막아낸 게 믿기지 않았다.

‘이건…… 대사님께서 도움을 주신 덕분이다.’

화산지에 들어온 뒤 얼마 되지 않았지만 무공을 수련하는 과정에서 고진유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다섯 명의 특사들 모두 고진유가 이십사수매화검법을 여섯 초식으로 압축시킨 매화육검을 익혔다.

방금 남궁강의 검을 막아낸 초식이 바로 매화육검의 탄장결이었다.

남궁강은 어이없는 상황에 흥분했다.

“이노오오옴!! 이것도 한번 막아봐라!!”

하수라 여겼던 상대로 팔 성의 내력을 끌어냈다.

‘할 수 있어.’

군성창은 검을 겨눈 뒤 한 번 더 막아내고자 했다.

“가소롭구나!”

팔 성의 내력이지만 당연하게도 군성창보다 훨씬 깡했다.

슉슉슉-

눈앞에 쇄도하는 남궁강의 날카로운 검기들.

군성창은 그대로 도망가고 싶었다.

‘내가 과연 이것을 막아낼 수 있을까?’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절대로 강해질 수 없소. 강해진다는 것은 죽음을 이겨내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믿고 내 무공을 믿어야 하는 겁니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믿는다.

자신을 믿는 게 아니라 화산대사님을 믿고, 막천결의 매화육검을 믿었다.

콰아아아앙!!!

승부의 승패는 내력의 힘이었다.

남궁강의 힘에 밀린 군성창은 뒤로 밀려난 뒤 쓰러졌다.

주륵.

내상을 익은 탓인지 입가에 피가 흘러나왔다.

분명 남궁강의 승리였건만 표정은 오히려 그가 더 굳어졌다.

“커어억…… 내가…… 막아…… 냈어. 나 안 죽었어……!!”

울렁거리는 속. 머리는 새하얀 백지에 언제 정신을 잃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군성창은 바닥에 부들부들 손을 짚고 일어나고자 했다.

“군 특사, 가만히 계세요.”

휘이익!

“대, 대사님…….”

고진유의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신선과도 같았다.

군성창의 등에 내기를 불어넣자 내부에서 요동치는 기들이 진정되어 갔다.

“좋은 한 수였소.”

“고…… 고맙습니다…….”

“그대로 앉아서 운기를 하세요.”

고진유는 그를 뒤로한 채 남궁강을 향해 걸었다.

“요즘 들어 화산지에 너무 자주 오십니다.”

“…….”

“남궁 대사께서 많이 흥분하신 듯하군요. 게다가 큰 실수를 하셨습니다. 제 사람을 죽이고자 하시다니.”

“뻔뻔한 놈…… 살인은 먼저 화산파가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 저번에도 본도가 남궁가의 사람을 죽였다고 하더니, 이번에는 누구를 죽였다는 겁니까?”

남궁강은 숨을 크게 내쉬고 끓어오르는 흥분을 조금 가라앉혔다.

그러고는 눈을 부릅뜨며 고진유를 노려보았다.

“그대도 소식을 들어 알 것이다.”

“……안타까운 소식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찾아뵈려고 하던 중이었지요.”

“본 문의 세가주를 죽인 범인이 누구인지 아는가?”

“그걸 왜 본도에게 물어보는 것입니까?

“지금 내가 장난하는 것 같으냐? 정녕 몰라서 묻는 것인가?!”

“모르기에 물어보는 것입니다. 혹시 또 본 문의 인물이 범인이라는 말입니까?”

고진유는 차분했다.

상대가 살기를 뿜으며 화를 불같이 내더라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했다.

“본 세가의 가주님께서 혈사천의 살수에 의해 운명하셨다!!”

“그럼 더욱더 이해가 안 되는군요. 고작 혈사천의 살수가 검황을 이길 수 있는 실력을 갖췄다는 것입니까?”

“그건…… 혈사천에서 보낸 살수가 천살지인이라 했다.”

“천살지인이라 하심은?”

‘이…… 놈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인가?’

순진한 척.

아니면 모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분간이 되지 않았다.

“천살지인은 천살성의 전인이다. 화산대사는 현 무림에 천살성의 전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나?”

“방금 남궁대사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혈사천의 살수라고 말입니다.”

“똑바로 들어라. 천살지인은 그대의 문파인 화산파의 인물이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하…… 정말로 공공연한 비밀이군.’

남궁강은 천살지인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면 고진유가 당황할 것이라 예상한 듯 나섰다.

하지만,

“확인하셨습니까? 혈사천에 가서 천살지인이 누구인지 알아보셨습니까?”

고진유는 얼굴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황한 족은 남궁강이었다.

‘이 자식이 또……!’

“천살지인이 본 문의 인물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증거를 가지고 있는지 묻고 싶군요.”

“이 뻔뻔스러운…… 중원 전체에 그런 소문이 나돌고 있건만…….”

“그저 소문이지 않습니까? 남궁세가는 일을 처리하는 데 사실이 아닌 소문으로 모든 것들을 단정 짓는 곳인지 몰랐습니다.”

“그건……!”

“소문은 소문일 뿐. 돈만 있다면 한 시진 뒤에 천살지인이 남궁세가의 인물이었다는 내용을 중원에 뿌릴 수도 있소이다.”

“뭐? 지금 뭐라고 했는가?”

“흥분하실 필요 없습니다. 소문이란 그만큼 믿을 게 안 된다는 것을 말했을 뿐입니다.”

“…….”

남궁강은 말문이 막혔다.

고진유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남궁세가에서는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혈사천의 사파인들조차 천살지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천살지인이 소문처럼 화산파 출신이라 하더라도, 이미 혈사천에 있다면 본 문과 연관시키지 마시지요.”

고진유의 말은 단호했다.

사생결단을 내고자 하는 심정으로 찾아왔건만 고진유의 앞에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더구나 천살지인과 화산파의 관계가 없음을 명확하게 밝혔다.

무림맹의 화산대사가 한 말은 충분히 공신력이 있었다.

후에 천살지인이 화산파의 인물로 밝혀진다고 해도 남궁세가에서는 화산파에 문제 삼을 수 없었다.

“본도에게 더 하실 말이 있습니까?”

“…….”

“없으시다면 그만 들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곧바로 돌아섰다.

화산지 입구에서 남궁강은 또다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젠장…….’

요즘 들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 * *

남궁세가는 침묵했다.

중원 무림에 그 어떠한 발표도 하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가주이자 검황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대문파의 저력이 나왔다.

그들은 절대로 흥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침착할 정도로 평소와 다름없었다.

굳이 다른 점이 있다면 남궁세가 수많은 무인들의 표정이 굳어 있을 뿐.

창천대전에 수많은 남궁세가 인물들이 모여들었지만 채워지지 않은 허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들 중에 오직 한 사람이 없을 뿐이었건만, 그 자리가 너무나 컸다.

청천대전은 고요했다.

대전에 들어선 남궁세가의 인물들은 남궁세가주가 앉아 있어야 할 자리를 보며 안타까워했다.

“거의 오신 듯합니다.”

남궁세가의 부가주 남궁형소가 그들을 맞이했다.

그의 얼굴은 창백했다.

무인의 자식이라고 해서 모두가 튼튼하지는 않았다.

그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한 탓인지 무공보다는 병서와 진법에 통달할 정도로 심취했다.

세가주 남궁천문이 살아 있을 때는 대전 회의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는 편이었다.

그런 그를 부가주 자리에 올린 건 가주였던 남궁천문의 뜻이었다.

“본인이 여러분들을 대전에 모신 이유는 다들 아실 것입니다. 현재 본 세가는 큰 어려움에 놓여 있습니다. 본 가 역사상 세가주가 살수에 의해 돌아가신 예는 없었소이다. 여러분들은 현실을 똑바로 주시해야 합니다.”

오장로 남궁빈이 물었다.

“세가주께서 돌아가실 때 호천수호대주는 무엇을 하고 있었소이까?”

“그렇지 않아도 대주를 찾고자 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소이다!”

호천수호대주는 한시라도 세가주의 곁에서 떨어져서는 안 되는 자리였다.

“설마…… 그가 혈사천과 내통했다는 뜻인지?”

“그건…… 당장 확인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습니다. 그는 세가주의 자식이외다.”

남궁형소는 남궁무명이 내통했을 리 없다고 믿었다.

하지만 다른 인물들은 그와 생각이 달랐다.

“세가주의 자식이라 하나 항상 음지에 있지 않았소이까. 그래서……!”

“감건단주, 너무 앞서가는 것 같소. 확인되지 않는 일은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자신의 발목을 감싸게 되지요.”

“부가주, 만일 그게 아니라면 지금이라도 모습을 드러낸 뒤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 밝혀야 할 게 아니오! 분명 이번 일과 연관이 있기에 대주가 사라진 것이외다. 당장에라도 수배령을 내려야 할 게 아닙니까!”

“본인도 그 말에 동의하는 바이네. 후에 사실이 아닐지언정 호천수호대주를 소환해서 확인해 볼 문제라고 보네.”

창법전주 남궁당요가 나섰다.

“하아…… 알겠습니다. 여러분들의 뜻이 정 그러하다면 대주를 찾도록 수배령을 내리겠습니다.”

남궁형소는 전체적인 의견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가주이신 형님께서 돌아가신 일은 안타깝지만. 본 세가뿐만 아니라 현 무림의 상황이 어지럽다고 들었소이다. 최대한 빨리 빈 세가주의 자리에 새로운 분을 정하는 게 좋을 듯해서 부른 것이외다.”

남궁삼천검의 남궁창천검이며 감건단의 단주 남궁도가 발끈했다.

“부가주, 세가주의 자리가 중요함을 알지만 너무 빠른 게 아니오? 아직 그분의 장례 또한 치르지 않았소이다.”

“감건단주께서는 빠르다고 하시는구려. 그렇다면 언제 가주를 정하면 되겠소이까?”

“그건…… 어느 정도 세가가 안정이 되면 그때 선출하면 되지 않겠소이까?”

부가주 남궁형소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세가의 안정이라고 하셨소? 여러분께 한 가지 묻겠소이다. 세가의 안정을 위해서 누가 있어야 한다고 보십니까?”

세가주의 자리는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항상 존재해야 했다.

하지만 남궁도는 부가주와 생각이 달랐다.

그가 급하게 처리하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의심했다.

“부가주께서는 세가주를 어떻게 선출할 생각이신지 묻고 싶소이다. 혹시 스스로 가주가 될 생각이시오?”

“본인은 전혀 그럴 마음도 없소이다. 세가주가 새롭게 선출된다면 이 자리도 물러날 것이오.”

남궁형소는 현재 서 있는 부가주 자리도 불편했다.

부가주의 직위도 당장 그만 내려놓고 싶었다.

“좋은 의견들이 있거나 가주에 적합한 인물이 있으면 추천을 해주시기 바랍니다.”

스윽.

대전의 한편에 서 있던 인물 중 중년 사내가 한 걸음 나섰다.

남궁세가의 사대무력군 중 고혼군장인 남궁송.

작달막한 키 때문인지 살이 조금 찐 상태에서도 뚱뚱하게 보였다.

“본인이 한 분을 추천하고 싶소이다.”

“고혼군장께서는 누구를 추천하시고 싶소?”

“남궁삼천검이시신 제왕군장 남궁허 형님이시오.”

“그를 추천하는 이유가 무엇이오?”

“세가의 인물들이 가장 많이 따르고 있소이다. 이 정도라면 충분하다고 보는 바이오”

남궁허는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드러내고 웃을 수는 없었지만 가장 먼저 추천을 받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고호군장의 추천이 있었소이다. 다른 분을 추천하시겠다면 지금 말씀을 해보시오.”

“본인이 추천하고자 하오.”

“감건단주, 말씀해 보시오.”

남궁도는 바로 인물을 추천하지 않고, 대전에 모인 남궁세가의 인물들을 둘러보았다.

“검황께서 예전에 하신 말씀이 있소. 본 세가를 다음 세대로 교체해야 할 것 같다고 말이외다. 이왕 이렇게 된 일이라면 이번 기회에 일공자인 남궁영운에게 가주직을 물려주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남궁영운이라…….”

남궁형소도 나쁘지 않은 의견이라 여겼다.

남궁세가는 사실상 세대교체를 해야 할 시기가 조금 지났다.

세가주가 검황이기에 좀 더 시간을 끌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고혼군장 남궁송의 생각은 달랐다.

강한 인물이 세가주가 되어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남궁송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부가주, 일공자가 현 문제를 처리하기에는 힘들지 않겠소이까? 물론 세대교체도 좋지만 현재는 비상시국이외다.”

일공자 남궁영운도 무력으로 나쁘지 않지만 검황에 비한다면 부족했다.

하지만 남궁허라면 충분히 만족할 정도였다. 그 또한 당당한 중원오기의 일인이니까.

“일공자가 처리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면 옆에서 도움을 주면 되지 않겠소이까?”

삼장로 남궁한궁이 바로 반박을 했다.

그가 나오면서 두 무리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대전은 어느덧 서서히 변질이 되어갔다.

‘이 사람들이…….’

남궁형소는 그들을 보면서 어이가 없었다.

“지금 뭣들 하는 것이오? 서로 힘을 모아도 힘든 상황에 지금 여러분들은 그릇 싸움을 하는 것이외까? 본인이 세가주를 빨리 정하고자 한 이유는 한 곳으로 힘을 모으기 위함이거늘. 이런 식으로 나올 것이라면 전부 필요 없소이다! 전부 물러가시오!”

남궁형소의 목소리가 이토록 높은 적은 없었다.

대전이 조용해졌다.

“부디 현재 상황이 심각함을 잘 알아주었으면 합니다.”

“부가주. 알겠소이다. 잠시 자리에 앉으시지요.”

남궁형소는 호흡이 차는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조용했던 대전은 다시금 여기저기서 새로운 가주에 대해 소곤거리는 목소리들로 가득 찼다.

‘천문 형님…….’

남궁형소의 눈가에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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