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93화 (93/425)

93화

묵경은 시선을 돌렸다.

‘수상한데? 뭔가 있어.’

평소와 다르게 한 방향을 주시한 채 깊은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고진유는 사형제들과 모여 서로 대화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늘 웃음을 지은 채 대화를 듣곤 했다.

예전 둘이 있을 때 사형제들에 관해 이야기한 적도 있었다.

“서로 이해하려고 하는 게 정말로 형제들 같아요.”

묵경은 고진유가 한 말의 의미를 잘 알았다.

고진유를 제외한 다른 화산의 제자들은 태생적으로 좋은 분위기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다.

어릴 적부터 부족함 없이 살았고, 풍족한 생활이 당연한 삶이었다.

고아에다 살기 위해 도둑질을 배웠던 그와는 삶이 달랐다.

그렇게 서로 다른 성격의 사형제들은 한자리에 모이자, 처음에는 각자의 의견을 앞세우곤 했다.

하지만 어느덧 그들은 서로를 배려하고 있었다.

“진유 아우, 무슨 생각 하고 있구나.”

고진유는 묵경을 보며 피식 웃었다.

“왜 웃어?”

“형은 가끔 내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서요.”

“내가 독심술을 쓰는 줄 몰랐던 모양이지?”

“잘 알고 있죠.”

“할 말이 있으면 말해봐. 들어줄게.”

사형제들의 대화가 멈췄다.

무슨 말을 할지 고진유에게 시선들이 집중되었다.

“말하기 전에…… 이것도 당분간 비밀인 건 아시죠?”

장두총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또 비밀이 있어? 넌 무슨 비밀만 만들고 다니냐? 양파도 아니면서.”

“그러게요.”

고진유는 회의실 뒤편에 앉은 다섯 명의 특사들에게도 눈길을 주었다.

“대사님, 알겠습니다. 꼭 입을 다물고 있겠습니다.”

군성창은 물론 다섯 명도 뭔가 모를 뿌듯함에 흥분이 되었다.

회의실의 한 자리에 참석한 것도 모자라, 이들과 함께 비밀을 공유할 수 있다니.

그들 또한 화산파라는, 강한 소속감이 느껴졌다.

“제가 할 이야기는 허민 사숙에 대해서입니다.”

사형제들은 그가 갑자기 화산제일검 독소응을 언급하자 의아했다.

“허민 사숙께서는 오 년 폐관에 들어가셨다고 들었다.”

화산파 제자들이라면 대부분 우종성이 아는 것처럼 그가 무공 수련을 위해 폐관에 들어섰다는 사실을 믿었다.

“모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허민 사숙께서 폐관하신 게 아니로군.”

혁자영이 재차 확인했다.

“그렇습니다.”

“사숙께서 그런 거짓말을 하신 이유가 뭐지?”

“허민 사숙님의 신상에 관해 암묵적으로 아실 것이라 봅니다.”

“…….”

공공연한 비밀.

화산파의 제자라면 모두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당금의 화산제일검 독소응이 당당하게 화산파와 본인의 위명을 중원 무림에 알리지 못한 이유.

천살성을 타고났음을 사형제들 모두가 그들의 사부에게 들었다.

모두 고진유가 꺼내려고 한 이야기가 무엇인지 눈치챘다.

“이런 어이없는 일이…….”

“허어!”

장두총과 우종성의 입에서 동시에 탄식이 튀어나왔다.

사형제들은 그동안 함께 지내면서 고진유의 성격도 자연스럽게 알아갔다.

가끔 농담처럼 하는 말 또한 이유 없이 꺼내지 않았다.

검황을 죽인 살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상황에, 화산제일검의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은 그와 연관이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린 것이었다.

“허민 사숙께서 폐관에 들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디에 계신 것이냐?”

“그분께서는 혈사천으로 갔습니다.”

사파의 최고 문파 중 한 곳.

혈사천이 어디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거긴 왜? 천살성이라고 해서 혈사천에 가야 할 이유는 없어!”

“허민 사숙께서는 본 문에 계실 때부터, 일평생 천살성의 기운을 누르고 계셨습니다. 화산파의 제자로서 그분은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으셨지요.”

독소응은 화산파를 사랑했기에, 죽음 또한 이길 수 있다고 여겼다.

“…….”

“점점 솟구치는 천살성의 기를 억누르기 위해 삶을 포기할 수밖에 없으셨던 겁니다. 천살성의 기운이 강해질수록 삶의 시간이 남지 않으셨다고 하셨어요. 제가 그분을 만날 즈음엔…… 이미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지요. 저로서는 전혀 도와드릴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는 도중…… 혈사천주를 고독전에서 만났습니다.”

“뭐어어? 혈사천주를? 고독전에서?”

“처음이 아니더군요. 그는 오래전부터 허민 사숙님을 찾아왔었습니다.”

“혈사천주가 어떻게…… 아니, 왜 찾아온 거야?”

“천살성의 주인을 원한 것이었습니다. 혈사천에는 천살성을 타고난 인물만이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있다고 하더군요.”

“천살지인…….”

곽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천살지인을 얻기 위해 허민 사숙님이 필요했던 거야.”

“……네 혈사천주는 허민 사숙님께서 살기 위해선 천살지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살기 위해서…….”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독소응을 알고 있는 화산의 제자들은 그 말을 쉬이 믿기 어려웠다.

“허민 사숙님께서 혈사천주의 제안을 받아들였다고? 그분이라면…… 죽음을 택하셨을 분인데…….”

“맞습니다. 허민 사숙님께선 당연히 거절하셨습니다. 혈사천주가 저를 죽인다고 협박하는 순간에도 화산파의 제자로 생을 마감하실 거라 하셨었어요.”

“그렇다면 왜 마음이 바뀌신 거니?”

“……음…… 그게…… 제가 이 말을 해야 할지…….”

고진유가 답지 않게 살짝 말을 더듬었다.

무엇인가 뿌듯함이 표정에 나타났다.

이제는 사형제 중 그 분위기를 모를 사람은 없었다.

“흥, 뭐냐? 어차피 대충 눈치챘으니 잘난 말이나 들어보자.”

“……이건 제 말이 아니라 사숙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화산에 잘난 놈이 있으니 혈사천에 가시더라도 걱정이 없겠다고요. 제 사부님과 함께하셨던 약속…… 화산을 천하제일로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의 제자가 이룬 화산천하제일문을 살아서 직접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

화산천하제일문.

회의실에 모인 모두가 고진유에게 바라는 것이었다.

“그렇군.”

“……이후 마지막으로 저를 찾아오신 뒤 사사검을 주시고 떠났습니다.”

당우희가 물었다.

“호민 사형, 사사검이 뭔가요?”

“전설에 따르면 보통의 검으로는 천살지인을 죽일 수 없다고 적혀 있어. 하지만 유일하게 천살지인의 사기를 깨뜨릴 수 있는 검이 하나 있지. 사정(邪情)의 결정으로 뭉친 검. 그게 사사검이야.”

“그 말은…… 허민 사숙께서 자신의 목숨을 호정 사제에게 맡겼다는 말이네요?”

“맞아. 사사검을 직접 넘기셨다면, 그분은 호정 사제를 믿고 혈사천으로 떠나신 거야. 혹시나 모를 천살지인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인물로서.”

곽우는 대답을 하면서도 한편으로 착잡해졌다.

언젠가는…… 언젠가는 고진유의 손으로 직접 천살지인을 죽여야만 했다.

천살지인은 사람의 의지로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사형, 사숙님은 의지가 강한 분이십니다. 제가 사사검을 사용할 일은 없습니다.”

천살지인의 정체는 허민으로 결정이 난 듯했다.

고진유는 다시금 현 상황을 확실하게 짚었다.

“검황을 죽인 살수가 밝혀지지 않았으니 사숙님이 확실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다만…… 그 정도의 살성을 가진 인물이라면 천살지인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정의 말이 맞다. 현재 범인이 천살지인이라고 밝혀진 것은 없지. 우리가 말하는 건 천살지인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뿐이다. 천하오무의 검황일지라도 천살지인이 된 허민 사숙님이시라면 밀리지 않을 테니까.”

“그분은 화산파 최고의 무인이셨다. 검황과 견줄 수 있어.”

우종성에 말에 혁자영도 동의했다.

잠시 그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중원 무림의 상황은 앞으로 더 심각하게 변할 것이었다.

“혈사천이 검황을 죽인 거라면…… 혈사천주가 왜 갑자기 폭주하려고 할까?”

“그건 내가 알아.”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검황을 치고자 한 이유.

남궁세가와 혈사천은 안휘성에 기반을 둔 문파로 정사를 대표했다.

사소한 문제부터 중요한 문제까지 사사건건 부딪쳤지만, 항상 힘의 방향은 남궁세가로 기울어졌다.

검황의 존재에 의해 안휘성에서 혈사천의 지배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혈사천에서는 방향을 전환시키기 위해 큰 한 방이 필요했던 게 분명했다.

묵경에 말에 고진유가 고개를 끄덕였다.

“검황이 제대로 걸렸군요.”

“그런 셈이지. 이젠 안휘성은 시끄러운 일들이 많이 생길 거야.”

“혈사천주…… 약은 인물입니다. 무림이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자마자 때를 놓치지 않고 나설 시기를 가장 적절하게 이용해서 움직였습니다.”

“안휘성도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에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우종성은 걱정이 되었다.

천살지인이 범인이라고 밝혀지게 된다면 화산파의 입장에서도 곤란했다.

천살지인이 혈사천주의 명을 받았다 해도, 그는 여전히 화산파의 인물이니까.

“호정, 이 사실을 장문인께 알려야 할 것 같구나. 모르고 있는 것보다 미리 알고 있는 것이 대응하기 더 좋을 거다.”

“호진 사형의 말이 맞습니다. 본산에 연락을 띄우도록 하죠.”

“중요한 내용이라 함부로 보낼 순 없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그건 호화 사저가 맡아주실 겁니다. 호경 사형.”

“호화가?”

뜬금없이 연자련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그녀가 입을 가리며 조용히 웃었다.

“후후…… 어떻게 알았니? 아무도 모르고 있을 줄 알았는데.”

장두총이 얼른 끼어들었다.

“호화, 뭐야? 우리가 모르는 신분이 있었어?”

“호화 사저는 흑매단 소속입니다.”

“뭐어어어어?”

“언니!! 진짜예요? 우와……!! 대단해요!”

화산파의 특삼매화단 중 가장 비밀에 싸여 있는 조직이 바로 흑매단이었다.

오직 장문인만이 그들 개인의 정체를 알고 있을 뿐이었다.

“장문인께서 가르쳐 주셨구나.”

“본산을 나오기 전에 귀띔하셨습니다. 혹여 신분을 밝힌 것이 실수가 될까요?”

“괜찮아. 우리끼리는 알 필요가 있을 것 같으니.”

실제로 흑매단 소속을 직접 눈앞에서 보게 된 사형제들은 모두가 놀란 눈으로 연자련을 쳐다보았다.

“음…… 흑매단에서는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주고받는 서신도 비문으로 한다고 들었는데.”

웬만한 일에는 놀라지 않는 혁자영까지도 놀라 주춤했다.

더군다나 다른 사람도 아닌 연자련이 최고전문살수인 흑매단이라고 하니 더욱더 믿기지 않았다.

“호화, 언제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었지?”

“으음, 밝혀질 때까지?”

“여기에 지원한 것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가?”

모두 궁금했던 질문이었다.

“이유는 없어. 그냥 호정 사제의 곁에서 지켜보고 싶었을 뿐이야. 이런 일이 생길 거라 장문인께서 예상도 하셨고…… 후후.”

“문제가 없다면 됐다.”

혁자영은 바로 수긍을 했다.

“이제 내게 궁금한 건 없지?”

“없습니다. 이번 일은 호화 사저께서 소식을 전해주세요.”

“지금 보내고 올게.”

연자련이 먼저 일어나 회의실을 나갔다.

그녀가 나간 뒤 곽우가 의견을 제시했다.

“호진 사형. 매도 먼저 맞는 게 좋다고 하지 않습니까?”

“호민, 무슨 말이냐?”

“천살지인의 정체가 무림에 알려지기 전에 우리가 먼저 밝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남궁세가에 가서 먼저 밝히자는 말인가?”

“그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곽우의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이때 장두총이 반대 의견을 냈다.

“난 반대야. 호민의 생각도 나쁘지 않지만, 아직 범인이 천살지인이라고 밝혀진 것은 아니잖아. 굳이 불난 집에 가서 부채질할 필요가 있나? 남궁한과 검황이 거의 동시에 죽은 마당에 엄청 민감해져 있을 거야. 당분간 조용하게 있는 게 좋을 듯해.”

“……흠, 나는 호경의 말이 맞는 것 같구나. 다른 사람들은?”

“저희도 호경 도사님의 말씀이 맞다고 봅니다.”

군성창을 포함한 다섯 명도 알릴 시기가 아니라고 보았다.

우종성이 마지막으로 결정을 내렸다.

“남궁세가와 부딪히는 일이 없도록 하고, 무림맹에서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는 것이 좋겠다.”

“네, 알겠습니다.”

* * *

“허허허…….”

웃음소리에 백색의 수염이 바람에 흩날렸다.

쏴아아악-

웃음 속에 숨어 있는 날카로운 살기가 엎드려 있는 사내의 전신을 지나쳤다.

“아직도 그 물건을 확보하지 못했단 말인고?”

“송구하옵니다.”

윤여림은 허리를 바짝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머리를 드는 순간 살형기가 목을 베고 지나갈 듯했다.

“물건을 확보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영사께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듯합니다.”

나하중은 수염을 쓸어냈다.

‘영사가 제대로 반응을 보이지 못할 정도 그놈의 능력이 올라섰단 말인가?’

소식이 전해져 올 때마다 화산도협의 실력이 늘어나고 있었다.

“우리가 실수를 한 것 같구먼…… 철갑 때문에 초장에 끝장을 보지 못한 것이 문제가 될지 모르겠어.”

그의 표정과 목소리에 아쉬움이 묻어났다.

“지금도 늦지 않았습니다.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습니다.”

“상대야 할 수 있지. 하나 그대는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군. 그동안 그를 놓아둔 이유를 잊지는 않았겠지?”

모든 것은 철갑을 찾기 위함이었다.

철갑의 행방을 알고 있는 인물은 오직 화산도협 고진유밖에 없다.

그가 사라진다면 철갑의 행방을 다시 잃게 될 것이었다.

게다가 어떤 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장담할 수 없었다.

“영사에게 본인의 뜻을 똑바로 전하게. 최대한 빨리 철갑을 찾든지, 아니면 그 녀석을 잡아서 데리고 오든지.”

“전주님의 명을 곧바로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하중은 다른 문제를 꺼냈다.

오전에 보고받은 내용 중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사건이 있었다.

이번 문제도 꽤 무림이 시끄러울 것이 틀림없었다.

남궁세가를 감시하던 도중 영안(影眼)의 시선에 걸린 것.

어디서든 극일천의 눈을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나하중은 고민에 빠졌다.

극일천에 잘된 일인지, 아니면 안 좋은 방향으로 갈지 판단하기 쉽지 않았다.

“혈사천주가 제대로 사고를 쳤더구먼.”

“그렇습니다. 어이없는 짓을 했습니다.”

“천살지인이라면 해볼 만했겠지.”

“천살지인이라 해도 단번에 검황을 노릴 줄은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본 천에 두 가지가 잘됐습니다.”

“두 가지가 잘된 일이라…… 무엇을 말하는 것일꼬?”

“천하오무의 일인이 사라졌습니다. 천주님의 강력한 적수가 한 명 줄어든 것입니다. 그리고 남궁세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지요. 혈사천주가 범인이라는 것을 안다면 안휘성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흐음…… 검황이 죽었다고 하나 그보다 강한 천살지인이 나타났지. 또한, 남궁세가에서 바로 움직일 것이라 보는가?”

“…….”

“중원세가 중 가장 실리에 밝은 놈들이 남궁세가라고 할 수 있네. 검황이 혈사천의 천살지인에게 죽었다고 해서 무작정 전면전을 할 녀석들이 아니야.”

“검황의 복수를…… 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남궁세가는 잊지 않는다. 복수는 하겠지. 전면전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말이야. 어쩌며 검황을 죽인 방법처럼 혈사천을 상대할지도…….”

나하중은 그와 대화를 하는 사이에 결정을 내렸다.

“구경삼아 남궁세가에 소문을 흘려보내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허허, 볼만한 구경거리가 되겠군. 아…… 그리고 검황을 죽인 천살지인의 정체가 화산제일검이라지?”

“맞습니다. 화산파의 허민 도사입니다.”

“클클클…….”

나하중은 웃음이 나왔다.

최근에 남궁세가와 화산파가 부딪히는 일이 많았다.

“만일 남궁세가에서 이 모든 사실을 알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은가?”

“그렇게 되면 화산파와 남궁세가의 사이가 완전히 갈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분간 혈사천을 견제하기 위해 화산파와는 싸우지 않을 듯합니다.”

“그렇겠지. 남궁세가의 입장에서는 혈사천이 먼저이니, 그들과 정리한 후 화산파에 요구할지도 모르겠구먼. 지금 당장 무림에 소문을 흘려보내게.”

“명을 받들겠습니다.”

윤여림은 고개를 숙인 채 여의정 밖으로 나갔다.

* * *

‘젠장…….’

여의정을 벗어난 뒤 윤여림은 그제야 허리를 폈다.

그의 얼굴은 심각했다.

여의정에 있었을 때와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생각지도 못한 혈사천까지 날뛰고 있어.’

당장 큰 싸움은 터지지 않겠지만 나중에 한꺼번에 봇물 터지듯 사방에서 일이 터질지 몰랐다.

‘최소한의 피해로 막기 위해서는 무림이 서로 힘을 합쳐야 하거늘…….’

극일천에서 수백 년 동안 뿌려 놓았던 암흑의 씨앗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철갑을 얻어야 했다.

천문전주 나하중이 철갑에 무엇이 들었는지는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중원 무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추측되었다.

‘맞아. 지금은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다른 곳보다 먼저 철갑을 확보하는 수밖에 없어.’

그의 앞에 놓인 어려운 상황 중 급한 일을 먼저 처리하는 게 순서였다.

여의정을 완전히 벗어나는 윤여림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졌다.

이윽고,

스으윽-

윤여림이 잠시 멈췄던 자리에 그림자의 인영이 나타났다.

그림자는 사라진 윤여림의 뒷모습을 보며 싸늘한 살소를 지었다.

‘크크…… 전주님의 눈을 피하려고 생각하다니 어리석군…….’

나하중은 윤여림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그를 치우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치울 수 있기에 가만히 보고만 있었을 뿐.

특히 그에게 원하는 것은 하나.

무구천 본진의 위치였다.

‘세상은 절대로 극일천의 눈을 피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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