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92화 (92/425)

92화

남궁한의 죽음은 곧바로 남궁세가에 전해졌다.

가주 남궁천문의 노여움은 하늘을 뚫을 만큼 치솟았다.

그의 거친 숨소리에 사방이 흔들거렸다.

다섯째 아들은 남궁세가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녀석이었다.

보고에 의하면 화산도협과 비무한 뒤 흑룡전의 처소에서 살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감히…… 내 아들을 죽이다니…….’

복수할 것이라 다짐했다.

아들의 죽음과 연관된 인물이 황제라 할지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리라.

남궁세가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일하는 하인들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남궁천문의 손에는 아들의 위패가 잡혀 있었다.

“무명…….”

겨우 나온 한마디 말.

푸른 청의를 입은 이십 대 후반의 청년이 모습을 드러냈다.

남궁무명.

남궁천문이 외부에서 데리고 온 아들로, 열 살 때까지 이름이 없어 ‘무명’이라 불리게 된 이였다.

중원 무림에는 가주 남궁천문에겐 두 명의 아내와 다섯 명의 아들, 그리고 세 명의 딸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남궁무명의 존재에 대해 아는 인물은 직계 외엔 없었다.

“부르셨습니까?”

“한이가 죽었구나.”

그의 목소리에 그리움과 노여움이 동시에 느껴졌다.

무림인이라면 받아들여야 할 숙명.

하나 아들은 기습을 당해 억울하게 죽었다.

“아버님.”

“네가 무림맹에 가줘야겠다.”

“……아버님의 안위는 누가 지키겠습니까?”

“감히 검황을 건드릴 자가 있다고 보느냐?”

“…….”

남궁무명은 대답이 없었다.

“걱정하지 마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당분간 네가 곁에 없다고 해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무림맹에 다녀오도록 하겠습니다.”

“그 녀석을 죽인 놈을 찾아라.”

“염려 마십시오. 남궁한을 죽인 범인을 꼭 찾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부탁하마.”

남궁무명의 능력은 그의 자식 중에서 가장 뛰어났다.

만일 정실 소생의 아들이었다면 세가주가 되기에 충분할 정도로.

“지금 바로 다녀오도록 해라.”

“옥체 보존하십시오.”

남궁무명의 신형이 사라졌다.

일각도 되기 전에 남궁세가를 완전히 벗어난 듯했다.

‘무명이라면 충분히 처리할 수 있겠지.’

남궁천문은 여전히 사당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남궁무명이 떠난 지 이각이 지나갈 때였다.

사당 위로 차가운 바람이 밀려왔다.

‘무명이 사라지자마자 모습을 드러내는군.’

한 달 전부터 주위에 이질적인 기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감히 검황인 나를 죽일 자신이 있다는 것인가?’

호위인 남궁무명을 떠나보냈지만 그는 검황이었다.

남궁천문은 남궁한의 위패를 올려놓은 뒤 밖으로 나섰다.

해는 아직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대낮에 본가에 들어와 나를 노릴 정도의 배짱을 가진 놈이 누구인지 궁금하군.’

휘이익!

남궁천문의 신형이 기를 따라 사당에서 사라졌다.

* * *

송백림.

남궁세가 가주전 뒤로 울창하게 자란 소나무와 자작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좋은 장소를 골랐군.”

남궁천문은 창궁검을 고쳐 잡으며 송백림으로 들어섰다.

‘사기(邪氣)라…….’

안으로 들어서자 사기가 점점 강해졌다.

‘사파 놈인가. 이 정도의 사기를 내뿜을 수 있는 자는 얼마 없을 텐데.’

어느 순간 남궁천문의 앞에 적의를 입은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혈사천주…….”

“크크특, 검황, 오랜만이외다.”

일패천 혈사천의 천주가 남궁세가 송백림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대가 왜 여기 있지?”

“심심해서 말일세. 얼굴이라도 보면 재미있을까 싶어 왔소.”

“혈사천주가 농담을 잘할 줄은 몰랐군.”

“농담인 줄은 어찌 알았소?”

“오늘은 그대와 말장난을 할 기분이 아니오.”

“하긴 자식이 죽었는데 기분이 좋지 않겠지. 그래서 본인이 왔소이다.”

“……무슨 뜻이오?”

“큭큭, 사랑하는 아들 곁으로 당신을 보내주겠다는 말이외다.”

남궁천문의 창궁대연신기(蒼穹大衍 神氣)가 단전에서 머리끝까지 퍼졌다.

“지금까지 숨어 있다 곁에 사람이 없는 것을 알자마자 나타난 그대가 할 말은 아니군.”

“하하! 착각하는 게 아니오? 그대만 죽이면 될 뿐. 그대의 또 다른 아들까지 어찌 죽일 수 있겠소?”

‘무명이 내 아들인 사실을 알고 있어.’

세가에서도 극소수밖에 모르는 일을 혈사천주가 알고 있었다.

“혈사천주, 나를 노리는 이유가 뭐지?”

“별 이유는 없소. 안휘성의 진정한 주인이 되고자 할 뿐.”

남궁세가와 더불어 안휘성 무림의 정사를 대표하는 곳이 혈사천이었다.

“하하하…… 이봐, 혈사천주. 아니, 조탁. 죽고 싶은가? 혈사궁이 까불다가 어떻게 되었는지 똑바로 봤을 텐데?”

“하아, 겨우 혈사궁을 이긴 것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소? 그놈들과 혈사천을 비교하다니 남궁세가도 별 볼 일 없군.”

“…….”

혈사궁은 혈사천에 예속된 세력으로 안휘성의 세력 다툼 중 남궁세가에 의해 멸문당했다.

“조탁, 내가 누구인지 잊고 있군. 천하오무 신황제왕군의 검황이 본인이다.”

“잘 알고 있지.”

“잘 아는 놈이 여기에 찾아왔다고?”

“그래서 당신을 상대할 인물을 데리고 왔소.”

피식.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 누군가 데리고 왔다는 말에 남궁천문은 실소를 지었다.

“천하오무 중 한 명을 데리고 왔다는 말인가? 그게 아니라면…….”

남궁천문의 말이 끝나기 전, 뒤에서 누군가 존재를 드러냈다.

‘욱…… 이건……!’

하늘을 덮을 정도로 무한의 살기.

붉은 눈동자와 마주치는 것만으로 미세하게 몸이 떨렸다.

“검황, 소개하겠소. 당신을 상대할 천살지인이라 하외다.”

‘천살지인이라면…… 천살성의 천기를 타고난 인물?’

절대살성의 기를 받은 인물.

천살지인이 무림에 나타나면 대지에 수만의 피를 묻힌다는 전설의 혈인이 그였다.

“그대가…… 천살지인인가?”

남궁천문은 호신강기를 일으키며 살기를 막아냈다.

“그렇소.”

목소리 또한 살기로 가득했다.

남궁천문은 문득 상대의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우리…… 예전에 만난 적이 있소?”

“마주친 적은 있었소. 오래전에.”

천살지인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그리고 그가 누구인지 알아낸 남궁천문의 눈이 커졌다.

“그대는…… 화산제일검…….”

“예전에는. 지금은 천살지인으로 살아갈 뿐이오.”

살기를 뿜어내는 그를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화산파의 인물이 대체 왜?”

“이유는 묻지 마시오. 바로 시작하겠소.”

‘후우…… 화산파와 악연이 있군.’

“여기서 싸우게 된다면 본 가에서 바로 알게 될 텐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오. 송백림 주위에 진법을 펼쳐 놓았으니 웬만해선 소리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을 게요.”

“하, 철두철미하군. 좋소. 천살지인이의 전설이 얼마나 대단한지 겨루어보지.”

스르르릉-

남궁천문은 창궁검을 뽑았다.

검황의 검이 창궁을 향해 뻗어 나갈 준비를 했다.

“나를 이길 수 있다고 보는가?”

“검황. 그대가 예전 도무 사숙에게 했던 말이 기억나는군요. 검을 뽑은 이상 싸우는 데 말은 필요하지 않다고.”

남궁천문 또한 그날의 일이 모두 기억났다.

전대 화산제일검이었던 도무와 비무를 했었다.

‘그때…… 그는 도무의 곁에 함께 있었지.’

“맞군. 싸우는 데 말은 필요 없지. 검만이 필요할 뿐. 시작해 볼까?”

“선수를 양보하겠소.”

남궁천문의 한쪽 입술이 꿈틀거렸다.

“그따위 수작에 내가 흥분할 듯싶은가?”

“……후회하게 될 것이오.”

“천하의 검황에게 선수를 양보할 수 있는 인물은 없다!”

샤샤샤샤샷-!!

천살지인의 신형이 움직이자 수십 명의 허상이 생겼다.

‘겨우 이 정도인가? 허상은 허상일 뿐. 그대로 모두 베어버리면 그만!’

남궁천문은 신경 쓰지 않고 다가오는 허상을 하나씩 베기 시작했다.

팟! 팟! 팟!

순식간에 하나씩 사라지는 허상들.

그때였다.

허상 중 하나라고 여겼던 천살지인의 검이 중간에 방향을 바꾸었다.

파앗!!

허상에서 또 다른 허상이 생겨났다.

단숨에 남궁천문을 포위한 수십 자루의 검이 서로 교차하며 지나갔다.

스걱-

“큿.”

남궁천문은 순간 휘청거리며 쓰러질 뻔했다.

허리를 가볍게 스친 듯했지만 검에서 흐른 살기만으로 충격을 받았다.

‘대체 뭐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한 눈동자.

“분명 후회할 거라 하지 않았소. 살영환인(殺影幻刃)이라는 것이오.”

붉은 눈동자 속에 무심한 눈빛.

멈추지 않고 펼쳐지는 살검은 교차로 움직이며 남궁천문의 가슴을 노렸다.

“나는 검황이다. 후회는…… 하지 않는다!!”

창궁검을 내리치는 남궁천문의 내력이 폭발하며 천살지인의 살검과 부딪혔다.

콰아아아아앙!!!

천둥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남궁천문의 신형이 튕겨 나갔다.

“우욱……!”

믿을 수 없었다.

세상에 오직 한 명.

남궁천문, 자신을 밀어낼 수 있는 인물은 세상 한 명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무신 초일군이 아니지 않은가.

허리를 베인 자리에서 피가 멈추지 않았다.

‘젠장…… 내력을 너무 급하게 올렸다.’

재빨리 혈을 눌러 지혈하고자 했지만 흘러내리는 피를 막지 못했다.

몸속 내부에서 살기를 밖으로 밀어내지 않는 이상 정상적으로 내력을 끌어 올릴 수 없었다.

하지만 남궁천문은 검황이었다.

절대무적자의 위엄은 부상을 당한 상태에서도 사라지지 않았다.

남궁세가의 절대비공.

몸이 부서지는 고통이 따랐지만, 창천황신공(蒼天皇神功)을 끌어 올렸다.

그의 몸이 점점 황금색으로 변해갔다.

‘진정한 검황의 힘이군.’

다른 인물이라면 벌써 두려움에 떨어야 했건만, 천살지인은 오히려 흥분한 듯 검을 쥐었다.

웅웅웅웅웅-

전신에서 흐르는 황금빛과 함께 마지막으로 뻗어낸 일검.

쏴아아아아아-

거대한 황금 물결이 파도를 치며 천살지인 위로 솟구쳤다.

천살지인의 시선은 여전히 담담했다.

‘이번 한 번의 승부로 끝을 낼 모양이군.’

천살성의 기.

하늘조차 감당하지 못해 천살성을 땅에 내려놓았다는 전설의 살기.

천살지인이 살성을 완전히 개방했다.

파아아아앗-!!

천살지인의 몸도 단숨에 붉게 변했다.

그의 발아래에서 퍼져 나가는 혈 향이 죽음조차 두려움에 떨게 했다.

찌이이이이이잉-

그의 손에 든 살검의 끝에서 지옥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번쩍!

핏물보다 더 진한 붉은 선이 황금물결을 가르고 지나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남궁천문은 가슴에 난 깊은 검상을 보았다.

‘망할…… 검황인…… 내가…….’

믿기지 않았다.

“당신이 처음부터 방심한 탓이겠지.”

남궁천문은 힘들게 숨을 내쉬었다.

“허억…… 헉…… 천…… 살지인. 나를 죽인다면 화산파에도 좋지 않을 텐데…….”

“난 이제 화산파와 상관없으니 굳이 그곳을 들먹일 필요 없다. 혈사천의 천살지인일 뿐.”

“그대가 상관없다고 해도…… 중원 무림은 천살지인이기 이전에…… 그대를 화산제일검 독소응이라고 알 것이다…….”

“천하의 검황이 구차하게 살고 싶은 모양이군. 당신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

“…….”

남궁천문은 점점 기력이 빠져나갔다.

‘우선…… 여기에서 물러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기운을 내서 물러나고자 했지만 그조차 뜻대로 되지 않았다.

파아앗!!

남궁천문의 대종혈에서 피가 솟구쳤다. 그는 다리에 힘이 빠지며 또 한 번 휘청거렸다.

“검황답게 결과를 받아들이시오.”

“……이건…… 아니야. 정당한…… 싸움이라고 할……!”

스걱.

“…….”

살검이 앞으로 쓰치며, 붉은 피가 솟구치면서 혈향이 진동했다.

스르르륵.

오랫동안 중원 무림의 거인이었던 자의 몸이 옆으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천살지인은 그를 내려다보았다.

“당신은 너무 말이…… 많아. 우우욱.”

천살지인이 입에서 핏덩어리를 토해냈다.

그 또한 사람의 몸으로 천살성의 기운을 이겨내지 못했다.

휘이익.

혈사천주가 내려서면서 천살지인을 부축했다.

“괜찮소?”

“괜찮게 보이나?”

“하하, 검황을 잡은 대가라면 나쁘지는 않소이다. 이것을 복용하시오.”

천살지인은 그가 내민 환단을 입에 넣었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내부를 진동하던 살성의 기가 진정되어 갔다.

“됐소.”

“천살지인, 수고했소이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겠소.”

“저번에 말한 것을 잊지 마시오. 내가 원하는 일이 아니면 움직이지 않을 것이니.”

“물론. 솔직히 검황을 치자고 했을 때도 거부할 줄 알았소.”

오히려 허락한 것에 놀란 것이 사실이었다.

파아앗!

천살지인의 살기가 솟구쳤다.

“……화산파를 건드리는 놈은 모두 죽는다.”

“하하, 알겠소이다. 그만 돌아가십니다.”

휘익!

천살지인의 신형이 먼저 사라졌다.

‘후후후. 안휘성에서 당분간 남궁세가는 조용하게 지내겠지. 이제야 안심이 되는군. 이번 기회에 하나씩 정리하는 거야.’

* * *

중원 무림에 엄청난 일이 터졌다.

천하오무의 일인.

검황이자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천문이 살수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남궁세가의 송백림에서 그의 시신이 발견됐다고 했다.

남궁세가는 복수를 천명했다.

살수가 밝혀지는 순간, 그들과 전쟁을 할 거라 선전포고한 것이다.

무림이 들끓기 시작했다.

일곱 명의 화산파 제자들과 다섯 명의 특사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묵경까지 화산관에 모두 모였다.

“이건 완전 큰일인데?”

“검황이 살수에 당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군.”

“남궁지에서 나온 말 중 송백림 주위로 살기가 엄청나다는 소문이 있더군.”

묵경이 서문지를 통해 들은 말을 전했다.

“묵경 형, 살수라면 살기가 있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곽우가 물었다.

“우리도 한 놈 잡았잖아. 살수라고 다 살기가 주위에 묻어나오지 않아. 송백림 전체에 살기를 뿌릴 정도라면 엄청난 살성을 지닌 인물이라는 거지.”

“허어…… 중원에 그런 인물이 있습니까?”

“음, 살천성의 성주라면 가능할 수 도 있겠지. 근데…… 문제는 ‘그가 검황을 이길 수 있을까’부터가 의문이란 거야.”

“그러네요. 검황을 상대로 이기기는 어렵겠지요.”

사건에 대해 말하는 그들 사이에서 고진유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혈사천주에게 간 화산제일검 독소응 사숙.

‘검황을 이길 정도의 살성이라면……사숙님일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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