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화
십문십가친선비무대회.
무림맹의 모든 관심이 십문십가의 친선비무에 집중되었다.
십문십가가 완벽하게 정착된 후, 그들만의 가벼운 친선을 위해 시작된 비무였다.
하지만 십문과 십가의 체면이 걸린 일이기에 그들로서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십문십가의 인물이라면 누가 도전자로 나와도 상관없었다.
이번 대회는 특히 오랜만에 화산파 가 참여하면서, 도전자로 과연 누가 나올지 관심이 더욱더 집중되었다.
격정의 비무대회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화산파에서는 내일 비무에 누구를 보낼 생각인가?”
“제가 나갈 것입니다.”
“직접? 자네는 화산대사인데?”
“중원대사가 나가면 안 된다는 법이 있습니까?”
“그거야 없네만…… 보통은 잘 안 나오는 편이라서. 혹시 이유가 있는가?”
“십문과 십가에서 비무를 하는데 이왕 이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허허, 자네가 승부욕이 강할 줄은 몰랐군. 개인적인 이익에 더 치중한다고 봤거든.”
“맞긴 합니다만, 또한 제가 지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거든요.”
무림맹주 황보강은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한 가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무엇인가?”
“만일 비무대회에서 잘못되어 상대가 다치게 된다면 어떻게 됩니까?”
“…….”
고진유는 쓸데없는 질문을 물어볼 인물이 아니었다.
‘뭔가 있군.’
그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상대가 다치지 않도록 조절하면서 상대할 수 있다.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누굴 속 시원하게 팰 일이 있는 모양이지?”
“……맹주님께서 평소에 저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지는군요. 만일의 상황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어떻게 제가 말만 하면 꼭 삐딱하게 보시는지.”
“우리 조용히 지나가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저야 늘 조용한 것을 제일 먼저 추구하는 사람이지만, 상대가 그러지 않는군요. 매번 최선을 다하겠지만 방법이 없다면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하아…… 뭐, 알겠네. 이해는 해주겠네.”
무인이라면 비무 중 다치는 것은 물론, 목숨을 잃는다 해도 결과에 대해 원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황보강은 재차 부탁을 했다.
“물론 그대야 최선을 다하겠지만, 가능하면 조용히 지나가 주길 부탁하겠네. 요즘 무림이 어떻게 터질지 모르는 시국처럼 느껴져서 말이야.”
“최대한 노력하겠습니다.”
“거 고맙군.”
황보강은 내일 있을 비무대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이 앞섰다.
“한잔 더 마시겠나?”
“내일 비무 때문에 준비를 해야겠습니다.”
그들이 마신 것만 해도 벌써 한 동이째였다.
“자네를 보면 가끔씩 웃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이야.”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똑똑.
그때, 문밖에 인기척이 들렸다.
“오호, 이 시간에 누가 올 사람도 없을 텐데.”
황보강이 밖을 향해 돌아섰다.
“맹주님, 사마추입니다.”
‘이군사가?’
뜻밖의 인물이 찾아왔다.
무림맹에는 두 명의 군사가 존재했다.
총군사 겸 금맹군의 일군사인 제갈문과 비맹전의 책임자인 이군사 사마추가 바로 그들이었다.
“들어오시게.”
이군사 사마추가 안으로 들어섰다.
등 뒤로 길게 내려온 진한 흑발과 굵고 짙은 흑색의 눈썹이 강한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사마추는 고개를 숙이며 양손을 얼굴까지 올린 뒤 인사했다.
손등을 가렸던 소매의 끝이 살짝 손목으로 흘러내렸다.
순간, 고진유의 눈이 커졌다.
‘저건…….’
순식간에 표정을 유지한 고진유는 탁자에 놓인 술잔을 단숨에 들이켜며 진정했다.
두 사람은 고진유의 표정을 읽지 못했다.
“사마 군사, 어서 오시게.”
“손님이 계셨군요. 혹시 화산대사입니까?”
“그러고 보니 서로 만난 적이 없구려. 내가 정신이 없다 보니 소개를 시켜줘야 했는데 잊었소이다.”
고진유가 무림맹에 들어왔을 당시 사마추는 무림맹을 잠시 비운 사이였다.
그 후 고진유가 허창으로 떠난 사이에 사마추가 돌아왔다.
“화산대사, 서로 인사하시게. 우선 여기는 무림맹의 이군사이며 비맹전을 담당하는 사마추라 하네.”
스윽.
고진유는 포권을 하며 허리를 숙였다.
“화산대사 고진유라 합니다. 이군사님을 만나뵙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
“나도 반갑소이다. 앞으로 무림맹에서 잘 지내보도록 합시다.”
사마추는 포권을 했다.
고진유의 시선은 포권을 한 사마추의 오른 손등에 박혔다.
‘국화 문신.’
정면에서 본 탓인지 자세히는 보이지 않았지만, 문신은 틀림없었다.
가슴이 떨리는 것을 진정시켜야 했다.
사부님의 원수가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사마 군사, 본인에게 볼일이 있는가?”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한 분이 더 오기로 했습니다.”
“누가 온다는 말이오?”
드륵.
때마침 문이 열리며 눈에 익은 얼굴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하하하, 형님, 저 왔습니다.”
“사마 군사가 말한 사람이 너냐?”
“무슨 말씀이신지? 전 사마 군사가 볼일이 있다고 해서 온 것뿐입니다.”
“알았으니 자리에 앉기나 해.”
황보유는 안으로 들어온 뒤 자리에 앉았다.
“황보대사께서도 오셨으니 말씀드려야겠군요 본인이 내일 있을 십문십가친선비무대회에 대해서 의견 드릴 것이 있어 왔습니다.”
“무슨 말인가?”
“올해 열리는 십문십가의 비무대회를 모든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이 볼 수 있도록 무림대광장에서 열면 좋을 듯합니다.”
“흐음? 굳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소?”
“요즘 무림맹의 분위기가 가라앉은 듯하지 않습니까. 점창파와 형산파의 일도 있다 보니 무림맹의 무인들도 눈치를 보는 듯하더군요. 이럴 때 비무대회를 하면서 분위기를 올리면 좋을 듯해서 건의를 하는 바입니다.”
황보강은 그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여겼다.
십문십가의 비무라면 충분히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황보 의장의 생각은 어떠한가?”
“글쎄요. 그건 제가 결정할 문제는 아니라고 봅니다만…….”
황보유도 괜찮은 의견이라 여겼지만 먼저 중원대사들의 뜻을 확인해야 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고진유가 툭 던지듯 말을 했다.
“화산대사, 이 일은 우리끼리 결정지을 수 없지 않는가?”
“사마 군사님의 말씀처럼 좋은 의도인 것 같습니다. 십문십가에서도 찬성할 게 분명합니다.”
“……그런가?”
황보유는 미심쩍은 의문이 들었다.
“황보 대사님. 화산대사도 좋다고 하니 우선 결정을 짓고 난 뒤 통보를 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음…… 나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부담을 가지는 문파도 있지 않을까 싶군요.”
“부담이 되는 십문십가에서는 비무 대회에 참석 안 해도 됩니다.”
황보유의 인상이 구겨졌다.
“사마 군사, 알겠소이다. 중원대사들에게 통보하도록 하겠소이다.”
“하하하! 벌써부터 흥분이 되는군.”
황보강은 기분이 좋은 듯 손바닥을 비볐다. 얼른 내일이 되었으면 할 정도로 기다려졌다.
고진유는 의자에 기댄 채 사마추를 주시했다.
손등에 국화 문신이 너무나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다.
스윽.
사마추가 옆에서 지켜보는 고진유의 시선을 느낀 듯 고개를 돌렸다.
“화산대사, 본인에게 용건이 있소이까?”
“없습니다.”
“본인을 계속 보는 듯하군요.”
“아, 어릴 때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제가 처음 보는 사람은 항상 주시하는 습관이 있어서요.”
“하긴 도둑질을 잘하려면 주위를 잘 살펴야지 않겠소. 아, 이런…… 실례된 말을 했을지 모르겠군요.”
사마추는 은근슬쩍 도둑 출신임을 강조하는 듯 보였다.
“괜찮습니다. 과거를 부정한다고 해서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한때 도둑이었던 것도 제 모습이니 영원히 담고 가야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아직 젊은 분께서 말도 잘하는군요. 맞소이다. 과거를 인정해야 좋은 미래를 얻을 수 있지요.”
“말씀은 제가 아니라 사마 군사께서 더 유창하십니다.”
스윽.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맹주님, 그만 가도 되겠습니까? 내일 비무에 나가려면 조금이라도 몸은 풀어야 할 것 같습니다.”
“화산대사가 비무에 직접 나올 것이오?”
“황보대사님. 무림맹의 전 인원들이 지켜보는데 화산파가 질 수는 없지요. 어쩌면 황보세가와 붙을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흐으음. 너무하지 않은가?”
“살살하겠습니다. 이야기들 나누시지요. 먼저 가겠습니다.”
고진유는 포권을 한 뒤 밖으로 나섰다.
나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황보유는 고민에 빠졌다.
‘당장 화산대사를 이길 수 있는 아이들은 없는데…… 어떻게 하지? 아!’
황보유의 고민은 얼마 가지 않았다.
좋은 방법이 생각난 그의 얼굴이 펴졌다.
‘그렇군. 화산파와 붙지 않으면 되는 것이 아닌가!’
* * *
아침이 밝기 전에 이미 소문은 무림맹 전체로 퍼졌다.
십문십가 친선비무대회의 장소와 시간이 바뀌었다.
무림대광장.
시작 시간은 정오.
시간이 점점 가까워지자 무림대광장으로 무림맹 소속의 무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대광장 중앙에 마련된 비무대.
양옆으로 십문과 십가 소속의 비무 참가자들이 나누어 대기했다.
소림대사 공요는 관중석을 보면서 합장을 했다.
“아미타불…… 마치 천하무림대회와 같지 않소이까.”
“그러게 말입니다. 가볍게 비무를 나누는 자리가 너무 커진 것은 아닌지…….”
“무당대사의 말씀이 맞소이다. 만일 지기라도 한다면 망신이 아닐지 걱정이 됩니다.”
공요는 비무에 나설 각 문파의 출전자들을 보았다.
‘아홉 명?’
한 자리가 비어 있었다.
단번에 누가 없는지 알았다.
“화산대사는 어디 갔소이까?”
“방금 전까지 있었는데…… 앗, 저기 위에…….”
무당대사가 손으로 한 방향을 가리켰다.
비무대 위.
언제 올라갔는지 고진유의 모습이 보였다.
웅성거리던 대광장은 고진유의 등장으로 조용해졌다.
척!
고진유는 포권을 하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이곳에 모인 무림맹의 영웅들께 인사드리겠소이다. 화산파 제자 고진유라 합니다!”
고진유의 소개가 끝이 나자 환호 소리가 관중석에서 울렸다.
“와아아아아--!!!”
“화산도협이시다.”
무림맹 무인들 사이에서 고진유는 인기가 좋았다.
대문파 소속이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만나는 인물들에게 존대하며 친근하게 대해주었다.
군소방파 출신으로 상승의 무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무인들에게 간간이 무리(武理)에 대해서 가르쳐 주기도 했다.
스스로 낮추는 모습에 무림맹 무인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무림대광장에서 비무를 하도록 도움을 주신 무림대영웅 황보강 무림맹주님께도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고진유는 중앙 관람석에 앉은 황보강을 향해 포권을 했다.
이번에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와아아아!! 맹주님 만세!!”
황보강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들었다.
“허어, 이거 참 쑥스럽구만.”
또 한 번의 함성이 무림대광장을 울렸다.
“무림맹 만세!!”
“맹주님 만세!!”
십문 대기석에 있던 묵경은 미소를 지었다.
비무대 위에서 관중석의 시선을 받으며 당당한 서 있는 고진유의 모습.
“인물은 인물이야.”
“묵경 형, 난 저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것 같군요. 부끄러워서…….”
“아하하, 우 형, 나도 마찬가지외다. 저건 체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동이지요.”
고진유의 목소리는 다시 울렸다.
“본도가 이 자리에 선 이유는 십문십가의 비무에 참석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의 말씀을 드리는 것과 동시에, 한 가지 제안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전까지는 한 문파씩 비무를 한 번 한 후 끝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 방식도 좋기는 하나, 그렇게 되면 한 문파와 한 번의 비무를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도가 제안하는 비무의 방식은 단체전이며, 승자가 도전자를 계속 상대해서 끝까지 남아 있는 쪽이 이기는 걸로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웅성웅성.
고진유의 제안에 무림대광장의 관중석이 술렁거렸다.
십문십가의 중원대사들은 고진유의 제안에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관중석에 가득 채운 무림맹 무인들은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아!!”
“찬성이오!”
“화산도협의 말씀이 맞소이다.”
“그렇게 하시오!”
수백 명이 내지르는 목소리에 중원대사들은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남궁대사 남궁강은 의자에 앉은 남궁한을 보았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오히려 잘 됐습니다. 이번 기회에 남궁세가의 무공이 어떠한지 확실하게 보여주겠습니다.”
“…….”
어제저녁 남궁한과 비무를 가졌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비무 도중에 일어났다.
하루 사이에 무공이 달라졌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었지만 수련을 했다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이 없었다.
‘한이 보여준 무공이라면 십문의 상대자들을 홀로 싸워 모두 이길 수 있어.’
“알겠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강이 십가의 중원대사들 곁으로 다가섰다.
“찬성이오. 일대일로 싸워 결정 짓는 것보다 이 방식이 훨씬 우리가 유리하지 않소이까.”
“남궁대사의 말씀이 맞소이다. 십문에는 화산대사 외에는 강한 상대가 없소이다.”
모용대사 모용부명이 찬성했다.
“그렇게 하시지요. 본 세가도 그게 좋겠소이다.”
백리노문도 같은 뜻을 밝혔다.
혹시나 모를 개인적 패배보다는 단체로 지는 것이 훨씬 낫다고 여긴 것이다.
십가의 분위기는 찬성으로 넘어갔다.
십문 또한 고진유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십문은 현재 전체적으로 십가의 무공에 비해 다소 떨어졌다.
다행히 고진유의 등장으로 승패를 명확하게 점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화산대사의 제안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본승도 예전부터 이와 같은 방식을 생각하고 있었소이다.”
“찬성하는 모양이군요. 여러 대사님들도 같은 생각이라면 찬성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스윽.
종남대사 운정 도인이 나섰다.
“이 방식대로 한다면 누가 먼저 선봉에 나서겠습니까?”
혼자서는 절대로 열 명을 상대로 계속 싸울 수 없었다.
“무공이 약한 순서대로 순번을 짜야 유리하지 않겠소이까?”
“……죄송하지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우종성이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그대는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화산파에서 선봉을 맡고 싶습니다.”
“화산대사가 그렇게 말했는가?”
“그렇습니다.”
우종성은 방금 전 고진유의 전음을 들었다.
“허허, 가장 마지막에 있어야 될 사람이…….”
청유도인은 내키지 않았지만 고진유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었다.
“알겠네. 그렇게 정하도록 함세.”
운정 도인도 화산파가 먼저 나선다고 하자 곧바로 찬성했다.
십문과 십가의 대표자인 소림대사와 남궁대사가 동시에 소리쳤다.
“십문에서는 동의하는 바이오.”
“십가도 화산대사의 뜻대로 하겠소이다!”
“와아아아아--!!”
무림대광장의 열기가 끓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