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화
조의문으로 돌아가는 길.
개운해야 했다.
거의 서너 달을 힘들게 했던 사건이 해결되었지만 표정이 밝지 않았다.
문주 감천욱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본 문과 싸우고자 주장한 부혈당에 변절자가 있는 것처럼, 우리도…… 있을 수 있다.’
조의문에도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부혈당과 싸우자고 누가 강하게 주장했지?’
부혈당까지 동행한 두 명.
그가 내당주와 감후동과 장로 감현을 슬쩍 살폈다.
‘이들은 아니야. 나에게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고 계속 주장했었지. 그렇다면…….’
조의문의 주요 인물 중 한 명씩 기억을 끄집어냈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 의심이 가는 인물이 생각났다.
‘외당주…… 감문서.’
자신과는 사촌으로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부혈당과 사건이 일어난 후, 조의문의 명예를 위해 계속해서 싸우자고 주장한 인물이었다.
감천욱은 앞서가는 고진유의 뒷모습을 보았다.
‘도협은 부혈당에 간자가 있음을 사전에 알아차렸다. 그렇다면 본 문도…….’
그는 알고 있지 않을까?
“화산도협.”
앞서가던 고진유가 걸음을 멈추며 돌아섰다.
“본도에게 할 말이 있소이까?”
“…….”
고진유의 표정.
이제야 묻는 것이냐는 듯한 표정처럼 보였다.
“혹시 본 문에도…… 부혈당의 총관과 비슷한 행동을 한 인물이 있지 않겠습니까?”
감천욱의 물음에 나란히 동행하던 감후동과 감현이 깜짝 놀랐다.
“문주님,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본 문에 변절자가 있다는 뜻입니까? 절대로 없을 것입니다!”
“내당주, 그게 아니네. 부혈당이라고 해서 총관이 변절한 줄 알았겠는가? 본 문도 장담할 수 없어.”
“아무리 그렇지만…… 본 문은 저들과 달리 모두 한 가족이지 않습니까?”
“후동, 정말로 모두가 가족이라 생각한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
감후동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문주 감천욱의 물음에 자신이 없어졌다.
장로 감현은 평상시 가졌던 생각을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회의를 할 때마다 과도하게 표현한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외당주 감문서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감현과 감천욱은 같은 인물을 지적했다.
고진유는 한발 물러난 듯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다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참가했다.
“맞소이다. 조의문에도 변절자가 있는 듯하군요.”
“화산도협께서도 그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문주님과 감 장로께서도 외당주 감문서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보셨지 않습니까.”
“아…… 하아…….”
감천욱은 탄식을 쏟아냈다.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벌써 세 사람이 동시에 그를 지적했다면, 변절자임에 틀림없었다.
“문주님, 하지만 수상하다는 것만으로 변절자라고 확신할 순 없소이다. 증거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화산도협, 어떻게 증거를 찾는단 말이오?”
“그건 조의문에서 결정해야겠지요. 간단하게 그를 잡아서 심문하는 방법도 있고, 아니면 그의 주위에 사람을 심어놓은 뒤 증거를 찾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지요.”
“……알겠소이다. 도착하려면 아직 시간이 있으니 본 문에서 의논을 해보겠소이다.”
“그렇게 하시죠.”
조의문의 일은 그들 스스로 정리하도록 놓아두었다.
당장 큰일로 번져 나가지는 않을 일이었기에 지켜보기로 한 것이다.
고진유는 한쪽으로 물러나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는 세 사람을 보았다.
그의 옆으로 물러나 있던 묵경이 다시 붙어 섰다.
“저들에게 맡길 모양인가 보네?”
“우리가 잡는다고 새로운 게 없을 겁니다. 저들이 알게 되었으니 잘 처리하겠지요.”
“그렇군.”
묵경은 세 사람을 보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런 작은 문파까지 침투해 있을 정도면 무림에 극일천의 간자가 없는 곳이 없겠어.”
“그렇다고 봐야겠죠. 아무도 모르게 무림이 장악된 것 같아요. 사방이 적이라 그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갈수록 더 힘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네요.”
“…….”
묵경은 기분이 착찹했다.
모든 일을 긍정으로 보던 고진유였다.
‘흠. 이럴 때 형인 내가 기운을 북돋워 줘야겠지?’
스윽.
고진유의 어깨에 손을 걸쳤다.
“야. 힘내. 네가 힘을 안 내면 어쩌냐? 천하제일인 앞길에 이 정도는 어려움이 있어야지 않겠어?”
“푸흣, 네네, 걱정 안 해도 됩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거죠. 괜찮습니다.”
“그래? 다행이네. 무림맹에 돌아가기 전에 우리 신나는 곳에 갈까? 형이 쏠게.”
“사방팔방 우릴 노려보고 있는데 어딜 갑니까?”
“나 참, 너하고 다니다가는 독수공방 신세가 될 것 같아.”
묵경은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신세를 한탄했다.
* * *
조의문이 멀리 보였다.
미리 연락이 갔는지 정문에는 이미 조의문의 주요 인물들이 모여 있었다.
감천욱과 감문서, 감현은 반가움보다는 굳은 채 정문을 노려보았다.
마을 초입에 들어오기 전, 세 사람은 결정을 내렸다.
정문 앞.
외당주 감문서와 조의군장 감호가 마중을 나왔다.
“문주님, 오셨습니까?”
“외당주.”
허리를 숙인 감문서를 내려다보는 감천욱의 시선이 차가웠다.
“……네에…… 말씀하시지요.”
“내가 자네에게 못 해준 게 있는가?”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까?”
대답하는 감문서의 눈동자와 목소리가 떨렸다.
누가 봐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네. 사실대로 모두 밝히게.”
“…….”
순간, 감문서의 머릿속에 수만 가지의 생각들이 지나가기 시작했다.
‘들켰다. 어떻게 하지? 바로 도망을? 아니면 잘못 알았다고 할까?’
감천욱은 망설이는 그의 눈동자를 보며 확신했다.
“조의군장, 본 문의 변절자인 감문서를 포박하게.”
“……넵, 알겠습니다.”
감호는 잠시 망설이다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쉬익!
“조의군은 당장 이자를 포박해라.”
다다다다다-
그가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소리치자, 수십 명의 조의군의 무인들이 달려 나와 감문서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포박했다.
* * *
조의문으로 돌아온 지 하루.
정문까지 배웅을 나온 문주 감천욱은 아쉬움이 뚝뚝 떨어졌다.
“화산도협께서는 본 문의 은인이십니다.”
“본도가 한 일은 없습니다. 무림맹주께서 보내서 온 것뿐입니다.”
“하하하! 역시 겸손하십니다. 화산도협께서는 진정한 의협이시군요.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그리워하겠습니다.”
“먼 길이라서 그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미소를 짓고는 마지막으로 눈인사를 한 후 일행 곁으로 다가섰다.
“우리 볼일이 끝났으니 무림맹으로 돌아갑시다.”
그때, 일행 중 파숙이 무엇인가 물어볼 듯이 머뭇머뭇했다.
“화산대사님. 전 어떻게…….”
“파 특사도 당연히 무림맹으로 함께 가는 것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파숙의 얼굴이 단번에 활짝 폈다.
‘무림맹에 들어가다니……!’
포쾌 생활을 하던 당시 꾸었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 * *
복우산(伏牛山).
허창 우주(禹州)에 위치한 산의 이름은 마치 산세가 소가 엎드린 듯하여 붙여진 것이었다.
그리고 엎드린 소의 엉덩이에 해당하는 산중턱 우둔지에, 수백 명의 무리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복장은 누가 봐도 산적임에 틀림없었다.
녹림칠십이채 중 한 곳인 복우산채의 녹림도.
복우산채주 방식후는 중년 사내 앞에서 허리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삐이이이익-
산문 아래에서 신호가 들렸다.
“예향 님, 놈들이 복우산 계곡에 들어선 모양입니다요.”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사내.
녹검살형 예향이 분명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보내기 아쉬웠지. 나중에 상당히 귀찮은 인물이 될 것 같거든.”
사파의 앞길에 문제가 될 싹은 미리 잘라두는 게 편안하다.
“방 채주, 놈들을 어디서 협공하기로 했지?”
“지우곡에 수하들을 매복시켜 놨습지요. 지금 바로 가시면 만날 수 있습니다.”
빠드득.
예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목을 돌렸다.
“큭, 오랜만에 재미있겠어.”
* * *
두두두두두두-
일행은 복우산의 계곡을 빠르게 통과했다
정주로 가는 다른 편한 길도 있었지만, 지우곡을 통해서 지나면 반나절을 절약할 수 있었다.
그때, 선두에서 달리던 군성창이 손을 들어 뒤에 달리던 일행에게 신호를 보냈다.
히이이잉!!
계곡 전방에 모여 있는 무리.
군성창은 그들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차렸다.
“화산대사님, 산적들입니다.”
“이곳이 산적들이 출몰하는 장소는 아닌 듯한데. 안 그렇소?”
“맞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볼일이 있겠군.”
우우우웅-
계곡의 앞과 뒤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점점 모습을 드러내는 산적 무리.
“계곡을 사이에 두고 포위한 뒤 공격하려는 계획인가 본데. 진유 아우, 여기서 협공을 당하면 위험해.”
파숙까지 포함한 여섯 명의 특사조.
수백의 산적들을 상대하면 그들의 안위를 장담할 수 없다.
“군 특사.”
“말씀하십시오.”
“호청 사저에게 받은 물건이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묵경은 화들짝 놀랬다.
“진유 아우, 설마?”
“간단하게 처리하죠.”
고진유는 계곡 앞과 뒤를 번갈아 보았다.
“앞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니 저기 뒤에 전부 던지는 겁니다. 하나씩 들어요.”
일행의 손에 사천당문의 자랑인 천벽탄(天劈彈)이 하나씩 들렸다.
휘익!!
고진유가 먼저 지우곡의 벽을 향해 팔을 휘둘렀다.
콰아아앙!!!
천벽탄이 터지면서 거친 굉음이 터졌다.
“역시 사천당문의 솜씨는 뛰어나.”
휙! 휙! 휙!!
고진유를 따라 일행도 동시에 계곡 위로 천벽탄을 던졌다.
쿠쿠쿠쿠쿠쿠-
천벽탄의 위력은 강했다.
지우곡의 벽이 갈라지면서 무너지기 시작하더니, 계곡 후방에서 달려오던 복우산채 녹림도를 덮쳤다.
그 아래로 괴성이 계곡을 울렸다.
“피하라!! 계곡이 무너진다!!”
“저 미친놈들이……!!”
우르르르르-
한 번 무너지기 시작진 시작한 토사가 연쇄 반응을 일으키며 계곡 안으로 쏟아져 내렸다.
땅이 흔들리며, 후방에서 흙먼지가 하늘을 덮을 정도로 솟구쳤다.
“큭, 크하하하하!!”
계곡의 전방을 막아서고 있던 예향은 목이 터질 듯 대소를 터뜨렸다.
후방에서 산채의 수하들이 죽는 건 그에게는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벽력탄으로 계곡을 무너뜨리다니! 정파란 놈이 저딴 짓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군! 하하하! 여하튼 특이한 놈이야!”
그가 계곡 안에서 앞서 나오던 고진유를 맞이했다.
“어이, 반갑군.”
“난 누군가 했소.”
“장난 한번 거하더군. 이곳 백성들이 길을 막아놓았다고 싫어할 텐데. 도사 놈이 이래도 되는가?”
“길이 하나밖에 없다면 문제가 되겠지만, 이 길 말고도 다른 길이 있다고 들었소. 그리고 산적 놈들을 치웠다고 하면 오히려 더 좋아하지 않겠소?”
“그것까지 생각을 했다? 역시 보통 정파 놈들과는 다르군.”
예향은 결심을 굳혔다.
이놈은 사파 무림을 위해 사전에 잘라내야 했다.
천벽탄에 의해 절반 이상의 녹림도들이 무너진 계곡 앞에서 막혔지만, 여전히 오백 명의 녹림도가 건재했다.
“방 채주. 저놈들을 내 앞에 끌고 오도록.”
“존명.”
방식후는 등에서 장도를 뺐다.
그 뒤를 오백 명의 녹림도가 따르며 달려들었다.
“어어…….”
군성창을 비롯한 여섯 명의 특사조들은 몸이 떨렸다.
이런 경험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서로 떨어지지 말고 묵경 형의 주위로 대형을 유지하세요.”
고진유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묵경은 뒤에 선 일행을 향해 고진유가 누구인지 알려주었다.
“모두 걱정하지 말게. 지금 보고 있는 사내가 누구인지 아는가? 바로 천하제일인이 될 사내지!”
‘천…… 하제일인…….’
언제 어디서 들어도 경이로운 단어다.
“똑바로 보게. 훗날 그대들의 후손에게 자랑스럽게 이야기할 날이 올 테니.”
“…….”
묵경의 말에 그들의 가슴에서 두려움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잉-
고진유는 사의검을 천천히 잡아당겼다.
검에서 흐르는 향기가 퍼졌다.
천상천하매화검향(天上天下梅花劍香).
번쩍!
매화검광이 전방을 향해 폭발하며 꽃잎이 공중으로 날렸다.
앞을 향해 달려오던 오백여 명의 녹림도들의 눈에, 빛 속에서 매화가 흐르는 풍경이 비쳤다.
“커어어어억!”
“아아아아아악-!!”
“으으으으--”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선두에서 달려오던 일백의 녹림도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복우산곡(伏牛山谷) 일검백절(一劍百絶)…….”
전설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믿기지 않는 광경은 녹림도뿐만 아니라 묵경은 물론 여섯 명의 특사조까지 할 말을 잃게 했다.
“천하…… 제일인…….”
파숙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묵경이 한 말이 이해가 되었다.
싸움의 승패는 기세라 했다.
“와아아아아!!!”
파숙이 검을 하늘로 솟구치며 소리를 질렀다.
그와 동시에 나머지 다섯 명의 특사조도 목이 터져라 고함을 쳤다.
슈슈슈슈슈슈-
고진유의 사의검은 멈추지 않았다.
파아아앗---!!
또 한 번의 검광이 폭발하며 사의검이 허공을 갈라 녹림도들을 향해 쏟아졌다.
쉬시시시시시시-
마치 거대한 작두가 계곡 전체를 베고 지나가는 듯했다.
“커어어어억!!”
“아아아아악!”
다시 이어진 비명이 계곡을 울렸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공한 무공의 위력.
채주 방식후도 한쪽 팔이 잘려 나간 채 두려움에 떨었다.
‘괴…… 물이다…….’
예향은 잘못되었음을 알았다.
놀랐는지 전신이 떨리고 있었다.
‘아니…… 두려움인가?’
착각했다.
그는 자라나는 인물이 아니었다.
단번에 이백여 명의 녹림도들이 부상을 당하거나 목숨이 사라졌다.
“으악!!!”
그가 넋이 나간 사이, 무림맹의 일행이 기세가 꺾인 녹림도들 사이에 뛰어들었다.
그들 사이에서 묵경의 무공은 군계일학이었다.
‘저자의 무공도 이렇게 강했던가?’
자신과 비교해도 절대로 낮지 않았다.
휘이익-!
사뿐.
예향의 앞에 고진유가 내려섰다.
“이제 우리 차례요.”
“……화산도협.”
“당신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 중이오.”
“하하…… 웃기는군. 네놈은 아직 나와 승부를 가리지 않았다.”
“당신은 똥을 먹어봐야 아는 모양이지?”
“…….”
자신 있게 대꾸했지만 바로 말문이 막혔다.
예향은 이미 기가 꺾였다.
“좋소. 몰랐다면 한 수만에 똥 맛이 무엇인지 알려주겠소.”
“망할 새끼가!!!”
무림에 나온 뒤 모욕도 이런 모욕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는 점점 내력을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