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고진유는 홀로 조의전으로 향했다.
조의문주 감천욱에게 연락을 보내자 곧바로 연락이 왔다.
사건이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정문에서 건물 입구까지 십 장의 거리.
처억.
조의전 건물 앞에서 무사가 허리를 숙였다.
“화산대사님을 뵙습니다.”
“조의전으로 들어가도 되겠소?”
휘익.
조의문 무사 두진은 절도 있게 서너 걸음 옆으로 물러났다.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고맙소.”
조의전으로 들어서자, 대전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많이 모였군.’
문주 감천욱을 포함, 좌우로 내당 책임자 감후동과 장로 감현. 그 두 사람 옆으로는 주요 인물들이 서 있었다.
일보매화향천(一步梅花香天).
매화 향이 공기를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고진유의 한 걸음마다 눈에 보일 정도로 선명하고 강한 내력이 뿜어졌다.
‘엄…… 청나다.’
화산도협의 위명은 익히 들었다.
남궁삼천검 남궁허조차 인정한 화산파의 무인.
무림맹 팔군이 온 것보다 더 강한 뒷배를 얻은 듯하다.
문주 감천욱은 몸이 저절로 일어났다.
“화산대사, 오셨소이까?”
“많은 분들을 귀찮게 해서 죄송하게 되었소이다.”
“아닙니다. 화산대사께서 원하신다면 당연히 모여야지 않겠습니까.”
“문주께서 이해해 주시니 고맙군요.”
고진유는 모인 인물들과 시선을 맞추며 포권을 했다.
마지막으로 다시 감천욱에게 시선을 향했다.
“문주께 모여달라고 연락한 이유는 드릴 말씀이 있기 때문이외다.”
“경청하겠습니다.”
“이번 부혈당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조의문의 뜻입니다. 잘잘못과는 상관없이 부혈당과 싸우고 싶습니까?”
문주 감천욱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맹주님께서 팔군이 아닌 본도를 보낸 의도를 아셔야 할 겁니다.”
“……!”
무림맹주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그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무력을 보내주지 않겠다는 뜻.
무림맹에서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부혈당과의 전쟁에서 승패의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다.
“그…… 건 아닙니다. 꼭 싸울 의도는 아닙니다.”
“조의문의 생각입니까?”
스윽.
장로 감현이 한 걸음 나섰다.
“화산대사. 본인이 말을 해도 되겠소이까?”
“하시지요.”
“부혈당과 직접 싸우지 않겠다는 결정은 내린 이는 맹주님이십니까? 아니면 대사의 뜻입니까?”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군요. 확실하게 이 자리에서 밝히는 바입니다. 무림맹의 뜻이 곧 맹주의 뜻이외다. 또한 맹주의 뜻이 무림맹의 뜻이기도 하지요.”
스윽.
고진유는 손에 특사조의 신패를 꺼내어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뭔지 아시겠지만 바로 특사조의 신패입니다. 맹주의 권한을 그대로 부여받은 인물이 바로 특사의 신분이오. 아시겠소? 특사는 곧 바로 맹주님의 뜻이라는 것이외다.”
감현은 어깨를 누르는 고진유의 강한 기운에 몸이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문주 감천욱이 얼른 나섰다.
“화산대사. 본 문의 뜻과 상관없이 부혈당이 무작정 싸우고자 한다면 의미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때가 되면 본인이 조의문의 앞에서 싸울 겁니다.”
“…….”
“우선 그 전에 만나 이야기를 해봐야겠지요.”
“화, 화산대사께서 그들을 만나 해결이 잘 된다면야 걱정이 없겠습니다. 저들은 본 문의 무인에 의해 부혈당의 무인이 죽었다고 난리도 아닙니다.”
“조의문 무인에 의해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되지 않겠소이까.”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우리가 죽이지 않은 게 사실입니까? 누가 그를 죽였다는 말입니까?”
내당주 감후동이 놀라 다급히 물었다.
“지금 당장은 범인이 누구인지 중요하지 않지요. 조의문의 무인들이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지요.”
“그렇…… 습니다만 증거가 있습니까?”
“당연히 있지요. 두 문파 간의 싸움에 어찌 증거 없이 함부로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 하하, 그렇다면…….”
일단 감천욱은 수하들이 그를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한 듯했다.
‘자, 누구지?’
그에 반해 고진유의 눈빛은 주의를 빠르게 살폈다.
조의문 무인들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면, 조의문 입장에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하지만,
‘찾았다.’
왼쪽 눈썹 위에 검은 점.
외당주 감문서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
원하지 않게 돌아가는 상황이 불만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다.
소싯적 소매치기의 기본은 주위 상황을 빠르게 판단하는 능력.
즉 눈썰미가 뛰어나야 살아남는다.
거기다 상대가 어떻게 움직일지 예상하는 습관까지 습득해야 한다.
감문서의 콧등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역시. 나서는군.’
감문서가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화산대사, 그 증거라는 것을 볼 수 있소이까?”
“당연히 보여줘야지요. 하나 지금 여기에서는 보여주고 싶어도 보여줄 수 없소.”
“그게 무슨 말이오? 증거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이오?”
“그렇소이다. 본도가 증거를 안전하게 두었으니 조만간 볼 수 겁니다.”
“…….”
고진유는 미소를 띠고는 문주 감천욱에게 시선을 돌렸다.
“문주님,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부혈당의 문주를 직접 만나고자 합니다. 함께 가시겠습니까?”
“그, 그렇게 하지요. 싸우든 화해를 하든 한 번은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감천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 * *
두두두두두두-
부혈당을 향해 무림맹의 표식을 단 기마가 달렸다.
“저건…… 무림맹인데?”
“어, 어떻게 하지?”
“어떡하긴, 빨리 비상 신호를 보내야지!!”
“알…… 알겠어.”
부혈당 정문 무사는 다급히 폭죽을 터뜨렸다.
피이이이우우웅--
정문에서 비상 폭죽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부혈당은 당연히 난리가 났다.
우당탕!!
밥을 먹는 자.
큰 볼일을 보던 자.
몰래 숨어서 잠을 자던 자.
모두가 손에 잡히는 대로 들고 밖으로 튀어나왔다.
일백 명의 부혈당 무사들이 경내에 빠르게 정렬했다.
“천부대는 정문을 사수한다!!”
천부대(天斧隊) 대주 호척구는 수하들과 함께 곧장 달렸다.
하지만,
‘뭐…… 지?’
비상사태를 알린 정문은 너무나 조용했다.
정문에 도착하자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고개를 숙인 두 사람이 보였다.
그들 앞에는 무림맹 무인 한 사람이 말 위에 앉아 있었다.
호척구는 정문 밖을 살폈다.
휑한 바람만이 지나갈 뿐이었다.
“변 위사. 지금…… 무슨 일이지?”
호척구의 목소리에 살짝 짜증과 함께 노기가 느껴졌다.
“죄, 죄송…… 합니다. 저희들이…… 무림맹 표기를 보고…… 놀라서…….”
“허어……?”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우당탕탕!! 콰앙!!
부혈당 경내에서는 여전히 시끄러운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저기…… 들리지?”
“죽을죄를 졌습니다!!”
꾸우욱.
호척구는 손에 힘을 주며 참았다.
“그건 나중에 따로 만나서 이야기하는 걸로 하자.”
그러고는 말 위에서 내린 사내의 앞으로 다가섰다.
“무슨 일로 오셨소?”
“본인은 화산대사님의 전령을 가지고 왔소. 당신의 신분을 물어봐도 되겠소?”
“천부대를 맡고 있소이다.”
“부혈당의 혈부(血斧) 호척구가 그대인 모양이구려.”
군성창이 허리에서 한 장의 서신을 꺼냈다.
“이것을 받으시오.”
“…….”
호척구는 서신을 받았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그대의 주인께 보여준 뒤 확답을 주시오.”
“……알겠소이다. 기다리시오.”
호척구는 서신을 손에 쥐고 문주에게 향했다.
호척구가 정문에서 돌아오자 부혈당 경내에서 일어난 한바탕 소란이 진정되었다.
한편, 서신을 보낸 인물이 화산대사 고진유라는 것을 확인한 부혈당 문주 임추묵은 신중히 종이를 펼쳤다.
“문주님, 뭐라 적혀 있습니까?”
가느다란 팔자수염을 기른 중년인, 총관 담여진이 물었다.
“만나자고 연락이 왔군. 조의문주와 함께 여기로 내려오겠다고 한다.”
“만난다는 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 서로 만나서 이번 사건에 대한 오해를 풀고 싶다고 적혀 있다.”
담여진은 서신을 넘겨받은 후 빠르게 읽어 내렸다.
“문주님, 약아빠진 정파 놈들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몰래 무인들을 데리고 와서 어떤 짓을 할지 모릅니다!”
“총관, 서신을 보낸 인물이 화산도협이네. 조의문에서 본 문의 수하를 죽이지 않았다는 증거가 있다고 하는군.”
“하지만…… 증거가 있다면 우리가 먼저 찾았을 것입니다. 화산도협이라 한들 정파인이지 않습니까?”
“조의문 인물 몇 사람만 데리고 오겠다고 하는군. 그리고 막상 거절하면 오히려 여론이 반대로 불리해질 것이네. 그들의 말처럼 조의문에서 증거를 중원에 밝힌다면 본 문의 위상이 어떻게 되겠는가?”
“…….”
“우리가 가는 게 아니라 저들이 온다고 하니 위험할 것도 없다. 한 번 만나보는 것도 좋겠어.”
“그렇습니다. 조의문주를 만나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때, 두 사람 곁으로 삼십 대 사내가 나섰다.
문주 임추목의 외동아들 임청하였다.
“임 공자, 그들을 만나서 저들의 말이 맞다고 확인한다 해도 본 문의 사람을 건드린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자네는 서신을 제대로 읽었는가?”
“…….”
“그 부분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겠다고 적혀 있지 않았나? 다른 사람들이 보도록 넘기게.”
담여진은 서신을 꼭 쥐고 있었다.
그대로 찢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총관, 뭐 하는가?”
“…….”
결국 총관이 서신을 옆으로 넘기자, 그의 옆에 있던 규범조장 금도엽이 서신을 폈다.
“문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그들이 위도로 내려온다면 본 문의 입장에서는 부담될 게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한 번 만나 봐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본인도 금 조장의 생각과 같구려. 평소에도 똑똑한 줄은 알았지만 역시 생각이 깊소이다. 다른 분들의 의견은 어떻소?”
문주 임추목의 말에 이미 상황은 끝났다.
이 상황에서 반대했다가는 멍청한 사람으로 찍힐 뿐.
“천부대주께서 전령에게 본 문의 뜻을 알려주시게.”
“넵. 알겠습니다.”
척!
호척구는 그대로 일어난 뒤 정문에서 기다리고 있는 군성창 앞으로 다가섰다.
“미안하게 됐소.”
“아니오. 생각보다 빨리 온 듯하군요. 결정을 내렸소이까?”
“본 문의 문주께서 서신에 적혀 있는 대로 조의문과 만나겠다고 전하라 했소.”
호척구도 서신을 꺼낸 뒤 군성창에게 내밀었다.
“잘된 일이군요. 그럼 그날에 만나겠다고 알겠소이다.”
휘이익!
군성창은 말 위에 올라탄 뒤 왔던 길을 되돌아 달렸다.
* * *
감문서의 눈동자가 고정되지 않고 좌우로 흔들렸다.
‘망할…… 어떻게 하지?’
정말로 증거가 있다면 두 문파 간의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부혈당에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조의문에서는 싸울 명분이 없다.
명분 없는 전쟁은 중원 무림에서 손가락질을 받는 일이기도 했다.
‘그분들에게 야단을 맞겠어.’
그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 * *
하루가 밝았다.
위도로 떠나는 일행의 수는 적었다.
부혈당의 문주와 대면하기 위해 조의문에서는 세 명의 인원, 문주 감천욱, 장로 감현, 그리고 내당주 감후동이 함께 떠나기로 했다.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무력군은 함께하지 않았다.
두 문파가 만날 대면 장소는 부혈당이 아니었다.
허창 위도에 위치한 황장곡.
이미 소문은 허창 전체로 퍼졌다.
웅성웅성.
허창의 백성들이 연회가 열리는 듯 들뜬 표정들로 황장곡으로 향했다.
“어이, 망삼이. 자네도 저기 올라가는가?”
“화산도협께서 오시지 않았나? 언제 우리 같은 촌부들이 그분을 직접 뵐 수 있겠어?”
“클클클. 그렇지, 그렇지! 게다가 그분께서 조의문과 부혈당의 싸움을 중재한다고 하시니, 당연히 멀리서라도 볼 수 있다면 보면 좋지 않겠나!”
사내들이 황장곡 근처까지 올라서자 이미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에엥, 왜 안 들어가지?”
망삼은 군중 속에 섞여 있는 낯익은 사내를 찾았다.
“돌강, 자네도 왔는가? 안 들어가고 뭐 하는가?”
“어, 어서 오게. 회의가 시작될 모양인가 더는 못 들어가더라고.”
“하긴. 중요한 회의니까 그렇겠구만. 그럼 여기서 기다려 보세나. 나중에 그분께서 나오시겠지.”
황장곡 입구가 미어터지는 사이, 군성창은 일찍이 도착하여 황장곡의 웅암 앞 공터에 의자와 탁자들을 준비했다.
정확히 정오에, 조의문과 부혈당의 인물들이 황장곡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부혈당 문주 임추묵은 탁자 중앙에 서 있는 고진유와 그 뒤에 묵경을 보았다.
‘저…… 자가 화산도협인 모양이군.’
고진유의 신형에서 흐르는 기운을 읽을 수 있었다.
‘무공을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다…….’
그는 고진유의 무공에 강한 충격을 받았다. 심지어 뒤에 서 있는 묵경 또한 같은 느낌이었다.
‘풍류미군…… 그저 여인들이나 들뜨게 만드는 인물이라 여겼거늘.’
순간 우물 안 개구리가 바로 자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반갑습니다. 고진유라 합니다.”
공손한 태도에 거만하지 않는 목소리.
“부혈당의 임추묵이라 하외다. 무림영웅 화산도협을 뵙게 되어서 영광이외다.”
“옆에 분들은 누구십니까?”
임추묵과 함께 들어선 부혈당의 인물들.
“담여진이라 하외다.”
“금도엽이라 합니다.”
고진유는 부혈당의 인물들과 인사를 나눈 뒤 조의문을 가리켰다.
“서로 모르는 사이도 아니지 않습니까. 인사들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감천욱과 임추묵은 서로 마주 본 뒤 짧게 고개만을 숙여 인사를 했다.
“하하, 두 분의 분위기가 정말 좋군요. 오늘 잘 만난 듯합니다.”
“…….”
“…….”
“모두 자리에 앉으시지요.”
고진유의 말에 좌우로 나눠 앉았다.
“본도가 여러분들을 부른 이유에 대해서는 알고 있으시겠지요. 이번 사건에 대해서 무림맹에서도 큰 관심을 지닌 문제입니다. 미리 말씀을 드리자면 맹주님께서는 항상 정사마를 떠나 무림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라십니다.
그러기에 급히 본도를 보낸 것이지요.”
조의문과 부혈당의 인물들은 말없이 서로를 볼 뿐이었다.
“두 문파 간에 좋지 않은 감정은 조의문 소속의 무인이 부혈당의 무인을 죽였기 때문이외다. 맞습니까?”
“맞소이다.”
“그렇소이다.”
감천욱과 임추묵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임 문주께 묻겠습니다. 만일 조의문의 무인들이 부혈당 무인을 죽이지 않았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임추묵은 시선을 돌려 감천욱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조의문에서 죽이지 않았다면…… 싸울 이유가 없겠지요.”
“감 문주께서는 조의문의 인물이 부혈당의 무인을 정말로 죽였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감천욱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다.
“화산대사, 꼭 말을 해야 하는 것이오?”
“말을 못 하겠다는 뜻은 사과하지 않겠다는 뜻이군요.”
고진유의 말에 감천욱은 당황했다.
얼른 감현이 나섰다.
“화산대사, 이 자리가 문주를 심문하는 자리라면 일어나겠소이다.”
“감 장로님, 스스로 잘못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까? 무림맹은 정파라 해서 무작정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착각하지 마시지요. 그리고 본도가 하는 질문은 심문이 아닙니다.”
고진유의 시선에 조의문의 세 사람은 순간 움찔거렸다.
“잘못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한 일이지 않습니까?”
“화산…… 대사. 책임을 지지 않는다가 아니라……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아서 잠시 생각하던 중이었소이다. 당연히 본 문의 잘못이라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겠지요.”
“됐습니다. 본도는 정상적인 사고를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 물어본 것일 뿐입니다. 조의문의 잘못이라는 게 아닙니다.”
‘저자는…… 정사의 이름만으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다.’
두 문파 사이에서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리라는 믿음.
고진유는 임추묵의 표정을 읽었다.
‘이제 나를 믿을 수 있다는 표정이군.’
무림맹은 정파 소속이나 정정당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그것이 고진유가 조의문에 강하게 나간 이유였다.
부혈당에게 믿음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