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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75화 (75/425)

75화

웅성웅성.

객잔이 소란스러웠다.

특히 여인들끼리 소곤거리는 소리는 사내들보다 더 크게 들렸다.

“어쩌어어엄, 사내가 저렇게 잘생겼을까?”

“그러게 말이에요…… 내가 꿈꾸던 이상적인 사내가 틀림없어요.”

“내가 가서 한 번 말이라도 걸어볼까?”

“언니는 못생겨서 안 돼요. 예쁜 내가 가면 모를까?”

“뭐라고 하는 거야? 네가 나보다 더 예쁘다고? 미쳤는가 봐.”

“아니, 내 말이 맞잖아요. 지금까지 만난 사내들이 언니는 쳐다보지도 않았잖아요, 호호호.”

“그건 내가 할 소리거든!”

주위에서 들려오는 여자들의 목소리.

묵경은 흐뭇한 표정으로 찻잔을 들었다.

스으윽.

그때, 탁자 앞으로 그림자가 나타났다.

묵경이 고개를 올리는 동시에 다섯 명의 특사조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사내의 앞을 막아섰다.

“당신이 풍류미군인가?”

사내의 목소리가 거칠었다.

묵경은 앉은 자세에서 허리를 뒤로 펴며 사내를 올려보았다.

“보아하니 하오문은 아닌 듯한데.”

“눈썰미는 있군. 밖으로 나갈까?”

“으음, 아직 차를 다 마시지 않아서 말이지. 기다리게.”

“…….”

사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바로 지었다.

“지금 내 말이 장난처럼 들리는 모양이지? 따라 나오지 못할까?”

“이거 참, 편안하게 차도 못 마시겠군.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따라 갈 이유도 없지 않나?”

“…….”

“뭐어, 내가 가더라도 당장은 아니란 소릴세. 당신도 차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면 되겠구만. 계산은 내가 하겠네.”

“풍류미군이 미친 줄은 몰랐군!”

파아앗!

사내는 묵경의 손에 쥔 찻잔을 쳐내기 위해 손을 휘둘렀다.

스륵.

묵경은 사내의 손을 피해 살짝 찻잔을 아래로 내렸다.

“……!!”

너무나 간단한 동작에 사내의 인상이 굳어졌다.

기습적으로 움직였건만 묵경의 찻잔 끄트머리조차 건드리지 못했다.

“어허, 성격이 급하구려.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얌전히 기다리시오.”

피이잇!

묵경은 왼손으로 찻잔 받침대를 사내의 가슴을 향해 튕겼다.

‘피할 수 없……!’

쨍그랑!

사내는 날아온 받침대를 검으로 막으며 쳐냈다.

받침대가 깨지면서 바닥에 떨어졌다.

‘……강하다.’

풍류미군 묵경의 명성은 단지 잘생긴 얼굴 때문만이 아니었다.

묵경은 찻잔의 든 차를 모두 마신 후에도 일어나지 않았다.

또르르-

다관을 들어 찻잔에 다시 차를 따랐다.

“이것도 마저 마셔야겠소.”

‘망할…….’

다관에 든 차를 모두 마실 때까지 이각이 지났다.

묵경은 이제야 찻잔을 식탁에 내려놓았다.

“가봅시다. 앞장서시오.”

묵경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사내는 굳어진 표정으로 먼저 나갔다.

‘풍류미군께서 이 정도의 무공을 지녔을 줄은…….’

군성창은 묵경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화산도협의 명성에 가려졌는지 풍류미군의 무공은 그리 알려지지 않았다.

어쩌면 화려한 그의 얼굴 때문일지도 몰랐다.

객잔을 나온 뒤 건물 뒤로 돌아가자, 싸우기 충분히 넓은 공터가 나타났다.

사내는 걸음을 멈춘 뒤 돌아섰다.

묵경은 그를 보며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

“비밀인가 보군. 좋소. 본론으로 넘어가지. 나를 여기에 부른 이유는?”

사내는 눈에 살기가 비쳤다.

“풍류미군. 왜 하오문을 통해 사람을 찾고 있지?”

사내의 질문 하나에 모든 의문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굳이 그에게 대답해 줄 이유가 없었다.

“왜 대답이 없지?”

“주는 게 있어야 받는 것도 있는 법. 당신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알려줄 이유가 없지 않는가? 사회생활이 짧은 모양이군.”

“여전히 농담을 하는군. 죽고 싶은가?”

“날 죽이는 게 당신의 목적이었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텐데.”

묵경의 비웃는 표정을 보면서 사내는 점점 강한 살기를 뻗어냈다.

다시 묵경의 말이 이어졌다.

“하나는 확실해졌군. 그 여자는 부혈당과 조의문이 전쟁을 하도록 만드는 미끼였어.”

“…….”

사내의 표정이 묵경의 말이 사실임을 말해주었다.

‘이 녀석이 안다면…… 화산도협도 알고 있겠군. 빨리 상부에 보고해야겠어.’

떠나기 전에 한 가지 일이 남았다.

우우우우웅-

사내는 내력을 단전 밖으로 끌어냈다. 전신에 살기가 뻗어 나왔다.

“풍류미군. 괜한 일에 관심을 가졌으니 그 대가로 네놈의 목을 베고 가겠다.”

“아, 착각은 자유라지.”

묵경은 여전히 여유로웠다.

슈우우욱-

사내의 손에서 검은 독기가 뿜어져 나왔다.

“흑독마수(黑毒魔手)!”

묵경은 독기를 피해 서너 걸음 뒤로 물러났다.

이번에는 사내가 묵경의 신법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역시…… 연화무환보(軟花舞幻步)는 무림일절이군.”

“당연한 것엔 감탄할 필요가 없소이다.”

사내는 여전히 방심한 듯 허점이 많았다.

파르르르-!!

묵경이 그대로 손을 앞으로 뻗자 손목에 찬 백색의 가느다란 천이 사내의 가슴을 향해 쏟아졌다.

“크크크!! 계집애들이 펼치는 무공이 나에게 통할 것 같으냐?!”

사내는 양손을 올려 흑독마수의 진기를 가슴 앞에 뭉쳤다.

팟팟팟팟!!

연화혼미검법 또한 성녀곡의 비전무공이지만 강공인 흑독마수를 뚫을 수는 없을 터!

“멍청한 놈……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모르는군.”

묵경의 검은 그대로 흑독마수의 진기와 부딪혔다.

그그그극--!!

한데 가볍게 튕겨 나갈 줄 알았던 묵경의 검기가 흑강을 뚫고 조금씩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상대가 왜 눈에 보이는 뻔한 공격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면 죽어야지.”

찌지지직-

흑강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검광이 사방으로 터졌다.

파아아앗!!

사내는 검광을 피하기 위해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났다.

“크윽!”

호신강기를 재빨리 끌어 올린 탓에 다행히 큰 부상은 면했다.

하지만 상의가 수십 갈래로 찢겨 바람에 날리는 것은 막지 못했다.

“어때. 당신 생각과 좀 다른가?”

“……방금 그 무공은 연화혼미검법이 아니다.”

“섞는 것을 좋아하는 녀석이 있어서 흉내를 좀 내봤네. 괜찮지 않나?”

묵경은 몸을 좌우로 휙휙 돌렸다.

“다시 시작합시다. 이제 몸이 풀리는 것 같군.”

묵경은 내력을 운용하면서 흐르는 내기를 느꼈다.

‘진유 아우 덕택이야. 정말로 내력이 강해졌어.’

기존의 연화심공 운용이 아닌 내력의 양을 두 배로 일으키는 새로운 방법의 운기행공법.

처음 들었을 땐 미친 짓이라 단정 지었지만, 고진유의 무공은 이미 남들이 보기엔 미쳐 있었다.

고진유의 도움 없이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었던 내기의 운용.

바로 동시에 두 개의 내기를 일으키는 양단심법이었다.

처음에 묵경은 당연히 거부했다.

“야아, 이거 실패하면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며?”

“한 번도 해본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한 번 해보라는 겁니다.”

“왜 나야?!”

“내력이 강해지고 싶으니 가르쳐 달라고 했잖습니까.”

“그야…… 그렇지만. 겁나잖아.”

“사나이가 한 번 죽지 두 번 죽습니까?”

“이게 니 일 아니라고 함부로 말하네?”

“만일 잘못되면 제가 죽을 때까지 형을 책임질게요.”

“음…… 그래?”

하긴, 성공의 증거가 저 녀석이 아니던가?

“알겠다. 네 맘대로 해봐라.”

그래, 나도 미치자.

죽는 것밖에 더하겠냐.

묵경은 모든 것을 고진유에게 맡겼다.

그리고 성공했다.

스윽.

묵경의 기운에 밀려 사내는 뒤로 물러났다.

‘내가…….’

극일천 소속 육십사괘무장의 천무괘인 진(晉).

내력에서 밀리는 느낌이 들자 싸우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

아니, 끝까지 싸우면 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풍류미군. 오늘은…… 그만 물러나겠다. 하지만 다음번에는 네놈의 잘난 얼굴을 베어주지.”

휘익!

도망치듯 사라진 사내.

놀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사실 그가 펼친 무공은 대단했다.

완벽히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면 도망가지 못하게 막았을 것이다.

‘흑독마수를 펼치다니…….’

사라진 사내의 무공은 이백 년 전 중원을 떨게 했던 흑독마인의 절대독공.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황금불왕수를 익힌 놈도 봤다고 했었지…… 그때 무공들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건가? 대체 무림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지?’

조의문과 부혈당의 문제는 앞으로 무림에 휘몰아칠 사건에 비교하면 조족지혈(鳥足之血)이 아닐까?

“휴우…….”

묵경은 긴 호흡을 내뱉었다.

그리고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양단심법의 효과는 확인됐군.’

앞으로 계속해서 내공을 수련한다면 최소한 괴물 같은 그놈의 발끝은 따라갈 만하다.

곧 군성창과 함께 네 명의 특사조원이 다가왔다.

묵경의 무공을 제대로 본 건 처음이었다.

“풍류미군님, 정말 대단한 무공이었습니다.”

“후후후, 그런가?”

다섯 명의 눈빛은 존경심이 가득했다.

“자자, 그만 안으로 들어갑시다. 우리 할 일이 아직 남았지 않소?”

“넵. 알겠습니다.”

군성창의 태도는 마치 고진유를 대하는 깍듯했다.

일행이 다시 객잔으로 들어선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한 붉은빛의 치맛자락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풍류미군님.”

“오? 어여쁜 낭자께서는 누구시오?”

“풍류미군께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좋네요. 소녀는 하오문에서 왔어요.”

“이거 참, 본인이 가진 하오문의 선입견을 단번에 부수는군요.”

“무슨 말씀이신가요?”

“그만큼 낭자께서 아름답다는 뜻이지요.”

“후훗, 그럼 앉을 수 있을까요?”

“당연히.”

묵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위해 의자를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그녀는 무릎을 살짝 굽혀 감사의 인사를 했다.

“소녀가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리겠어요.”

“본인에게 사과할 일이 있소이까?”

“본 문에 의뢰하셨던 일 때문에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아하, 보셨소이까? 그 일이라면 괜찮소이다. 하오문의 잘못이 아니지요.”

“역시 대인의 품격을 지니고 계시는군요.”

“하하하! 너무 칭찬하시니 얼굴이 화끈거리고 있소이다. 아 참, 낭자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는지요?”

“제가 정신이 없었네요. 혜유라고 합니다.”

“혜유라…… 좋은 이름입니다.”

스윽.

그녀는 소매 안에서 한 장의 서류를 꺼냈다.

“이게 뭐지요?”

“본 문에 의뢰했던 여인의 신상정보예요.”

묵경은 서류를 펴서 안에 적힌 글을 보았다.

‘음…….’

묵경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녀에 대한 정보가 자세히 적혀 있었다.

“하오문의 정보력은 대단하군요. 이걸 알아내다니.”

“얼굴이 알려진 자는 본 문의 눈을 피해 달아날 수 없지요.”

“고맙소이다. 당장 잡아 오기는 힘들겠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알게 된 것만 해도 큰 도움이 되었소이다.”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다행이여요. 앞으로도 본 문과 종종 좋은 사이가 되었으면 해요.”

“당연히 그래야지 않겠소이까. 아, 곧 점심이 다가오는데, 제가 아름다우신 혜유 낭자께 음식을 대접하고 싶소이다. 기회를 주실 수 있겠습니까?”

“풍류미군께서 초대해 주신다면 마다할 수 없지요.”

다정하게 미소를 띠며 대화를 하는 두 남녀.

군성창과 나머지 일행은 그 순간, 묵경의 무공보다 여인 앞에서 편안하게 대화하는 저 말솜씨가 더 부러웠다.

* * *

아침이 밝았다.

고진유와 파숙이 야밤에 움직였다는 사실은 누구도 몰랐다.

두 사람은 일찍 일어나 노융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노융, 다음에 보자.”

“벌써 가십니까?”

노융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렇게 살아 있으니 만날 수 있잖아. 다음에 또 보면 되지 않겠나.”

“알겠습니다. 건강히 지내십시오.”

“그건 나보다 네가 더 걱정이다. 제수씨와 함께 잘 챙겨 먹어라.”

“고맙습니다.”

노융은 이번에는 고진유를 향해 절을 했다.

“평생의 은공으로 생각하겠습니다. 제 집사람이 화산도협님께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당분간 몸조심해야 하니 너무 무리하지 못하게 하시오. 약을 꾸준히 복용하면 금방 완쾌가 될 겁니다.”

“네에. 알겠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노융은 두 사람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고개를 숙였다.

고진유와 파숙은 위도에 온 목적을 완수했다.

“이번 일은 파 특사의 도움이 컸습니다.”

“제가 한 일은 없습니다.”

“아니지요. 파 특사가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겁니다.”

“하하…… 대사님, 이젠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우리의 목적대로 시신을 확보했으니 우선 조의문에 돌아가도록 하죠.”

“넵. 알겠습니다.”

두두두두-

고진유와 파숙은 곧바로 조의문으로 향했다.

빠르게 움직인 덕분인지 상성에 하루 만에 도착했다.

드르륵-

묵경은 문을 열고 들어선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익숙한 사내의 풍채.

“진유 아우.”

“대사님!”

묵경을 비롯한 다섯 명의 특사조 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갑게 맞이했다.

“묵경 형. 다녀왔습니다.”

“고생 많았다. 파 특사도 고생 많았소.”

“아닙니다. 대사님을 따른 것밖에 없습니다.”

“후후후. 그게 고생한 거 아니오.”

고진유는 손짓으로 모두 자리에 앉도록 권했다.

묵경은 먼저 상성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설명했다.

“엄청난 무공을 사용하는 놈이었어. 아마 그놈들이 맞겠지?”

흑독마수의 무공을 쉽게 펼칠 수 있는 세력.

묵경도 극일천의 인물일 것이라 예상하는 듯했다.

“맞을 것입니다.”

“조의문과 부혈당의 사건을 해결하려면 그 여자가 필요하지 않겠어?”

“가능하다면 잡는 게 좋겠지만 그녀가 누구인지 안 것만 해도 괜찮을 겁니다.”

고진유의 뜻은 하오문에서 확인한 정보가 확실하다면 굳이 잡아 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녀의 신상만으로 두 문파를 이간질했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지 않나?”

“맞습니다. 그 여자를 잡은 뒤 직접 듣는다면 최고의 방법이지요. 하지만 그녀를 잡는다고 해서 자백을 받을지 의문입니다.”

“그렇겠지. 대단한 집안의 인물이니…….”

“그리고 그녀가 당장 없어도 두 문파의 싸움을 중재할 수 있는 증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야. 그들을 말릴 수 있는 증거를 찾지 못할까 걱정이 되었거든.”

묵경은 걱정이 사라졌는지 얼굴이 밝아졌다.

“파 특사가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운이 좋았죠.”

“이젠 어떻게 처리할 계획이지?”

“두 곳의 수장들을 불러서 결판을 짓도록 하죠. 정상적이라면 싸우고 싶지는 않을 겁니다.”

“아마도…….”

“무림맹의 이름으로 두 곳을 부르면 나올 테니까. 역시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고진유가 원하는 것은 이대로 평화롭게 마무리가 되는 것.

‘하지만 과연…… 이대로 보고 있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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