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조의문에 도착했다.
확실히 최근 상황이 심상치 않았는지 정문 일대로 적막감이 나돌았다.
다각. 다각.
군성창은 굳게 닫혀 있는 조의문의 정문으로 천천히 말을 몰았다.
조의문 정문 위사가 다가오는 말 위에 탄 사내를 발견했다.
‘저…… 표식은!’
군성창의 왼손 팔뚝에서 무림맹 표식을 발견했다.
척!
바짝 긴장한 채로 자세를 바로 했다.
“우린 무림맹에서 왔소.”
“알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정문 위사는 안으로 동료를 보내 연락을 전한 사이, 고진유와 묵경이 정문에 다가섰다.
곧 경내 안에서 소식을 듣고 중년 사내가 정문으로 다급히 나왔다.
조의문 내당주 감후동으로, 팔이 일반인보다 긴 탓인지 달리는 모습이 흐느적거렸다.
‘정말…… 일곱 명밖에 없군.’
그의 표정으로 실망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반갑습니다. 내당을 맡은 감후동이라 합니다. 무림맹에서 곧 오실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죄송하지만…… 일곱 분이 전부입니까?”
“그렇소. 본도는 화산대사 고진유라 하오.”
“화산…… 대사……!”
무림맹에서 중원대사가 온 것도 놀라운데, 그 화산도협이 오다니?
젊은 청년을 대수롭지 않게 보던 그의 눈빛이 순식간에 달라졌다.
“화산도협…… 아니, 화산대사를 뵙습니다. 제가 문주님께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무림맹 중원대사의 신분은 군소방파의 문주보다 우위였다.
‘싫은 표정을 봤으면 어떻게 하지?’
감후동의 등에 땀이 맺혔다.
문주원 앞으로 조의문 문주 감천욱이 마중을 나왔다.
감후동은 혹시나 문주가 실수를 하기 전에 얼른 일행을 소개했다.
“문주님, 무림맹에서 오신 화산대사 이신 화산도협이십니다.”
감천욱의 눈이 커졌다.
그 또한 감후동이 처음 가졌던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화산대사를 뵙소이다. 감천욱이라 합니다.”
“반갑소이다. 고진유라 하오.”
고진유는 간단히 고개를 숙이는 동시에 내력을 흘려보냈다.
몸에 흐르는 진매화기의 내기가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무형기를 만들어냈다.
‘허어…… 엄청난 내력을 지녔어.’
화산도협의 명성은 소문보다 더 강했다.
감천욱은 허리는 이미 비스듬히 숙여져 있었다.
곧 그의 시선이 고진유의 뒤에 있는 묵경을 향했다.
“혹시 풍류미군 묵 대협이십니까?”
“맞소이다, 감 문주.”
“허허……중원의 소문은 과장이 많기에 잘 믿지 않습니다만, 묵 대협의 소문은 오히려 축소된 듯합니다.”
“하하하, 전부 본인을 만나면 그런 말을 하더이다. 소문이 똑바로 나야 하거늘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제가 두 분을 모시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별말씀을.”
“들어가시지요.”
문주원으로 안내하는 그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조의문에서 부혈동과 부딪힌 이유에 대한 보고서를 보았소이다.”
“예, 하남 땅에서 사파 놈들이 천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날뛰고 있습니다. 당장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 할 것입니다!”
감천욱은 살짝 흥분했다.
“맹주께선 정사를 떠나 무림의 평화를 위해 공정한 판단을 내리도록 부탁했습니다.”
“…….”
‘공정한 판단을 하겠다고?’
뭔가 어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무림맹에 올라온 사건의 경위를 보니 먼저 부혈당을 공격한 곳은 조의문이더군요.”
“…….”
감천욱의 표정이 굳어졌다.
조의문은 무림맹에 속한 정파 소속이다. 그러니 당연히 무림맹은 정파인 조의문의 편을 들 것이라 확신했었다.
하지만…… 지금 보이는 고진유의 표정과 목소리는 냉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본도는 누가 선공이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소이다.”
“아…… 네에.”
그제야 굳어진 그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
“상대가 맞을 짓을 했거나 정당방위일 수도 있지요.”
“대사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우선 올라온 보고서에 따라 절차상 확인을 하겠습니다.”
“…….”
“먼저 사건의 시발점이 된 그들을 만나 봐야겠습니다. 그들을 불러다 주십시오.”
“알…… 알겠습니다.”
* * *
부혈당과 시비가 붙은 조의문의 다섯 무인들.
그들의 소속은 외당 풍조대로 관할지의 순찰과 경비를 담당했다.
고진유는 한 명을 따로 불렀다.
가장 먼저 들어온 사내는 귀밑에서부터 털이 수두룩했다.
“이름이 어떻게 되시오?”
“후병만이라 합니다.”
“소속이 풍조대…… 대주군요.”
“그렇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묻는 말에 ‘맞다, 아니다’로만 대답하시오.”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고개를 들지 않고 보고서를 보면서 물었다.
“음. 부혈당 한 명을 풍조대 다섯 명이 죽을 정도로 구타했다고 적혀 있군요.”
“그건 그놈이……!”
슈우욱.
고진유의 무형기가 그를 압박했다.
‘우욱.’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내가 하라는 말만 하시오. 맞습니까?”
“네에에…… 마, 맞습니다.”
그는 겨우 목소리를 냈다.
“부혈당의 사내가 맞은 이유를 보니 지나가는 여자를 억지로 끌고 가려고 했다…… 맞소이까?”
“맞…… 습니다.”
“그래서 이유도 확인하지 않고 다섯 명이 달려들어 무작정 팼군요.”
“아, 아닙니다.”
“무엇이 아니라는 것이오? 그 여자가 구해달라고 한 말 때문이오?”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죽을 정도로 그에게 손을 쓰진 않았습니다.”
“그때 상황을 처음부터 보았소?”
“아닙니다.”
“그 여자가 정말 구해달라고 했는지 확인이 가능하오?”
“…….”
“됐소. 그만 나가보시오.”
후병만은 할 말이 많았지만 고진유의 무형기에 의해 입을 도저히 열 수 없었다.
그가 나간 뒤 나머지 네 명도 차례대로 들어왔지만 모두 같은 대답을 했다.
고진유의 뒤에서 끝까지 듣고 있던 묵경이 입을 열었다.
“저들이 잘못한 것 같은데? 연인 사이의 일에 괜히 나서서 일이 만들어진 것 같아 보이는걸.”
“눈에 보이는 대로라면…… 그렇죠.”
“어? 다른 이유가 있어?”
“보고서에 의하면 그 여인의 진술이 필요한데, 이곳 마을 주민이 아니네요.”
“어디야?”
“사라졌어요. 그날 이후로.”
“어라? 그냥 사라져?”
묵경도 이상하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누가 보고서를 올렸는지 몰라도 정확하게 사건을 파악했어요. 이 사람을 한 번 만나 봐야겠는데요.”
“무림맹의 허창 지부에?”
“직접 갔다 올게요. 형은 그 여자에 대해서 알아볼 수 있을까요? 혹시나 그때 당시 그녀의 행방을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오냐. 그 일은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
“부탁해요. 바로 허창 지부에 다녀오겠어요.”
고진유와 묵경은 자리에서 일어나 조의문을 나섰다.
* * *
조의문에서 나온 고진유는 다섯 명의 특사조와 함께 곧바로 무림맹 허창 지부로 향했다.
두두두두두-
땅이 흔들거렸다.
정문 위사가 멀리서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기마들을 보았다.
“어떤 정신 빠진 놈이……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있군.”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어.”
정문 위사들은 손을 풀며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기마에 탄 인물들을 보자 바로 생각이 바뀌었다.
“무림맹 특사조다…….”
멀리서도 왼팔에 찬 청명장이 선명하게 보였다.
휘익.
군성창이 허창 지부 정문에 내려섰다.
“우린 특사조다. 지부장께 화산대사님께서 오셨다고 알리시오.”
‘화, 화산대사!’
중원 대사라면 무림맹 최고의 인물 중 한 명이다.
“알겠습니다. 우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알겠소.”
군성창은 당당하게 어깨를 편 채 고진유의 앞에서 허창 지부로 들어섰다.
반각 뒤, 허창 지부장 팽응이 정문으로 나왔다.
하북팽가 출신답게 허리에 찬 화룡대도가 눈에 띄었다.
그는 얼마 전 화산대사직에 고진유가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받은 참이었다.
“화산대사를 뵙소이다. 허창 지부를 맡은 팽응이오.”
“반갑소이다. 고진유라 합니다.”
고진유의 신형에서 은은한 매화 향이 피어올랐다.
친한 이가 아니면 직분을 밝힐 때는 무력을 내보이는 게 편했다.
“화산도협의 명성을 많이 들었소이다. 역시 대단하시구려.”
“별것 없소이다.”
“조의문의 일 때문에 오신 듯한데 안으로 드시지요.”
지금 특사조가 허창 지부에 올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여기에 앉으시지요.”
집무실로 들어서자 팽응이 상석에 권했다.
“본도가 화산대사라 하나 직책일 뿐이지요. 지부장께서 앉으시면 됩니다.”
고진유는 그의 옆자리에 앉았다.
‘흐음.’
어린 나이에 대사직을 맡아 건방질 거라 예상했건만, 생각 외로 예의가 있었다.
“본 맹에서 특사조가 올 줄은 몰랐소이다.”
“무슨 뜻인지요?”
“조의문과 부딪힌 곳이 사파인 부혈당이지 않소이까?”
“…….”
“당연히 무림맹 팔군 중 한 곳에서 올 줄 알았소만.”
“지부장께서는 싸움을 원하시는 모양이군요.”
“…….”
고진유의 대답에 그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아니라 부혈당은 사파의 무리이지 않습니까?”
“맹주님께서 본 도를 특사조로 보냈소이다. 무력을 사용하기보단 조사가 더 필요하다고 여겼겠지요.”
“그렇다면 지부가 아닌 조의문과 부혈당에 가셔야 하는 게 아닌지요?”
“안 그래도 조의문에서 오는 길입니다. 잠시 지부에 온 이유는 무림맹에 올라온 보고서 때문입니다.”
“아, 혹시…… 보고서가 잘못되었소이까?”
팽응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잘못된 건 전혀 없습니다.”
“실례가 아니라면 무엇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보고서를 올린 인물이 누군지 궁금해서 찾아왔습니다.”
“보고서는 제 수하인 조사관이 바로 올렸습니다.”
“지부장께서는 그 보고서를 보셨습니까?”
“네, 봤습니다.”
“보셨다니 잘 알겠군요. 그가 이번 사건의 방향을 제대로 파악한 것 같습니다. 그를 만나보고 싶군요.”
‘뭐지?’
팽웅은 무슨 일인지 궁금한 듯했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그를 데리고 오겠습니다.”
“아닙니다. 어디에 있는지 가르쳐 주십시오.”
이윽고 고진유는 곧장 집무실을 나섰다.
‘조사관의 이름은 파숙…… 형영소에서 근무한다고?’
직접 찾아가는 이유는 간단했다.
‘보고서를 보고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건가?’
이 보고서를 제대로 보았다면 한 번 더 보고서가 올라왔어야 했다.
‘중요한 문제인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는 것인지, 일부러 그런 것인지 모르겠군.’
* * *
툭. 툭. 툭.
한 사내가 일 장 정도 떨어진 나무를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었다.
“무림맹에 들어오면 신날 줄 알았는데 포쾌 생활보다 더 재미없군.”
“오호, 포쾌 출신이었소이까?”
“허억!!!”
파숙은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뒤로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한때 제일 겁나던 사람이 포쾌였지요.”
파숙은 벌떡 일어나 돌아섰다.
“누, 누, 누구시오?”
“이런 사람이외다.”
고진유는 팔에 견장을 가리켰다.
파숙은 다시 혼비백산했다.
“죄, 죄송합니다. 무림맹에서 나오신 줄 몰랐습니다.”
스윽.
고진유는 보고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이건…… 내가 올린 글인데?’
“그대가 쓴 보고서가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만…….”
“좋소. 오늘부터 당신을 특사조로 뽑겠소. 나와 함께 갑시다.”
“예?”
파숙은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특사조에 들어가면 심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 * *
파숙은 고진유의 뒤를 따라 조의문으로 함께 돌아왔다.
묵경은 새로운 얼굴을 보며 물었다.
“누구지?”
“허창 지부에서 특사조에 차출했어요. 포쾌 출신으로 무림맹에 보고서를 직접 쓴 인물입니다.”
묵경이 파숙 앞으로 다가섰다.
“반갑소. 묵경이라 하오.”
“파숙이라 합니다. 풍류미군님을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 소문보다 훨씬 잘생기셨군요.”
“하하하, 사람 보는 눈이 좋군.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전부 모였으니 자리에 앉지요.”
고진유의 명에 일행 모두 자리에 앉았다.
“파 특사원은 이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의심나는 게 있으면 마음대로 말을 해보시오.”
파숙이 일어났다.
“제 생각으로는 조의문과 부혈당을 싸우게 만드는 세력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 이유는?”
“대사님께서 보고서를 보시고 의문이 들어 소인을 찾아온 이유 때문입니다. 제가 포쾌 생활을 할 때 상관이었던 포두께서 가르치기를, 결과보다 과정, 과정보다 원인의 시발점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했습니다.”
“파 특사원의 말이 맞소. 역시 전문인이라 다르군요.”
“과찬이십니다.”
“싸움의 시작이 된 원인. 부혈당의 무인과 연인 사이라고 한 여자를 가장 먼저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고진유는 묵경을 보았다.
“묵경 형, 혹시 그녀에 대해 알아봤어?”
“그때 주위에 있던 구경꾼 중 그녀와 잠시 있었던 아주머니를 찾았지.”
“역시…….”
“울고 있던 그 여자가 불쌍해서 집에 데리고 가는 도중이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거야.”
“흐음…… 신법을 펼칠 줄 안다면 무림인이군.”
“나도 그렇게 생각해.”
스윽.
파숙이 손을 들었다.
“저어…… 그리고 제가 몰래 알아본 게 있습니다.”
“무엇이지요?”
“조의문 무인들에게 상처를 입어 부혈당에 돌아갔던 남자가…… 죽기 전에 시커먼 피를 토해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독살?’
“그 이야기를 지부장에게 했소?”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가설일 뿐이라 했습니다. 괜히 분란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묵경은 의문이 들었다.
“파 특사원의 말이 사실이라면 분명 부혈당에서도 알지 않았을까?”
“부혈당 입장에서는 당한 게 중요할 겁니다. 그의 죽음으로 조의문에게 요구할 게 있지 않겠습니까?”
“하긴 주위 분위기는 조의문이 불리한 상황이니깐. 그 부분은 감추겠군.”
고진유는 대화 속에서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우선 그의 죽음이 독살인 증거를 찾아야 합니다.”
“어떻게 찾지?”
파숙이 묵경의 질문에 대답했다.
“부검이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부검하려면 그의 시체가 필요한데.”
“그렇습니다.”
잠시 동안 조용해졌다.
고진유는 결정을 내렸다.
“이번 일은 내가 책임을 지겠소. 부검을 하죠.”
“진유 아우, 시체를 파겠다는 거야?”
“나중에 고이 모시면 됩니다.”
“하긴. 그것밖에 방법이 없다면…….”
“파 특사원. 우선 그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알아보세요.”
“넵, 알겠습니다.”
파숙이 결연히 포권하며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