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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72화 (72/425)

72화

두두두두두두두-

광야를 빠르게 지나가는 일곱 마리의 기마들.

고진유와 묵경, 그 뒤로 다섯 명의 사내들이 힘차게 말을 몰았다.

일곱 명의 복장은 각자 달랐지만, 특히 왼쪽 팔에 찬 푸른색 견장, 특사조의 신분을 보여주는 청명장(靑命章)이 그들의 팔뚝에서 햇빛을 반사하며 반짝였다.

칠인의 특사조가 도착해야 할 목적지는 허창의 상성에 있는 조의문.

해가 중천에 뜬 지 이각이 넘어섰다.

“진유 아우!”

고진유는 말을 달리면서 묵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휘리리릭-

묵경의 긴 머리카락과 함께 흑마의 갈기가 바람에 날렸다.

그가 손으로 가리킨 곳에서 붉은색의 객잔 깃발이 나타났다.

휘익!

고진유는 한 손을 들어 말의 속도를 서서히 줄였다.

펄러럭-

붉은색 깃발은 좌우로 반쯤 찢어진 채 바람에 펄럭이며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었다.

“제가 자리를 잡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군성창은 얼른 말에서 내린 후 자리를 잡기 위해 객잔으로 들어섰다.

“…….”

시끌벅적하던 객잔 안이 한순간에 조용해졌다.

객잔으로 들어선 일곱 명의 무인들.

무림맹 소속을 드러내는 청명장 견장만으로도 적막감을 만들기에 충분했다.

“대사님, 저곳에 자리가 비었습니다.”

군성창은 먼저 탁자 사이를 지나간 뒤 자리를 확보했다.

고진유가 자리에 앉자 군성창이 점소이를 보며 손을 들었다.

다다다다다다.

빠른 걸음으로 점소이가 다가왔다.

“무, 무엇을 드릴까요?”

“간단한 게 뭐가 있지?”

“저희 가게는 회면이 맛있습니다.”

“그걸로 가지고 준비해 주게.”

“넵.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주방으로 돌아갈 때였다.

객잔의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중년 사내와 여인이 들어섰다.

“……진유 아우.”

“알고 있습니다.”

돌아보지 않아도 남녀의 정체를 알았다.

‘지옥혈림의 북소연과 추관동.’

“사람이 왔으면 알은척이라도 해야 되는 게 아닌가요?”

북소연이 곧장 식탁 옆으로 바짝 다가섰다.

“굳이 반갑게 인사할 만큼 좋은 사이는 아니지.”

“모르는 사이도 아니지요.”

“본인 앞에 나타난 이유를 모르겠소이다. 약속을 잊은 건 아닐 테고.”

“알고 있어요. 부혈당의 일 때문에 허창에 온 것도요.”

“대단하군.”

무림맹에서조차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인물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내 주위를 몰래 따라다니고 있는 곳 중 하나가 지옥혈림이었군.”

“혹시나 물건을 찾고서 발뺌할지 모르는 일이잖아요?”

“맘대로 하시오. 하지만 미리 경고했소. 내 손에 걸리면 살려 보내지 않을 테니, 왜 죽였는지 따지면 피곤해질 거요.”

“좋아요. 당신에게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말해두죠. 여기 잠시 앉아도 되죠?”

“볼일이 더 있소?”

“…….”

그녀는 눈을 흘기며 고진유의 허락 없이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한 가지 확인할 게 있어 왔어요. 내게 거짓말을 한 게 아닌지 묻고 싶군요.”

“거짓말이라…… 내가 거짓말을 할 필요가 있었나?”

“무림맹에 들어간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잖아요? 그곳에 그 물건이 있었다면 당장 찾지 않았을까요?”

“내가 움직이지 않아서 없는 물건을 있다고 거짓말했다 판단한 것이오?”

“맞아요. 꼭 그런 생각이 드네요.”

“계약을 파기하고 싶다면 언제든 말하시오. 난 어떻게 하든 상관없으니까.”

“당신에게 그 물건이 없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맺은 계약은 자동으로 사라지게 되죠.”

“내가 당신들과 계약을 맺은 건 극일천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지. 한데 그들의 정보를 당신들만 알고 있는 것도 아니더군.”

“그래서요? 우리가 약속한 계약을 깨겠다는 말인가요?”

“계약에 대해 당신이 먼저 말했을 텐데?”

“흥, 좋아요. 당신 말이 거짓이 아니라고 믿지요. 우리가 어떻게 하면 되겠어요?”

“아무것도.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하겠소.”

‘……우리에 대한 적대감은 여전하네.’

북소연은 인상이 굳어진 채 펴지지 않았다.

“그럼 이건 하나만 대답해 주세요.”

“뭐지?”

“그 물건이 있나요?”

“있소.”

고진유의 대답은 짧았다.

“왜…… 그것을 찾지 않나요?”

“하나만 묻는다고 하지 않았소?”

“…….”

“같은 맥락이니 이번까지만 말해주겠소. 조용할 때 찾을 것이오. 주위에서 시퍼렇게 눈을 뜬 채 지켜보는데 내가 미쳤소?”

“……그렇군요. 그럼 우리의 협정은 유효하겠네요.”

북소연의 표정은 다시 밝아졌다.

“유효하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오. 한 가지 부탁하지.”

“뭔가요?”

“다음부턴 멋대로 불쑥 찾아오지 않았으면 하는군. 지옥혈림과 난 원수지간이외다. 귀찮은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고.”

“…….”

“지금도 우릴 지켜보고 있지 않소? 당신들에게도 위험 부담일 텐데?”

“상관없어요. 본 림의 존재는 처음부터 상대에게 알려졌거든요. 서로 그 물건을 찾고 싶을 테니, 그동안은 괜찮죠. 오히려 우리가 친한 척하는 게 더 좋지 않겠어요?”

“볼일 마쳤으면 가시오.”

“분부대로 하지요. 흐음, 언젠가 그 팔에 두른 띠의 푸른색이 붉은색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네요.”

북소연은 눈을 찡긋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바로 옆자리로 옮겼다.

“호호호, 사실 우리도 배가 고파서요. 지금부터 모르는 사이처럼 지내 드리죠.”

휙.

고진유는 귀찮은 듯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건가요?!”

결국 북소연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 * *

스으윽.

눈을 천천히 떴다.

‘없어…….’

그동안 주위에서 느껴지던 기들이 사라졌다.

‘진유 형이 말한 대로 사라졌어.’

고진유가 무림맹을 나간 지 사흘.

그때부터 화산지 주위를 노려보던 기들이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인양은 사흘을 더 기다렸다.

완벽하게 처리해야 했다.

‘황와정 천석 아래.’

황와정은 풍림지에 세워진 정자였다.

사흘 동안 무림맹을 구경하듯 다니면서 풍림지로 이동할 수 있는 길과 걸리는 시간을 조사했다.

‘내력을 펼치지 않아도 이각 내에 갔다 올 수 있어.’

무림맹에서 내기를 이용해 신법을 펼치기에는 위험 부담이 많았다.

풍림지로 가는 길목에는 금맹군을 포함한 여러 건물이 있었다.

하지만, 그의 호충신법은 내력 없이 무음무형으로 움직일 수 있는 최적의 신법이었다.

‘일단 십 장 주위에는 없군.’

스르르-

인양의 신형이 침실에서 사라졌다.

‘화산지에서 나온 뒤 북쪽.’

움직이기에 완벽한 어둠.

바닥을 스치며 지나가는 인양의 움직임에선 어떠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스윽.

어둠 속 멀리서 붉은빛이 움직였다.

횃불을 든 무림맹의 무인들이 사라질 때까지 인양은 숨을 멈추며 제자리에 섰다.

그들은 전혀 인양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시 움직인다.’

인양은 무사히 금맹군의 건물을 지나치며 풍림지의 입구에 도착했다.

휘이이잉-

안으로 들어서자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금관이라…… 황색 지붕 정자인 황와.’

풍림지에는 하나의 정자밖에 없었다.

어둠 속에서 정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휘익!

인양은 곧장 황와정의 지붕 위로 올라섰다.

‘됐다.’

황와정 지붕 아래 천석이란 적힌 대들보에 숨겨져 있는 철갑.

‘천석을 찾아야 해.’

천천히 황와정 지붕을 가로질러 대들보를 찾았다.

하지만…….

‘천석이란 글자가 안 보여. 어떻게 된 거지?’

고진유가 거짓말을 할 리 없었다.

‘분명 황와정이라 했는데?’

인양은 대들보를 자세히 살폈다.

어둠 속이었지만 인양의 시력은 밝았다.

‘깨끗해.’

대들보에서 세월이 오래된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대들보뿐만 아니라 주위 자재들이 전부 새로 바뀐 듯했다.

‘이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다.

언제인지 모르나 최근 황와정을 새롭게 수리한 게 틀림없었다.

‘우선 돌아가야겠어.’

휘익!

인양의 신형이 황와정에서 사라졌다.

* * *

아침이 밝았지만 황와정에 다녀온 이후 인양은 잠을 한숨도 자지 못했다.

당우희가 맞은편에서 고민에 잠긴 인양을 보았다.

“인양아, 무슨 일이 있어?”

“아…… 네에. 진유 형이 잘 지내는가 싶어서요.”

“아! 세상에서 제일 할 일 없는 걱정이 바로 호정 사제 걱정이야. 잘 지내고 있을 테니 걱정 말고 지내.”

“네…… 아, 저는 잠시 밖에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어디 가려고?”

“바람도 쐴 겸 부식창고에 다녀오겠습니다.”

“갔다 와.”

휘이익!

“와앗, 벌써 사라졌어.”

* * *

“종동 아저씨.”

둥글둥글한 얼굴로 움직일 때마다 두꺼운 이중 턱이 흔들거리는 중년 사내가 고개를 돌렸다.

“인양이구나.”

창고장 중동이 반갑게 손을 흔들자 팔뚝 살이 심하게 흔들거렸다.

“벌써 부식들이 떨어진 거냐?”

“그러게요.”

“알겠다. 잠시 기다려라. 바로 챙겨주마.”

인양은 다른 무인들과 달랐다.

무림맹 무인들은 보통 나이 상관없이 아랫사람 부리듯, 명령하듯 말하곤 했으니, 인양이 반가울 만도 했다.

“같이 저기 가자.”

종동과 인양은 제법 친한 사이가 되었는지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참, 무림맹에 피리 소리를 내는 정자가 있다고 하던데. 아저씨는 어디인지 압니까?”

“당연히 알지. 내가 무림맹에서 일한 지가 이십 년이다.”

“진짜 오래 하셨네요.”

“하하하, 아마 맹주님보다 무림맹에 대해서 많이 알고 있을걸.”

종동은 혹시나 무림맹의 무인들이 들을까 좌우를 살피면서도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대단하네요. 역시 종동 아저씨입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사라졌어.”

“어…… 왜요?”

“이 년 전까지는 풍림지 안에 있던 황와정을 금관정이라고 했거든. 가만히 두면 될 것을 건물이 오래되었는지 비가 안으로 흐른다고 해서 이 년 전에 대대적으로 수리를 맡겼지. 그때 이후론 바람이 불어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해.”

‘공사를……!’

“소리가 나지 않는다면 수리를 잘못한 게 아닌가요?”

“뭐어, 그것까지는. 황와정을 공사한 목수들은 대들보를 바꾸어준 것밖에 없어. 무림맹에서도 그런 일로 목수들을 죽일 수 없잖아. 안 그래?”

“맞네요. 그럼 그 목수들은 어떻게 됐어요?”

“정주에서 가장 잘나가던 목수였는데…… 무림맹에서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겁이 난 모양인가 봐. 어느 날 목수장이었던 자가 사라졌다더군.”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긴 하죠. 무림맹 무인들 중 한 명이라도 마음이 바뀌면 그냥 죽을 수도 있으니까…….”

“그도 네 말처럼 생각했겠지. 소문에 의하면 대목장…… 이춘광이었나? 암튼 식구들을 데리고 정주 땅을 떠나 호북으로 갔다던걸.”

‘대목장 이춘광. 이 사람을 찾아야 해!’

그가 황와정을 수리하기 위해 대들보를 건드렸다면 그 안에서 분명 철갑을 찾았을 게 틀림없다.

‘우선 진유 형이 올 때까지 기다리자. 함부로 움직였다간 일을 망칠 수도 있으니까.’

* * *

무림 대사건의 전조는 항상 작은 싸움이 빌미다.

무림맹주 황보강이 고진유를 무작정 허창으로 보낸 게 아니었다.

최근 중원인들 사이에서 화산도협의 명성이 높았으니까.

그를 가리켜 의적은 물론, 의협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화산도협 고진유라면 공정하게 했을 것이라는 믿음이 백성들에게 있었다.

허창으로 내려간 특사조 일행은 곧바로 상성의 조의문으로 향했다.

마을 초입에 상성의 푯말이 커다랗게 박혀 있었다.

작은 일이 점점 커져, 문파 간의 싸움으로 벌어지기 일보 직전인 상황.

“진유 아우,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

“사건 전말을 보면 조의문이 먼저 시작한 것 같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정확히 조사해 봐야죠.”

“조의문이 무림맹에게 도움을 청한 것을 보면, 은근히 편들어주길 바랐을 텐데?”

“다른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정파라는 것만으로 그냥 봐줄 수는 없습니다. 잘못했으면 당연히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건 맞는 말이지만 정파 소속의 문파들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한 문제야. 재수 없긴 해도, 법대로 공정히 처리해서 정파 무림에 균열이 갈 수도 있어. 아무리 잘못해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잖아.”

묵경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고진유의 생각은 달랐다.

정파나 사파나 어차피 결국 자신들 가문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기 때문에 영원한 건 없었다.

조의문이 무림맹에 가입한 이유는 무림의 정의를 위해서라기보다 정파의 울타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상관없어요. 굳이 그들 사정을 봐줄 필요도 없고. 거기다 본 문을 천하제일문으로 만들려면 무림맹에 너무 힘을 실어줄 필요도 없죠.”

묵경은 다시 한 번 더 느꼈다.

‘역시 아우는 일반 정파인은 아니야.’

군성창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화산파를 천하제일문으로 만들겠다고?’

무인이라면 꿈에서라도 원하는 게 천하제일인이다.

‘하지만…… 농담이 아니겠지. 저분은 다르다.’

고진유의 뒷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가 기회가 되어 저분을 따른다면…… 언젠가 천하를 가진 분을 모시는 거야.’

“묵경 형, 얼굴 좀 펴세요. 마을로 들어가면 수많은 여인들이 형을 보기 위해 몰려들 텐데요.”

“아, 그건 그렇지. 내 인기는 전국구이니 어디에 가도 대단하잖아.”

묵경은 주름이 생기지 않도록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일각 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 순식간에 여인들의 환호 소리들이 울렸다.

“아아아악! 저기 풍류미군 공자님이시다!”

“어디!! 앗…… 정말…… 너무 잘생겼어. 이젠 죽어도 소원이 없어…….”

젊은 여인들뿐만 아니라 나이 많은 아주머니들까지 하던 일을 멈추고 길 밖으로 달려 나왔다.

“이거 참 기분은 좋군.”

묵경은 그녀들을 향해 말 위에서 연신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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