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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70화 (70/425)

70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 밀실.

고요히 울리는 숨소리만이 누군가 몸을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그 녀석은 무엇을 하고 있소?”

밀실의 공간에서 카랑카랑한 쇳소리가 울렸다.

“화산지에서 온종일 나오지 않더이다.”

질문한 사내의 목소리와는 다른 굵은 목소리.

다시금 쇳소리가 울렸다.

“십소, 잠시라도 눈을 돌려서는 안 되오.”

“걱정하지 마시오. 화산지에서 한 발이라도 밖으로 나서는 순간 그 녀석의 일거수일투족이 알려지게 될 것이외다.”

“지금까지 그를 가만히 살려둔 이유는 우리가 찾아야 할 물건이 있기 때문이오. 잠깐이라도 그를 놓치게 된다면 큰일이니 똑바로 해야 하오.”

쇳소리의 사내는 연신 주의를 주고 있었다.

고진유가 무림맹에 온 이유.

보고에 의하면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오청석도 모른다고 했지만, 그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화산지의 다른 인물들에게도 비밀리에 사람을 붙여야 하지 않겠소?”

“그럴 필요 없을 것이오. 지금까지 그의 성격을 보면 다른 인물을 믿지 못하는 게 분명하오. 직접 움직일 게 확실하니 괜히 인원을 분산시킬 필요가 없소이다.”

십소는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알겠소이다. 화산도협이 어디에 간들 그가 움직이는 곳마다 철저하게 따라다니겠소.”

“그렇소. 우리가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물건의 확보이오. 그때까지는 상부의 명에 따라 지켜보는 것으로 하겠소.”

“삼소, 그리고…….”

“무슨 문제라도 있소?”

“우리뿐만이 아닌 듯하외다. 화산도협을 노리는 시선들이 또 있었소.”

“훗, 지옥혈림과 무구천이겠지.”

쇳소리 사내, 삼소는 단번에 그들을 짚어냈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목소리는 별반 관심이 없는 듯 담담했다.

“신경 쓰지 마시오. 괜히 상대하다가 우리까지 들킬 수 있소이다. 지켜보다 그가 물건을 확보할 때 처리하면 되오.”

“알겠소이다. 그럼 먼저 가보겠소이다.”

“그렇게 하시오.”

샤르르르-

십소의 신형이 어둠의 밀실을 뚫고 사라졌다.

그때였다.

“후후후…… 그냥 간단하게 죽이면 될 일을 머리 아프게 만들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군.”

밀실에 있던 제삼의 인물.

“일소님, 전주님께서 그 물건을 찾으라 하셨소이다.”

“당연히 잃어버린 물건은 찾는 것이 맞겠지. 하지만 우리 외에는 그것을 찾는다고 해도 열 수 없다. 나하중 님께서도 그 사실을 모르지는 않으실 텐데.”

“만에 하나 잘못되었을 때를 염려하는 것이지요. 그분께서 모르실 것이라 보십니까?”

“세상을 손바닥에 놓고 지내시는 분이 어찌 모르겠나. 하지만 그 녀석이 더 자라게 놓아두는 상황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다.”

“…….”

이 말에는 삼소도 바로 반박을 하지 못했다.

걱정은 되었지만, 나하중의 명을 어길 수는 없었다.

“어쩌겠습니까. 그분께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면 우린 조용히 찾아내면 되는 것입니다.”

“흐음, 여전히 모르겠어. 굳이 찾으시겠다고 하시는 이유를…….”

“…….”

“무림을 밀어붙이면 될 것을. 본 천이 무림 전면에 나선다면 끝이 나지 않겠는가.”

일소는 무림을 상대하는 대계에 미적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일소님, 그건…… 무구천의 존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무구천이 과연 있다고 보는가?”

“…….”

“물론 무구천이라고 주장했던 인물은 있지. 그들은 철저한 점조직이야. 그래서 난 그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 않는다.”

“전 전주님의 말씀을 믿을 뿐입니다.”

“후후후…… 그대가 믿는다면 말리지는 않겠네.”

파앗.

일소의 신형이 사라졌다.

이번에는 확실히 십소 혼자만이 남았다.

“무구천. 분명히 그들은 존재하고 있어. 어쩌면 아주 가까운 곳에…….”

* * *

중원십문십가회의에서 화산대사로 임명을 받았지만, 마지막으로 형식적인 인정을 받는 단계가 남아 있었다.

무림맹주에게 임명장을 받는 것.

그래야 무림맹 화산대사직에 공식적으로 임명되는 것이었다.

맹주전으로 중원십문십가의 의견이 적힌 서신이 올라갔다.

고진유는 화산지에서 맹주전의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 당문대사와 서문대사를 만났다.

“두 분께서 큰 도움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가 당하정과 서문동항에게 공손한 태도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중원십문십가회의에서 본 고진유와는 또 다른 면을 본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졌다.

고강한 무공에 거만할 것이라 짐작했던 성격이 아니었다.

“허허, 직접 대면하니 본 대사가 잘못 본 듯하외다.”

“당문 대사께서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셨소이다.”

“아직 맹주전의 연락을 기다리는 중이니, 두 분께 술이 아닌 차 한 잔을 올리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들 앞에 놓인 찻잔에 차를 부었다.

“고맙소이다, 화산대사.”

“매화차군요. 매화 향이 은은하게 흐르는군.”

화산의 매화차는 얼마 나오지 않는 만큼 무림에서도 쉽게 구할 수 없을 정도로 귀했다.

당하정이 한 모금 입술에 대자 진한 향이 입안에서 퍼져 나갔다.

“아아…… 안으로 화산의 향이 느껴지는 듯하외다.”

“참으로 맞는 말씀입니다.”

그들을 보던 고진유는 잠시 떨어진 곳에 대기하던 인양을 불렀다.

“인양아.”

“넵, 무슨 일입니까?”

“나중에 두 분께 드릴 매화차를 준비해라.”

“알겠습니다.”

인양은 고개를 숙인 뒤 바로 물러났다.

“허허허, 이런…… 고맙소이다.”

“아닙니다. 제가 더 감사한 일이지요.”

당하정과 서문동항은 만족한 미소를 띠며 매화차의 향을 온몸으로 느꼈다.

고진유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대사직에 올랐으니 무림에 대한 일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요즘 무림의 정세는 어떠합니까? 제가 부족해서 많이 모르고 있습니다.”

“화산대사께서 모르는 게 당연하지 않겠소.”

“당문대사의 말이 맞소이다. 중원 무림의 정세를 무림맹만큼 잘 알고 있는 곳은 없지요. 현재 무림은 이상할 정도로 정사마의 완벽한 평화가 이어진다고 볼 수 있소이다.”

“그건 이상한 게 아니라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면 그렇지요.”

당하정은 생각은 달랐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정사마의 주요 문파들은 최근 십 년간 단 한 건의 크고 작은 싸움도 없었소이다. 이것이 무림에서 가능하다고 보시오?”

“불가능하다는 말입니까?”

“당연히. 불가능하지요. 정사마의 충돌이 일어날 뻔한 사건들이 서너 번 일어났지만, 어느 순간 조용히 끝이 났소이다.”

“흐음…… 누군가 개입을 했다는 말씀이군요.”

“아닐 수도 있지만 의심을 지울 수는 없소이다.”

“본인 또한 당문대사와 같은 생각이오.”

당하정과 서문동항의 생각은 비슷했다.

‘그들의 명확한 존재는 몰라도 무림의 상황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시는 모양이군.’

“고맙습니다. 제가 알지 못한 사실을 안 듯합니다. 앞으로 종종 도움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허허허,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이외다. 서로 도와가면서 지내야지요.”

“맞소이다.”

세 사람은 두 손을 모아 서로 포권을 했다.

* * *

당하정과 서문동항이 화산지를 떠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맹주전에서 사람이 찾아왔다.

“맹주님을 곁에서 모시는 변후공이라 하외다. 맹주님께서 화산대사를 뵙고자 하십니다.”

“알겠소.”

고진유는 그와 함께 맹주전으로 향했다.

맹주전으로 향하는 길은 조용했다.

변후공은 앞장을 서며 걷다 중간중간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보아하니 본도에게 할 말이 있는 눈치군요.”

“아, 그게 아니라…….”

변후공은 머뭇거리며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렇소? 그대의 얼굴에는 할 이야기가 있다고 쓰여 있는데.”

고진유의 말에 변후공은 걸음을 잠시 멈췄다.

아주 짧은 순간 그의 기세가 변했다가 원래대로 돌아섰다.

“화산도협.”

바로 전까지만 해도 화산대사라 부르던 말투가 달라졌다.

“우리 목소리는 막았지만 여전히 시선은 있소이다. 걸으면서 대화를 하지요.”

“……알겠소.”

변후공은 멈췄던 걸음을 다시 걸었다.

슈욱.

그의 뒤로 고진유가 바짝 붙어 섰다.

“화산도협, 내가 누구인지 알겠소이까?”

“무림맹 소속이 아닌 또 다른 신분을 가지고 있겠군요.”

“맞소이다. 한번 들어봤을 것이오. 난 무구천 소속이외다.”

“흐음.”

그의 입에서 무구천이 나올 줄은 예상 못 했다.

“놀란 모양이군요. 하긴 무림맹에 무구천의 인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겠지만.”

“맞소. 무구천도 보통도 아니군요.”

“무슨 뜻으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이오?”

“맹주를 옆에서 모시는 인물이 무구천 소속이니 당연히 놀라지 않겠소.”

“우린 무림맹에 해가 되지 않소. 무구천은 무림 평화를 위협하는 악의 세력에 맞서 정의를 위해 싸우는 세력이외다.”

변후공은 자부심이 높았다.

“본도에게 신분을 밝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건…… 그대가 우리를 믿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요.”

“…….”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그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유하랑과 조여하에게 무구천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것이 확실했다.

“미리 말을 하겠소이다. 무구천이 무엇을 원하는지 잘 압니다. 하지만 죄송하군요.”

“화산도협. 이건 죄송하다고 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오. 무림의 생사가 달려 있소이다.”

“당신들이 찾는 물건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고진유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변후공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대는 그 물건을 절대로 손에 넣을 수 없소. 이유가 뭔지 아시오?”

“…….”

“내가 이런 말은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지금 극일천에서 자네의 물건을 빼앗기 위해 하루 십이 시진 동안 철저히 감시하고 있소이다. 그들을 막을 수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소.”

“전혀 상관없는 일입니다. 없는 물건을 어떻게 줄 수 있겠습니까?”

“…….”

너무나 태연한 고진유의 태도에 헷갈릴 정도였다.

“휴우…… 알겠소. 그래도 좀 더 생각을 해보시오.”

할 말이 없었는지 아니면 맹주전이 눈앞에 나타났는지, 그는 더 말을 걸지 않았다.

고진유는 조용해진 그의 뒤를 따라 맹주전으로 들어섰다.

척.

맹주친위군 소속의 무인들이 맹주전의 정문을 막아섰다.

“화산대사, 여기부터는 혼자 들어가야 합니다.”

“수고했소이다.”

고진유는 무인들 앞으로 다가섰다.

“죄송하지만 검을 가지고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맹주님을 만나려면 해검(解劍)을 하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법도가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고진유는 사의검을 풀어 친위 무인에게 건네주었다.

“저기에 직접 걸어 놓으시지요. 저희가 어찌 함부로 고인의 검을 만질 수 있겠습니까.”

“후후, 그렇군요.”

친위 무인이 가리킨 방향에 사의검을 걸어놓았다.

“이제 들어가면 됩니까?”

“안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드르륵.

친위 무인들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바로 넓은 경내가 나타났다.

파아앙!

팡아아앙!!

경내에선 건장한 체격의 중년 사내가 수련을 하고 있었다.

상의를 탈의한 그의 상체는 진한 구릿빛으로 강인한 인상을 풍겼다.

‘오, 황보세가 사람은 뼈대 자체가 다르다는 말이 맞나 본데.’

고진유는 움직이지 않고 맹주 황보강의 수련이 끝날 때까지 지켜보았다.

절대고수 천하오무인의 무공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내력이 아닌 오직 신체의 힘만으로 펼치는 권왕 황보강의 무공.

‘파천신권이란 말이 무턱대고 나온 게 아니군.’

그는 화산파를 천하제일문으로 만들겠다는 자신감이 만용이 아니었나 생각 들 정도로 강했다.

‘난 아직 멀었군…… 하지만.’

중원상국에서 조강천에게 신단전을 가르치며 한 가지 사실을 알았다.

신단전을 굳이 하나만 만들어야 하는 법은 없다는 것.

우주는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고 넓다.

또한 인체를 가리켜 소우주라 하지 않던가.

‘중단전을 하나 더 만들지 말란 법은 없지. 하나보다는 두 개, 도는 세 개의 단전이 있으면 더 많은 내력을 모을 수 있잖아.’

중단전에 대한 생각에 잠겨 있는 동안 황보강의 수련은 끝을 향해 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황보강은 경내에 들어올 때부터 고진유를 살피고 있었다.

처음에는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했지만 이내 관심이 없는 듯 다른 생각을 하는 게 보였다.

황보강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헛, 일부러 기를 죽이고자 했건만.’

“재미없군.”

황보강은 수련을 멈추며 벗어놓은 상의를 집어 들었다.

그에 맞춰 고진유가 황보강의 앞으로 다가섰다.

상대의 기가 부담되기는 처음이었다.

‘……진정 거인이시군.’

“맹주님을 뵙습니다.”

“화산도협…… 아니, 화산대사라 해야겠지요. 만나서 반갑소이다.”

황보강이 가까이 선 고진유의 전신을 해부하듯 자세히 살폈다.

‘화산파에서 인물이 나왔다고 하더니…… 사람이 아니라 괴물이 나타났군.’

그의 코에 가느다란 주름이 생겼다.

황보세가의 미래에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 분명했다.

“안으로 들어갈까요?”

“알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 천하당(天下堂)의 현판이 걸린 전각으로 들어섰다.

‘천하가 움직이는 것 같네.’

성큼성큼 걷는 황보강의 걸음걸이에서 무한의 힘이 느껴졌다.

“편한 자리에 앉으시오. 보다시피 깔끔한 성격은 아니외다.”

황보강은 어지럽게 놓여 있는 의자를 당긴 뒤 앉았다.

고진유도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의자를 당긴 후 마주 보며 앉았다.

‘호오.’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자신을 마주 보며 앉은 인물이 없었다.

거의 비스듬히 앉거나 옆으로 물러난 위치에 의자를 놓았었다.

“그대를 부른 이유는 알고 있겠지요?”

“알고 있습니다.”

“화산파에서 무림맹을 놀리는 줄 알았소이다.”

“이해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단번에 이해가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렇소이까? 난 그대가 원해서 오는 줄 알았건만.”

“굳이 남들 눈에 띄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하하하, 현재 무림에서 가장 뜨거운 바람을 일으킨 그대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소.”

스윽.

한바탕 웃음을 터뜨린 황보강이 이미 준비한 듯한 신패를 꺼냈다.

화산대사의 글자가 적힌 무림맹의 신패.

“중원대사의 신패가 어떠한 힘을 가졌는지 알고 있소?”

“선배들이신 대사님들께 들었소이다.”

“그렇다면 잘 알겠군요. 중원대사직은 무림맹의 주요한 현안을 결정하는 사십 명 중 일인이외다.”

무림대전회의에 참석할 수 있는 사십 명의 인물들.

무림맹 군사를 비롯하여 삼당의 당주, 팔군의 군장들, 그리고 팔전의 전주들인 이십 명과 중원십문십가의 이십 명이었다.

“이것을 줘야 하긴 하는데…… 그개는 혹시 맹주가 중원대사의 임명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알고 있소이까?”

“그런 게 있습니까?”

“아, 모르고 있었군요. 중원십문십가에서 결정이 되면 맹주인 본인도 따르긴 하지만, 대사직에 오를 인물이 문제가 될 것 같으면 임명에 대한 취소 반환을 제기할 수도 있지요.”

“제가 문제가 될 일이 있나 보군요.”

“특별히 문제가 될 건 없지만 예전에 그대가 했던 일이 워낙 유명한지라.”

‘하, 생긴 건 곰인데 실제로는 여우가 들어 있었군.’

“대사직의 임명을 거부하시겠다는 말씀이군요.”

“아쉽지만.”

“……뭐, 어쩔 수 없지 않겠습니까?”

고진유의 표정에는 정말로 아쉬움이 없었다.

이미 무림맹에 들어온 이상 대사직을 맡으나 맡지 않으나 더는 의미가 없었다.

그가 무림맹에 온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부가 숨긴 철갑의 존재 때문이니까.

‘나쁠 건 없어. 모든 시선이 나에게 집중될 때 인양이 움직여서 끝을 낸다.’

대사에 임명되지 않는다고 한들 당장 무림맹을 떠나지는 않을 터.

마음 같아선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었다.

“제가 대사직에 어울리지 않다고 보신다면 따로 본 문에 연락하겠습니다.”

“아, 그런 뜻이 아니외다. 그대의 무공이라면 당연히 대사직에 충분하고도 남지요. 다만…….”

말이 잠시 중간에 끊어졌다.

황보강의 본색이 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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