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화산파 일행이 화산지에 들어온 지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 곧바로 십문십가회가 열렸다.
안건은 화산파 대사에 대한 인정 여부.
고진유는 원형으로 된 거대한 탁자에 자리를 잡고 앉아 중원대사들의 시선을 한꺼번에 받았다.
의장을 맡은 황보대사 황보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전형적인 황보세가의 인물이었다.
우람한 체격의 신장, 포권을 하는 그의 손은 성인의 얼굴을 가리고도 남을 만큼 컸다.
“오랜만에 모든 대사들께서 한자리에 모였소이다. 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먼저 인사를 서로 하시지요.”
황보유는 옆에 앉아 있는 고진유와 시선을 마주했다.
“화산대사. 일어나시지요.”
고진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자리에 모인 대사들에게 포권을 했다.
“반갑습니다. 이번 화산대사로 파견된 화산파 제자 호정이라 합니다. 많은 무림 선배님들처럼 대사직을 훌륭하게 수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고진유는 간단하게 인사만을 한 뒤 자리에 앉았다.
“흠흠. 호정 도사. 그대는 대사직을 받고자 온 것이지만, 본 회의에서 아직 인정을 하지 않았네.”
남궁대사 남궁강이 바로 반박을 했다. 뒤를 이어 악가대사 악양이 그의 의견에 동의했다.
“남궁대사의 말씀이 맞소이다. 본 회의에서 최소 과반의 반대 의견이 있다면 화산대사에 임명이 될 수 없소이다.”
악양의 말에 십문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열아홉 명 중 십가의 열 명이 반대한다면 고진유는 화산대사에 임명을 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미대사 청화선자가 버럭 화를 냈다.
“지금 무엇을 하자는 것이오?”
“어허. 아미대사, 너무 흥분한 것 같소이다.”
“남궁대사. 그대들이 이미 함부로 하고 있소이다.”
청화선자가 얼굴까지 붉히며 호통을 쳤다.
황보유가 얼른 청화선자를 막아섰다.
“아미 대사는 그만하시오. 남궁대사는 당연한 절차를 말한 것뿐이오. 늘 반 이상이 찬성하여 대사직에 임명을 받았소이다.”
“보아하니 십가에서 이미 작당을 했거늘 절차라고 하다니 가증스럽소이다!”
“허허허,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소이다. 누가 작당을 했다는 것이오! 우린 그런 일을 한 적이 없소.”
악양도 짐짓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것들이…….’
십문 소속의 중원대사들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스윽.
십가 사이에서 서문대사 서문동항이 일어섰다.
“아미대사께서는 참으시지요. 황보대사의 말씀처럼 반 이상이 대사직에 찬성할 수도 있지 않겠소이까.”
“…….”
서문동항의 미소.
악양과 다르게 비웃음이 아니었다.
“……알겠소이다.”
청화선자는 화를 참으며 자리에 앉았다.
‘후, 역시 치사하게 나오는군.’
고진유의 입가에 실소가 나왔다.
어제 남궁한이 다녀간 뒤 회의를 가졌다.
남궁한은 친히 찾아와 중원대사 임명 조건에 대한 말을 꺼내주었다.
‘차라리 찾아오지 않았다면 그냥 당했을 것을. 고맙수다.’
그날 저녁, 묵경과 당우희가 조심스럽게 서문지와 당문지로 움직였다.
‘왜 웃지?’
고진유가 미소를 띠며 어떠한 말도 하지 않자, 의아해진 이는 황보유였다.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온 것은 불안감.
‘아…… 왜지?’
스스로도 알지 못한 불안감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럼 과반수로 결정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화산파의 호정 도사를 중원대사로 임명하는 것에 동의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남궁강은 자신이 있었다.
십가에서는 모두 반대할 게 확실했다.
이미 나머지 아홉 세가에 통보한 상태.
하지만…….
스윽-
그의 생각과 달리 열 명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갔다.
“……!!!”
남궁강은 그들을 보다가 화가 난 듯 소리쳤다.
“서문대사. 지금 무슨 짓이오!”
“보면 모르오?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어서 찬성했을 뿐이외다.”
서문동항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남궁강은 이번에는 또 다른 인물을 보며 소리쳤다.
“당문대사는 왜 찬성을 하는 것이오?”
“본인도 마찬가지요. 전례로 항상 서로 찬성을 하지 않았소이까? 난 전례대로 따랐을 뿐이오.”
당문대사 당하정은 전례를 예로 들면서 대답했다.
‘내 실수다. 만나서 확인을 받았어야 했어. 십가라고 해서 통보만 한 게 잘못되었다.’
남궁강이 당황하는 사이 십문에서도 한 명의 인물이 얼굴을 붉혔다.
종남대사 운정 도인의 두 손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무안한 표정으로 공요 대사를 보며 변명을 하고자 했다.
“흐음…… 그게…….”
“됐소이다. 굳이 본인의 뜻이 그러하다면 반대하는 게 맞지요.”
“…….”
운정 도인은 십가에서 두 세가가 찬성할 줄은 예상조차 못 했다.
그는 무림맹에 있다고 하나 최근에 중원에서 일어난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종남오검 손휴의 패배와 임위 유성순가에서 물러난 일을 마음에 담고 있었던 것.
공요 대사는 시선을 돌렸다.
“아미타불. 화산대사, 앞으로 잘 부탁하겠소이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사합니다. 화산파를 위해 찬성해 주신 문파와 세가에는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허허허, 화산대사의 말씀이 고맙소이다. 하지만 나머지 문파나 세가도 같은 중원대사로서…….”
“훌륭하신 공요 대사님의 말씀이 맞습니다만 제가 아직 어린 탓에 뒤끝도 많고 수양도 아직 부족합니다.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공요 대사께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
“아미타불. 화산대사는 너무 겸손하시구려.”
이번에는 무당대사가 웃음을 터뜨렸다.
“허허허. 화산파 장문인께서 그대를 화산대사로 보낸 이유를 알겠소이다. 오늘따라 너무 화산파가 부럽군요.”
남궁강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끓어오르는 화를 참았다.
‘망할 놈…….’
척.
손에 힘을 꽉 준 남궁강이 포권을 했다.
“화산대사의 임명을 축하하오.”
“감사합니다.”
“……이제 정식으로 중원대사직을 맡게 되었으니 능력이 중요하지 않겠소이까. 우린 아직 화산대사의 무공을 잘 알지 못합니다.”
남궁강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음…… 확인을 해보고 싶다는 말이군요.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이까?”
‘됐다.’
남궁강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간단하게 비무를 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비무라면…… 여기 계시는 분들 중에서 확인을 하실 것입니까?”
십가의 대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았다.
괜히 나섰다가 만약 지게 된다면 세가의 망신이다.
황보유가 먼저 의견을 꺼낸 남궁강에게 물었다.
“남궁대사가 비무를 하시겠소?”
“본인이 비무를 해도 되겠지만 화산대사의 나이에 맞는 상대가 좋지 않겠소이까?”
“남궁대사께서 좋은 생각이 있는 모양이구려.”
“우리들이 같은 대사라고 하나 나이가 맞지 않소이다. 이왕 비슷한 연배의 무인이라면 좋지 않겠소이까?”
“화산대사와 비무를 할 좋은 상대가 있소?”
“그렇지 않아도 남궁지에 화산대사와 비슷한 연배의 인물이 있소이다.”
“누구를 말함이오?”
“제 조카인 남궁한이외다. 그라면 충분히 화산대사의 무공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있지 않겠소이까?”
악양도 단번에 찬성을 했다.
“그렇군요. 창천무룡이 있었소이다. 그라면 충분할 것 같소.”
이곳에서 남궁한에 대해 모르는 대사들은 없었다.
최고의 절정을 향해 나아가는 남궁세가의 젊은 무인 중 가장 앞선 청년으로 유명했으니까.
“화산대사, 어떻게 하시겠소이까?”
“음…….”
고진유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으면 비무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되오.”
“내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는 저번에 제가 이긴 상대입니다. 상대가 되지 않으니 대사님들께서 구경하기에 재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도 한 번에 끝나면 시시하지 않겠습니까.”
남궁강의 얼굴이 굳어졌다.
“허어, 어찌 싸워보지 않고 확신을 하는 것이오?”
“남궁대사님, 느낌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물론 언제든지 비무를 해도 좋습니다만.”
“화산대사, 얼마나 강한지 보겠소! 지금 당장…… 비무를 하겠소이다!”
남궁강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남궁지로 향했다.
* * *
십문지의 중앙 광장을 두고, 양쪽으로 십문 소속의 인물들과 십가 소속의 인물들이 나누어 섰다.
화산대사 고진유의 무공을 확인하기 위한 비무.
창천무룡 남궁한이 상대로 나섰다.
중앙으로 걸어 나온 그의 눈빛에는 날카로운 예기가 뻗어 나왔다.
그에 반해 고진유는 십문의 대사들 사이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화산대사. 상대가 나왔소이다.”
“원래 하수가 먼저 나오는 법이지요. 가볼까요?”
고진유의 걸음걸이는 여유로웠다.
먼저 중앙으로 나온 뒤 죽일 듯 노려보는 남궁한의 시선.
하지만 고진유는 여유롭게 뒷짐을 쥔 채로 다가섰다.
“화산도협, 나를 일 초 만에 이기겠다고 했다더군.”
“말이 짧은데. 대사가 아닌 인물이 감히 대사에게 함부로 말을 해도 되는 모양이지?”
“…….”
“버릇없는 자에게 본 대사가 따끔하게 혼을 내줘야겠군.”
남궁한은 화끈하게 얼굴이 타올랐다.
“먼저 검을 뽑아라. 대사인 본인이 선수를 양보해 줘야겠지.”
“……!!”
남궁한의 눈에 살기가 피어올랐다.
하수에게 하는 고수의 말투에 자존심이 무너졌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쯔쯔, 또 반말을 하고 있군. 고로…… 후회는 그대가 하게 될 거라는 뜻이지. 줄 때 받아야지 안 그러면 공격도 못하고 끝나거든.”
휘익!
고진유는 말이 끝나는 동시에 호탄신으로 내디뎌 화산복호권을 내질렀다.
슈우우욱-!!!
남궁한의 얼굴로 향한 권풍이 휘몰아쳤다.
‘허어억.’
팟!!
순신간에 고진유의 주먹이 남궁한의 얼굴 바로 앞에서 멈췄다.
“……!!”
전혀 움직임을 잡지 못했다.
꿀꺽.
남궁한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어느 누구도 고진유의 신형을 제대로 본 인물은 없었다.
“봐. 내가 말했지? 일초지적도 안 될 거라고.”
“…….”
“대사인 내가 한 번 더 기회를 주마. 검을 뽑을 테냐?”
휘익.
고진유는 뒤로 물러났다.
뚝뚝.
남궁한의 콧등에서 흘러내린 땀이 바닥에 떨어졌다.
검을 잡기 위해 손을 보았다.
덜덜.
‘망할…….’
손을 떨고 있었다.
남궁한은 손에 힘을 주며 검을 잡았다.
섬전파천뢰강(閃電破天雷降).
섬전십삼검뢰의 최후 초식.
여전히 뒷짐을 쥔 고진유의 모습.
“큭!!”
남궁한은 전 내력을 끌어냈다.
콰콰콰콰콰콰-!!
섬전창궁검에서 검뢰가 울렸다.
“남궁의 섬전은 천하제일의 검뢰다!”
번쩍!
과연 남궁한의 일격은 자부심을 가질 만했다.
고진유의 머리 위로 남궁한의 모든 것이 떨어졌다.
‘확실히 강해. 하지만 제대로 맞히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 없지.’
충분히 피할 수 있었지만 고진유는 움직이지 않았다.
검이 아닌 권.
화산복호권으로 남궁한의 자존심을 단번에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중단전을 곧바로 개방시켰다.
‘사람을 얕보는 너의 오만을 단번에 부숴주마.’
고진유의 가슴에서 매화 향이 피어올랐다.
벽(劈)의 구결을 운용한 승천백호(昇天白虎).
거대한 백호의 안광이 폭발하며 백호의 기세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섬전창궁검에서 떨어지는 검뢰를 하나씩 부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권강의 위력은 하늘조차 무너뜨릴 수 있을 듯했다.
“크으으윽!!”
남궁한은 뒤로 단숨에 밀리면서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내력을 더 끌어 올려야 했지만 이미 그의 몸에는 한 줌의 내력도 남아 있지 않는 상태.
‘참아야……!’
마지막 백호의 일격이 쏟아졌다.
콰아아아아!!!!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믿기지 않는 비무의 현장.
“…….”
남궁강은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말문이 떨어지지 않았다.
고진유의 아래로 남궁한이 연체동물처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화, 화산…… 대사, 한이는……!”
툭툭.
고진유는 발길질로 남궁한의 가슴을 건드렸다.
“죽지 않았습니다.”
“끄으으응.”
곧바로 남궁한이 깨어나며 신음을 냈다.
상체를 일으킨 그는 그제야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했다.
‘내가…… 한 수만에 당했어.’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진유가 장담한 대로 일초지적조차 되지 않았다.
‘우욱…….’
남궁한은 바로 일어나고자 했지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 번의 공격으로 전신의 내력을 소모시켰다.
“끄응…….”
억지로 몸을 일으키며 자리에서 섰다.
“억지로 무리하면 내력을 찾는 데 더 걸릴 테니 당분간 쉬는 게 좋을 것이다.”
“…….”
남궁한은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비참했다.
검도 아닌 화산파의 권공에 당했다는 게 더 수치스러웠다.
중원대사들은 고진유가 보여준 무공에 충격을 받았다.
“방금 그 무공은…… 화산복호권이지 않았소?”
“맞소이다. 승천백호의 초식이었소.”
“허어…… 화산파의 많은 무공을 견식했지만…… 권공에 놀라보기는 처음이외다.”
그들 모두 한마디씩 했다.
“아미타불. 대단한 젊은이로다.”
“다가올 무림의 미래는 화산이 될 것 같소이다.”
무당대사 청유도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고진유의 무공은 상식을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남궁한이 누구였던가.
무림맹 팔군으로 흑룡무군의 부군장.
그와 비무를 가졌던 십문의 후기지수들 모두 참패했었다.
“종남대사, 화산대사와 서로 좋게 지내는 게 좋을 듯하외다.”
곤륜대사 운룡자는 얼굴색이 굳어진 운정도인을 보면서 작게 속삭였다.
그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거렸다.
‘저 정도의 괴물이라니…… 본 문에 서신을 띄워야겠어. 화산파와 분란을 만들기 전에……!!’
* * *
무림맹의 소문은 또다시 빛보다 빠르게 퍼져 나갔다.
반시진도 지나기 전에 모든 무림맹 무인들이 고진유와 남궁한의 비무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다.
무림맹에서 화산도협의 명성이 단번에 오르자 동시에 화산칠협의 위명 또한 한층 올라섰다.
무림의 세계에선 강한 무인의 주위에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인지상정.
소문이 퍼져 나가자 화산지로 많은 무인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정문 밖은 화산지로 찾아온 사람들로 인해 소란스러웠다.
“두총 형.”
인양이 불쑥 들어왔다.
“뭐!!”
소리소문 없는 등장에, 장두총이 경기를 일으킨 듯 화들짝 놀랐다.
“앗. 죄송.”
“어휴, 됐다. 무슨 일인데?”
“정문에서 장익이란 분이 형을 찾아요.”
“……혹시 여기 한쪽 눈썹이 반쯤 없냐?”
“맞아요.”
“숙부님이…… 여긴 무슨 일이시지?”
장가표국의 총표두 장익이 확실했다.
화산대사 고진유는 당분간 외부의 손님을 만나지 않는다고 알렸지만, 여전히 정문 밖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두총은 밖으로 나섰다.
정말로 눈에 익은 중년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하하하! 두총 조카, 오랜만이네.”
목청껏 소리를 지른 중년 사내가 두 팔을 벌린 채 장두총의 앞으로 나섰다.
“숙부…… 오랜만입니다.”
“우리 조카가 너무 자랑스럽구만!”
그는 장두총을 반갑게 껴안으며 등을 두드렸다.
장두총은 떨떠름해졌다.
‘우리가…… 이 정도로 친한 사이였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