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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65화 (65/425)

65화

고진유가 말한 인물은 바로 본인을 말함이었다.

‘어떻게…… 새로운 단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

무공을 익히면서 단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화산도협의 말이 사실이란 말인가?’

유하랑은 고진유를 뚫어지게 쳐다보았지만, 거짓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대의 말이 정녕 사실이라면…… 이공자도 무공을 익힐 수 있겠군.”

유하랑의 인정에 조강천의 얼굴이 환하게 펴졌다.

“이공자, 축하하네. 기연을 얻었구려.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운이 화산에 닿은 모양이외다.”

유하랑은 그가 얼마나 큰 노력을 했는지 알았다.

온몸이 부서지도록 목검을 내리치는 장면을 수없이 지켜보았다.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최선을 다해 도왔겠지만, 아무것도 해줄 수 없었다.

“맞습니다. 사부님을 만난 건 운이 좋았습니다.”

“이공자, 그대의 사부에게 열심히 배우게 된다면 염원하던 것을 이루게 될 것이네.”

“최선을 다해 배울 것입니다.”

유하랑까지 인정을 하자 조여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화산도협의 말씀을 믿겠어요. 무례했다면 사과드려요. 둘째 오라버니가 무공을 익힐 수 있다면 기쁜 일이죠. 하지만…… 이유 없이 무공을 가르쳐 줄 리는 없지 않나요?”

“맞소. 이유 없는 행동은 없소.”

“그 이유가 뭔가요?”

“조 소저가 예상한 것처럼 중원상국의 뒷배를 노렸소이다.”

“그게 무슨……!”

“라고…… 말하면, 소저가 원하는 답일 테니 만족하시겠소?”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런 말을 듣고자 그대의 오라비를 제자로 받아들인 게 아니오. 제자의 뜻이 간절했소이다. 그리고 제자가 무공체이기에 받아들였지요.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갑니까?”

조강천의 신분이 아닌 그가 필요했기에 제자로 받아들였다는 것.

조여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굳이 이유까지 설명하지 않아도 됐지만…… 확실히 짚어줘야 두 번 다시 같은 말이 안 나오겠지.’

“무공체인 이공자를 통해 확인하려고 하는 모양이군.”

유하랑도 재차 확인을 해주었다.

조여하는 고개를 숙였다.

“제가 아무것도 모르고 화산도협께 큰 실례를 했어요. 사과드리겠어요.”

“그럴 수 있지요. 이해합니다.”

“…….”

고진유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목소리엔 어떠한 감정도 들어 있지 않는 듯했다.

유하랑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허어…… 그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거늘. 우리와 사이가 멀어진 듯 보이는군.’

* * *

수화궁의 만찬은 처음과 달리 분위기가 밝았다.

묵경의 재치 있는 언변에 주위는 웃음으로 가득했다.

청미화 조여하와 묵경이 나란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화사했다.

조여하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중간중간 고진유가 있는 자리를 살폈다.

고진유은 조천항과 조강천과 한자리에 앉아 술을 마셨다.

“도협, 한 잔 받으시오.”

조천항이 술을 따르며 재차 말했다.

“이놈을 잘 부탁하오. 내가 형으로서 한 번도 잘해준 적이 없소이다.”

“걱정 마시오.”

이번에는 조강천에게 술병을 내밀었다.

“군사부일체가 아니더냐.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무시하지 말고 항상 공손하게 모셔라. 내가 보기에 앞으로 무림에 화산도협보다 뛰어난 인물은 없다.”

세상은 돈만 있으면 다 된다며 황금에 미쳤다고 알려진 중원상국의 일공자 조천항이 고진유를 칭찬하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하하하! 오늘 기분이 너무 좋소이다!”

조천항이 한입에 술을 들이켰다.

스윽.

고진유가 품 안에서 서신을 꺼냈다.

“받으시오. 떠나기 전에 주려고 했던 것이오.”

“오오? 이게 뭡니까?”

“서협상단주를 만나거든 보여주시오.”

“이런…… 하하! 고맙소이다. 나를 위해 신경을 많이 써주시는군요.”

“본 문도 손해 볼 게 없으니 서로 좋은 일이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맞소이다. 화산파도 일 할이 더 생기는 것이지요!”

“그건 아직 알 수 없는 일이지요.”

“걱정 마시오. 서협상단에 섭섭하지 않도록 하겠소이다.”

그렇게 만찬이 거의 끝날 무렵.

수화궁으로 중년 사내가 들어왔다.

“변 총관, 그대가 웬일인가?”

상국전의 총관인 변호상.

유하랑이 먼저 그를 보며 알은척을 했다.

“호국님을 뵙습니다. 상국주님께서 소인을 보냈습니다.”

“상국주께서? 무슨 일인가?”

“지금 화산도협을 만나고자 하십니다.”

만찬장에 있던 모든 시선들이 고진유에게 향했다.

“그를 왜 만나고자 하는 건가?”

“소인도 그 이유는 모릅니다.”

“알겠네.”

유하랑은 고진유를 보며 물었다.

“상국주께서 부르신다고 하시는데 가봐야 하지 않겠나?”

“이곳의 주인께서 만나겠다면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겠지요. 갑시다.”

고진유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변호상 앞에 다가섰다.

“고맙습니다. 제가 안내를 하겠습니다.”

고진유는 그를 따라나서기 전 묵경을 찾았다.

“끝나거든 별궁으로 돌아가세요. 저도 바로 거기로 가지요.”

“알겠어. 잘 다녀와.”

묵경도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가시죠.”

“저를 따라오십시오.”

고진유는 앞장을 선 그를 따라 수화궁을 나섰다.

중원상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 상국전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두 개의 문은 통과해야 했다.

하지만 변호상은 외문이 있는 방향이 아니라 다른 방향으로 안내를 했다.

전방에 죽림이 보였다.

고진유는 걸음을 멈추었다.

“여긴 어디입니까?”

“죽림소이외다.”

“상국주가 이 안에 계신다는 것이오?”

“맞소이다. 죽림을 지나가면 상국주께서 기다리고 계실 것이오.”

“…….”

고진유는 잠시 그를 보다가 말문을 닫았다.

‘이거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네.’

죽림에 숨어 있는 무인들의 기가 느꼈다.

빽빽하게 들어선 푸른 대나무들이 밤하늘을 막을 정도로 높았다.

겨우 한 사람이 걸어갈 정도의 폭으로 된 길.

죽림으로 들어서자 머리 위에 뻗은 대나무 잎들 사이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쉬쉭쉭-

고진유는 고개를 들어 위를 올려다보았다.

“정신없군.”

가만히 선 채 그들이 움직이기를 기다렸다.

핏핏핏핏핏!!

순간, 머리 위 대나무 잎 사이로 수십 개의 검기들이 쏟아져 내렸다.

퍽퍽퍽퍽퍽.

바닥으로 검기가 떨어졌다.

처음 있어야 할 자리에서 고진유의 신형은 정확히 일 장 뒤로 물러나 있었다.

“괜찮은 한 수였소.”

고진유는 대답이 없는 위를 향해 다시 소리쳤다.

“다음 공격은 무엇이오?”

쉬이이이이익-!!

고진유의 말이 끝나자마자 이번에는 바닥을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사방에서 바닥을 미끄러지듯 다가오는 사절무편(蛇節舞鞭).

대나무 사이를 비껴가면서 고진유의 다리를 공격했다.

‘이들은 이곳에서 싸우는 데 특화되어 있군. 그렇다면……!’

고진유는 사의검을 뽑은 뒤 극성의 내력을 끌어 올렸다.

차아아앗!!

선 자리에서 가볍게 원을 그리며 사의검을 휘둘렀다.

스스스스-

고진유를 둘러싼 대나무들이 두부를 자르는 듯 너무나 간단하게 쓰러지기 시작했다.

한 번의 움직임에 삼 장의 반경 주위로 대나무 아래가 모두 잘려나가며 쓰러졌다.

“어어어!!”

“피해라!!”

휙휙휙!

공중에서 다급해진 목소리가 울리고, 넘어지지 않는 대나무들 위로 움직이는 기척이 들렸다.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이곳을 모두 베어버리겠소.”

찌이이잉-!!

사의검의 검신이 자줏빛을 발산했다.

번쩍!

십 장의 죽림이 단 한 번에 평평해졌다.

그리고 잘려 나간 죽림 앞으로 정자가 나타났다.

휙휙휙휙!!

수십 명의 호위무사가 정자 앞을 막아섰다.

‘허어억…… 엄청나다.’

그들의 눈동자는 떨고 있었다.

호위무사들의 무공 또한 절대로 낮지 않았지만 고진유가 보여준 무공을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옆으로 물러나라.”

정자에서 한 중년인의 굵은 목소리가 들렸다.

“화산도협의 소문을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고강한지 몰랐소이다.”

“누구십니까?”

고진유는 담담하게 물었다.

“미안하게 되었소. 이곳 주인인 사람이외다.”

“상국주시군요.”

“그렇소이다. 허허허.”

“본인을 부른 이유가 이것입니까?”

“다시 한번 미안하게 되었소이다. 그대의 무공이 얼마나 강한지 시험하고자 했을 뿐.”

“내가 상국주의 시험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겠소.”

“…….”

고진유의 눈빛과 마주쳤다.

상국주 조명군은 강한 압박을 느꼈다.

‘허어…… 지금까지 내 앞에서 이렇게 떳떳하게 말을 한 사람이 있었던가.’

“여기에 올라오시겠소이까?”

“그렇게 하지요.”

고진유는 호위무사들 사이를 지나 정자에 올라섰다.

“자리에 앉으시지요.”

조명군과 고진유는 서로 마주 보며 앉았다.

“둘째의 사부가 되었다고 하기에 실력이 궁금했소이다. 과연 사부의 자격이 있는지 확인하고자…… 역시 대단하군요.”

“상국주님. 잘못 생각하셨습니다.”

“무슨 말이오?”

“내가 사부가 될 자격이 되는지 확인하는 게 아니라 그가 내 제자가 되기 위해 부탁을 해야 하는 겁니다.”

스윽.

조명군은 포권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본인이 또 실수했소이다. 미천한 아들을 제자로 받아주신 것에 대해 감사한 것을 잊었소이다.”

“됐습니다. 그것 때문에 나를 부른 것이라면 이젠 문제가 없겠군요.”

“당연히 문제가 없소이다. 그리고…… 서협상단의 일도 도움을 줬다고 들었소이다.”

“도움을 준 건 아닙니다. 그게 더 본 문에 이익이 생기기에 했을 뿐입니다.”

“하하하! 화산도협께서는 그동안 보아왔던 도사들과는 다르시군요.”

조명군은 웃음이 나왔다.

장사를 하다 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몇 마디 나누어보지 않았지만 고진유는 처음 보는 유형이었다.

“늦은 시간이 아니라면 술이라도 대접했을 겁니다.”

“술은 다른 곳에서 많이 마셨습니다.”

“앞으로 본 상국과 좋은 관계를 맺었으면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도 주시면서요.”

“곁에 유하랑 님이 계시더군요. 그분이라면 충분히 도움이 되실 것으로 보입니다.”

“후후후후. 그렇지요. 유 아우가 있긴 하지만 언제까지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둘째를 제자로 받아준 것처럼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첫째도 부탁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일공자는 굳이 내가 없어도 잘 하실 분이더군요.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렇소? 전부 성인이 되었지만 부모의 마음은 항상 걱정에 마음이 놓이지 않소이다.”

고진유는 그와 대화를 나눴지만 늦은 시간에 부른 이유가 나오지 않았다.

“나를 부른 이유를 말해보시지요. 이 정도면 충분히 대화를 나누지 않았습니까?”

“후후후. 그렇군요. 본인이 그대를 부른 이유를 설명하겠소이다.”

스르르륵.

조명군의 신형에서 내기가 흐르면서 주위를 감쌌다.

‘역시 무공을 익혔군.’

정자에 오르면서부터 그의 신형에서 미세한 내기를 느껴졌다.

“내가 무공을 익힌 것에 대해 별로 놀라지 않는 모양이군요.”

“놀랄 일인가요? 오히려 못하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후후후, 그런 것이오?”

그는 앞에 놓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혹시 유 아우와 여하를 따로 만난 적이 있지 않았는지요?”

“…….”

생각지도 못한 물음.

‘역시 중원상국의 주인답다.’

거대한 상국을 이끌어가는 주인이라면 보통 인물은 아니었다.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게 확실했다.

“없습니다.”

“크하하하!”

조명군은 대소를 터뜨렸다.

“도협,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답을 하는군요.”

“무슨 말씀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이 어디라고 생각하시오?”

“중원상국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여긴 중원상국이외다. 내가 주인인 곳이지요. 그럼 당연히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주인이 모를 리가 있겠소이까?”

고진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과연 그가 어느 정도 얼마나 정확하게 알고 있을지.

무구천의 존재를 안다면 극일천의 존재까지도.

“웃는 이유가 무엇이오? 나에게 들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인가?”

“모르는 게 없다는 말에 정말로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장난으로 어물쩍 넘어가려고 하는 것이오?”

“상국주께서 원하는 대답이 무엇입니까?”

“주인이 가만히 있거늘 상국 주위에서 움직이는 이들이 누구인지 알고 싶은 것이오.”

“직접 물어보지 않으셨습니까?”

“나는 뭐든지 확실하지 않으면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지요. 한꺼번에 잡지 않으면 피곤해지기 때문이외다.”

“그래서 지켜보고만 있었던 것입니까?”

“그렇소이다. 근데 최근에 움직임이 더 심하더군요.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던 중이었는데 그대들이 찾아왔소이다.”

스윽.

그가 한 장의 전표를 내밀었다.

“이걸 받으시오.”

“무엇입니까? 제법 큰돈입니다.”

황금 천 냥의 전표였다.

“둘째를 잘 봐달라는 부모의 가벼운 성의라 보면 되오.”

“생각보다 통이 작으십니다.”

“…….”

은자 천 냥이 아니라 황금 천 냥의 전표였다.

“혹시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모양인가 보오? 황금 천 냥이외다.”

“압니다. 그저 천하제일의 중원상국의 주인이라면 아들을 위해서는 최소한 황금 만 냥짜리가 나올 줄 알았습니다.”

“큭…… 크하하하!!”

조명군은 다시 한 번 더 대소를 터뜨렸다.

“도협, 아니, 화산도협. 그대의 배포를 인정하는 바이오. 말 한마디에 황금 만 냥을 뜯어가겠다는 것이 아니오?”

“남들이 잘못 들으면 오해하겠습니다. 이왕 주시는 것이니 잘게 나눠서 주시면 고맙게 잘 사용하겠습니다.”

“좋네. 그대의 말대로 해주지요. 대신 내가 물은 질문에 대답을 해줬으면 하는군요.”

“어렵지 않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시지요.”

고진유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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