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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61화 (61/425)

61화

덜컹.

조천항은 갑자기 안으로 들어온 동생을 보았다.

“어허, 예의도 없이.”

“미안하게 됐소. 똑똑. 이제 들어가도 되겠소?”

조현후가 한 손을 들었다.

“삼공자, 오셨소이까?”

“수한 선생도 함께 있었군요. 요즘은 거의 소궁에서 사시는 듯합니다?”

살랑.

수한이 백학선을 가볍게 흔들었다.

“삼공자는 본인에게 관심이 많은 모양이군요.”

“관심이야 많지요. 과연 두 분이서 몰래 무슨 일을 하는지 궁금하거든요.”

“후후후. 우리들이 무슨 나쁜 짓을 하는 것처럼 들리는군요.”

“그건 모르지요.”

두 사람 사이에 바로 조천항이 끼어들었다.

“삐딱한 소리 하지 말고. 여기엔 무슨 일이냐?”

“화산파의 도사들에게 얼마를 준다고 해서 함께 왔소?”

“돈은 무슨. 그냥 가자고 하니 따라오던데?”

조현후는 고개를 흔들었다.

“형님, 무슨 말을 하는 거요? 그들이 무작정 따라왔다는 말이요?”

“맞아.”

“못 믿겠소. 황금을 엄청 준다고 했겠지. 내가 가서 물어봐야겠소. 괜찮겠소?”

“맘대로 해. 같이 가지.”

“알겠소.”

조현후는 굳은 표정으로 조천항을 따라 함께 별궁으로 들어섰다.

‘정말 그들이군.’

별궁에서 편하게 쉬고 있는 화산파의 일행인 보였다.

조천항이 먼저 반갑게 화산파 일행에게 손을 흔들었다.

“편히들 쉬고 계셨소?”

“일공자의 배려에 편하게 쉬고 있었소이다.”

묵경이 일행을 대표해서 그를 맞이했다.

“불편한 게 없다니 다행이구려. 저녁을 준비할 텐데…… 혹시 스님처럼 못 드시는 음식이라도 있소?”

“전혀 없소이다. 주는 대로 전부 먹을 수 있소.”

“잘됐군요. 내가 도사들을 초대한 건 처음이라. 식사를 준비하도록 하지요.”

조천항과 묵경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조현후는 일행 중 한 명 앞으로 다가섰다.

“화산도협, 여기에는 무슨 일이오?”

“그대의 형님께서 초청을 하더군요.”

“차별하는 것이오?”

“무엇이 차별이라고 생각하는지는 모르겠소.”

“화산파가 서협상단에서 손을 떼기로 하고 본 상국에 들어온 게 아니오?”

조천항이 다가왔다.

“어허. 후 아우. 오해하고 있구만. 화산파에서는 죽어도 서협상단에서 손을 안 뗀다고 하더군.”

하지만 조현후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고진유에게 직접 물었다.

“형님의 말이 사실이오?”

“맞소. 그렇게 말했소.”

그러자 조현후는 의아한 표정으로 다시 조천항을 보며 말했다.

“그럼 여기엔 왜 데리고 왔소?”

“우리 예쁜 동생을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초대를 했지.”

“……여하를?”

오미화로 소문난 여동생을 보기 위해?

‘도사라고 해서 금욕적이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군.’

조현후는 헛웃음을 뱉었다.

“하…… 막내가…… 예쁘긴 하지. 근데 당신들이 보고 싶다고 해서 그 애가 여기에 올지는 모르겠소이다. 사내들에게 관심이 전혀 없는 편이라서.”

그는 고진유가 무슨 이유로 따라왔는지 궁금해서 왔을 뿐이라, 이곳은 여전히 불편한 자리였다.

“난 그만 가겠소.”

“벌써 가려고? 어렵게 왔는데 밥이나 먹고 가지?”

“됐소. 내가 거지도 아니고 누구들처럼 공짜 밥 먹으러 온 게 아니외다.”

조현후가 돌아서며 거의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였다.

“일공자, 식사 후 서협상단에 대해서 마무리 짓도록 하죠.”

뒤에서 들리는 고진유의 목소리.

“…….”

조현후의 걸음이 멈춰 섰다.

‘서협…… 상단. 저놈이 일부러…….’

조여하를 보기 위해 왔을 리 없었다.

조현후의 머릿속이 이대로 나갈지 말지에 대한 갈등으로 맹렬하게 돌아갔다.

조천항은 미소를 지으며 소리쳤다.

“후 아우, 안 가고 뭐 하나?”

“생각해 보니 형님과 식사를 한 지 꽤 오래 되었군요.”

“그렇긴 하지. 일 년이 넘었나? 너도 공짜 밥 먹고 가려고?”

“……그렇게 하죠.”

조현후는 다시 돌아섰다.

‘약은 놈.’

조천항의 뒤로 미소를 짓는 고진유와 조현후의 시선이 마주쳤다.

* * *

금수저란 말은 많이 들었지만 실제로 사용해 보기는 처음이었다.

“이거…… 정말 전부 금으로 만든 것이오?”

“묵 형, 몇 개 필요하면 드리리다.”

“아아니, 됐소. 그냥 장식으로 만든 것은 봤지만 이렇게 많이는…… 놀랍구만…….”

“하하하! 어릴 적부터 이상하게 황금이 좋더이다.”

일행은 조천항을 황금 공자라 부르는 이유를 여실히 느꼈다.

그는 돈이 많은 게 아니라 황금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식사가 진행되는 동안 조현후의 시선은 고진유에게 내내 고정되었다.

“서협상단의 일에 대해서 의논할 게 있다고 하지 않았소?”

“식사가 거의 끝날 쯤에 하는 게 좋겠군요.”

“후 아우가 굳이 신경 쓸 일 아니니 안 나서도 되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묵경과 대화를 나누던 조천항이 건너편 자리에서 말했다.

“형님, 본 상국의 일이지 않습니까? 당연히 신경을 쓸 수밖에요.”

“하하하. 네가 언제부터 신경을 썼다고. 여하튼 내 일이다.”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솔직히 남양은 예전부터 내가 맡은 곳 아닙니까?”

“그랬나?”

조천항은 시선을 돌려 수한을 보았다.

“삼공자의 말이 맞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굳이 정한 것은 없습니다.”

“수한 선생!”

“삼공자가 그동안 서협상단을 차지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했는지 알고 있소이다.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서협상단과 문제가 많더군요.”

“시간만 지나면 해결될 일이었소.”

“그게 언제가 될지 아십니까?”

“…….”

수한의 물음에 조현후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쯔쯔, 넌 그게 문제야. 일을 시작했으면 똑바로 해야지. 거기다 굳이 홍기단까지 왜 데리고 다녀? 어차피 돈으로 밀어붙이면 될 일을.”

탕!!

조현후는 바닥을 내리쳤다.

“그만하죠. 언제부터 내 일에 관심이 많았소?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신경 쓰지 않았으면 좋겠군. 우린 서로 간섭하지 맙시다.”

“그러지. 똑똑한 놈이니 잘할 테고. 알아서 해.”

“그럼 서협상단의 일에선 그만 빠지시죠.”

“서로 간섭하지 말자며? 너도 내 일에 관여하지 마라.”

“그 말은…….”

“시끄럽다. 계속 따질 거면 그냥 가라, 동생.”

조천항은 손을 내저으며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쳇.”

조현후는 당장 떠나고 싶었지만 그들이 어떤 대화를 나누는지는 궁금했다.

“자자, 도협, 이제 아까 나누었던 이야기를 정리해 봅시다.”

“그렇게 하지요.”

“무력이나 협박이 아니라면 화산파에서는 관여하지 않겠다는 말이지요?”

“맞습니다. 서로 사이좋게 장사를 하겠다는데 본 문이 서협상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할 위치도 아니지요.”

“하긴 여기 화산칠협께서 계신 대화산파가 그럴 문파도 아니지요.”

조천항은 포권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뭐야? 저 인간이 언제부터 이렇게 아부를?’

조현후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조천항의 모습에 당황했다.

“음…… 혹시나 도움이 될지 모르겠소만.”

“오오. 그게 뭐요?”

“서협상단에 대해 한 가지 알려줄 것이 있소.”

“무엇이오? 그게?”

“그 전에…….”

고진유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한 가지 확실히 하고 갈 게 있지요.”

“…….”

척.

고진유는 손가락 두 개를 내보였다.

풋.

조천항의 입가에 짧은 소리가 먼저 나왔다.

“크하하하하!”

그리고 곧바로 대소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대소를 멈춘 그는 고진유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하나 세웠다.

“알겠소이다. 그 일이 성사된다면 내 필히 이 할을 보장하리다.”

“고맙소. 신의를 중요시하는 상계의 인물이니 믿도록 하지요.”

“하하,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 장 써주리다. 장사는 신용도 좋지만 확실히 증거 서류는 있어야 하는 법이지요. 그럼 이제, 아까 서협상단에 대해 하려던 말은 무엇이오?”

“중원상국과 서협상단의 관계를 알았소이다.”

“아아, 맞소. 본인의 증조부께서 한때 서협상단에서 일을 배운 적이 있었지. 물론 그분들 사이에 좋지 않았던 일도 있었지만, 서로 먹고 먹히는 게 세상이 아니오. 서협상단에서 그 일을 가지고 여전히 투덜거리는 모양이군.”

“입장 바꿔 생각하면 쉽소.”

“쩝. 굳이 남의 사정을 봐주는 편이 아니라서. 그런 것까지 신경 쓰다 보면 제대로 일을 못 하지 않겠소이까?”

“이 보 전진을 위해 일 보 물러날 수 없다면, 다리가 잘릴 수도 있소.”

“…….”

“그리고 아주 가끔, 돈으로 안 되는 것도 있겠지요.”

“그게 이번 일이라는 것이오?”

“서협상단의 이름이 달린 일이 아니오.”

“……알겠소. 도협이 말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이오?”

“일공자가 서협상단이 섭섭한 것을 풀어주라는 것이외다.”

“섭섭한 것이라?”

“내가 중간에 다리를 놓아줄 테니 서로 만나서 이야기 잘 해보시오.”

수한도 고진유의 생각에 동의했다.

“일공자님, 괜찮은 방법인 것 같소이다.”

“……흐음, 수한 선생도 그렇게 보시는 모양이구려. 알겠소이다. 서협상단주를 만날 수 있도록 준비 좀 해주시지요.”

고진유가 씨익 입꼬리를 올렸다.

“연락을 띄우도록 하죠.”

* * *

휘익!

쨍그랑!!

조현후는 손에 잡힌 찻잔을 벽에 내던졌다.

삼금궁에 돌아오자 참고 있었던 화가 폭발했다.

“망할 새끼가…….”

남양을 접수하려던 그의 계획이 지금까지 전혀 관심이 없던 일공자 조천항이 끼어들면서 완전히 틀어졌다.

만일 자신이 아니라 조천항과 서협상단 사이에서 어떠한 협의라도 이루어진다면, 형제간의 능력 차이가 단숨에 드러날 수 있었다.

“삼공자님, 화를 푸시지요.”

“경 총관, 지금 화가 나지 않을 상황인가? 두 놈들이 나를 빼고 작당하고 있지 않는가?”

“공자님,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경여랑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무슨 계책이 있는가?”

“서협상단이 일공자께서 만나지 못하도록 만들면 안 되겠습니까?”

“음…… 좋은 생각이긴 하지만 화산도협이 중간에 나선다고 하지 않았나?”

“아무리 그가 나선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자신 있게 대답하는 것을 보니 방법이 있는 것 같군. 어서 말해보게.”

“공자님께서 먼저 서협상단을 강제로 치면 됩니다.”

“우리가 직접?”

“그렇습니다. 침입을 받는다면 화산파가 나서게 될 것입니다.”

“아! 큭, 형님과 화산도협이 곤란해지겠군.”

“맞습니다. 침입을 받은 서협상단은 절대로 일공자님과 거래하지 않을 것입니다.”

“맞군. 좋은 생각이야. 내일이라도 당장 남양으로 쳐내려 갈 준비를 해야겠어.”

조현후는 이제야 마음이 놓였다.

‘도협, 두고 봐라.’

* * *

일각 전 조천항은 밤새도록 마시자며 술주정을 했지만 끝내는 정신을 잃은 채 황금소궁으로 돌아갔다.

별궁에는 거의 이십 개의 침실이 있었다.

각자 침실을 봤을 때 선뜻 들어가지 못했다.

“대단한데.”

그 한마디 외에는 어떻게 표현을 할지 모를 만큼 화려했다.

스륵.

고진유는 닫혀 있던 창문을 열었다.

중원의 밤하늘은 어디에 간들 같아 보였다.

파해도에서 봤을 때나, 화산파의 정상에서 봤을 때난 늘 한결같았다.

지잉-

그때, 고진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어라. 이것 봐라?’

신형을 숨긴 채 노려보고 있는 시선이 느껴졌다.

‘대단한 인물이군. 나를 지켜보고 있을 줄은 몰랐는걸.’

타아앗!

고진유가 곧장 호탄신을 펼치자 몸이 앞으로 튕겨나갔다.

“도망가려고? 그건 안 되지.”

바람이 온몸을 스치며 뒤로 지나갔다.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신법이 빠른데. 재미있군.’

상대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다행히 거리는 조금씩 줄어들었다.

파아앗!!

중원상국 건물들의 지붕으로 날아오른 인영은 마치 공간을 뚫고 지나가는 듯 거침없었다.

“좋은 신법이야. 그럼 나도……!”

호충신법에서 가장 빠른 공결신(空決身)을 펼친 고진유가 단숨에 장거리의 공간을 뚫고 달렸다.

팟! 팟! 팟!

앞서가던 인영은 뒤에서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빠르다!’

광광신법(光光身法)을 시전한 자신보다 빠른 이가 있다니.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만일 계속해서 달린다면 잡힐지도 몰랐다.

휘이이익!

인영이 건물 아래로 빠르게 사라졌다.

지붕을 따라 움직이던 고진유도 기척을 따라 내려섰다.

‘어디 갔지?’

기감을 넓히며 사라진 인영을 찾았지만, 전혀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 기감이 통하지 않아. 누군가 막고 있어.’

고진유는 움직이지 않은 채 주위를 살폈다.

그 순간,

번쩍!

등 뒤에서 날카로운 검기가 다가왔다.

‘피할 수 없어.’

사방을 죄여오는 압박.

오직 검으로 막아낼 수밖에 없었다.

채애애앵!

고진유가 사의검을 뽑으며 검기를 쳐냈다.

휘리리릭!

뒤로 물러났던 검기가 이번에는 회오리로 변하면서 다가왔다.

“흡!”

고진유도 물러나지 않고 사의검을 뻗었다.

매화산우 초식이 회오리로 쏟아낸 검기를 옆으로 쳐냈다.

‘여기도 이 정도의 고수가 있을 줄은!’

검을 펼치며 모습을 드러낸 인물은 중원에서 만났던 남궁허와 혈사천주, 그들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중년인이 한 손은 뒷짐을 쥔 채 검을 앞을 내밀었다.

“화산파의 제자이군. 일공자와 함께 왔다는 화산칠협인가 본데.”

“화산파 삼대제자 호정입니다.”

“호정이라. 그대가 화산도협인가?”

“그렇습니다.”

“요즘 이름깨나 날리더구먼. 만나서 반갑네. 본인은 유하랑이라 한다.”

중원무림에 대해서 아무리 모른다고 한들 천하이십절대무인을 모를 리 없었다.

천하오무. 중원오성. 중원오기. 중원오협의 절대무인 이십 명.

중원오기 고독기검 유하랑이 바로 눈앞에 서 있었다.

“……유하랑 님을 뵙습니다.”

“화산파에서 제대로 된 인물이 나왔군.”

중원에서 많은 후기지수들을 봤지만 그들보다 뛰어났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별궁에 있어야 할 그대가 수화궁에는 웬일인가? 여긴 외지의 사내가 함부로 들어올 곳이 아니네.”

“이곳이 수화궁입니까? 전 별궁에서부터 수상한 인물을 쫓다 이곳에서 기척을 놓쳤습니다.”

“흐음.”

고진유의 눈빛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수상한 인물이 여기에 숨었다는 말인가?”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곳에서 기척이 사라진 건 사실입니다.”

“만일 수상한 인물이 수화궁에 숨어들었다면 내가 알았을 것이네.”

“…….”

“내 말을 못 믿는 겐가?”

“죄송합니다. 전 제가 보지 않는 것은 잘 믿지 않는 편입니다.”

“……후후후.”

유하랑은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고진유를 다시 보았다.

‘웃긴 녀석이군. 내 앞에서 할 말을 하다니.’

겨우 약관을 넘어선 나이에 당돌한 녀석이다.

“본인이 거짓을 말한다고 보는군.”

고독기검 유하랑이 내력을 점점 올려 고진유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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