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55화 (55/425)

55화

장두총은 중원루에 호기롭게 올라섰다.

일반 객잔과 다르게 입구 앞을 호위무사가 지켜서고 있었다.

호위무사가 한 손을 뻗어 일행을 막았다.

“도사님들, 잠시만 멈춰 주시지요. 여기에 무슨 일로 오셨소이까?”

무시하는 듯한 말투에 잠시 욱했지만.

‘격에 맞게. 격에 맞게.’

“문제가 있는가? 그리고 이 손은 치워주게. 기분이 살짝 나빠질 것 같군.”

예전이었다면 버럭 화를 내며 따졌을 장두총은 호위 무사의 팔을 옆으로 치웠다.

호위무사는 너무나 가볍게 팔이 젖혀지자 살짝 당황했다.

‘매화다.’

그제야 장두총의 도의 끝자락에 새겨진 매화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화산파 제자이신 줄 몰라뵈었습니다. 무슨 일로 본 루에 오셨습니까?”

그의 태도가 단번에 바뀌자 장두총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객루에 무슨 볼일이 있겠나? 하룻밤 보내려고 왔지.”

“그게…… 본 중원루는 도사님들께서 하루를 지불하기에 버거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못 들어간다는 것인가?”

“그건 아니고…… 비용이 꽤 비싼 곳입니다.”

“우리를 거지로 아는! ……모양이군.”

‘헛 이런. 자중, 자중.’

순간 목소리를 높인 장두총은 다시 목을 가다듬었다.

“저어…… 무작정 들어가실 수가 없습니다. 함부로 들여보냈다가는 총관님께 제가…….”

“우리가 돈을 떼먹고 도망갈 것처럼 보이나?”

“…….”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그렇게 생각하고 있군그래.”

호위무사는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이들이 화산파의 제자들이라고 하나 젊은 도사들이 돈이 없다는 건 안 봐도 뻔한 사실이지 않겠는가?

“중원상국이 중원 무림을 하찮게 여긴다는 말은 들었지만 당황스럽군. 융숭한 대접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일세.”

묵경은 어이가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

“돈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조차 하지 않고 입구에서 막는 것이오?”

“죄송합니다. 상부의 특별 지침이라서. 누구를 막론하고 자격이 되지 않으면 들여보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입구에 멀뚱히 서서 지불 능력까지 몽땅 증명해야 들어갈 수 있다는 말이군.”

“죄송…… 합니다.”

‘쳇. 우리도 여기에 볼일만 없었으면 다른 곳에 갔을 거라고.’

짤그랑!

장두총이 목적을 위해 성질을 참고 호주머니를 열어 금화를 보여주었다.

‘헉……!’

호위무사의 눈이 커졌다.

화산파의 젊은 도사가 가지고 다니기에는 상당히 큰 액수였다.

“이 정도면 확인이 됐나?”

“아…… 다, 당연합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

“제가 안으로 모시겠습니다.”

“필요 없어. 자네 할 일이나 열심히 하게.”

장두총은 단칼에 호위무사의 제안을 끊고는 도도하게 안으로 들어갔다.

* * *

중원루 일 층으로 들어서자 일반 객잔과는 다른, 고급스러운 시설들이 눈에 띄었다.

딱딱한 나무의자가 아닌 푹신한 가죽으로 만들어진 의자들.

대리석과 흑단목으로 만든 탁자도 놓여 있었다.

비스듬히 누운 채 편히 쉬고 있던 중원루의 손님들이 화산파 도사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허어, 요즘에는 도사들도 제법 돈이 많은 모양이군.”

“그러게나 말일세.”

“도오사님들이 어떤 사업을 하는지 궁금하구만.”

중년인들은 대부분 금사로 수놓고 값비싼 비단으로 만든 금의를 두르고 있었다.

후다다닥!

이 층 계단에서 빠르게 내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일 층 아래로 내려온 중원루 총관 윤무는 객루에서 쉬고 있던 손님들의 눈치부터 살폈다.

“저어, 도사님들.”

한눈에 봐도 돈이 많아 보이는 행색이 아니다.

‘밖에 놈들은 대체 뭐 하고 있는 게야? 나중에 한 소리 해야겠군!’

윤무의 시선이 일행을 빠르게 스치며 지나갔다.

‘매화도의…… 화산파 제자들이로군. 그리고…… 저 공자는?’

일행 사이에서 고개를 돌린 채 서 있는 남자는 중원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미남이었다.

‘혹시…… 풍류미군?’

윤무는 객루의 총관답게 중원에서 도는 소문에 민감했다.

‘일곱 명의 도사들과 풍류미군이라면…… 이들이 화산칠협이다……!’

야월문을 봉문시켰다는 소문의 주인공들.

윤무는 곧바로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중원루의 총관을 맡은 윤무라 합니다.”

“당신도 우리가 잘못 들어왔을 거라 생각하시오?”

장두총의 물음에 윤무가 얼른 고개를 흔들었다.

“아닙니다. 입구에서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렇소? 처음에는 쫓아내다가 돈을 보여주니 겨우 안으로 들여보내 주더군요.”

“……죄송합니다. 아마 식견이 짧아 화산파의 제자이신 줄 모르고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니? 단번에 알아보더이다. 그런데도 어쨌든 돈부터 확인시켜 달라고 하던데.”

윤무의 얼굴이 붉어졌다.

“총관께서도 우리가 돈이 있는지 한 번 더 확인하겠소이까?”

“아닙니다, 아닙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윤무는 가슴이 거의 무릎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벌떡!

일행이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바로 전까지 비웃으며 거드름을 피우던 사내들이 다급히 자리를 피했다.

“여기에서 잠시 쉬고 계시면 차를 먼저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오.”

일행은 순식간에 자리가 빈 푹신한 의자에 편히 앉았다.

여기서 가장 여러 곳의 객루를 다녀본 묵경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괜찮군.”

휙휙.

장두총은 주위를 살폈다.

“그놈들이 안 보여.”

“저기 이 층에 있는 것 같은데요.”

고진유의 말에 일행이 일제히 이 층을 올려다보았다.

“흥, 그럼 올라가서 만나봐야겠지?”

“그럴까요?”

장두총과 고진유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호경 사형과 잠시 올라갔다 오겠습니다. 편하게 쉬고 계세요.”

“알아서 해라.”

굳이 자신들 모두 나설 일은 아니라고 여긴 우종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고진유가 함께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어, 어디를 가십니까?”

두 사람은 이 층 계단으로 향하던 중 차를 준비해서 나오던 윤무와 마주쳤다.

“이 층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서 말이오. 올라가면 안 되는가?”

“그게 아니라…….”

“똑바로 말하게. 안 된다는 건가?”

“이 층에는 중원상국에서 오신 분들이 계십니다.”

“알고 있네. 밖에 마차와 말들이 있더군.”

“죄송하지만 그분들이 쉬고 있는데 기별도 없이 바로 올라가시면 저희가…….”

“위에 만나야 할 친구가 있는 것 같아서 올라가는 거네.”

“누, 누구를……?”

“총관이 알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 그럼 제가 이 층에 가서 어떻게 하실지 여쭙고 오겠습니다.”

“좋소. 그렇게 하시오.”

윤무는 손에 든 차를 내려놓은 뒤 재빨리 이 층으로 올라갔다.

고진유와 장두총은 계단 아래에서 기다렸다.

그의 허락 없이 올라갈 수 있었지만 최대한 예의를 차렸다.

이 층에 올라갔던 윤무가 빠른 걸음으로 내려왔다.

“올라오셔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잘됐군요.”

“제가 모시겠…….”

“총관께서는 그만 다른 볼일을 보시지요. 이 층에는 우리끼리 올라가겠소이다.”

고진유는 미소에 내력을 실었다.

“아…… 네에에…… 알겠습니다…….”

* * *

두 사람이 이 층으로 올라오자 허리에 뒷짐을 진 사내가 맞이했다.

삼십 대 중반으로 청의금단을 두른 사내. 전형적인 귀공자의 모습으로 머리카락은 빛이 날 정도로 윤기가 흘렀다.

“혹시 그대들이 화산칠협, 맞소이까?”

“무림의 동도들이 그렇게 부르더군요.”

“호오, 최근 무림에서 유명한 화산칠협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은 몰랐소이다. 본인은 중원상국의 조현후라 하오.”

“도명은 호경이오.”

“호정이라 하오.”

‘내가 누군지 모르는군.’

조현후는 무뚝뚝하게 도명만을 밝히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살짝 기분이 상했다.

“흐흠, 이게 내가 밝히기에 그렇지만 중원상국의 삼공자가 본인이올시다.”

“아…… 몰랐소이다. 삼공자라면 중원상국주의 셋째 아들이라는 말이오?”

“하하하, 그렇소이다.”

“중원에서 보기 힘든 분을 앞에 두고 있었군요.”

조현후는 장두총의 말에 기분이 풀렸는지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윤 총관의 말로는 누굴 만나고자 한다는 것 같은데, 맞소이까?”

장두총은 시선을 돌렸다.

이 층 한편에서 홍기단의 기마 무사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형, 저기 오른쪽 끝에서 세 번째 놈입니다.]

장두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혹시 한 시진 전에 명류곡을 지나가지 않았소?”

“그렇습니다만…… 도사님들께서 어떻게 그걸 아셨소이까?”

“그 시간에 거기서 우리도 잠시 쉬고 있었지요.”

“허어, 이거 몰라뵈었던 모양이군요.”

“아마 홍기단의 기마 무사들과 마차가 못된 장난을 치느라 주변에 누가 있든 신경 쓰지 않고 아주 위험하게 길을 지나가서가 아닐지요?”

“…….”

조현후의 표정이 애매하게 변했다.

중원루에 도착하여 마차에 내렸을 때 기마 무사들이 저들끼리 낄낄거리던 것이 떠올랐다.

“삼대주, 오는 길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별거 아닙니다, 공자님. 계곡을 통과하던 도중 길가에 도사들이 있었는데, 장난을 좀 친 모양입니다.”

그때는 그냥 평범한 도사들이었나 생각하고 넘어갔다.

“지나가면서 먼지를 일부러 일으키더군요? 실실 웃으면서 말입니다.”

“이런, 제가 만일 알았다면 사과를 하기 위해 멈췄을 것입니다.”

“괜찮소이다. 그래서 지금 올라오지 않았소이까.”

“혹시 다른 분들은……?”

“나머지 일행은 아래에 있소이다.”

“다른 분들도 전부 위로 모시겠소이다. 제가 사과의 의미로 대접을 하도록 하지요.”

“큼! 우리도 여기에 머물 돈은 있소.”

“그런 뜻이 아니라…….”

“사과는 본인이 직접 하는 것이지요. 공자께서 신경 쓸 일이 아닙니다. 우린 그냥 볼일만 보고 내려가면 될 일이니.”

장두총은 말이 끝나자마자 의자에 거의 누워 있다시피 한 기마 무사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윽.

그때, 거구의 사내가 장두총 앞을 막아섰다.

붉은 갑의를 두른 칠척장신.

홍기단 삼대주 만호표였다.

“멈추시오.”

군의 무장처럼 목소리가 딱딱했다.

상대가 단번에 주눅 들 만큼 거대한 신체가 주는 압박감이 강렬했다.

“앞을 가로막는 이유가 뭐요?”

“…….”

만호표는 눈을 아래로 깔며 내려다볼 뿐 말이 없었다.

무언의 무시가 분명했다.

용병 무장 출신인 그는 평소에도 무림인들의 무공을 깎아내렸다.

화려한 움직임은 실전에서 필요가 없다, 오직 실전 속에서 이겨낸 무공만이 진정한 무공이라고 확신했다.

장두총은 뒤에 선 고진유를 힐끗 보았다.

“호정, 어떻게 해야 하지?”

“사형이 원하는 대로 하면 됩니다.”

“그래? 좋아.”

스윽.

장두총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우린 필요한 사과만 받고 가려던 참이었소.”

“…….”

“근데 당신의 행동을 보니 사과하려는 뜻이 없어 보이는군?”

“우린 사과할 일을 하지 않았소. 기마가 움직일 때는 먼지가 솟구치는 게 당연하오.”

“당신들이 그냥 지나갔으면 인정하는 바이지만, 저자는 일부러 창으로 먼지를 일으켰소. 우리를 비웃으면서.”

“내 수하가 했다는 증거가 있소이까? 수장인 난 수하를 보호할 의무가 있소. 그만 물러나시오.”

서너 걸음 떨어진 곳에 선 조현후는 이들을 말리지 않고 그냥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일어난 상황에 만족했다.

‘만호표는 한때 북방 최고의 무장이었어. 홍기단이 화산칠협을 잡는다면 중원이 본국의 무력은 돈으로 산 것이라며 더 이상 의심하지 않을 테지!’

그 순간, 그의 뒤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말렸어야 했소. 실수하는 거야.”

‘……!!!’

눈치채지 못한 사이 그의 뒤를 잡은 고진유를 본 조현후의 눈이 커졌다.

“우린 최대한 예의를 지켰는데 당신들이 거부한 거요.”

하지만, 만호표는 계속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마지막으로 장두총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사과는 힘없는 놈이 하는 짓이다.”

명백한 도발이 틀림없었다.

“그거 마음에 드는 말이군. 처음부터 사과할까 봐 걱정했는데 잘됐어.”

장두총은 손바닥을 들었다.

“겨우 그것으로 본인을 어찌할 수 있다고 보는가?”

“처음부터 끝까지 화산을 무시하는 작태 보소.”

쩌어어억!

매화관의 수련 제자가 되면 기본적으로 익힌다는 매화산수(梅花散手)의 수공.

“최고를 죽어라 따라가면 그와 비슷한 길 위에 나 또한 서게 되지 않겠느냐.”

얼마 전 우종성이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읊조렸던 말.

화산파 최고의 기재라 알려진 호진 우종성 또한 고진유를 완전히 인정하고 있었다.

‘좋아. 나도 무조건 저 녀석이 하는 것을 따라 할 테다.’

고진유가 화산복호권을 수련하는 모습.

오로지 검공에 치중하던 장두총이 매화산수에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였다.

주르르륵-

만호표가 서너 걸음 뒤로 밀려났다.

“별거 없군.”

두두둑! 두둑!

위협적으로 머리와 어깨를 돌린 만호표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아이고, 내 손이 저리네. 저놈, 외공을 익혔군.”

장두총은 손바닥을 흔들었다.

“천하제일이라는 화산파의 무공이 겨우 그 정도밖에 안 되는 모양이지?”

“자꾸 도발하는데 그러다 죽는 수가 있어. 적당히 하자고.”

예전의 장두총이었다면 단번에 노기를 토하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야월문과의 싸움을 겪은 뒤 여유로움이 생겼다.

후다다닥!!

커다란 소리에 놀란 총관 윤무가 다급하게 올라왔다.

“사, 삼공자님, 무슨 일이십니까?”

“아, 총관. 어서 오게.”

“여기에서 싸우시면……!”

“괜찮네. 조용히 보고 있어.”

“……네에.”

안절부절못하던 윤무는 그를 바라보던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치고 흠칫했다.

희미한 실소.

마치 저승사자처럼 온몸을 죄어오는 미소였다.

* * *

“호진 사형, 우리도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요?”

당우희는 궁금한 표정으로 이 층을 보았다.

“괜히 일만 만든다.”

“맞아. 잘못하다간 화산파가 뭉쳐 다니면서 약자를 괴롭히는 거로 보일 수도 있잖냐.”

묵경도 한마디 나섰다.

“묵 오라버니 말이 맞는 것 같아. 호정 사제가 옆에 있잖아. 둘이서 잘 해결할 거야.”

“에이, 그게 아니라 구경하고 싶어서요.”

“후후, 그것도 그러네.”

연자련은 사뿐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히 구경 갈 사람 있나요?”

벌떡!

“저도 보고 싶습니다!

인양이 손을 번쩍 들며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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