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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54화 (54/425)

54화

노지송을 따라 들어간 일행은 야월문의 중앙 동굴로 이동했다.

“다들 왔습니까?”

익숙한 목소리가 일행을 맞이했다.

묵경은 탁자에서 일어나는 고진유를 보며 씩 웃었다.

“끝난 모양이군.”

“그럭저럭 좋은 방향으로 해결을 봤지요.”

고진유는 일행에게 마원을 소개시켰다.

“이분께서 야월문주입니다. 인사들 하시죠.”

일행은 야월문주 마원과 서로 마주 보며 짧게 포권을 했다.

인사를 마친 일행은 탁자에 마주 앉았다.

“어떻게 됐지?”

장두총은 두 사람이 나눈 결과가 궁금했다.

“일단 나에 대한 청부 의뢰는 접겠다고 했습니다.”

“그거야 당연한 일이겠지.”

“그리고 야월문은 돌아오는 초하루부터 삼 년 동안 봉문에 들어설 것입니다.”

“봉문을?”

“네. 화산파의 이름으로요.”

“화산파라면……?”

장두총은 살짝 마음 한편에 기대감이 있었다.

“화산파 삼대제자들과의 결전에 패한 결과로 봉문을 결정하기로 중원 무림에 발표할 것입니다.”

씨익.

“잘 처리했네.”

장두총의 입꼬리가 살짝 꿈틀거렸다.

묵경이 궁금한 듯 슬쩍 물었다.

“근데 봉문을 왜 바로 하지 않지?”

“야월문에서 한 가지 처리할 일이 있다고 하네요.”

“그래? 뭐, 서로 이야기가 되었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렇죠.”

고진유는 미소를 띠었다.

* * *

일각 전.

고진유와 마원은 삼 년 동안의 봉문에 합의했다.

봉문이 끝나는 즉시 은원관계는 모두 청산된 것으로 결정 내렸다.

“화산도협, 내일부터 곧바로 봉문을 하겠소이다.”

“며칠 미루면 어떻겠소?”

“무슨 뜻이오?”

“내가 한 가지 의뢰할 게 있소이다.”

고진유의 말에 야월문주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오. 그에 합당한 금액을 줘야겠지.”

“본 문에 무엇을 의뢰하겠다는 말인지?”

“나에게 살인을 의뢰한 인물의 팔과 다리를 잘랐으면 하는데, 가능하겠소?”

“…….”

그는 정파에서도 수장격인 화산파 도사가 아니었나……?

“죽이지는 말고.”

“가능은 하지만…… 굳이 왜 의뢰를 하는 것이오? 그가 본 문에 의뢰를 시도했다는 사실을 알리면 화산파에서 처리할 수 있을 텐데.”

“살수문의 원칙은 죽어도 청부자에 대한 신원은 밝히지 않는 것이라고 하던데. 돈과 사람은 잃어도 재기할 수 있지만 신용을 잃으면 이 세계에서 살아남지 못하지 않소?”

“……알겠습니다. 신경을 써주셔서 고맙소이다.”

“의뢰금이오.”

고진유는 전표 한 장을 내밀었다.

‘이…… 금액은……!’

황금 오십 냥짜리 전표였다.

“이 정도면 되겠소?”

“당, 당연하지만…… 너무 많소이다.”

“앞으로 삼 년 동안 쉴 텐데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소이까. 그리고 가끔 내 부탁도 들어줄 겸. 미리 선금 형식으로 주는 것이니 받으시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야월문에서 봉문 각서까지 받은 이상 할 일은 더 없었다.

“그만 내려가죠.”

“식사라도 하시고 가시지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죽을 둥 살 둥 싸웠는데 입에 들어가겠소이까. 문주의 성의는 감사히 받은 것으로 하겠소이다.”

“그렇다면 태행산 아래까지 모시겠소이다.”

“됐소이다. 남들이 보면 정말 친한 줄 오해하겠소.”

고진유는 그를 말리며 일어났다.

묵경은 순간 두 사람의 사이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야월문의 정문으로 나가는 동안에도 야월문주 마원은 고진유를 마치 윗사람 모시는 듯 행동했다.

‘이거 뭔가 있는 것 같은데?’

* * *

“도진 사형. 계십니까?”

“누군가?”

“도홍입니다.”

“들어오게.”

중원 무림의 소식들과 외부 활동을 담당하는 청매단의 단주, 도홍 도인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네가 집법전에 무슨 일로 들어왔는가?”

“청매단에 올라온 소식이 있습니다.”

양군경은 생각에 잠겼다.

“외부의 일로 나에게 찾아온 것을 보면 호정에 관한 일인 모양이군.”

“네, 맞습니다.”

“무슨 일인가. 말해보게.”

“무림맹으로 가던 도중에 야월문의 습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양군경의 이마에 주름이 깊이 생겼다.

“그놈들을 가만히 두면 안 되겠군. 그렇지 않아도 고민을 하던 중이었거늘.”

“사형, 그러지 않아도 됩니다.”

도홍 도인의 입가에 미소가 나타났다. 그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화산파의 삼대제자들이 야월문과 싸워 봉문을 시켰다고 했습니다.”

“……방금 뭐라고 했는가?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니겠지?”

“사실입니다. 지금 섬서성은 물론 조만간에 무림으로 소문이 퍼져 나갈 것입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보게.”

도홍 도인은 화산을 내려간 뒷일부터 야월문과 싸웠던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아하…… 그렇구만. 하하하하!”

양군경은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대단한 사건인가.

일곱 명의 화산파 제자들.

그것도 삼대제자들로 야월문의 살수들과 싸워 이겼다고 했다.

“이 기쁜 소식을 장문인도 알고 있나?”

“제일 먼저 사형께 알려 드리는 것입니다.”

“함께 들어가세나.”

“저어…… 그리고 하나 더 보고할 게 있습니다.”

양군경은 멈칫거리며 도홍 도인을 보았다.

“유성순가에서 일이 생겼습니다.”

“또 거부하는 모양이지?”

“그게 아니라 가주가 사지가 잘린 채로 발견이 되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오전 내내 일어나지 않아서 그의 방에 들어가 보니 사지가 잘린 채 기절한 상태였다고 했습니다.”

“누구의 짓이지?”

“그건 밝혀지지 않았지만…… 살수들이 주로 사용하는 혼미독이 그의 침상에 뿌려져 있었다고 했습니다.”

“허허…… 순 가주가 살수에게 당할 정도로 원한을 많이 샀던 모양이군.”

“예에. 어떻게…… 청매단에서 조사를 해야 할런지요?”

“그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관여할 필요가 없네. 그냥 넘어가게나.”

“알겠습니다. 본 문에서는 상관없는 일로 처리하겠습니다.”

도홍 도인도 대충 알 것 같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자가 나왔어.”

섬서에서 올라온 화산도협의 소식.

그는 이 년 전 화산파에 들어갔다.

지옥혈림에서 검절 오청석을 죽였다는 사실은 이미 그들에게 알려졌을 것이다.

화산파 최고의 인물이었던 제자가 죽임을 당했으니, 어떠한 방법으로도 움직일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이 년 동안 화산파는 조용했다.

그들이 가만히 있는다면 딱히 자극을 줄 필요는 없었다.

그러던 도중 추혼대에서 소식이 들어왔다.

“야월문을 봉문시켰어.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북소연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섬서성 제일의 살수문으로 알려진 야월문.

그들이 하루아침에 봉문을 당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믿을 수 없어…… 대체 어느 정도로 무공이 발전한 거지?’

이 년 전에도 흑명군을 이길 실력이었지만, 한 문파를 봉문시킬 정도는 아니었다.

“추관동, 그분께 연락해야겠어.”

그는 고진유와 싸워 패한 뒤 스스로 폐관수련에 들어섰다.

그의 관심은 오직 고진유에 대한 복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강해졌는지는 만나보면 알게 되겠지.’

* * *

루루루루-

장두총은 입에서 저절로 노랫소리가 나왔다.

야월문에서 내려온 이후 서너 마을을 지났다.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흘깃흘깃 쳐다보는 시선들.

장두총은 소곤거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저기 화산파 도사들이잖아. 혹시 저들이……?”

“앗, 맞는 것 같아. 화산칠협과 풍류미군이 함께 동행한다고 했잖아.”

“정말이네. 남자인 내가 봐도 정말 잘생겼구나. 여인들이 보면 환장을 하겠군.”

묵경의 얼굴은 복면으로 둘둘 싸지 않는 이상 가릴 수가 없었다.

어디 가나 단번에 눈에 띄었다.

“세상에, 묵 오라버니는 나쁜 짓도 못 하겠어요.”

“우희야. 이래서 굉장히 피곤하단다. 어딜 가나 전부 알아본단 말이지.”

“그러게요. 이 정도면 진짜 피곤하시겠다.”

“어쩌겠느냐. 운명이려니 생각하고 사는 게지.”

묵경의 잘난 체하는 말투에 익숙해진 일행은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걸어갔다.

평소에 투덜대던 장두총조차 별말 하지 않았다.

그의 관심사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야월문과 싸워 이긴 일곱 명의 화산파 삼대제자! 됐어……! 드디어 중원에 내 이름이 알려졌어!’

그사이, 일행은 어느덧 하남의 땅 삼문협으로 넘어섰다.

세 개의 협곡이란 뜻으로 붙은 지명답게 계곡 사이로 길이 이어졌다.

다행히 겨울은 지난 듯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길의 좌우는 암벽들로 이어졌지만, 만물은 자연의 섭리를 따르는 듯 군데군데 꽃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일행은 길가에 잠시 앉았다.

“날씨 조오오오타.”

“그러게요. 이젠 안 추워요.”

내력이 있어 추위에 강한 무림인도 겨울의 한풍을 싫어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장두총은 봇짐 속에서 육포를 꺼내었다.

촉촉하게 반쯤 말린 육포를 들었다.

“먹을 사람?”

“저요!”

당우희가 번쩍 손을 들었다. 그 뒤로 고진유까지 손을 들었다.

휘이익!

“으악! 깜짝이야!”

장두총은 불쑥 앞에 나타난 인양을 보면서 화들짝 놀랬다.

“야. 간 떨어질 뻔했다. 평소에는 좀 걸어 다녀라!”

“넵, 두총 형님. 죄송합니다.”

“자, 넌 두 개 받든지.”

“고맙습니다.”

장두총은 첫날부터 자신을 형님이라 부르는 인양이 밉지 않았다.

화산파에서 사제라고 하는 녀석들과는 늘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다.

자존감이 떨어지면서 그들에게 괜히 무시받는다는 생각에 강압적으로 사제들을 대했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사이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질겅질겅.

한동안 그들 사이에 육포를 씹는 소리만 들렸다.

우우우우웅-

그때, 저 멀리서 계곡을 타고 울림이 전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일행은 소리가 울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두두두두두두-

이번에는 땅이 흔들거렸다.

“말발굽 소리 같은데.”

고진유의 말처럼 계곡의 끝에서 달려오는 기마의 무리가 보였다.

붉은색 가죽으로 말의 얼굴을 덮은 기마 무리에서 흉포한 기세가 뻗어 나왔다.

“중원상국의 홍기단(紅騎團)이네.”

묵경이 단번에 알았다.

“중원이대상국의 위용은 무림문파에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고 하더니…… 사실이었군요.”

우종성도 홍기단에 대해 들었지만, 실제 본 적은 없었다.

홍기단의 기마 무리들은 뒤에 따르는 백색 마차를 호위하면서 달리고 있었다.

묵경의 설명은 이어졌다.

“중원상국은 하남의 낙양에 있어. 상국주는 중원에서 직접 본 인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신비에 싸여 있다고 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지.”

“그게 뭡니까?”

일행이 관심을 보이며 묵경을 바라봤다.

“중원 최고의 여인들, 중원십봉(中原十鳳)과 오미화(五美花)! 중원십봉은 미모도 뛰어나긴 하지만, 주로 무공이 뛰어난 여인들을 가리키는 말이거든. 반면에 오미화의 다섯 여인은 정말로 예쁜 여인들을 가리키는 별호지.”

사내들이 일제히 묵경의 말에 집중했다.

“중원상국주의 여식이 바로 청미화인 조여하야. 내 소원 중 하나가 바로 오미화와 함께 차를 마시는 거지. 하하하!”

“아하…….”

“그거 좋은 소원이군요…….”

연자련과 당우희는 갑자기 같은 마음이 된 것 같은 사내들을 보며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모두 입 좀 다물죠. 침이 줄줄 흐르네요.”

두두두두두-

이윽고 홍기단의 기마 무리들과 백색 마차가 길옆으로 물러선 일행을 지나쳤다.

그때, 기마 무사 한 명이 실소를 짓더니, 창을 바닥에 대며 일부러 먼지를 더욱더 일으켰다.

화아아아악!!

일행 앞으로 먼지가 솟구쳤다.

콜록, 콜록.

“에이, 퉷퉷!”

일행은 숨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장두총은 벌떡 일어났다.

“야 이 망할 새끼들아! 사람이 있으면 조금 천천히 달릴 것이지, 어디서 먼지를 더 일으키고 있어?”

“호경 사형, 그만 멈추세요.”

“야, 저것들을 그냥 두자고?”

“일단 화 푸세요. 이젠 사형 정도의 위명이면 일부러 먼저 나설 필요가 없어요.”

“뭐?”

“화산칠협의 무게를 스스로 낮출 필요는 없단 뜻입니다. 본인의 이름에 걸맞게, 무게의 격에 맞게 행동하는 겁니다.”

기마 무리를 향해 당장에라도 뛰어 들려던 장두총의 몸이 돌아섰다.

‘그렇지. 호정의 말이 맞아. 예전의 내가 아니지. 격에 맞게 움직이는 거야.’

“한 번 움직일 때 확실히 보여주면 됩니다. 그자의 얼굴을 정확히 봤으니 나중에 만나면 알려 드릴게요.”

“이번만이다. 꼭 이야기해.”

* * *

계곡을 내려온 일행은 가장 인근 마을에 들어섰다.

중원 삼성에 맞닿은 요지답게 무림인들보다는 장사꾼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놈들…….’

장사꾼들이 많으면 덩달아 그들의 돈을 공짜로 노리는 손들도 많았다.

인양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사람들 사이에서 그의 눈에 띄는 동작들.

고개를 들어 고진유와 시선을 마주쳤다.

‘진유 형이 저런 식으로 나를 봤구나.’

자신은 정말로 운이 좋았다.

새로운 인생을 준 고진유를 목숨 바쳐 모실 것이다.

“여긴 정말 사람이 많네요.”

일행은 마음에 드는 객잔을 찾을 수 없었다.

장사꾼들이 많은 탓에 객잔과 기루들도 많았지만, 대부분 손님으로 거의 차 있었다.

“어떻게 할까?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게 좋겠지?”

“이왕이면 비싸더라도 그게 좋겠는데요. 마을 안으로 들어가 보죠.”

고진유의 말처럼 조용한 객잔을 찾기 위해 안으로 들어섰다.

복잡한 마을 중앙에서 약간 벗어났을 때였다.

“호정, 저기.”

장두총이 얼른 한 곳을 가리켰다.

지금까지 본 객잔의 건물과 달리 화려하게 지은 건물이 나타났다.

“오호…….”

고진유도 바로 미소가 나타났다.

장두총이 가리킨 건 일반 객잔이 아니었다.

최고급의 시설로 완비된 중원루.

중원상국에서 직접 관리하는 상급의 객루였다.

일행의 시선은 중원루의 옆에 마련된 마방이었다.

그곳에는 백색의 마차와 홍기단의 기마들이 보였다.

“흐, 그놈들이군.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아주 잘됐어.”

“우와, 저 입산하고 호경 사형이 이렇게 적극적인 경우는 처음 봐요.”

“호청 사매. 저놈들은 우릴 완전히 무시했잖아. 안 그래?”

“그렇긴 하죠. 저도 이번에는 호경 사형 편이에요.”

장두총은 마지막으로 우종성을 보았다.

“상대는 중원상국 소속의 인물들이야. 감당할 수 있겠어?”

“사형, 나도 화산파의 제자입니다.”

“그럼 됐어. 네가 알아서 해.”

우종성도 더는 별말 하지 않았다.

스윽.

고진유가 슬쩍 다가왔다.

“사형, 뒤는 우리가 맡을게요. 쫄지 마세요.”

“크음, 흠? 내가 저놈들에게 쫄 것 같아 보이냐?”

“당연히 아니죠.”

장두총은 목에 빳빳하게 힘을 주며 객잔으로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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