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화
태행산 산문 아래 인접한 마을에 일곱 명의 일행이 들어섰다.
묵경까지 포함한 여섯 명의 화산파 삼대제자들은 한눈에 띄기 위해 도의로 다시 바꾸어 입었다.
“묵 형, 이곳에 야월문이 있다는 말인가?”
“하오문의 정보에 의하면 태행산 어디쯤 그들이 숨어 있다고 하더군.”
산양이라고만 알 뿐 정확히 야월문의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다.
야월문을 치기 위해서는 그들의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
하지만 세상의 눈을 피할 수 없는 법.
중원이대정보문파.
일방의 개방과 하오문의 정보 능력은 뛰어났다.
그리고 묵경의 인맥도 대단했다.
“허어, 대체 누구와 친분이 있기에 이런 정보까지 알려준단 말이오?”
“호경 도사, 많이 알려고 하면 다칩니다. 후후후.”
장두총은 인상을 썼다.
그 또한 못생긴 얼굴은 아니지만 묵경에 비하면 너무나 평범했다.
잘생긴 얼굴에 싱글거리는 표정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여튼 이 녀석도 정이 안 가는 놈이야.’
사방에 잘난 놈 천지다.
“혹시 속으로 나를 욕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내, 내가 왜 그럽니까?”
‘귀신 같은 놈.’
장두총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계속 말하다가는 열불이 터질지도 모른다.
펄러러러럭!
반쯤 찢어진 붉은색 깃발이 바람 부는 방향을 따라 세차게 흔들렸다.
“저기 태행객잔이 있군. 그놈들이 운영하는 곳이라니 들어가서 한잔들 하자구.”
여섯 명의 화산파 삼대제자들은 묵경을 따라 객잔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고개를 숙인 점소이의 눈빛이 매섭게 일행을 살폈다.
‘도사들…… 매화…….’
한눈에 봐도 매화 도의가 틀림없었다.
“이보게, 좋은 자리 좀 부탁하게.”
“네에…… 안으로 들어오시지요.”
점소이는 앞장을 선 채로 객잔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 점소이가 망할 놈이네.’
쉽게 도망칠 수 없고 협공을 받기도 가장 적합한 자리.
일행은 두 개의 탁자에 나누어 앉았다.
“저어 필요하신 게 계십니까?”
“간단히 요기할 게 있으면 가져오게.”
“알겠습니다.”
점소이가 뒤를 돌아서며 주방으로 갈 때였다.
뒤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묵경 오라버니, 태행산에 정말로 야월문이 숨어 있을까요?”
“정확한 정보통에 의하면 확실해. 야월문의 살수 놈들이 태행산에 짱박혀 있다고 들었어.”
“묵 형의 말이 확실하다면 이번 기회에 화산파의 제자를 건드린 대가가 어떠한지 보여줘야겠군.”
‘큰일 났다. 화산파 도사 놈들이 어떻게 알았지? 빨리 연락을…… 도사 놈들이 본 문을 치려고 한다.’
점소이는 얼굴이 굳어졌다.
주방에 들어선 그가 바로 뒷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전서구가 객잔 위로 날아올랐다.
* * *
피식.
묵경은 주방으로 들어간 점소이를 보면서 실소를 지었다.
살수 또한 무림인이었다.
‘양손에 가득한 예리한 상처들. 아무리 봐도 주방에서 생긴 상처들은 아니지.’
잠시 후, 점소이가 소면을 들고 나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수고했네.”
“…….”
그런데, 소면을 내려놓은 점소이가 머뭇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뭔가? 필요한 게 있으면 부를 테니 그만 가보게.”
묵경은 옆에 선 점소이를 향해 손을 저었다.
“아, 네. 혹시나 양념이 잘 되었는지…….”
“당연히 잘 되었겠지. 아, 한번 먹어볼 텐가?”
묵경은 소면을 들어 점소이에게 내밀었다.
“아닙니다. 손님 음식을 소인이 어떻게 먹습니까?”
“그런가? 난 또 먹고 싶어서 계속 쳐다보는 줄 알았지.”
스윽.
묵경은 젓가락으로 소면을 떴다.
그리고 입에 넣으려던 순간, 잠시 멈췄다.
“아니면 이걸 먹은 우리가 어떻게 되는지 보고 싶은 걸까나?”
점소이의 눈동자가 좌우로 빠르게 움직였다.
‘들켰다.’
“이놈들을 죽여라!!”
점소이가 소리치는 동시에 숨을 죽인 채 앉아 있던 사내들이 검을 꺼내 들며 달려들었다.
“역시 몽땅 같은 패거리들이군. 모두 조심해!”
타앗!!
우종성이 발로 찬 탁자가 살수들을 향해 날아갔다.
그 뒤를 이어 화무검이 화려하게 매화를 피우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오행매화검의 운용이 간결하게 변했지만 위력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그 녀석과 비무를 한 것밖에 없는데 말이지!’
고수의 검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늘어난다고 했다.
고진유와 비무를 하면서 그도 모르는 사이 불필요했던 동작을 버린 것이다.
야월문의 살수들은 정면으로 붙을 시에는 매화검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명의 매화검수, 호중 혁자영의 무공은 사부인 매선향의 진전을 이어받았다.
혁자영의 추화검을 통해 매화절검이 펼쳐졌다.
“아아악!”
살수들의 비명이 객잔에서 울리면서 하나둘씩 객잔 바닥에 쓰러졌다.
‘사, 상대가 되지 않아.’
잡힐 수는 없었다.
퍼어억!
입안에 끼워둔 독을 깨물자,
“크으으으…….”
입에 시커먼 거품을 내며 점소이의 목이 타들어갔다.
점점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면서 목숨이 끊어졌다.
“이것 봐라? 자결했군.”
묵경은 주방을 보았다.
“누가 주방에 가서 한번 살펴봐 줘.”
“내가 갔다 오지.”
장두총은 호민과 함께 주방으로 신형을 날렸다.
주방 안에서 우당탕거리는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곧바로 장두총은 축 늘어진 사내를 끌고 의기양양하게 나왔다.
“이놈도 한패인 것 같아. 그리고 주방을 살펴보니 전서구를 기르는 우리가 있더군.”
“장 형, 수고했어. 안 그래 보이는데 세심하단 말이지.”
“후, 훗, 뭐…… 이 정도야.”
장두총은 슬쩍 목에 힘이 들어갔다.
객잔에는 더 이상 야월문의 살수들이 없었다.
“여긴 수상한 인물이 오면 사전에 제거하기 위해 야월문이 운영하는 곳이었군.”
“지금쯤이면 연락이 갔겠지?”
야월문을 자극한 일은 성공적이었다.
그들이 어떻게 나올지는 보지 않아도 그려졌다.
“천천히 태행산을 올라가 볼까?”
“그렇게 합시다.”
묵경은 앞장을 선 채로 태행산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 * *
스르르-
바람을 스치며 지나가는 두 명의 인영.
고진유와 인양은 야월문을 방심시키기 위해 태행산의 반대편으로 넘어왔다.
얼마나 빨리 찾아내서 야월문주를 잡느냐에 따라 일행의 위험을 줄일 수 있었다.
‘자, 어디에 있을까?’
태행산이라는 위치만 알 뿐 정확한 장소는 하오문에서도 알아내지 못했다.
고진유와 인양은 흩어져서 태행산을 살폈다.
인양은 마치 날아갈 듯 움직이면서 주변 일대를 샅샅이 살폈다.
그리고 귀혼곡 아래에서 동굴 입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찾았다.”
인양은 곧바로 고진유를 불렀다.
“이제 여기부터서는 내가 할 일이야. 넌 내려가서 야월문의 위치를 알려주도록 해.”
“진유 형, 정말 혼자서 괜찮겠습니까?”
“저놈들 모두와 붙을 생각은 없어. 야월문주만 잡으면 되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하십시오.”
하지만 인양은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에게 고진유의 존재는 이미 천하제일인이니까.
휘익!
인양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일단 기회를 봐야겠는데. 다들 잘 움직였을까?’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좁은 계곡 사이에 천연 동굴을 이용하여 만든 야월문.
꾸우우웅-
석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안에서 이백여 명의 살수들이 빠르게 빠져나왔다.
‘지금이군.’
스르륵-
고진유의 신형이 야월문 안으로 빨려 들어가듯 사라졌다.
석문을 지키던 위사가 고개를 좌우로 움직였다.
“중상이, 방금 이상한 거 느끼지 않았나?”
“쯔, 애들도 아니고 긴장이나 하고 있군. 그놈들이 화산파 도사라고 해도 열 명도 안 된다고 하잖아. 지금 나간 본 문의 인원만 해도 이백 명이야.”
“아, 그건 나도 아는데…… 화산도협에게 십이지인 세 명도 이기지 못했잖아. 안 그래?”
“그, 그거야, 그분들이 방심하다가 당했다고 하시지 않았나. 아. 됐네. 그만 물어보고 우리는 우리 일만 하면 되지.”
중상은 귀찮은지 고개를 돌리며 석문을 닫았다.
야월문 내부는 작은 동굴들을 이어놓은 구조로 되어 있었다.
문이 닫혀 있는 이상 외부인이 몰래 침입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동굴 내부에서 고진유의 기척을 알아차리는 야월문의 살수들은 한 명도 없었다.
단전의 내력을 완벽하게 감출 수 있는 능력은 이미 옛날에 파해도에서 익힌 뒤였다.
고진유는 차례대로 동굴을 살피며 안으로 들어섰다.
‘흐음…… 저곳인가?’
일반 동굴의 입구보다 두 배 정도 컸다.
입구에 호위들이 선 동굴 안을 주시했다.
‘안으로 들어간 뒤 최대한 빨리 야월문주를 잡는다.’
* * *
티익!
문주동을 지키던 호위는 바닥에 떨어지는 물건 소리에 고개를 숙였다.
‘이건…….’
황금빛의 금화 한 냥.
함께 선 호위 웅도 역시 떨어진 금화에 시선을 빼앗겼다.
“……!”
“……!”
순간 누가 먼저 손을 뻗을지 눈치를 보았다.
팟!!
“어딜!!”
그리고 동시에 허리를 숙이며 금화를 줍기 위해 손을 뻗었다.
손 한 치 차이로 웅도가 먼저 금화를 낚아챘다.
“으라차!!”
“흐으음……!”
진한은 아쉬움에 섞인 탐욕의 눈빛으로 금화를 바라봤다.
“웅도. 우리가 동시에 봤으니 같이 나누는 게…….”
“그게 뭔 소리야? 먼저 잡은 놈이 임자지. 안 그런가?”
“이봐. 그건 자네 돈도 아니잖아? 문주님께 보고를 해야겠군. 혹시 그분께서 떨어뜨린 게 아닐까?”
“치사한 새끼…….”
그때 등 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보기엔 둘 다 치사한데.”
“누!! 구…….”
핏핏.
웅도와 진한은 돌아서기도 전에 몸이 굳어졌다.
“가만히 있으면 죽지는 않을 거요.”
고진유는 두 사람을 문주동 앞에 놓은 뒤 안으로 들어섰다.
삼 장 정도 동굴을 걸어 들어갔다.
‘여기에도 숨어 있을 줄은.’
야월문주의 거처로 들어서기 마지막 동굴 끝에 숨어 있는 사람의 기가 느껴졌다.
스윽.
신살인(申殺人) 노지송인 홀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까지 만났던 살수들과 다르게 마치 군자처럼 보일 만큼 고고한 느낌을 주었다.
“매화도의를 걸친 것으로 봐서는 화산파의 도사시겠군.”
“당신도 십이지살수 중 일인이오?”
“신살인(申殺人)이라 한다. 그대의 이름은?”
“호정이라 하오.”
“아…… 유성순가에서 죽여달라고 의뢰했던 당사자신가. 화산도협이라 하더군.”
“맞소이다.”
“혼자서 이곳에 들어오다니 간이 부은 것인가?”
“간이 부은 건 아니고 옛날부터 겁은 없었소.”
“클클, 만용의 대가는 죽음이라는 것을 젊어서 모르는가. 목숨을 아끼는 게 좋을 것이다.”
신살인의 신형에서 흑색의 기가 흘러나왔다.
“젊은 친구의 무공이 얼마나 강할지 기대가 되는군.”
그의 주위에 흐르던 흑색 기가 살아 있는 듯 동굴을 가득 채우며 고진유를 향했다.
‘최대한 빨리 이자를 제압해야 한다.’
길게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
흑색 기를 막아내기 위해 매진한풍을 펼쳤다.
파아아앗!!
매화의 차가운 검풍이 휘몰이치자 흑색 기가 뒤로 밀려나며 점점 옅어졌다.
노지송의 검미에 주름이 잡혔다.
‘엄청난 내력이군. 역시 대문파의 저력인가?’
한 수만으로 상대의 내력이 어떠한지 파악했다.
‘내력으로 싸우면 불리하다. 실전의 경험으로 싸워야 하겠군.’
노지송은 살인검을 겨누며 강한 살기를 뿜어냈다.
‘정파 제자라면 살기에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을 것이다.’
그가 앞으로 달려 나가려고 할 때였다.
스팟!!
고진유의 뒤로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키키키킥!! 네가 한눈을 팔 때 지금을 기다렸다. 야월문에 홀로 쳐들어오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오살인(午殺人)이 양손에 든 쌍부월을 휘둘렀다.
고진유의 목과 허리를 향해 날카로운 예기가 지나갔다.
‘잡았다!!’
이보다 더 완벽한 기습은 없었다.
하지만,
휘이익-!!
눈앞에서 바람 소리만 났을 뿐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보이던 고진유의 신형이 사라졌다.
“당신의 존재는 안으로 들어올 때부터 알고 있었소.”
고진유의 신형이 오히려 그의 뒤에서 나타나는 동시에 사의검을 찔렀다.
‘피할 수 없다……!!’
오살인은 다급히 호신강기를 펼쳤다.
단 한 번에 하단전과 중단전의 내력을 십 성으로 끌어 올린 매화비광(梅花飛光)의 초식.
지이이잉-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 자줏빛의 검강이 오살인의 푸른 호신강기를 뚫었다.
“커어억!!”
오살인의 가슴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털썩.
믿기지 않은 표정으로 입을 벌린 그가 앞으로 고꾸라지며 단번에 숨이 끊어졌다.
십이지살수라고 하기엔 너무나 허무한 죽음이었다.
‘상대를 죽이는 데 거리낌이 없다? 보통 정파의 제자가 아니군.’
살인에 대해 거부감을 보이지 않고, 무공도 강했지만 검에 인정을 두지 않았다.
두려움이 생겼다.
그때, 노지송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성동격서!”
노지송의 표정이 굳어졌다.
현재 야월문에 있는 살수들 대부분은 태행산 아래로 내려갔다.
홀로 적진에 들어온 이유를 알 듯했다.
‘문주님을 확실히 잡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어.’
쏴아아아아--
고진유는 머뭇거리지 않았다.
사의검을 앞으로 겨눈 뒤 십 성의 내력으로 매화광풍(梅花狂風)을 펼쳤다.
“우우우욱.”
노지송은 매화를 잘라내기 위해 흑살검을 내리쳤다.
하지만 내력의 차이가 승패를 가렸다.
팟팟팟팟!
수십 개의 매화가 흑살검을 지나치며 노지송의 몸을 지나쳐 갔다.
“커어어억!!”
그는 비명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다행히 급소를 비켜 나갔다.
다가오는 고진유를 보며 일어나고자 했지만 다리가 떨렸다.
‘어떻게…… 나의 살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지?’
고진유의 사의검에 비친 검기에서 살기가 느껴졌다.
그의 눈동자는 당혹스러웠다.
‘이건 있을 수 없어. 정파 제자가 이런 정도의 살기를 뿌리다니.’
지금까지 알던 지식이 헛된 듯 보였다.
“쿨럭, 화산도협, 야월문의 형제들을 모두 죽일 생각이오?”
“가만히 있으면 내가 죽는데? 당신 같으면 목을 가만히 내밀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
“…….”
고진유의 말이 맞았다.
“청부…… 를 철회한다면……?”
“그렇다면 생각할 문제이긴 하지만, 그 이야기는 일단 문주를 만나야 할 수 있겠지.”
“내가 문주님을…… 만나게 해주겠소. 그렇다면 어떻겠소이까?”
“당신이 중재를 선다면 일단 가봅시다.”
노지송은 힘들게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