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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51화 (51/425)

51화

정적이 흐르는 깊은 밤.

타닥타닥.

모닥불 타는 소리만이 들렸다.

일행은 모닥불 주위로 모포를 덮은 채 깊은 잠에 빠졌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들이군.’

고진유는 눈을 떴다.

일행을 향해 가까이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졌다.

[다들 일어나세요. 손님들이 오는 것 같습니다.]

고진유의 전음에 하나둘씩 눈을 떴다.

일행은 아직 어떠한 기척도 느끼지 못했다.

[으으, 누구야?]

[이 시간에 누가 오겠습니까?]

[하, 네 말대로 정말 왔군.]

예상대로 야월문의 살수들이 나타났다.

장두총은 옆에 놓았던 검을 잡았다.

[저들은 아직 모르고 있으니 호진 사형과 호중 사형이 뒤로 물러났다가 모습을 드러내면 후방에서 공격해 주세요.]

[알겠다.]

우종성과 혁자영이 빠르게 사라졌다.

[우린 어떻게 움직일까?]

[호화 사저. 최대한 가까이 유인하도록 자는 척해 주세요. 제가 신호를 하면 그때 공격하면 됩니다.]

[알겠어.]

‘대체 어디에서 오고 있다는 거야?’

장두총은 누워 자는 척하면서 계속 살수들의 기척을 살폈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괴물 같은 놈.’

갑자기 살수들이 불쌍해졌다.

스으으으.

내력을 죽인 채 다가오는 살수들.

진살인(辰殺人) 구송을 비롯한 진살조의 살수들은 야혈문 최고의 야외 암살조였다.

‘이놈들…… 우리가 온 줄도 모르고 자고 있군.’

최대한 가까이 접근한 뒤 철단궁으로 쏠 계획이었다.

철단궁의 최대 살상력을 내기 위한 십 장의 간격이 필요했다.

‘조금만…… 더…….’

그는 손을 든 채로 움직이며, 진살조의 수하들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들은 조용히 등에서 철단궁을 꺼냈다.

구송도 허리에서 꺼낸 화살을 꺼내어 장전했다.

그때,

쉬이이이익-

어둠 속에서 무언가가 날아오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무슨 소리지?’

흰색 빛.

쐐애애액!!!

구송의 눈앞으로 날아온 빛의 정체는 검강이었다.

“피하랏!!”

그는 옆으로 몸을 굴렸다.

콰아앙!!!

조용했던 깊은 밤이 폭음에 깨어났다.

‘들켰다.’

구송은 다급히 수하들에게 소리쳤다.

“쏴라!!”

저들의 수는 여덟.

진살조의 수하들은 백 명이었다.

피이이이잉-!

피이이이잉--!!

철단궁에서 화살이 쏟아졌다.

‘화산파 도사 놈이 강해도 이 정도 인원으로 밀어붙이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다.’

진살조의 살수들은 계속해서 철단궁을 무작정 쏘기 시작했다.

반각 동안 쏟아진 화살만 해도 수천발이 넘을 정도였다.

“큭, 모두 고슴도치가 돼서 죽어 있겠지.”

화살이 모두 떨어질 때까지 철단궁을 쐈다.

“앞을 살펴라.”

사방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수하들은 검을 뽑아 든 채 화산파 일행이 있는 장소로 움직였다.

하지만,

‘이놈들이 어디에?’

시신은 한 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때, 후방에서 수하들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으악!!”

“뒤에 적이 나타났다!!

구송은 뒤를 돌아섰다.

‘두 명?’

단 두 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진살조 살수들은 당황하기 시작했다.

“뭣들 하느냐? 적은 두 명밖에 없다. 정신 차려라!!”

구송이 소리를 질렀지만 매화검수인 우종성과 혁자영의 무공을 살수들은 받아내지 못했다.

콰아아앙!!

“아아악.”

이번에는 전방에서 굉음과 비명이 들렸다.

‘망할, 우리가 오는 것을 알고 있었어.’

제대로 된 기습을 해보지도 못한 채 오히려 반대로 기습을 당했다.

“뭣들 하느냐? 모두 중앙으로 모여라!”

적의 수는 여덟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대열을 정비해서 싸운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구송의 명에 살수들이 중심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파아아앗!!

눈앞에서 매화 잎이 사방으로 휘날렸다. 그와 동시에 수하들의 비명 또한 울렸다.

장두총은 검을 휘두르면서 고진유의 뒤에 바짝 붙어 사의검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옛말에 절대고수의 비무를 보는 것만으로도 깨달음을 얻는다는 말이 있었다.

‘저런 식으로도 손이 움직이는구나.’

이십사수 매화검법을 그 또한 익혔다.

매화토염의 초식을 펼치는 모습을 바로 뒤에서 보며 검의 운용을 깨달았다.

화산파의 제자로 받아들일 정도로 그 또한 기재였다.

화산파에 비슷한 수준의 인물들이 많기에 단순하게 보였을 뿐.

파아앗!!

장두총의 검이 움직였다.

쾌의 요결이 한층 더 빠르게 뻗어 나갔다.

살수들이 낙엽처럼 바닥 위로 쓰러졌다.

“호경 사형, 멋진 일검입니다.”

“뭐야? 한눈팔지 말고 앞이나 똑바로 봐!”

“바짝 붙어서 따라오세요. 우린 적진 가운데로 곧장 들어가야 하니까.”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점점 빨라졌다.

“야!! 잠깐만, 천천히 가라고!!”

장두총은 내력을 최대한 끌어 올리며 있는 힘껏 뒤를 따랐다.

휘리리릭!

묵경의 화려한 몸놀림이 살수들 사리에서 이어졌다.

연화무환보의 신법에 연화혼미검법을 펼치자 살수들은 바닥으로 뒹굴었다.

묵경의 연화혼미검법은 여인들이 익히는 검법과는 달랐다.

이 년 전, 고진유가 인양을 가르치는 모습에 깨달은 것이 있었다.

“신체가 다른데 같은 방식으로 무공을 익힐 필요가 있습니까? 자신의 몸에 맞게 익히면 되는 것입니다.”

연화혼미검법은 여인의 신체에 익히기에 적합했다.

묵경은 연화혼미검법에 서문세가의 강(强)과 패(覇)의 검리를 섞였다.

파아아앗!!

연검에서 강한 검기가 뻗어 나가며 살수들을 밀어냈다.

진살인 구송의 전신에 땀이 흘러내렸다.

쉬이이이이-

전방에서 다가오는 강한 기에 절로 고개가 돌아갔다.

“으아아아악!!”

“커어억.”

살수들은 비명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고진유는 살수들의 수장을 찾으면서, 오로지 앞을 보며 사의검을 휘둘렀다.

‘찾았다.’

타아아앗!!

호탄신을 펼치자 고진유의 신형은 화살처럼 단번에 튕겨 날았다.

‘허억.’

구송은 말문이 막혔다.

“당신이 여기 수장이군.”

사의검이 번쩍이며 구송의 목을 향했다.

까아아앙!!

구송은 겨우 검을 올려 사의검을 막아냈지만, 힘에 의해 옆으로 휘청거리며 밀려났다.

“분명 야월문에 기회를 줬소.”

“…….”

“한 번은 넘어갔지만 두 번은 아닌 것 같소.”

“어…… 떻게 하겠다는 것이지?”

“야월문에 가서 끝장을 볼 생각이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상대하기 쉽다.

하지만, 반대로 상식 밖의 사고를 지닌 인물은 어떻게 튈지 모른다.

‘이…… 녀석은 정상이 아니다. 정말로 본 문에 쳐들어갈 놈이야…….’

“화, 화산도협,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오.”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는 없소. 우리가 서로 타협할 시간은 지나갔소이다.”

사의검을 치켜든 고진유의 주위로 매화 향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 * *

혈향이 가득한 주위.

그리고 살수들의 시체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화산파 직전 제자들인 일행의 실력은 살수들보다 뛰어났다.

하지만 고진유가 이미 살인에 대한 경험을 겪은 것과 달리, 화산파 삼대제자들은 죽음을 눈앞에 둔 실전이 처음이었다.

고진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흥분은 미처 가라앉지 않았지만, 다행히 잘 이겨낸 듯한 모습이었다.

살인은 무림인의 숙명.

‘언젠가는 일어났을 일이야. 스스로 이겨 나가야 할 문제고…….’

고진유와 묵경, 그리고 인양은 시신들을 한곳으로 모았다.

잠시 후, 세 사람을 따라 우종성도 함께 움직였다.

곧이어 하나둘씩 진정이 되었는지 시신들을 끌고 왔다.

“다들 다친 곳은 없습니까?”

“심하게 다친 곳은 없어.”

백 명의 살수들과 싸웠지만 경미한 상처 외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모두 다행입니다. 이젠 살수들이 없을 것입니다. 힘들었을 텐데 쉬세요.”

다시 잠을 청하기에는 늦은 시각.

일행은 삼삼오오 모닥불 주위에 모여서 살수들과 싸웠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 * *

여명이 떠오르자 일행은 현장을 다시금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가라앉았던 흥분이 다시 올라오는 듯했다.

고진유는 움직이지 않은 채 현장을 바라보았다.

“진유 아우, 뭘 생각하고 있어?”

“묵경 형, 야월문은 청부를 포기하지 않을 거라 했었죠?”

“음, 여기서 그들이 청부 의뢰를 포기했다는 게 무림에 알려진다면 야월문의 신용이 떨어지게 되니까.”

“나 혼자라면 언제 오든 상관없지만, 이러다가 사형들이 다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그들의 기습이 계속 이어질 거라면, 차라리 기다리는 것보다 먼저 쳐들어가서 끝장을 보는 게 좋겠습니다. 공격은 최선의 방어라 하지 않습니까?”

“뭐어?!!”

묵경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모든 시선이 두 사람에게 집중되었다.

“방금 뭐라고 했어? 야월문을 치자고?”

“힘듭니까? 어차피 삼 년 내에 화산천하제일문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시간 날 때마다 차근차근 정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이번 경우와는 달라. 야월문으로 간다는 것은 그들 전체와 싸우겠다는 의미잖아.”

“야월문 전체와 싸우지 않는다면요?”

“그렇다면야 가능도 하겠지만…… 어떻게? 이 일은 혼자 결정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묵경은 여전히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고개를 저었지만, 고진유는 곧바로 사형제들을 모두 불렀다.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고진유 주위로 일행 모두가 모여들었다.

“방금 묵경 형이 심하게 흥분해서 알아채셨겠지만, 야월문을 치고자 합니다.”

“야, 이 미친놈아. 우리끼리 야월문을 치자고? 내 이럴 줄 알았다. 일부러 날 죽이려고 무림맹에 함께 가자고 했지?”

“호경 사형, 진정하세요. 누가 죽으러 갑니까?”

“이게 진정할 일이냐? 호중, 너도 말을 해봐. 이건 진짜 미친 짓 아니냐?”

장두총은 침을 튀겨가며 소리쳤다.

“호정의 말대로 하자.”

“너도 돌았냐?! 호진 사형!”

장두총은 이번에는 우종성을 바라보았다.

“우리 책임자는 호정이니 원한다면 따를 수밖에. 무작정 가자고 할 녀석은 아니겠지.”

지금까지 그가 본 고진유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가장 세속적인 인물이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야월문에 갈 녀석이 아니었다.

이미 계획을 세워놓았을 게 분명했다.

“저, 전부 미쳤어……?”

“호경 사형도 동의한 것으로 하겠습니다. 혹시 반대하시는 분은 손을 들어보세요.”

연자련과 당우희도 시선을 마주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젠장. 나도 모르겠다. 맘대로 해라.”

장두총의 투덜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손을 든 일행은 없었다.

“좋습니다. 만장일치로 야월문으로 가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게 뭐가 만장일치야?”

“호경 사형, 나중에 잘되면 사형이 주도하에 야월문에 갔다고 해줄게요.”

“…….”

장두총의 움직임이 딱 멈췄다.

‘……이 녀석이 정말 자신이 있으니 간다고 하는 건가? 하기야 설마 죽고 싶어서 가는 건 아닐 거 아냐?’

잠시 머리를 굴리던 장두총이 입을 열었다.

“……나는 신중한 거지만, 어쨌든 그건 나쁘지 않군. 방금 한 말 확실한 거야?”

“앞으로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사형이 하는 거로 하시죠.”

끄덕.

“난 상관없다.”

“맘대로 해~”

“나도…….”

며칠간 장두총을 파악한 일행도 별다른 말 없이 동의했다.

“그래? 좋아. 가자. 이번 기회에 화산파의 힘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

‘무림에 인지도가 올라갈 기회야!’

장두총은 기운이 솟았는지 앞장을 서며 산을 내려갔다.

“저 녀석…… 원래 저 정도로 단순했었나?”

“동기지만 저도 낯설군요.”

우종성과 혁자영은 서로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 * *

하남의 무림맹으로 가는 길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산양이 나왔다.

정확히 아홉 명의 인원으로 야월문을 공격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모두 산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매화도의를 벗고 변복을 했다.

고진유는 호민 곽우와 함께 계획을 세밀하게 의논했다.

“그다음은 호민 사형이 말씀하실 겁니다.”

여섯 명의 삼대제자들 중 곽우는 성격이 차분하며 평소에도 말이 없는 듯 조용했다.

화산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진법서나 오래전에 일어난 전쟁 속 역사에 대해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기본 계획은 호정 사제가 야월문에 잠입해 수장을 잡는 거야. 사제가 몰래 숨어들어 가는 것에 자신이 있다고 하니, 적은 인원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계책이지…… 그리고 우리는 사제가 쉽게 잠입할 수 있도록 도울 거야.”

“어떻게?”

“성동격서(聲東擊西)와 금적금왕(擒賊擒王). 우리가 야혈문을 공격하는 사이, 호정 사제가 잠입하는 거지.”

“우리가 공격해 시선을 돌려도 문주를 지키는 인원들이 남아 있지 않을까……?”

“걱정 마세요, 호화 사저. 그를 잡을 테니.”

“…….”

잘난 놈인 것이지, 고진유는 무공에 대해 허세를 부리지는 않았다.

‘이 녀석이 해볼 만하다면 정말로 가능한 것이겠지.’

묵경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넌 야월문주의 머리를 쳐라. 대신 빨리 해결하고 와야 해. 우리 고생시키지 말고.”

“알겠습니다. 위치를 빨리 찾으려면 인양과 둘이 가는 편이 낫겠어요.”

“진유 아우, 둘만 가도 괜찮겠어?”

“묵경 형은 사형들을 도와주세요.”

“휴…… 그래. 이번 기회에 얼굴뿐 아니라 무공도 보여줘야겠네.”

“푸흐, 조만간 묵경 형의 위명이 퍼져 나가게 될 겁니다.”

* * *

진살인 구송과 진살조의 시체를 발견했다.

야월문의 살수들은 당황했다.

겨우 십여 명의 손에 백 명의 살수들이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문제는 그들이 산을 내려온 뒤 흔적이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사방을 뒤져보았지만, 화산파 도사들을 봤다는 소식은 들어오지 않았다.

“그놈들이 어디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나?”

“죄, 죄송합니다! 사방으로 수하들을 보냈지만 찾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진살인을 이겼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상을 크게 입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본 문이 두려워 숨은 것은 아니겠습니까?”

해살인(亥殺人) 섭좌평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숨었다라…….’

문주 마원도 곰곰이 생각을 했다.

섭좌평의 말처럼 그럴 가능성이 있었다.

이들은 무림맹으로 가는 길이었다.

두렵지 않다면 굳이 모습을 숨기며 갈 이유가 없었다.

‘본 문이 두려운 거야.’

마원은 어깨에 힘을 주었다. 목소리가 커졌다.

“그놈들이 상처를 입었다면 잡을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당장 전 인원을 풀어서라도 그들의 행방을 찾아라!”

“문주님의 명을 따르겠습니다!”

섭좌평은 다급히 물러났다.

‘겨우 삼대제자밖에 안 되는 놈들에게 당할 수는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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