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화
무림맹으로 떠나기 전 마지막 밤.
고진유가 집법전으로 찾아왔다.
양군경은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면 강호의 격한 세상과 당당하게 맞설 사손이 대견했다.
“준비는 끝났느냐?”
“네, 사조님.”
“어려운 일이 생기면 혼자서 해결하지 말고 본 문에 도움을 요청해도 되느니라.”
“알겠습니다.”
“네가 잘할 것이라 믿는다.”
두 사람은 이 년 동안 함께 지내면서 서로 많은 정을 나누었다.
“무림맹에 가거든 절대로 기죽지 말고 화산파의 대표로서 자신 있게 행동하면 된다.”
“그 부분에 관해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하! 하긴 네가 누구에게 주눅이 들 성격이 아니긴 하지. 그런 면에서는 네 사부보다 나은 듯하구나.”
양군경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본 문에 계속 있으면 모를까, 이젠 그들이 제대로 움직이겠지?”
“불입호혈부득호자(不入虎穴不得虎子)라 했습니다. 사부님의 원수를 잡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지 않겠습니까.”
“너에게 너무 위험한 일을 맡기는 것 같구나.”
“당연히 제자인 제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 참, 그리고 본 문으로 오면서 네가 만난 살수의 정체를 알아냈다고 하더구나.”
“어디입니까?”
“섬서 산양에 있는 야혈문이란 살수집단이다.”
“산양이라면 제법 떨어져 있는 곳이군요.”
“누군가 의뢰를 한 듯싶구나. 아마 계속해서 살수를 보낼 게 분명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살수들은 저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살수 놈들은 무공이 약하다고 하나 어떻게 공격을 할지 모르는 놈들이니라. 항상 조심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야혈문이라…… 누가 의뢰를 했는지 대충 알겠군. 안 되는 놈은 끝까지 바뀌지 않네.’
고진유는 아혈문에게 의뢰를 한 곳이 유성순가라는 느낌이 왔다.
‘잠시 두고 봐야겠군.’
“사조님, 다음에 뵐 때까지 항상 만수무강하십기를 빕니다.”
“허허, 마지막으로 한 번 안아보자꾸나.”
양군경은 두 팔을 벌려 고진유의 등을 두드려 주었다.
* * *
무림맹으로 갈 일행이 정해졌다.
고진유를 비롯한 일곱 명의 삼대제자들.
사실 출발하기 전까지만 해도 장두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떠나기 하루 전, 상궁단의 부단주인 장절 진우청이 찾아왔다.
삼대제자들 중 우종성과 혁자영은 이미 매화관을 통과한 뒤 상궁단에 속해 있었다.
진우청은 우종성과 혁자영 또한 무림맹행에 합류하기를 원했고, 고진유는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저 녀석들은 매화관 수련생도 아니면서 왜 끼어들고 지랄이야.’
특히 우종성은 그에게 사형이며 무공도 뛰어났다.
그래서 풀이 죽은 채로 화산을 내려가던 중이었다.
그때,
“호경 사형, 무림맹에 가면 제가 부재 중일 때 중원 부대사를 맡아주겠어요?”
장두총의 눈이 번쩍 뜨였다.
“뭐어…… 네가 원한다면.”
쌀쌀하게 뱉고는 화산을 내려가는 일행 사이에 앞장선 장두총은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그리고 호진 사형은 저희 일행의 경호대주를 맡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우종성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산문을 내려온 일행은 화산을 떠나기 전 뒤를 돌아봤다.
마지막으로 보이는 화산의 모습을 기억에 담은 고진유가 말했다.
“준비됐으면 이제 가볼까요?”
* * *
아침 일찍부터 객잔에 앉아 밖을 내려다보는 두 사람의 시선이 간절했다.
“아직도 안 와? 이 년 후에 여기서 만나는 거 아니었던가? 지금 시간이 어떻게 돼?”
옥처럼 빛나는 피부.
주위의 시선이 모두 집중될 정도로 잘생긴 사내의 얼굴.
그를 본 객잔 여인들의 시선이 특히 열렬했다.
“설마 잊은 건 아니겠지? 우리가 화산으로 올라가야 하나?”
“묵경 형, 진유 형은 절대로 약속을 잊으실 분이 아닙니다.”
인양의 믿음은 강했다.
이 년 동안 거의 쉬지 않고 수련했다.
고진유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연화심공을 익히고 더욱 발전된 호충신법을 보여 드려야지.’
“그런데 왜 이리 안 온다냐? 사람 기운 빠지게.”
털썩!
묵경은 힘없이 의자에 기댄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흠……? 뭐지?’
객잔 안쪽 탁자에 자리 잡고 있는 중년 사내.
‘긴장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일반 상인들처럼 차려입었지만 그의 신발은 무인이 주로 신는 납저혜(鈉底鞋)가 분명했다.
‘상인은 아니군. 변장을 했어.’
“인양아.”
“네.”
“저기 안쪽에 있는 사내 있지? 꽤나 수상한 놈 같다.”
인양도 슬쩍 사내를 살폈다.
“앉아 있는 모양새가 꼭 누굴 기다리는 것 같은걸.”
화산 아래 첫 번째 객잔.
누군가 긴장한 채 기다리는 인물이라면 화산파의 도사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설마…… 진유 형을 기다린다는 말입니까?”
“글쎄. 확실하진 않지만 현재 화산파 제자 중 노리는 놈이 가장 많은 인간은 진유 아우가 아닐까?”
“일리가 있네요. 어떻게 할까요?”
“일단 무슨 짓을 하는지 조용히 지켜보는 게 좋겠어.”
“알겠습니다.”
* * *
화산을 내려온 뒤 첫 번째로 마주친 마을의 초입에 들어서자, 멀리 객잔이 보였다.
‘이 년간 어떻게 변했을까. 다들 잘 지냈겠지?’
웅성웅성.
마을의 중앙을 지나가는 길 양쪽에는 장사꾼들과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 도사님들! 여기 구경들 한번 해보고 가세요~”
길가에 물건을 내다놓은 장사꾼들이 그들의 소매를 붙잡기도 했다.
일곱 명의 삼대제자들은 오랜만에 세상에 나왔는지 신기한 듯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꽃 사세요. 꽃 한 송이 사세요.”
꽃바구니를 옆에 낀 중년 여인이 앞에서 다가와 꽃 한 송이를 내밀었다.
“어머…… 예쁘네.”
호화 연자련과 호청 당우희는 마음에 들었는지 눈이 초롱초롱하게 빛났다.
“두 분이 꽃을 좋아하실 줄은 몰랐습니다.”
“호정 사제가 모르는 것이 많네~”
“하하, 그러게요. 아주머니, 두 송이 주세요.”
“사제가 사 주려구? 우리야 좋지.”
“네에, 알겠습니다. 색상은 어떤 색으로 드릴까요?”
“호정 사제, 난 붉은색!”
“고마워, 사제. 그럼 난 노란 것으로…….”
중년 여인이 꽃바구니에서 붉은색과 노란색을 뽑으려고 할 때,
휘익! 퍼억!!
고진유가 꽃바구니를 걷어찼다.
쒸에에엑!
하늘로 솟구친 꽃송이 속에서 중년 여인의 살기 어린 눈빛으로 비수를 던졌다.
따다다당!!
고진유가 검집으로 비수를 쳐냈다.
“죽여라, 이노오오옴!!”
비수가 실패하자 그녀의 소매에서 곧이어 폭침이 쏟아져 나왔다.
“포호기천.”
고진유는 전력을 다해 화산복호권을 뻗었다.
고진유의 전신서 일으킨 권막이 폭발하며 폭침이 튕겨 반대로 날아갔다.
퍽퍽퍽퍽!!
중년 여인이 온몸에 박힌 독침들에 의해 거품을 물며 쓰러졌다.
두두두두두두두-
동시에 길가에서 장사를 하던 수레들이 고진유를 향해 빠르게 달려왔다.
“호정!!”
우종성은 검을 뽑으며 돕기 위해 달려 나오고자 했다.
“모두 물러나세요. 폭탄입니다.”
“뭐어?!’
“사제, 피해!!”
그들이 외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고진유는 수레 앞에 버티고 섰다.
‘폭발을 놔두면 일반 주민들이 다쳐.’
우우우웅-
고진유는 내력을 극성으로 올렸다.
‘한 번에 끝내야 해.’
어느덧 손에 들린 사의검이 매화뇌강(梅花雷降)을 단번에 펼쳤다.
매화검법 중 가장 강한 초식.
번쩍!!
자색의 검신이 폭발하며 생긴 매화 검강이 수레들을 향해 뻗어 나갔다.
콰아아앙!!
콰아앙!!!
굉음이 터지며 폭풍이 모든 것을 쓸어버릴 듯 솟구쳤지만 고진유의 검막에 의해 뻗어 나가지 못했다.
‘화산도 벗어나기 전에 미친 거 아냐?! 하아, 호정 저놈 자식 무공은 죽었다 깨어나도 못 따라 하겠네.’
장두총은 고진유가 보여주는 무공의 위력에 고개를 흔들다 멈칫했다.
“살수들이 남아 있다!”
장두총은 검을 뽑으며 주위를 살폈다.
“호경! 움직이는 놈들을 잡아!”
우종성이 소리치며 살수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실패했잖아…… 대체 어떤 놈이기에…….’
한편, 객잔에서 밖의 상황을 지켜보던 사내는 당황한 표정이 되어 식은땀을 흘렸다.
“놀랐습니까?”
‘허어억!’
사내는 기척도 없이 갑자기 등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대, 대체 언제 뒤로 다가온 거지?’
“보아하니 당신도 저기 살수들과 한패인 듯하군요. 하지만 당신 실력으로는 저분의 털끝도 건드리지 못합니다.”
“크익!”
피피핏!!
이를 악문 중년 사내는 몸을 앞으로 빼내며 동시에 비수를 던졌다.
하지만,
‘없어?!’
“당신 조금 하네요.”
‘헉.’
등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야혈문에서 가장 빠른 자살인(子殺人)이 나인데……!’
파악!!
동우는 허공에서 다시 한 번 더 신형을 틀며 뒤를 돌아섰다.
‘빠르다. 도저히 잡을 수 없어.’
하지만 이미 상대의 신형은 사라져 찾을 수 없었다.
후다다닥!
바닥에 내려선 그는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목표를 죽이는 데 실패했어.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야 한다……!’
“어딜 가려고?”
옆에서 손이 불쑥 그를 잡아챘다.
동우는 뒤로 피하고자 했지만 상대의 거리 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여, 연화무환보(軟花舞幻步)?”
“제법이네. 이걸 알아보는 걸 보니 공부를 꽤 했군요.”
묵경은 그의 표정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차렸다.
“인양아. 도망가려고 하는 모양이다. 잡아야겠다.”
“알겠습니다.”
신법만 빠르다고 상대를 이길 수 없다. 상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는 공격 초식을 익혀야 했다.
하지만 인양은 이 년 동안 오직 신법만을 익혔다.
그래서 성녀곡주 묵연화는 성녀곡을 떠나기 전 인양에게 필요한 물건을 선물로 주었다.
삼단연화비기(三段軟花飛機).
직사, 연사, 폭사의 형태로 발사되는 기구.
동우가 움직이는 동시에 인양이 움직였다.
‘이놈……!! 나를 잡을 수 없다.’
상대가 빠르다고 해도 거리가 벌어진 이상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을 터.
“겨우 이 정도밖에 못 달리는 것이오?”
‘벌…… 써…… 여기까지…… ;’
순식간에 앞을 막힌 동우는 허리에서 재빨리 검을 뽑았다.
“이걸 한번 사용해 보고 싶었는데 때마침 기회가 오는군요.”
인양은 삼단연화비기를 겨룬 뒤 눌렸다.
피잇!!
삼단연화비기에 빠져 나온 비침이 동우의 목에 박혔다.
“커어어억.”
숨이 막히는 듯한 고통에 단번에 바닥에 쓰러졌다.
묵경이 옆에 내려섰다.
“오, 그거 괜찮은 물건이네.”
“곡주님께 좋은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 방에 가네요.”
“어머니가 웬일이지? 이런 좋은 물건을 선물하다니. 그럴 분이 아니신데 이상하네. 하기야 둘째 아들이라고 하시더니만!”
툭툭.
묵경은 바닥에 쓰러진 동우를 발로 툭툭 건드렸다.
정신을 완전히 잃었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묵경 형! 저기!”
묵경은 인양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았다.
이미 상황을 정리한 화산파의 일행들이 객잔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 앞에서 환하게 웃는 청년.
고진유가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두 사람. 오랜만이야.”
“진유 형!”
인양은 단숨에 고진유의 앞에 다가섰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보시다시피. 너도 잘 지낸 모양이네.”
“묵경 형과 곡주님의 덕분에 잘 지냈습니다.”
고진유는 인양을 살폈다.
“제법 실력이 늘었는데. 이젠 완전히 무인 냄새가 나는군.”
“고맙습니다. 이 년 동안 열심히 했죠.”
“그래? 나중에 확인해 보자고.”
고진유는 인양과 어깨에 손을 올리며 다가오는 묵경을 맞이했다.
* * *
객잔은 언제 싸움이 있었냐는 듯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어째 묵경 형은 하나도 변한 게 없습니까?”
“무슨 말이냐? 여기 눈가에 주름을 봐라.”
묵경은 손가락으로 눈가를 가리켰다.
“세월에는 장사 없다고 하는 말이 사실이더라.”
“그래도 묵경 형은 중원 최고의 미남이죠.”
“이야, 발전했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그런 말을 해주니 기분이 더 좋은걸.”
[우희야. 소문보다 훨씬 더 잘생긴 거 같아…… 안 그래?]
[응, 정말요. 과연 왜 중원의 여인들이 풍류미군을 제일미남으로 부르는지 한 번에 알 만한 얼굴이에요.]
연자련과 당우희는 묵경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끄으으응.
그때, 바닥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들렸다.
목에 비침을 맞았던 그였다.
“이제 깨어나는 모양인가 봐.”
“어…… 어…….”
동우는 정신을 차리며 눈을 떴다.
순간 어떻게 된 일인지 기억이 났는지 몸이 굳은 채 주위를 보았다.
“안녕하시오, 살수 씨.”
“…….”
“야월문 자살인 동우가 그대의 이름인가?”
고진유는 씩 웃으며 손에 든 붉은 패를 좌우로 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