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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46화 (46/425)

46화

우르르르-

유성순가의 유성단 오백 명의 무사들이 한꺼번에 접객원으로 몰려왔다.

가주의 첫째 아들 유성단주 순오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거들먹거리며 수하들 사이로 들어섰다.

접객원의 책임자, 아평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빠르게 달려 나와 허리를 바짝 숙였다.

“단주님, 오셨습니까?”

“접객원에 화산파에서 온 분이 있다고 하던데. 안에 들어가서 내가 왔다고 전해주게.”

“알겠습니다.”

순오는 뒷짐을 쥔 채 거만한 표정으로 접객원을 쳐다보았다.

밖으로 나오는 기척이 들리고, 곧 그의 눈에 실망한 빛이 나타났다.

‘양경 도인이 당하셨다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데?’

젊은 청년 도사에게 종남오검이 당했다는 말인가?

‘참 나, 방심했던 모양이군.’

상상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순오가 미간을 찌푸렸다.

“이리도 많은 분이 맞아주실 줄은 몰랐군요. 어느 분께서 유성순가의 유성단주이신지?”

“본인이외다.”

순오는 여전히 뒷짐을 쥔 채 고개를 비스듬히 치켜 올렸다.

“난 분명히 가주나 총관을 만나고 싶다 전했는데. 그대를 만나고 싶다는 말은 안 한 것 같소만.”

“어허, 아무리 화산파의 도사님이시라고 해도 본 가의 가주님은 만나고 싶은 대로 만날 수 있는 분이 아니오.”

“괜히 시비를 걸어 일을 만들 생각이라면 됐소. 조용하게 일을 마무리 짓고 싶으니 두 분이 왔으면 하는 바이오. 단주와는 할 이야기가 없으니.”

순오의 이마에 주름이 짙어졌다.

“하, 삼대제자밖에 안 되는 놈이 나를 무시하는가?”

순오는 허리에 찬 검을 잡으며 한 걸음 나섰다.

‘양경 도인도 유성단 오백 명에겐 못 당해낼 거라고!’

그는 자신이 있었다.

상대는 약관의 나이인 화산파의 삼대 제자.

‘쭉정이라도 화산파 제자를 꺾으면 무림에서 인지도가 올라가겠지!’

고진유는 그의 행동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 본인을 협박하는 것이오, 아니면 화산파를 무시하는 것이오?”

“협박이라니. 그대가 화산파에서 온 이유나 밝히시오.”

“대체 부총관이 제대로 전한 이야기가 있는지 모르겠군. 정말 몰라서 묻는 것이오?”

“아니, 화산파는 우리에게 돈을 맡겨놓았소? 왜 자꾸 돈을 달라고 하는 건지 모르겠군!”

순오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후, 호도 사형. 유성순가가 이제 화산파를 도둑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구파들이나 십대세가들 역시 그들의 영역에서 장사를 하는 대가로 일정의 상납금을 받지 않소?

우리가 도둑놈이면 중원의 구파도 죄다 도둑놈들 집단이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이 사실을 알리면 구파에서 어떻게 반응을 할지 기대가 되는군요.”

순오는 순간 당황했다.

갑자기 방향이 이상하게 변했다.

“아니, 잠깐. 그런 뜻이 아니오.”

“그럼 무슨 뜻이오?”

“그게…… 요즘 장사도 안 되는데 화산파에 줄 수 있는 상납금을 내기 힘들다는 뜻이었소.”

“그러니까 그 문제 때문에 본인이 온 게 아니오? 그 이야기는 당신과 나눌 필요가 없으니 가주나 총관을 불러주시오.”

“두 분은 몸이 좋지 못해서…… 움직이기 힘드오.”

“그렇소? 부총관은 다른 말이 없던데. 일부러 오지 않는 것이라면 화산파를 멸시한 죄를 묻겠소이다. 또한 유성순가는 임위는 물론, 화산파의 영역 내에서 떠나야 할 것이오.”

“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임위에서 떠나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보시오?”

“유성순가는 화산파의 도움으로 임위에 자리를 잡았지. 화산은 기회를 줬는데 당신들은 신의를 저버렸소. 본 문은 개와 다름없는 유성순가를 더 이상 봐줄 수 없소이다.”

“이 미친 새끼가?!”

순오는 욕을 하는 동시에 검을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 순간,

퍽!

고진유의 주먹이 순간적으로 뻗어나갔다.

내력이 실린 화산복호권이 순오의 입과 눈에 그대로 적중했다.

“아아악!!!”

한쪽 눈이 터져 나갈 듯한 고통과 함께 입안이 터졌다.

“단주님이 당하셨다!!”

“저놈들을 잡아라!”

바닥에 뒹구는 순오를 본 유성단의 무사들이 소리치며 달려들었다.

“덤벼.”

유성단의 움직임보다 고진유의 주먹이 바람처럼 빨랐다.

풍자결의 호위무용.

퍼억!

“으으악!!”

화산복호권은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커어어억.”

일권에 한 명씩 뼈가 부러졌다.

접객원 마당은 순식간에 무사들의 신음 소리들로 가득해졌다.

“이놈들에게 화산파의 힘을 보여주자.”

채애애앵!!

호도도 곧바로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와아아아!!”

화산의 도사들이 유성단의 무사들을 막아내며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아아아아-

고진유가 사의검을 뽑자 자줏빛 검신에서 살기가 뻗어 나왔다.

중단전에서 끌어낸 사기(死氣)에 접객원이 싸늘해졌다.

“당장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이 자리에서 한 놈도 남김없이 죽여주마.”

감당할 수 없는 살기에 일류에 미치지 못한 유성단 무사들의 몸이 떨렸다.

‘사숙님의 사기를 잘 모아둔 보람이 있는데.’

순오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우, 우, 움직일 수가 없어!’

유성단 전체를 내기만으로 제압했다.

바닥에 쓰러진 채 신음을 내는 수하들은 순식간에 일백이 넘었다.

‘이…… 것이…… 절대고수의 위엄인가?’

그제야 그는 뭔가 잘못됐음을 알았다.

임위지부의 평검수인 화산파 도사들의 무공들도 강했다.

화산의 힘이 약한 게 아니라, 조용히 지내기에 약하다고 착각했을 뿐이었다.

“자…… 자…… 까…… 만…….”

순오는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입안이 터진 채 퉁퉁 부어 올랐다.

“할 말이 있나?”

“제…… 빠…… 그마…… 뚜…… 부을…… 모시고…….”

“그들을 데리고 오겠다고?”

끄덕끄덕.

순오는 고개를 빠르게 움직였다.

“좋아. 반각 주지. 그 안에 오지 않는다면…… 알지?”

“……아…… 네에…….”

순오는 발에 밟히면 밟히는 대로 수하들을 밟고 밖으로 빠져나갔다.

“호도 사형, 여기를 깨끗하게 정리해 주세요.”

“넵!”

호도와 화산파 도사들은 서로 마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렇지 않아도 은근히 무시당하며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렸다.

“이봐! 살고 싶으면 빨리 여기서 나가!!”

“어허, 빨리 안 나가? 제일 늦게 나가는 놈은 다리 하나가 사라진다!”

후다다닥!

유성단 무사들이 살기 위해 접객원 마당을 기어가기 시작했다.

* * *

반각이 지나기도 전에 가주 순요청과 총관 순노정이 황급히 움직였다.

첫째 아들 순오의 얼굴은 완전히 부어올라 있었다.

“화산파는 도인들이라 이런 부분에서는 잘 모를 겁니다.”

“젠장할.”

순요청은 접객원으로 가면서 짜증이 밀려왔다.

“형님, 죄송합니다.”

“이게 죄송할 일이더냐? 그 돈이 얼마나 된다고…… 그냥 주면 될 것을!”

‘자기도 좋다고 했으면서……!’

일이 잘못되니 모든 게 남의 탓이라며 인상을 쓰는 순요청이었다.

“종남파 도사 놈들이 이긴다면서?”

“저, 저도 그럴 줄 알았습니다.”

“봐라. 내가 화산파가 더 강하다고 했지?”

‘또 내 잘못이라고?’

그는 순간 화가 나서 따질 뻔했다.

“그건…… 양경 도사가 몸이 안 좋은 듯…… 합니다.”

“됐다. 삼대제자에게 당한 주제에 몸이 안 좋았다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군.”

“……죄송합니다.”

“여하튼 이번 일에 대한 책임은 누군가가 져야 할 게야.”

그사이 두 사람은 접객원으로 들어섰다.

접객원에서 만난 고진유의 신형에선 범접할 수 없는 내기가 흘렀다.

‘삼대제자라고 하지 않았나……?’

저건 도를 깊이 수양한 진인에게서 흐르는 기운이 아닌가…….

가주와 총관은 주눅이 든 채 고진유의 눈치를 보았다.

“본인이 유성순가의 가주이외다.”

“참으로 보기 힘든 분이군요. 화산파 제자인 호정이라 하오.”

“호정 도사이시군요. 만나서 반갑소이다.”

“반갑다고 하니 다행이외다. 두 분은 내가 무슨 이유로 왔는지 이제는 알고 계실 거라 믿습니다.”

“호정 도사님, 뭔가 오해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오해라고 하셨소?”

“넵, 그렇습니다.”

“일단 어떤 오해인지 들어보지요.”

“본 가에서 상납금을 안 주려고 한 게 아니라 요즘…… 워낙 장사가 힘들어서, 나중에 돈이 생기는 대로 준비하려고 했습니다.”

“장사가 안 된다는 말은 이미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었소이다. 얼마나 장사가 안 됐는지는 장부를 보면 알겠지요.”

“…….”

“이보시오. 우 부총관.”

“예? 예에, 도사님. 말씀하십시오.”

“지금 당장 본 문의 형제들과 가서 유성순가의 연간입출금장부를 가지고 오시오.”

“…….”

우충은 슬쩍 가주의 눈치를 살폈다.

그 순간,

퍽!

고진유와 일 장 정도 떨어진 위치에 있던 우충의 얼굴이 휙 돌아갔다.

어떻게 맞았는지 보이지도 않았다.

우충은 바닥에 쓰러지며 입안이 터지는 동시에 어금니가 깨졌다.

“어…… 어…….”

강한 충격에 그는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누구의 눈치를 보고 있소? 당신은 내 말을 그대로 따르면 될 뿐이오. 앞으로 밥을 제대로 먹고 싶다면.”

“네…… 죄송…… 합니다.”

“호도 사형, 저자와 함께 장부를 하나도 빠짐없이 가지고 오세요.”

“알겠습니다!”

호도는 우충의 멱살을 잡고 밖으로 나섰다.

* * *

고진유는 팔짱을 낀 채 장부를 읽는 우충을 내려다보았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유성순가의 작년 총매입과 매출이 얼마인지 말해보시오.”

“…….”

“흐음, 학습이 다시 필요한 것 같군.”

고진유의 팔이 올라갔다.

우충은 화들짝 놀라며 장부를 읽기 시작했다.

“유! 유성순가의 작년 총매입금액은 황금으로 계산해서 일천칠백 냥이며, 초, 총매출금액은 황금 삼천칠백 냥입니다.”

“황금 사천 정도면 많이도 벌었군. 작년 인건비를 포함해서 모든 경비는 어디에 있소?”

“그거는…… 여길 보시면 됩니다.”

우충이 총연간지출서의 장부를 꺼냈다.

“인건비를 포함한 모든 경비의 지출은…… 황금 오백 냥입니다.”

“간단하군. 장부대로 하면 일천오백 냥이 남았다는 말인가?”

“…….”

우충은 대답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가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오? 장사가 안 된다고 하지 않았소?”

순요청은 머리를 빠르게 돌렸다.

누군가 한 명이 희생할 수밖에 없다.

“호정 도사님. 그건 부총관이 시켜서 한 짓입니다. 우리는 반대했지만, 그가 먼저 나서서 임위지부장과 말을 맞추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우충은 어이가 없었다.

“가주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가주님께서 넌지시 임위지부장에게 말을 해보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부총관, 자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모든 책임을 지겠다면서 나선 사람이 자네였네.”

“제가 언제 그런다고 했습니까? 지금 누명을 씌우는 것입니까?”

“어허, 이 사람이 누가 누명을……!”

두 사람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타앙!

고진유는 책상을 내리치고 그들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조용히. 난 당신들에게 책임자를 묻는 게 아닙니다. 본 문은 정당하게 받을 돈을 받아내려는 것뿐.”

“…….”

“화산파와 유성순가의 계약에 의하면 상납 금액은 삼 할. 본 문이 받아야 상납금을 계산하면 황금 사백오십 냥이군요. 얼른 가지고 오시오.”

“아니…… 당장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까?”

그때, 우충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화가 치밀었다.

‘충성을 다했는데 배신을 때려?’

“제가 가지고 오겠습니다!”

“부…… 총관, 우리가 그런 돈이 어디 있는가?”

“어제 제가 환전하기 위해 황금 오백 냥을 준비하지 않았습니까?”

“……그, 그!!”

“부총관께서 일을 잘하시는군. 여기 호도 사형과 함께 다녀오시지요. 그리고 가는 길에 유성순가의 모든 돈을 가지고 오면 되겠소. 이건 작년 상납금이라 아직 계산할 게 많거든.”

“알겠습니다.”

우충이 밖으로 나가자 가주 순우청은 급해졌다.

수많은 황금을 눈을 뜬 채로 빼앗길 수 없었다.

‘피땀 흘려 번 돈이거늘! 이 도둑놈들에게 절대 줄 수 없다!!’

그는 큰아들 순오를 쿡쿡 찌르며 눈빛으로 재촉했다.

‘뭣 하느냐?’

순오는 그의 뜻과는 달리 고개를 흔들며 거부했다.

‘죽는다고요!!’

사의검에서 흘러나온 살기가 너무나 강렬하게 머리에 각인되었다.

‘저 도사는 일반 정파인과는 달라! 스스럼없이 살인을 하고도 남을 인물이라고!!’

고진유와 마주한 그 순간, 정말로 죽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정면으로 덮쳐왔었다.

‘이 얼빠진 놈이……!!’

순요청은 시선을 피하는 순오를 보며 노기가 치밀었다.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이를 갈았다.

‘이대로 가만히 당할 수 없어. 네놈만은 기필코…….’

* * *

“호정 사질, 고생이 많았네. 무려 황금 오백 냥을 한 번에 받아내다니! 거기다 지금까지 내지 않았던 추가 상납금도 일 년 내에 상납하겠다는 각서까지……! 아주아주 깔끔하지 않은가!”

“제가 보기에 본산에 계시는 분들께선 너무 욕심이 없습니다.”

“하하! 우린 무인이기 하나 도를 수행하는 도인이지 않은가. 물론 사질은 안 그런 듯하지만.”

“아, 하하, 맞습니다. 저는 겨우 입문 이 년차이니까요.”

“그래도 난 사질과 같은 인물이 본 문에 있어 다행이라 보네. 유성순가의 계기로 많이 달라질 것 같군.”

다른 지역에서도 분명 유성순가처럼 상납금을 거짓으로 올린 경우가 많을 것이었다.

“소문이 잘 퍼져서 스스로 알아서 주면 좋지요.”

“호정 사질, 고맙네.”

허묵은 진심으로 말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그냥…… 전부. 내가 화산파의 도사라는 게 갑자기 좋아졌네.”

“뜬금없으십니다.”

“아니아니, 조만간 사질의 말했던 것처럼 천하제일문이 될 거 같아 흥분된단 말이지.”

“허묵 사숙께서 많은 도움을 주셔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사질이 원한다면 내 기꺼이 목숨도 내놓을 수 있다네.”

새롭게, 다시 검을 잡을 것이다.

“나를 부를 때까지, 여기서 최선을 다해 수련하겠네.”

언젠가부터 잊고 살았던 무인의 감정이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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