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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42화 (42/425)

42화

복면인의 전신에 흐르는 강기에서 범접할 수 없는 성스러움이 가득했다.

“네놈의 운명은 조만간 네 사부처럼 되겠지.”

천무괘장 사(師)의 손바닥이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후후후, 이 무공이 무엇인 줄 아느냐? 황금불왕수(黃金佛王手)이니라. 영광으로 알아라.”

“…….”

한데 고진유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황금불왕수도 모르는 놈에게 육십사괘장의 인무괘장이 당했다니 어이가 없군.”

밀종 무공의 직계가 아니면 익힐 수 없는, 서장의 황금사(黃金寺)인 대뢰음사의 절대무공.

이백 년 전, 밀종의 후인이 중원의 소림사에 찾아와 소림불왕 공현 대사를 십 초만에 꺾은 일이 있었다.

그때 밀종의 후인이 펼친 무공으로 이름을 떨친 것이 바로 황금불왕수였다.

황금빛이 올가미를 만들어 고진유를 움직이지 못하게 옭아맸다.

“으윽!”

고진유는 곧바로 몸을 비틀며 황금 올가미에서 빠져나오려고 했지만.

“황금쇄라금(黃金鎖拏擒)에 걸린 이상 단전에서 내력을 끌어 올 수 없다네. 그 말은 즉,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지.”

그의 말처럼 하단전의 내력을 끌어 올리고자 했지만 내력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중단전을……!’

뚜두둑. 뚜둑.

황금 올가미가 끊어지기 시작했다.

복면인의 눈이 커졌다.

‘황금쇄라금을 끊어내다니? 단전을 막았거늘!’

직접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그는 다급하게 황금불왕수를 다시 펼쳤다.

제법대라(諸法大羅)의 수법.

‘이번에는 막지 못할 것이다!’

파아아앗!!

하지만 고진유는 호충신법의 탈각신(脫殼身)을 펼치며 허물을 버리듯 올가미에서 벗어났다.

퍼어억!

제법대라의 진기가 부딪히자 고진유의 허물이 부서지듯 흩어졌다.

‘큭, 어디지?’

복면인이 눈앞에서 사라진 고진유를 찾기 위해 주위를 살폈다.

“당신…… 대단하군.”

“하, 그건 내가 할 말일세. 어린놈이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어.”

복면인 사(師)는 천천히 뒤를 돌아섰다.

‘인무괘장들이 당한 이유를 알겠군. 그들을 충분히 잡을 수 있는 실력을 지녔어.’

우우우웅-

‘하나…… 지무괘장은 몰라도 그 이상은 무리다.’

그가 끝을 내려는 듯 합장을 하자 양손에서 불광이 솟구쳤다.

우우우웅-

황금빛의 대불범종(大佛梵鐘)이 울리며 고진유의 앞으로 날아왔다.

만 근의 무게가 주는 압박.

고진유는 피하지 않았다.

파앗!!

사의검에서 폭광이 번쩍거렸다.

매화구벽의 초식.

화산의 검은 중검이나 강검이 아니다.

하지만,

쾅쾅쾅쾅!!

고진유의 사의검이 대불범종을 부수고 들어갔다.

중단전까지 더한 전력으로, 한 줌의 내력도 남김없이 끌어냈다.

쿠구구구구-

대불범종이 멈췄다.

“으으윽.”

충분히 제압할 거라 확신했던 복면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쩌적. 쩌저적.

금강의 힘을 가진 대불범종이 깨지려는 소리가 들렸다.

‘큭, 완전히 부서지기 전에 뒤로 물러나야 한다……!’

복면인은 마치 내력의 대결처럼, 전력을 다해 대불범종을 재차 울렸다.

고진유 또한 마찬가지.

이번에는 중단전에 있던 사기마저 끌어 올렸다.

매화뇌강(梅花雷降)!

전력을 다한 일검이 다시 한 번 대불범종을 내리쳤다.

찌지지지지직-

미세하게 찢어지는 소리가 점점 커져 갔다.

콰아아앙!!!

“크흑!”

대불범종이 부서지면서 생긴 반발에 의해 복면인의 신형이 뒤로 물러났다.

그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사의검을 겨눈 고진유의 눈빛.

‘벌써…… 약관의 나이에 이 정도 내력이라고?’

그는 당황했다.

잡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시간이 더 지나면 죽일 수도 없을 듯했다.

‘힘들어지기 전에 무조건 이 녀석을 죽여야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은 천괘무장이라 해도 상부의 명 없이는 독단적인 행동을 할 수 없다는 것.

더구나 자신의 목숨을 걸지 않는 이상, 승패의 결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

‘도사 놈들이 경내를 넘어섰다.’

멀리서 식영전으로 빠르게 다가오는 한 무리의 기척이 느껴졌다.

“도협, 오늘 끝내지 못한 승부는 다음에 끝내도록 하지.”

휘리리릭!

복면인의 신형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를 쫓아가고자 했지만, 이미 사라진 내력을 찾을 수 없었다.

“나도…… 아직 멀었구나. 사기까지 끌어내지 않았다면 졌을지도 몰라. 좀 더 내공 수련을 더 해야겠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항상 그보다 더한 적이 나타났다.

‘무공은 자만하는 순간 죽음이다.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어.’

고진유는 가까이 다가오는 화산파의 도사들을 보며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았다.

* * *

화산파에 경천동지할 사건이 일어났다.

화산관의 관장이자 권절 허주와 식영전 허서의 죽음.

심지어 그들의 죽음과 연관된 인물이 고진유였다.

매화태청전에서 주요 각 당의 수장들이 모여들었다.

고진유가 그날의 증인으로 본전에 들어섰다.

집법전주 양군경 대신 노군전주 태을검인 한주삼이 나섰다.

“호정은 내가 묻는 말에 똑바로 대답해라.”

“알겠습니다.”

“네가 허주를 죽였는가?”

“아닙니다. 이미 조사를 해보셨겠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고진유의 말대로 유형지의 사인은 이미 밝혀냈다.

“나 또한 그들의 사인에 대해서 안다. 하지만 그 전에, 너는 분명 죽은 허주와 싸웠다.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말해보아라.”

“우선 제가 보여 드릴 물건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한주삼의 물음에, 옆에 서 있던 양군경이 물건을 꺼냈다.

“이것을 보게.”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주삼이 백색 패를 받은 뒤 살폈다.

“극일천…… 유형지?”

처음 듣는 세력의 이름과 허주의 이름이 앞뒤로 적혀 있었다.

스윽.

조심스레 건네받은 집법사가 한주삼에게 물건을 건넸다.

“여기도 있네. 식영전을 뒤져서 찾았다고 하더군.”

그건 또 다른 백색 패였다.

“집법전주님, 이것이 무엇입니까?”

“그건 저 아이가 대답을 할 것이네.”

본전의 많은 시선들이 다시 고진유에게 향했다.

“극일천이란 패는 사부님을 죽인 자들과 같은 세력들입니다.”

“뭣이라……?”

“그들은 사부님을 통해 무엇인가를 찾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죽이지 않고 지옥혈림에 의뢰를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중간에 배가 난파된 후 사부님의 생사를 모르고 지내다가, 오 년이 지난 후 제가 나타나자 움직인 것입니다.”

“네가 그들이 찾고자 하는 것에 대해 허진에게 들었을 거라 생각했다는 것이더냐?”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부께서는 그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음…… 하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다. 허주나 허서는 어릴 때부터 화산파의 제자였거늘, 네가 올 줄 알고 변절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노군전주님. 허주 사숙은 저에게 변절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어릴 때부터 사주를 받은 뒤 입문한 것입니다.”

쿠우우웅.

고진유의 한마디는 화산파 전체에 충격을 주고도 남았다.

“그게…… 정말이더냐?”

장문인 주명진이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장문인님, 그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전 그에게 들은 대로 말을 했을 뿐입니다.”

“허허, 어째 본 문에 이런 일이…….”

고진유는 본 문에 여전히 간자가 숨어 있을 거라는 말은 할 수 없었다.

화산 전체가 잠시 고요함에 잠겼다.

한주삼은 잠시 장문인과 시선을 교환했다.

“호정, 이번 일에 자네의 죄가 없음을 알겠노라. 오히려 본 문에 큰 공을 세웠지. 하지만…… 조용히 넘어가고자 하는 바이다. 괜찮겠느냐?”

“제가 좀 더 나은 방향으로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공보다 잘못이 더 큽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한주삼은 착잡했지만, 고개를 숙인 고진유를 보며 마음 한편으로는 뿌듯했다.

“아니다. 네가 있어 정말로 다행인 것 같구나. 분명 다른 곳에 알리지도 못하고 마음고생이 심했을 것이다.”

무극전주 도상 도인이 한 발 나섰다.

“본인도 할 말이 있습니다. 노군전주의 말씀처럼 호정은 이번 일에 큰일을 했소이다. 더구나 무극전에서 상대의 무공 흔적을 조사해 본 바 호정과 싸운 무공이 황금불왕수였소이다.”

“무극전주, 방금 황금불왕수라고 했는가?”

“분명 그 무공이 맞습니다. 호정에게 펼친 마지막 초식이 대불범종이었소이다.”

“오호…….”

본전이 술렁거렸다.

도상 도인의 말이 사실이라면 매화검법으로 황금불왕수와 동수를 이루어냈다는 의미다.

양군경은 본전의 분위기를 보면서 다행이라 여겼다.

‘잘했도다. 분위기를 바꾸었다. 모두 이 아이의 능력을 인정하고 있어.’

다른 무공도 아닌 황금불왕수와 싸웠다는 말에 장문인 주명진은 가슴이 벅찼다.

‘천하제일문이 실제로 가능할지도.’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늘었다.

‘이 아이는 끝을 알 수 없는 능력을 지니고 있어. 우리가 뒤에서 제대로 받쳐준다면 또 한 번의 화산의 매화가 중원에 퍼질 것이다.’

주명진은 본전 회의를 마무리 지었다.

“이번 일에 대해 호정은 공은 분명 인정하는 바이나, 화산의 이들을 믿지 않고 홀로 행동했다. 만일 일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본 문에 큰 화를 입혔을지도 모르기에, 당분간 비어 있는 화산관의 관장을 맡아 근신했으면 한다. 호정은 인정하겠느냐?”

“넵. 장문인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고진유는 두 손을 앞으로 올려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고진유는 본전을 나온 뒤, 비밀리에 주명진의 연락을 받았다.

상궁으로 올라서자 이미 도착해 있던 장문인 주명진이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오너라.”

“네, 알겠습니다.”

위패를 향해 둘은 무릎을 꿇은 채 절을 하였다.

“우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느냐?”

“아닙니다.”

“녀석. 얼굴에 전부 보이니라.”

“죄송합니다.”

“세상일은 때로는 기다리는 법도 알아야 하느니라. 지금은 네가 들썩이게 만들어놓아서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오래가지는 못하겠지. 넌 네가 할 일만 하거라. 나머지는 걱정하지 말고. 그들의 뜻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내지 못한 이상 잠시 지켜보는 것이지. 무림은 절대로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란다.”

“장문인의 말씀을 이해했습니다.”

“후후후, 화산의 밀화(密花)가 움직일 게다.”

대문파의 저력.

고진유는 고요함 속에 숨겨져 있는 비수를 느끼고 주먹을 꼭 쥐었다.

* * *

화산에서 시간을 보낸 지 이 년이 지났다.

고진유는 화산관을 맡으면서도 양군경의 명에, 은거한 화산파의 고수들을 찾아가 수련을 마쳤다.

그리고 반년 전 화산관에 새로운 관장이 취임한 뒤, 고진유는 검수암으로 들어가서 조용히 개인 수련을 시작했다.

하지만 의도한 바와 달리, 검수암은 청년 도사들이 떠드는 소리로 늘 시끄러웠다.

“호정 사형!!”

한 무리가 검수암으로 들어서기도 전에, 멀리서 고진유를 큰 소리로 불렀다.

고진유는 운기를 멈추며 앞을 보았다.

손에 토끼들을 잡고 신났는지 그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휙! 휙!

열 명의 청년 도사들 중 서너 명이 손에 든 토끼를 자랑스럽게 들어 올렸다.

“오는 길에 잡았습니다!”

“잘했다.”

“바로 구워 버릴 겁니다! 하하!”

호양 변영동은 늘 하던 일처럼 검수암에서 익숙하게 움직였다.

열 명의 매화관 수련생들.

화산관에서 고진유에게 수련을 받았던 이들이었다.

화산관을 통과하여 매화관으로 갔지만, 그날 이후 이들은 검수암에 찾아와서 가끔 수련하던 중 어려운 부분을 묻곤 했다.

찌이익-

변영동은 고기를 입으로 뜯었다.

“사형, 혹시…… 나도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될까요?”

“여전한가 보군.”

“에이, 얼마나 갈구는지! 미치겠어요.”

“원래 성격이 그렇잖아. 어쩌겠냐.”

“사형은 좋겠수다! 혼자서 이런 곳에 있고.”

변영동은 검수암을 둘러보면서 부럽다는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하하, 그럼 빨리 매화관을 통과하면 되잖아.”

“기필코!! 기필코 호경 사형보다 빨리 통과할 겁니다!”

우걱우걱.

크게 소리를 친 그가 한 입 가득 고기를 씹었다.

“싫은 소리 해도 사형은 사형이야. 떼로 모여서 너무 무시하지 말고. 알겠지?”

“네에에…… 아 참! 조만간 중원 무림으로 나가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맞다. 이젠 시간이 됐지. 내가 할 일이 꽤 많거든.”

“그럼 저희들도 같이!”

“아직 멀었어. 최소한 매화검수는 달아야지. 그리고 모두 알고 있잖아? 내가 한 약속은 삼 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거.”

“넵, 압니다.”

“화산천하제일문. 그 일은 절대로 나 혼자 못해. 본 문에서 나를 도와줘야 하지.”

“사형, 저희들입니다!”

“맞아. 때가 오기 전까지 최선을 다해 무공을 익혀. 모두 할 수 있지?”

“넵.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소리치는 열 명의 도사들 목소리에 기합이 올라섰다.

* * *

늦은 시간.

잠을 청하기 위해 누웠던 고진유가 몸을 일으켰다.

‘그분이 어째서 여기까지…….’

급히 도의를 걸친 고진유가 밖으로 나섰다.

어둠 속에 들어서자 잠시 후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민 사숙님, 오셨습니까?”

“조용히 왔건만. 볼 때마다 놀랍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안으로 들어가시겠습니까?”

“아니다. 길게 할 이야기가 아니라서.”

화산제일검 독소응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결정을 통보하듯 말했다.

“너라면 이유를 알겠지. 화산을 내려가기로 했다.”

“사숙님의 결정을 믿습니다.”

“내가 그에게 가겠다고 결심한 이유가 궁금하지 않느냐?”

“……알려주십시오.”

“난 살천성의 운명을 타고났다. 한마디로 살인귀가 된다는 말이지. 만일 화산파에서 나를 거두어주지 않았다면 이 손에 수많은 피를 묻혔을 거야.”

“사숙님께서는 그럴 분이 아니십니다!”

“후후…… 나를 믿어줘서 고맙구나. 나는 줄곧 천살성의 운명을 바꾸기 위해서는 죽음을 택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지. 한데…… 너를 만나고 나서 좀 더 살고 싶어졌다. 허진 그 친구와 했던 약속을 우린 지키지 못했지만, 그의 제자가 이루는 것을 보고 싶거든.”

독소응은 고진유의 손에 가만히 단검을 올려놓았다.

“사숙님, 이 검은 무엇입니까?”

손에 닿는 느낌만으로도 보통 단검이 아니었다.

“사사검(死死劍)이다. 사기(死氣)의 결정이 뭉친 단검이지.”

“이것을 왜?”

“내가 화산을 떠나는 이유는 네가 있기 때문이다. 만일 내가 이성을 완전히 잃게 되는 날이 온다면, 사사검으로 내 심장을 찔러라.”

“사숙님!”

탁탁.

독소응은 대답 대신 고진유를 안으며 가볍게 두드렸다.

“부탁한다. 천살성의 살인귀가 되어 사람을 죽이고 싶지 않다. 너라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알겠습니다.”

“나 대신 장문인께 전언을 부탁하마.”

독소응의 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사라지기 전, 어딘가 홀가분한 듯한 미소만을 남긴 채.

고진유는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깊히 고개를 숙였다.

‘항상 건강히 지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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