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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9화 (39/425)

39화

화산관 수련장 아래로 여명이 찾아왔다.

오전 수련 시간이 시작되기 한 시진 전에 고진유는 이미 수련장에 들어왔다.

몸을 가볍게 푼 뒤 화산복호권의 초식을 복습했다.

파해도에서 십사수매화검법을 처음 익힐 때처럼, 천천히 초식의 동작 하나하나를 수십 번씩 반복했다.

‘사부님께선 수련의 기본은 정확한 움직임이라고 하셨지.’

어느 정도 동작들이 익숙해지자 펼치는 속도가 빨라졌다.

상의를 벗은 상체에서 땀이 주르륵 떨어졌다.

파아앙-!!

허공을 향해 일권을 내지르자 주먹 끝에서 폭음이 울렸다.

‘권공은 몸에 직접 전해지니 오히려 더 펼치고 싶어지는데.’

게다가 섬세하게 움직이는 검공과 달리, 권공은 강약 조절에 신경을 더 써야 했다.

‘기술을 몇 개 섞어도 재밌겠는데?’

고진유는 예전부터 무영도수라 일컬을 만큼 손이 빨랐다.

화산복호권의 서너 가지 초식에서 용하게 펼칠 수 있을 듯했다.

‘흐음…….’

그런 그의 모습을 유형지가 관장실의 창문을 통해 수련장을 내려다보았다.

‘완벽하군. 내가 펼치는 것보다 더 뛰어나. 여기서 삼식구결을 운용한다면 더 배울 것도 없겠어…….’

내력이 아무리 강해도, 무공을 이해하고 익히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하지만 고진유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습득하고 있었다.

‘음…… 강해. 화산복호권의 약점을 모르는 상태라면.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화산복호권의 파훼식을 이미 확보했다는 거군.’

수련 중인 고진유의 모습을 보는 유형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때,

끼이익-

화산관의 정문이 열렸다.

‘저 녀석들이?’

어제 부상을 당했던 수련생들.

‘분명 전부 다쳤을 텐데…….’

평소와 다름없는 복장으로 들어선 수련생들이 고진유를 향해 우렁찬 인사를 했다.

“사형을 뵙습니다!!”

* * *

“후욱, 후욱.”

“크윽……!!”

수련장은 열기로 가득했다.

온몸에 땀이 맺혔지만, 수련생들은 부상당한 부위가 아픈지도 느낌이 없었다.

모두가 고진유를 따라 목검을 들고 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을 펼쳤다.

다만, 지금까지 익혔던 방법과 달랐다.

최대한 느리게.

가볍게 느껴졌던 목검은 천 근의 쇳덩어리처럼 무거워졌다.

부들부들.

손이 흔들리자 목검이 함께 부르르 떨렸다.

“손에 힘을 빼라. 힘은 검을 잡고 있을 정도면 충분하다.”

고진유의 목소리가 수련생들 사이에서 울려 퍼졌다.

툭.

따앙!

목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헛……!”

목검을 떨어뜨린 수련생이 순식간에 굳어 고진유의 눈치를 봤다.

불호령이 떨어질까 눈을 질끈 감은 순간,

“실전에서도 검을 떨어뜨리고 가만히 서 있을 건가?”

“아, 아닙니다!!”

수련생은 황급히 목검을 주운 뒤 다시 초식을 펼쳤다.

“머릿속에 항상 각인시켜라. 연습은 실전이다. 알겠나?”

“넵! 알겠습니다!”

“그럼 다시 매화류개부터 시작한다. 전방에 함성!”

“와아아아아-!!!”

“아아아아아악!!!”

오전 수련이 끝난 뒤.

수련생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헉, 헉, 헉.”

“아이고, 죽겠다.”

“초식밖에 한 게 없는데 이젠 손도 못 올리겠다.”

“으으, 오후 수련을 받으려면 밥을 먹어야 하는데…….”

그들은 식사를 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어어억!!”

그때, 수련생 중 한 명이 상체를 일으키며 앉았다.

“힘들어도 어때? 뭐랄까…… 예전하고 느낌이 다르지 않아?”

“……흐으음.”

수련생들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여태까지 무턱대고 목검을 내리쳤을 때와 기분이 달랐다.

겨우 반나절 수련했건만, 강해진 느낌이 들었다.

끄덕끄덕.

그들의 시선은 유형지와 대화를 하는 고진유에게 집중되었다.

“호정 사형, 대단하지 않아? 우리와 처음부터 같이 움직였는데 전혀 힘든 기색이 없어.”

“그러게. 우리가 오기 전까지 홀로 권공을 수련했다면서? 평중이가 봤다고 하던걸.”

“지옥혈림 흑명군이랑 남궁세가 살군검까지 이겼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봐.”

“그게 진짜야?”

벌떡!!

변영동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뭣들 해. 밥 먹으러 가자! 시간 없어. 빨리 오후 수련을 해야지!”

“어? 어…… 해야지.”

수련생들은 하나둘씩 일어나더니 삽시간에 우르르 수련장에서 빠져나갔다.

씨익.

수련생들의 대화를 들은 고진유의 입가에 미소가 그려졌다.

* * *

수련관 뒤편에 마련된 개인 연무장.

고진유는 유형지가 보는 앞에서 화산복호권의 초식을 완벽하게 시전했다.

트집을 잡고 싶어도 완벽해서 말도 하지 못했다.

‘이거 참…… 어제 하루 초식을 펼친 것밖에 없거늘…….’

단순한 초식을 보여준 것밖에 없다.

눈앞에서 직접 봐도 믿기지 않았다.

“빠르군. 하긴 천매관을 통과할 정도라면…… 이 정도는 쉽게 익힐 수 있는지도 모르겠어.”

“사숙님께서 잘 가르쳐 주셔서 된 듯합니다.”

“그렇게 말이라도 해주니 고맙군. 내가 보여준 건 초식을 한 번뿐인데 말이지.”

“화산권절이신 화산검선이 직접 보여주신 것만으로 화산복호권의 정수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녀석이 나를 놀리는 것인가? 단순한 동작이거늘.’

“꿈보다 해몽이 좋군. 이미 알고 있겠지만 검공이나 권공이나 구결 운용은 같다. 화산복호권 풍강벽의 구결 운용이다.”

슈우우욱!!

내력을 일으키자 유형지의 신형 주위로 돌풍이 솟구쳤다.

“복호지풍(伏虎之風)은?”

“기세천하(氣勢天下)라 했습니다.”

‘역시 알고 있어.’

고진유를 힐끔 본 유형지가 오 성의 내력으로만 내력을 올려 풍자결을 운용한 구 초식을 펼쳤다.

‘이게 풍자결로 펼친 화산복호권이군. 전력을 다하면 좋은 무공이 되겠어.’

유형지의 움직임이 멈추자 이번에는 고진유가 앞으로 나오며 풍자결의 화산복호권을 시전했다.

씨이이이잉-

휘이이이잉-!!

양손으로 일권을 내지를 때마다 바람 소리가 귀를 울렸다.

‘참…… 어이가 없을 정도군.’

역시 한 번에 풍자결의 권공을 펼쳤다.

이미 알고 있는 듯 펼친 고진유의 무공은 자신이 보여준 것과 천지차이였다.

“두 번째로 강자결이다.”

“사조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복호지강(伏虎之剛)은 금강호신(金剛護身)이라 했습니다.”

“맞다.”

유형지의 일권에서 금강의 단단함이 느껴졌다.

역시나 그의 움직임이 끝나자 고진유가 뒤이어 강자결의 화산복호권 구초식을 이어서 시전했다.

쿠웅.

한 발씩 내딛는 걸음에 바닥이 파이고, 일권의 끝에 묵직한 금강력이 일어났다.

화산복호권의 일권이 펼쳐질 때마다 천하를 깨뜨릴 위력이 나왔다.

‘미치겠군…….’

유형지는 경악할 정도로 믿기지 않았다.

일부러 내력을 낮추어 보여주었다.

하지만 딱 한 번 보고 펼친 고진유의 무공은 더할 나위 없이 강했다.

‘화산복호권의 초식에 구결의 진기가 흐르는 순서를 단 한 번에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니…….’

그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마지막으로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벽자결은 무엇이라 아느냐?”

“복호지벽(伏虎之劈) 파천세(破天世)라 했습니다.”

우우우웅-!!

화산복호권을 펼치는 유형지의 일권에 파천의 강기가 푸르게 빛나는 도중 사라졌다.

“이건 내가 화산복호권을 오성밖에 익히지 못한 탓이다. 만일 네가 극성으로 익히게 된다면 일권이 떨어지는 십 장 주위로 파천의 강기가 퍼져 나갈 것이다.”

“알겠습니다.”

“화산복호권에 대해서는 더 이상 너에게 알려줄 것이 없다. 앞으로 네가 권공을 익히는 데 막히는 부분이 생기면 찾아오너라.”

유형지는 빠르게 마무리를 지었다.

‘위험해도 하는 수 없군. 빨리 확인을 한 뒤 처리해야 해. 그냥 둔다면 너무 큰 걸림돌이 될 것이 분명하다.’

“감사합니다.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그렇지. 혹시 저녁에 시간을 내줄 수 있느냐?”

“특별히 다른 일은 없습니다.”

“좋군. 한잔하도록 하자.”

* * *

드륵.

서랍을 열자 안에서 붉은 주머니가 보였다.

‘흐음…….’

붉은 주머니에서 꺼낸 옥병.

‘이걸 복용하면 일시적으로 묻는 말에 무조건 대답하지.’

무색무취의 심령단이 술병 안으로 떨어졌다.

그는 닫혀 있는 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휴우…….’

호흡을 크게 하며 숨을 내쉰 그가 술병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호정 사질.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네.”

“아닙니다.”

고진유는 그의 손에 들린 술병을 보며 말했다.

“사숙님께서 말씀하신 술입니까?”

“화산의 동하석벽에서 따와 술을 담았지. 석청주(石淸酒)라고 귀한 손님이거나 좋은 일이 있을 때 꺼내는 술이라네.”

“이런 귀한 술을 제가 마셔도 되겠습니까?”

“허허허, 호정 사질은 훗날 천하제일인 될 것이라 장담하지 않았나. 미리 잘 보이려고 하는 바이네.”

“사숙님, 저는 천하제일인이 아니라 천하제일문을 만들겠다고 했습니다만…….”

“하하, 그게 그 말 아닌가? 천하제일인이 되어야만 화산이 천하제일이 되는 것이지.”

유형지는 술병을 앞으로 내밀었다.

스윽.

고진유도 그를 따라 술잔을 들었다.

“한 잔 시원하게 마시게.”

“네. 사숙님.”

석청의 달콤함이 입안에 퍼졌다.

‘마셨다.’

유형지는 자연스럽게 옆을 바라보았지만 그의 심장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조금만 있으면 심령단의 기운이 머릿속을 제어할 것이다.’

고진유는 술 안에서 이상한 기를 감지했다.

‘……이건 뭐지?’

혈맥을 타고 흐르는 기.

석청주가 아닌 그 속에 함께 들어온 기가 흐르는 것을 빠르게 파악했다.

‘술에서?’

눈앞에 있는 음식들엔 아직 손을 대지 않았다.

오직 하나 있다면…….

유형지가 따라준 술뿐.

‘사숙…… 설마…….’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게 없었기에, 고진유는 모르는 척 가만히 앉았다.

“사숙님께서도 한 잔 받으시지요.”

“고맙구나.”

유형지는 받은 술을 아무렇지 않게 마셨다.

‘독이라면 머뭇거리지 않고 마시지 않았겠지?’

같은 술인데 한쪽만 영향을 받는다?

사전에 중독이 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게 확실했다.

“사질도 한 잔 더 받게.”

“고맙습니다.”

유형지는 술잔 가득 부었다.

술병에 이상한 짓만 하지 않았다면 술은 정말로 맛있었다.

찌리리릿.

술과 함께 탁기가 몸속으로 들어왔다. 곧장 머리를 향해 빠르게 올라가는 탁기를 곧바로 중단전으로 밀어 넣었다.

‘만일 중단전에 새로운 방을 만들지 않았다면 들켰겠는데.’

그 자리에서 해독하거나 탁기를 밖으로 내보냈다면 유형지가 바로 알아차렸을 터.

그렇게 술병을 거의 비워갈 무렵.

유형지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기이하다고 할까.

마치 전음을 보내는 듯 머릿속으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사질의 원래 이름이 뭔가?]

“고진유입니다.”

고진유는 순순히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사질의 사부가 화산검절인 허진이 맞는가?]

“맞습니다.”

‘몸속에 들어온 탁기는 질문에 똑바로 대답하도록 만드는 거구나.’

화산사절이며 화산관의 관장인 허주 유형지는 복면인들과 같은 소속이 분명했다.

‘이런 건 이골이 나 있지.’

벽화당 시절엔 싫어도 좋은 척, 아파도 아프지 않은 척해야 했다.

더 맞지 않기 위해.

살기 위해.

고진유의 표정에서 흔들림이나 변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청석은 어디에 있는가?]

“사부님께선 등선하셨습니다. 괴도에서 지옥혈림의 흑귀들에 의해 목숨이 잃으셨지요.”

유형지는 궁금했던 질문을 준비했다.

[혹시 자네 사부가 흑귀에게 잡힌 이유에 대해 말해주던가?]

“무림맹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이라 하셨습니다.”

[어떤 말을 했지? 그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대로 말해보게.]

“사부님께선 무림맹에서 복면인들과 마주쳤다고 했습니다.”

[혹시 그들에게서 뭔가 얻은 것은 없던가?]

“아무것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복면인들이 고문을 했지만 아무것도 모르기에 답을 할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고진유는 화산파에 올라온 뒤 했던 말을 그대로 똑같이 했다.

‘진짜…… 모른다고?’

진실은 다를 것이라 여겼던 그의 생각이 틀렸다.

‘심령단을 복용하면 거짓을 말할 수 없다. 허진이 그 물건을 가지고 가지 않았다면 다른 누군가가 그곳에 있었다는 말인데?’

유형지는 머리가 복잡해졌다.

‘빨리 상부에 알려야겠어.’

오히려 상황이 더 나쁘게 돌아가는 듯했다.

“그렇군. 되었다.”

유형지의 목소리가 원래대로 변했다.

“사숙님, 술을 전부 마신 모양입니다.”

고진유가 아무렇지 않게 술병을 흔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지. 좋은 시간이었네.”

“아닙니다. 저 또한 귀한 술을 마셔서 좋았습니다. 다음에는 제가 좋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술자리에서 일어났다.

화산관을 나선 고진유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화산의 밤이 어두웠다.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어. 벽화당 두목처럼 찾아가서 끝을 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사부의 원수를 찾는 일은 단순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었다.

직접 변절자를 보는 순간, 무턱대고 움직였다가는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화산파에 숨어든 변절자.

유형지는 무슨 짓을 할지 모르나, 혼자만으로 화산파를 좌지우지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었다.

‘유형지 뒤에 분명 더 큰 인물이 숨어 있다. 사조님께 말씀드리기 전에 우선 증거부터 확보해야 해.’

사부가 숨긴 물건에 대해 모른다고 말했을 때, 유형지는 분명 당황했다.

‘외부에 연락을 취할 게 틀림없어.’

고진유는 검수암으로 가던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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