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얍! 얍! 얍!
수련생들은 목검을 든 채 위에서 아래로 내리치기를 계속했다.
하지만 그들의 시선은 모두 저 멀리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나에게 권공을 배우겠다는 말이더냐?”
“그렇습니다, 허주 사숙님.”
“권공이라…… 매화관의 허공에게 들었다. 네 무공은 이미 그를 뛰어넘었다고 하던데.”
“권절이신 화산권선의 권공은 화산 최고라 하셨습니다.”
“천매관을 통과하고 화산제일검 허민에게까지 인정을 받지 않았느냐? 그 실력이면 스스로 권공을 익혀도 될 듯하거늘.”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물러가겠습니다. 사숙님 말씀처럼 혼자 익힐 수 있습니다. 사조님의 말씀을 따를 뿐이었습니다.”
고진유의 대답에 유형지는 자존심이 상했다.
고진유가 권법을 배우고자 온 이유는 그가 권절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장문인과 집법전주가 스스로 익혀도 될 만한 고진유를 그에게 보낸 이유는 시간을 단축시키기 위함이었다.
그 사실을 고진유도 잘 알고 있었다.
최고라 말했던 것도 예의상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너무 자만심이 강하군.”
“그렇게 들렸다면 죄송합니다.”
유형지는 무공을 똑바로 가르쳐 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상부의 명에 따르지 않을 수는 없는 일.
‘일반적인 무공구결. 그것만 알려주면 될 일이다.’
“마음에 안 드는 것은 아니다. 사질이 원한다면 알려주어야지. 생각하고 있는 무공이 있느냐?”
“화산복호권을 익히고자 합니다.”
“화산복호권을?”
화산복호권도 나쁘지는 않지만, 고진유의 위치라면 그보다 더 상승의 권공을 익힐 수 있었다.
“화산복호권을 익히고자 하는 이유가 있느냐?”
“제가 익힌 신법과 상생할 수 있을 듯합니다.”
“신법이라…… 본 문의 신법인가?”
“아닙니다. 제가 스스로 익힌 신법입니다.”
“그 나이에 신법을 창안하다니 대단하군.”
“소소합니다.”
“알겠다. 네게 화산복호권을 알려주마. 하지만 나 또한 완벽하게 수련을 하지 않았기에 숙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수련을 할 수밖에 없다.”
“감사합니다. 최선을 다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렇지. 혹시 내게 무공을 수련하는 동안, 저 녀석들에게 십사수매화검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느냐?”
고진유는 목검을 휘두르려고 있는 수련생들을 돌아보았다.
“제가 저들을 말입니까?”
“네가 익힌 매화검법은 최고라 들었다. 이젠 좋으나 싫으나 같은 동문이지 않느냐.”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오전에는 저 녀석들을 가르쳐 주고, 오후에는 권공을 수련하도록 해라.”
“지금부터입니까?”
“따로 준비할 게 있느냐?”
“아닙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고진유는 자리에서 일어난 뒤 곧장 수련생들에게 걸어갔다.
오십여 명의 눈동자가 다가오는 고진유을 따라 움직였다.
“모두 주목. 허주 사숙님과 방금 이야기를 마쳤다. 당분간 오전에는 내가 너희들의 매화검법 수련을 도와줄 것이다. 혹시 질문 있는 사람?”
웅성웅성.
수련생들 속에서 술렁거림이 일어났다.
“무슨 문제 있나?”
“저어…….”
한 명의 수련생이 손을 들었다.
“말해.”
“사형의 무공을 직접 견식하고 싶습니다.”
“내가 가르칠 만한 실력이 되는지 확인하고자 함인가?”
“아닙니다. 호정 사형의 무공이 높다고 하기에 궁금할 뿐입니다.”
“좋다. 나와 비무를 하고 싶은 사람은 전부 나오도록.”
수련생들은 서로 얼굴을 보았다.
“제가 먼저 사형께 비무를 청하고자 합니다.”
질문을 했던 수련생 중석찬이 먼저 앞으로 나왔다.
모두가 고진유와 비무를 해보고 싶은 듯, 수련생들 모두가 한 명도 빠짐없이 한 발 나섰다.
“한 번에 모두 덤빌 건가? 알아서 택해.”
“사, 사형께서 괜찮으시다면 한 명씩 비무를 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하지.”
사의검을 내려놓고 목검을 잡은 그가 수련장 중앙으로 나왔다.
“차례대로 들어오도록.”
파앗!!
고진유의 말이 끝나는 동시에, 중석찬이 가장 먼저 앞으로 달려 나왔다.
십사수매화검법의 매화화류 초식이 고진유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휘익!
중석찬의 목검이 원을 크게 그리며 고진유의 허리를 향했다.
따아악!
하지만 그 전에 고진유의 목검이 그의 어깨를 내리쳤다.
빠직.
뼈에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아악!”
중석찬은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다.
“매화화류의 구결은 회(回). 회영지속(回映之速)이거늘, 회가 늦다면 의미가 없다. 다음.”
타아앗!
고진유의 목검이 빠르게 수련생의 어깨를 찔렀다.
이번에는 공중으로 날아오른 수련생이 목검을 떨어뜨렸다.
“이것 또한 같다. 하나 회(回)가 빠르다고 회동무요(回動無搖)이면 이렇게 당하지. 다음.”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그 또한 견장골이 부러진 듯 끙끙거렸다.
두 명의 수련생이 일 초 만에 바닥에 뒹굴었다.
“제가 도전하겠습니다!”
곧바로 육중한 체격을 지닌 수련생이 매화이산의 초식을 펼치며 목검을 뻗었다.
미세하지만 매화의 잔영이 만들어지며 고진유를 포위했다.
“멋진 한 수다. 하나 매화이산은 착(戳)의 결정체. 육십네 개의 매화를 순서대로 피우지 못한다면 펼치지 않는 것만 못하지.”
부우우웅-
목검이 지나가는 궤적을 따라 주위를 흐르던 매화가 밖으로 물러났다.
“어억!”
가슴에 목검이 부딪치자 뼈가 부러진 것처럼 아파왔다.
“다음. 빨리 나오도록. 기다리는 사람이 많으니까.”
고진유의 손속은 매웠다.
남은 수련생들은 머뭇거렸다.
앞의 세 사람은 그들 동기 중에서 무공이 가장 강했다.
“검을 잡았다면 죽을 각오로 싸워야 해. 겨우 뼈 하나 부러진 것밖에 없다.”
“…….”
“안 올 거면, 내가 갈까?”
“으, 으아아아!”
가장 앞에 있던 수련생이 목검을 들고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매화비광의 초식.
십사수매화검법의 초식 중 가장 빨랐다.
고진유의 가슴으로 목검의 끝이 일직선으로 날아왔다.
“매화비광의 구결은 진(進). 하지만 변화가 없는 움직임은 그저 목을 상대에게 맡기는 것뿐.”
쉬이이익--
고진유의 목검이 사선으로 떨어졌다.
“아아악!!”
수련생의 팔뚝이 단번에 부서진 듯했다.
한 번 움직일 때마다 목검에 의해 수련생들의 뼈가 깔끔하게 부러졌다.
‘저, 저 녀석이……!!’
이대로 가다간 수련생 전부가 부상을 입을 판이다.
‘서, 설마…… 수련시키지 않으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그사이 벌써 열 명의 수련생들이 바닥에서 뒹굴었다.
유형지는 다급히 소매를 떨치고 일어났다.
“잠깐!!”
수련장의 모든 움직임이 멈추었다.
“호정! 이 녀석들을 전부 다치게 만들 생각이더냐?”
“사숙님, 목검이라 하나 검을 든 이상 진심을 다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나 이건 비무가 아니더냐?”
유형지는 여전히 못마땅했다.
“비무도 마찬가지입니다. 근데 이들에게선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비무를 비무만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진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목숨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림에서 적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는 사람은 본인입니다.”
“…….”
“내가 보는 앞에서 아는 이들이 죽는 모습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고진유는 수련생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다음.”
고진유는 이대로 멈출 생각이 없었다.
* * *
“아고고…… 죽겠다…….”
“다들 괜찮아?”
수련생들은 신음을 내면서 서로 마주 봤다.
“괜찮긴. 팔이 부러진 것 같아.”
“난 어깨가 박살 났어.”
“킥킥…….”
수련생 한 명이 웃긴 듯 소리를 냈다.
“뭐야? 왜 웃어? 아파 죽겠는데?”
“그냥…… 다들 자빠져서 어디 아프다고 하잖아.”
그의 말에 주위 바닥을 둘러보았다.
피식.
다른 수련생들도 기가 찬지 실소가 나왔다.
“사형도 대단하네. 진짜 우릴 전부 패버리다니.”
“아이고…… 야, 빨리 약의원에 가자. 안 가면 또 맞을라.”
“그러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사람 같아.”
수련생들은 하나둘씩 일어나 수련장을 나섰다.
고진유는 기어이 화산관 수련생들 전원과 비무를 끝냈다.
화산관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치료를 위해 수련생들이 줄지어 약의원으로 향하자, 넓은 수련관에는 단 두 사람만이 남았다.
“허, 허허.”
유형지는 허탈하면서도 어이가 없었다.
“끝내 모두 보내는구만.”
“저들은 각자 집안에서 너무 귀하게 자란 녀석들입니다.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한 번 정도 보여줄 필요가 있었습니다.”
“내가 약하게 키웠다는 말인가?”
“제가 말하는 것은 육체적인 수련이 아닙니다.”
“…….”
그도 무슨 말인지 알았다. 하나 역시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나도 네 방식대로 해야겠구나.”
“상관없습니다.”
“알겠다.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나 또한 최선을 다해야겠지.”
“감사합니다.”
유형지가 사의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부터 화산관에 올 때 검은 필요 없다. 맨몸으로 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화산복호권의 초식에 대해서 아느냐?”
“구 초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 세 개의 구결 풍강벽(風剛劈)으로, 총 이십칠 식으로 된 권공이라 들었습니다.”
“정확하다. 중원의 타 문파에도 이와 비슷한 복호권은 많지만, 본 문의 복호권은 화산을 닮아 동작이 크며 웅장하지.”
“네. 알겠습니다.”
“우선 아홉 초식을 한 번 펼쳐보마.”
고진유는 뒤로 서너 걸음 물러났다.
“흐으으으읍.”
유형지는 호흡을 하며 복부에 힘을 모았다.
그리고 우렁차게 소리쳤다.
“포호기천(咆虎氣天)!”
화산복호권의 기개식.
누워 있던 호랑이가 포효하며 일어나는 듯한 기세가 하늘을 솟구쳤다.
고진유는 그의 뒤에서 초식을 따라 펼쳤다.
처음 펼치는 동작이지만 완벽할 정도로 같은 동작.
“이번에는 이 초식이다.”
호소산림(虎騷山林)의 초식.
내력을 실지 않았지만 뻗어낸 일권에 공간이 쪼개질 듯했다.
고진유도 그의 초식의 움직임을 눈여겨본 뒤 일권을 가볍게 뻗었다.
퍼어어엉--!!
공간이 터지듯 파동이 울렸다.
‘허어…… 이 녀석. 한 번에 완벽히 따라하다니……!’
유형지의 눈빛에 놀라움이 담겼다.
‘천생이 도둑놈이었던 녀석이 무재였단 말인가?’
쉽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유형지는 다음 구 초식을 빠르게 펼쳤다.
호위무용(虎位武勇) 흑호탐조(黑虎探操) 승천백호(昇天白虎) 복호안광(伏虎眼光) 설원호보(雪原虎步) 대호혈향(大虎血香) 비호도하(飛虎渡河).
한 초식이 끝나는 순간, 그를 따라 그대로 같은 초식이 이어졌다.
‘이 녀석…… 위험한 놈이다. 이 정도로 뛰어난 놈일 줄이야.’
유형지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어졌다.
훗날 걸림돌이 될 싹은 미리 잘라야 하지 않을까?
“사숙님, 제가 제대로 펼치지 못했습니까?”
“아니다. 훌륭했다. 혹시 네 사부에게 복호권을 배웠느냐?”
“아닙니다. 화산관에 오기 전에 무공서적을 봤습니다.”
“그것이 전부인가?”
“그렇습니다.”
“그렇군…… 화산복호권을 본 느낌은 어떻지?”
“제가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복호의 기세는 마치 천하를 삼킬 듯합니다.”
“맞다. 본 문의 그 어떠한 권공보다 가히 폭발적인 위력을 낼 수 있지. 다만 아쉬운 점은 폭발력을 뒷받침할 만한 본 문의 신법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고도 익히기에는 부족함이 없지.”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럼, 아홉 개의 초식이 몸에 익숙해질 때까지 익히도록 해라. 그 뒤에 삼식구결에 대해 알려주마.”
“감사합니다.”
고진유는 허리를 숙였다.
* * *
소문은 정말 빨랐다.
화산관에서 일어난 작은 사건은 순식간에 도당 전체로 퍼졌다.
“호정.”
오후 수련을 마친 뒤 집법당으로 가는 고진유의 앞을 청년 도사들이 막아섰다.
매화관의 수련생들이었다.
“사형들이군요. 오랜만입니다.”
“흥! 그래도 사형이라 부르는군.”
그들 사이에서 장두총이 비꼬았다.
“호경 사형, 무슨 일입니까?”
“몰라서 묻나? 오늘 화산관에서 사고를 쳤다는 말을 들었다!”
“사고를?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화산관의 애들을 전부 약의원으로 보냈다지?”
“비무를 청하기에 가볍게 상대를 해줬을 뿐입니다.”
“허어? 만일 내가 비무를 청한다고 해도 약의원에 보내겠군?”
“비무야 원하신다면 언제든지요.”
고진유는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호정,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본 문에는 규율이 있다. 사형을 다치게 한다면 그건……!”
고진유는 곧바로 손을 들어 그의 말을 막아섰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이봐! 세상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어. 아무리 잘난 놈도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법이라고. 알겠냐?”
“그렇긴 하지요.”
“그들에게 가서 사과를 해라! 만일 하지 않는다면 넌 본 문에서 고립될 거다.”
“아, 이제 보니 사형이 내 생각을 해주는 거였군요. 감사합니다. 물론 그들을 다치게 한 것에 대해서는 따로 사과하겠소이다.”
“어엉? 그, 그렇……!”
“그럼 더 이상 볼일이 없을 것 같은데, 집번전주이신 사조님을 뵈러 가야겠습니다. 같이 가겠소?”
허둥지둥하던 장두총과 대여섯 명의 청년 도사들이 옆으로 물러났다.
“혹시나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다면 여기서 기다리지 말고 화산관으로 바로 오시죠. 얼마든지 기다리겠습니다.”
고진유는 유유히 그들 옆을 지나 집법전으로 향했다.
‘크윽, 저놈이……!! 나를 계속 무시해? 어디 두고 보자.’
장두총이 사라지는 고진유를 보며 주먹이 부서지도록 힘을 주었다.
* * *
집법전의 복도를 지날 때마다 엄숙하고 삼엄했다.
“사조님, 호정입니다.”
“들어오너라.”
집무실 앞에 도착한 고진유가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수련은 끝났느냐?”
“네, 오늘은 초식에 대해 익혔습니다.”
“허주가 다른 건 몰라도 권공 하나만큼은 잘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열심히 배워라.”
“알겠습니다.”
고진유가 자리에 앉자, 양군경이 물었다.
“화산관의 일은 들었다. 목검으로 전부 골절시켰다지? 왜 그랬느냐?”
“화산관을 통과하면 제 사제들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맞다. 대부분 화산관을 통과할 수 있지. 그렇게 되면 정식으로 네 사제가 되느니라.”
“사제들을 가르칠 기회가 주어졌으니, 이왕이면 제대로 하고 싶었습니다. 무림에서 목숨은 남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괴도에서부터 화산으로 오기까지, 고진유는 지옥혈림의 흑귀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다.
사부님을 죽인 놈들을 찾을 때까지, 그리고 화산이 천하제일문이 될 때까지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고.
“예전 하후세가에서 사형들은 목숨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 아까워했었습니다.”
“못난 모습들이었구나.”
“오 년 안에 천하제일문이 될 화산파의 제자들이 약해서야 되겠습니까.”
천하제일문 오년지계.
그의 말을 들은 양군경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만일 이런 일로 누군가 시비를 건다면 내가 책임지고 처리해 주마.”
“고맙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고진유는 미소를 지었다.
등 뒤로,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벽이 그를 지켜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