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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31화 (31/425)

31화

파다다닥!

끝없이 펼쳐진 깊은 산 위를 빠르게 날아가는 한 마리의 전서구.

목적지에 도착했는지 놈이 분지 주위를 서너 바퀴 돌기 시작했다.

휘이익!

곧 아래로 떨어져 내린 전서구는 삼 층 건물의 지붕 위를 몇 바퀴 돈 뒤 열린 창가로 날아들었다.

“오호. 먼 곳에서 왔군.”

중년인은 전서구의 다리에 묶인 붉은색의 전서통을 보았다.

“오랜만에 전서를 보내는군.”

중년인이 멀리 섬서에서 온 전서통을 풀어 얇게 말아놓은 전서를 빼냈다.

‘흐음…….’

미소 짓고 있던 사내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이런…….”

당황한 듯한 목소리.

잘못 읽은 것도 아니건만, 믿기지 않는 소식에 중년인은 전서를 재차 확인했다.

-화산도협검절제자.

정확히 여덟 글자.

지옥혈림에서 유난히 화산도협에게 집요한 관심을 보인다는 사실은 그도 알고 있었다.

“지옥혈림, 이것들이 욕심을 부리고 있군.”

중년인의 입가에 살기가 슬그머니 피어올랐다.

“우선 전주께 먼저 보고를 해야겠지?”

* * *

처억.

천문전(天問殿)의 현판 아래 백사건을 두른 사내가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기다리고 있었다.

“수곡자님, 오셨습니까?”

“전주께서는 안에 계시는가?”

“여의정에서 기다리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올 거라 예상하셨군.’

“제가 모시겠습니다.”

사내가 앞장서며 그를 여의정으로 안내했다.

천문전 안에 세워진 작은 정자.

중년인의 눈에 멀리 여의정(如意庭)에 앉아 책을 읽는 노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백색 수염이 길게 내려선 그의 옆모습은 마치 선계에 든 신선과 같이 보일 정도로 고고했다..

천문전주 나하중이 보던 책을 덮었다.

“허허, 어서 오시게.”

“전주님을 뵙습니다.”

“같은 곳에 지내는데도 오랜만에 보는 것 같지 않는가? 자주 얼굴을 보세나.”

“죄송합니다. 제가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군요. 종종 걸음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후후후, 고마운 말이야. 여기에 앉도록 하게. 자네는 따뜻한 차라도 준비해 오게.”

“알겠습니다, 전주님.”

사내는 허리를 짧게 숙인 뒤 여의정을 물러났다.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앉았다.

“전서구 한 마리가 날아온 듯하더군. 그래, 무슨 일로 찾아왔던가?”

마치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한 눈빛.

수곡자는 공손히 전서를 꺼냈다.

“여기 있습니다. 섬서에서 날아온 소식입니다.”

“섬서라…….”

나하중이 엄지손가락만 한 두께의 전서를 펼쳤다.

꿈틀.

그리고 하늘이 무너져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던 그의 표정이 미세하게 찡그려졌다.

“이게 사실이라면 시끄럽게 되겠군.”

“그렇사옵니다.”

‘주작이 날아오르더니…… 이런 일이 생길 것이었나.’

한 달 전부터 남방의 점괘가 꽤나 사나웠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지옥혈림에서 덤비는 걸로 봐서는 조사를 해보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렇긴 하지. 의뢰를 받지 않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을 보니 무언가 있음을 눈치챘군.”

“전주님, 지옥혈림에 경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뭐라고 할 텐가? 그 녀석이 지니고 있는 물건은 우리 것이니 네놈들은 물러나는 게 좋을 것이다? 조용히 알겠다면서 물러날 놈들 같은가?”

“그건…… 아닙니다.”

나하중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멍청한 놈들…… 처음부터 지옥혈림에 맡기지 않았어야 했거늘.”

“…….”

중원인들 몰래 처리하기 위해 지옥혈림에 의뢰했던 결정을 나무란 나한중이 혀를 끌끌 찼다.

“송구하옵니다. 이런 일이 생길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지나간 일을 끄집어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닌 것을. 화산도협이란 인물이 그의 제자가 확실하다면 그 물건이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있겠군.”

“저 또한 같은 생각입니다.”

“이번에는 다른 곳에 의뢰하지 말고 직접 해결하는 방법으로 하게.”

“화산으로 가도록 조취를 취하겠습니다.

“천주님께서 폐관에서 나오시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되어야지 않겠나.”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화산에도 우리 사람이 있지 않겠습니까?”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되는 일이네. 우린 중원에서 그림자로 살아야 하네. 때가 되기 전까지는. 물론 그때가 얼마 남지 않았네만.”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중원에서 우리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나하중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어찌 확신할 수 있겠는가? 세상에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있지. 그중에는 똑똑한 녀석도 있는 법이거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개중 특출한 녀석이 있다 해도 그것만으로는 우리를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수곡자의 눈동자가 빛났다.

세상은 조만간 자신들의 손에 들어 올 것이었다.

* * *

화산도협 고진유를 제자로 인정한다는 안건은 대회의에서 과반수로 통과되었다.

화산파 삼대제자 호정.

고진유의 새로운 이름이었다.

고진유는 묵경과 인양을 만나기 위해 여가전을 찾았다.

서봉 가장 왼쪽 지역에 세워진 여가전은 화산파에 참배객이나 귀빈객들이 지내는 장소였다.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건만 묵경과 인양은 오랫동안 못 본 것처럼 그를 반가이 맞았다.

“잠자리는 괜찮던가요?”

“그럭저럭. 괜찮았어.”

“저도 괜찮았습니다.”

인양도 얼른 대답을 했다.

묵경은 궁금한 게 많은지, 곧바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화산파에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호정이란 도명을 받았습니다.”

“잘됐군! 이젠 진짜 화산파의 제자야.”

“음…… 글쎄요. 아직은 어떠한지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뭐, 그것도 그렇겠지.”

묵경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제 화산파 제자가 되었는데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지? 여기에 계속 있을 텐가?”

“아닙니다. 할 일이 있거든요. 내려가야 하긴 하는데…….”

고진유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렸다.

“언제 내려갈지는 모르고?”

“……얼마 전에 흑명군과 싸웠지 않습니까.”

“맞지. 제법 강한 놈이었어.”

“지옥혈림에는 그보다 강한 흑신왕도 존재한다고 들었습니다. 내가 지금 그들과 싸운다면 승산이 있을까요?”

“그건…… 확실히 모르지. 싸워보지도 않고 어떨지 어떻게 알겠어.”

묵경은 애써 말을 돌려 말했다.

“그런가요? 그렇다면 남궁허, 그 자와 싸운다면?”

“……음.”

남궁허와의 대결은 물어보나 마나였다.

고진유가 아무리 강한 무력을 지녔다고 해도 현재 남궁허와의 비교는 하늘에 떠 있는 태양과 반딧불의 차이였다.

“어려운 모양이군요.”

“뭐어…… 그가 워낙 고수인지라.”

“그는 남궁세가의 절대고수가 맞지요. 그래서 화산의 무공으로 그를 이길 수 있는지 사조님께 물어봤습니다.”

“뭐라고 하시던가?”

“만일 남궁허와 싸워 진다면 사람이 지는 것이지 무공이 지는 것은 아니라 하셨습니다.”

“맞는 말이다. 화산파의 무공 또한 남궁세가에 비해 떨어지지 않지.”

“일 년 동안 화산파에서 수련을 하면 그를 이길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일 년 동안?”

“그를 이기려면 십 년이 필요하다 하시더군요.”

“어? 십 년도 빠른 거 아닌가?”

겨우 약관의 나이.

서른에 남궁허를 이긴다면 그 또한 엄청난 대사건이 될 터였다.

“십 년은 늦어요. 그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럼?”

“딱 이 년. 화산파에서 이 년 동안 수련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묵경의 잘생긴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황당하기도 하고 놀랐는지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정말로 이 년 만에 할 수 있다고?”

“물론 확신할 순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 있습니다.”

“뭐…… 네가…… 자신 있다고 한다면야…….”

“그래서 묵경 형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뭔데?”

“이 년 동안 인양을 부탁하고 싶어요.”

“인양을?”

화산파에서 이 년간이나 인양이 지낼 수는 없었다.

“……알겠다. 이 년 동안 내가 잘 데리고 다니마.”

“고맙습니다, 형.”

고진유를 미소를 띠며 인양을 보았다.

자신을 따라오겠다고 하는 그 순간, 그를 책임지기로 한 것이니까.

“이 년이다. 그동안 내가 가르쳐 준 걸 수련하는 거다.”

“네, 진유 형. 열심히 할게요.”

“이 년 뒤에 우리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객점에서 만나기로 하자.”

고진유가 손을 뻗어 앞으로 내밀었다.

척척.

그 위로 두 사람도 손을 올렸다.

“묵경 형과 인양을 만나서 좋았습니다. 이 년 뒤에 다시 보는 겁니다.”

“이거 나도 놀고먹을 수만은 없겠네.”

이 년의 시간 동안 고진유는 천하제일을 향해 달릴 것이다.

‘이렇게 된 이상 동생보다 못나 보일 수는 없지.’

묵경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무공을 진지하게 익힐 생각이 들었다.

“푸흐, 묵경 형, 앞으로 무공까지 더 강해지만 중원의 모든 여인들이 전부 형만 보게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때는 풍류미군이 아니라 천하제일풍류왕이 될지도요.”

묵경은 대소를 터뜨렸다.

“아하하하! 천하제일풍류왕이라…… 좋긴 한데. 좀 더 멋있는 별호가 있을 것 같지 않아? 미풍옥제(美風玉帝)라든지?”

“푸흐, 스스로 별호를 짓는 겁니까? 그래도 아마 중원인들은 풍류왕이라 부를 것 같은데요?”

“아하하! 그럼 한번 내기해 볼까?”

“그렇게 하든지요. 뭘 걸 겁니까?”

“흐음, 뭐가 좋을까?”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는 것으로 하죠. 부담이 되지 않는 한도에서.”

“좋아! 그렇게 하자고. 하하, 증인은 인양이 서면 좋겠군.”

“네, 제가 증인이 되겠습니다.”

그때까지는 농담으로 생각했던 세 사람이었다.

* * *

파앗!

고진유의 검에서 수십 개의 매화 잎이 흩날렸다.

백색의 매화도, 붉은색도 아닌 새하얀 투명한 매화 잎이 양군경의 눈앞에서 떨어져 내렸다.

‘대체…… 이 아이는 어떻게 된 것이냐?’

투명한 매화는 처음 보았다.

한진검을 뻗어 떨어지는 매화 잎을 쳐냈다.

쏴아아아--

강한 충격과 함께 매화 잎들이 연쇄적으로 반응을 일으키며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공중에서 불꽃이 터지면서 사라졌다.

‘아…… 매화 향기가 이리도 진하며 청명할 줄은…….’

화산의 매화는 용맹하며 날카로움을 지녔다.

고진유의 매화는 화산의 기개를 충분히 보여주고도 남았다.

세 번의 초식을 주고받으면서 알게 되었다.

‘멋지구나. 이 년이란 시간을 이야기 했을 땐 믿지 않았지만…….’

이 아이가 화산파에서 전력을 다해 수련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매화관과 천매관까지 통과시킨 뒤 허민 사제에게 보내야겠다.’

이 년이란 시간은 많지 않았다.

원래 그의 계획은 매화관에서 무공을 익히도록 하는 것이었다.

근데 방금의 비무로 계획을 변경했다.

‘천매관의 그분도 계시지만…… 이 아이를 제대로 가르칠 만한 인물은 화산제일검, 그 녀석밖에 없겠군.’

동봉에 홀로 기거하는 화산파의 일대제자.

동문이라 하나 화산의 일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도인이었다.

그의 관심사는 오로지 검뿐.

지금까지 많은 제자들을 그에게 보냈지만 칠주야를 채운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그의 강한 사기(死氣)를 받고 버틸 수 없었다.

‘이 아이라면…… 가능할지도…….’

* * *

매화관(梅畫館).

화산관을 통과하여 평검수가 된 화산파 제자들이 매화검수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수련관이다.

양군경은 고진유에게 한 가지 명을 내렸다.

“우선 매화관과 천매관을 통과하도록 해라.”

양군경은 장문인에게 고진유를 화산제일검 독소응에게 보낼 것이라 선언했다.

그러려면 다른 제자들이 특혜를 준다는 말이 나오기 전에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 순서일 터.

고진유는 매화관 입구에 굳게 닫혀 있는 석문 앞에 섰다.

정면에는 두 송이의 매화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는 돌이 튀어나와 있었다.

‘내력으로 돌을 밀어 넣어 문을 열어라.’

고진유는 매화 문양의 돌 위에 각각 손을 올려 놓았다.

스르르르릉-

거의 힘이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가볍게 밀려 들어갔다.

‘이게…… 맞아?’

너무 쉽게 들어가자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구우우웅-

석벽 안에서 굉음이 울리며 석문이 올라갔다.

고진유는 안으로 들어섰다.

석문이 열리자 수련하던 매화관의 수련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저 녀석이 도협이란 녀석이군.”

“검절이신 허진 사숙님의 제자라고 하던데?”

“대단하긴 한가 보지? 곧바로 매화관을 통과하겠다고 통보하다니…… 관장님께서 무척 화가 나실 게 분명해.”

수련생들은 소곤소곤 한마디씩 하면서 고진유를 흘깃 쳐다보았다.

이미 사전에 연락을 받았는지 매화관장 학경이 나와 있었다.

“허공 관장님을 뵙습니다.”

“네가 화산도협으로 알려진 호정인가?”

“그렇습니다.”

학경은 내력을 끌어 올렸다.

“네가 여기에 온 이유를 들었다. 그 말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허어…… 참, 정말로 당황스럽군. 아무리 도협으로 명성을 얻었다고 하지만 하늘 높은 줄 모르는도다.”

“…….”

고진유는 가만히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경의 옆에서 불쑥 한 명의 젊은 도인이 튀어나왔다.

장두총이 한 손으로 검을 잡은 채 적의를 내보였다.

“도협.”

“호정이라 부르시오.”

“…….”

고진유의 단호한 한마디에 장두총은 순간 기세가 밀렸다.

“왜 불렀소?”

“화산파의 무공을 얕보지 마라.”

“나 또한 화산파의 무공을 펼치거늘, 누가 얕본다는 말인지 모르겠군.”

“그게…….”

장두총은 말을 하면서도 이상한 것을 알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더듬거렸다.

‘멍청한 놈…….’

학경은 고개를 흔들었다.

“됐다. 뒤로 물러나라.”

“예? 예에…….”

장두총은 얼굴이 붉어졌다. 관장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보자 괜히 나섰다는 생각이 솟구쳐 올라왔다.

“네가 매화관을 곧바로 통과하겠다고 했다지.”

“그렇습니다.”

“나를 무시하는 것이더냐?”

“…….”

“왜 대답이 없느냐?”

학경의 목소리가 조금씩 커지는 듯했다.

고진유가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검절이신 사부님께 화산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화산의 제자들은 화산의 웅장한 산세를 닮았으며, 화산파의 기개는 천하제일이다. 후배가 선배보다 뛰어나다면 당연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게 맞지 않습니까? 제가 잘못 알았다면 가르침을 주십시오.”

“……!”

학경은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가슴을 찌르는 말에 똑바로 고진유의 눈을 바라볼 수 없었다.

‘허어…… 내가 마치 옹졸하고 시기나 하는 사람이 된 듯하다니.’

그의 말이 맞았다.

문파에 뛰어난 후배가 나온다면 자랑스러워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하하하!”

학경은 매화관이 떠나갈 듯 대소를 터뜨렸다.

“좋다. 네가 나에게 충고를 할 만한 실력을 지니고 있는지 보여다오.”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스으으-

학경이 천천히 검을 잡은 뒤 내력을 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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