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화산대도-29화 (29/425)

29화

어느덧 무더운 여름.

후두두두두-

가볍게 지나갈 소낙비라 여겼건만, 객잔의 지붕을 뚫기라도 하듯 폭우로 가 세차게 내리 부었다.

장절 진우청은 난감한 시선으로 이 층에서 창밖을 내다보았다.

먼 하늘은 온통 회색빛으로 가득했다.

“여기를 넘어서면 섬서성이거늘. 언제 비가 그칠지 모르겠군.”

“급한 일도 없지 않습니까? 비가 그칠 때까지 푹 쉬시지요.”

고진유는 그와 반대로 느긋하게 앉아 떨어지는 빗방울을 구경했다.

“…….”

진우청은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묶고 있는 객잔은 최상급으로, 하루 숙박과 식사비가 일반 객잔보다 세 배나 비쌌다.

어제 도착한 일행은 점심을 먹고 떠날 계획이었지만 본의 아니게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더구나 전혀 폭우가 그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호진아, 어떻게, 경비에 여유가 있느냐?”

“저어…… 죄송합니다.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물다가는 여비가 모자랄 것 같습니다. 지금도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음식들을 시켜 먹었습니다.”

우종성의 시선이 고진유 앞에 깨끗하게 비워진 요리 접시들에 눈이 갔다.

말없이 음식과 요리들을 시킨 탓인지 뭐라고 말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하후세가에서 떠나기 전 여행 경비를 받지 못했다면, 점심을 먹으러 객잔에도 들어오지 못하고 돈이 떨어지고도 남았을 터였다.

우종성의 책임은 아니지만 미안한 표정에 수심이 가득했다.

화산파는 대문파이긴 하나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았다.

대문파답게 화산 화음 일대로 관할 지역이 넓다고 하나, 강압적이기보다는 상인들의 자율에 맡기다 보니 들어온 수입이 많지 않았다.

더구나 직접 운영하는 상단이나 표국도 없었다.

그나마 속가제자들이 운영하는 곳에서 소소하게 지원을 받고 있을 뿐.

고진유는 수심이 가득한 그에게 불쑥 손을 내밀었다.

“진작 말하지. 그래서 내가 먹을 때마다 표정이 안 좋았던 모양이군. 이걸 받으시오.”

“이게 뭡니까?”

처음에는 종이 쪼가리인 줄 알았다.

“허억…… 사, 사숙님, 이건…… 전표입니다.”

진우청도 고진유가 아무렇지 않게 던져준 전표를 보면서 눈이 커졌다.

“아니, 이게 무슨 돈인가?”

“안 그래도 공짜로 얻어먹는 듯해서 생각은 하고 있었습니다. 경비에 보태서 사용하시면 됩니다.”

“대체 이 큰돈을 어디서…….”

“훔친 돈은 아니니 걱정 마십시오. 제 퇴직금이라 보시면 됩니다.”

십만 냥짜리 전표.

그것도 중원상국에서 발행한 전표를 직접 만져볼 줄이야.

태어나서 이보다 큰 액수를 본 적도 없었다.

“비도 언제 그칠지 모르는데 한잔들 하시지요.”

“흐음…… 그럴까? 여기 객잔에 허후주가 맛있다고 하더구나.”

첫날 눈독을 들였지만 허후주는 그림의 떡이었다.

진우청은 마음이 포근해졌다.

“제가 얼른 주문을 하겠습니다.”

우종성도 마찬가지.

그가 입맛을 다시며 점소이를 부르면서 달려갔다.

“전 아래층에 갔다 오겠습니다.”

“함께 마시지 않고?”

“사숙께서는 먼저 마시고 계시지요. 묵경 형과 인양에게도 술 한 잔 마실 것인지 물어보겠습니다.”

“알겠네. 빨리 갔다 오게.”

고진유는 계단 아래로 내려섰다.

소곤소곤.

아래층 객잔으로 반쯤 내려갈 쯤, 여인들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몸에 걸친 비단 옷을 봐서 부유한 집안의 여인들 같았다.

“와아…… 저분 너무 잘생기지 않았어?”

“네, 언니. 창문가에서 앉아서 비를 쳐다보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요.”

두 여인의 시선은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창밖의 비를 보는 묵경의 얼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후후, 멋있긴 해. 묵경 형은 여인들이 좋아할 만하지.’

“인양아.”

고진유는 웃으며 묵경 앞에 앉아 있는 인양을 불렀다.

인양과 함께 묵경도 고개를 돌리자 얼굴을 비스듬히 가렸던 머리카락이 슬쩍 휘날렸다.

또다시 그녀들의 탄성이 들렸다.

“와아…….”

“저분과 한 번이라도 대화를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스윽.

묵경이 살짝 손을 가볍게 올렸다.

“아우, 무슨 일인가?”

평소와 다른 묵직한 저음.

“꺄아, 목소리도 너무 부드럽고 멋져!”

“완전 내가 꿈에 그리던 분이 맞아. 진짜 한번 손이라도 잡아 봤으면 너무 좋겠다.”

고진유는 그녀들의 반응에 눈을 감고 웃음을 참았다.

‘푸흐, 참…… 묵경 형의 모든 것이 여인들에게는 제대로 먹히는 모양이네.’

“위에서 한잔 마실까 하는데 같이 마시겠소?”

“비 오는 날이면 그리운 임이 생각나지. 오늘 같은 날이 아니면 언제 마시겠는가?”

스윽.

굳이 필요 없는 동작이지만, 한 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 일어나는 모습도 멋지시다…….”

“응…….”

묵경은 그녀들의 목소리가 들리면서도 전혀 못 들은 척 자연스럽게 걸었다.

인양도 쿡쿡 웃으며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세 명의 사내들이 앉은 자리를 지나칠 때였다.

스윽.

사내들 중 한 명이 발을 슬쩍 내밀었다.

멈칫.

묵경은 정확히 사내의 내민 발 앞에서 멈추었다.

“본인에게 볼일이 있소?”

“쳇, 잘난 척하는 인물이라 얼마나 잘났을까 궁금해서 말이지.”

사내의 발은 여전히 내밀어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붉은색으로 염색을 한 머리카락에, 왼쪽 눈 아래로 깊게 그어진 검상(劍傷). 허리에는 성인 팔뚝만 한 철곤이 달려 있었다.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객잔이외다. 조용히 있다 가시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크크크. 재수 없는 짓을 보고 있자니 술맛이 떨어지는 걸.”

적발 사내는 물러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괜한 트집을 잡으시는군. 그대에게 재수 없이 보이는 것은 그대의 사정이지 않소?”

“아니, 원인을 제공한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문제이지. 비도 오고 해서 몸도 찌뿌듯한 게 오늘 손 좀 풀어보고 싶군.”

“어허, 사람들도 많은데 그만하시지요.”

묵경이 예를 갖추며 대답했다.

건너편 자리에서 다시 여인들의 소곤대는 소리가 들렸다.

“저기, 자기들이 못생겼으니 괜히 질투심에 저분을 괴롭히는 거 아니야?”

“맞아. 생긴 대로 논다고 하더니 어떻게 저런 얼굴로 저분을 다치게 하려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정말 지저분하게 생겼어.”

그녀들의 목소리가 작다고는 해도 조용한 분위기에선 적발 사내의 귀에 매우 잘 들렸다.

타아아앙!

적발 사내는 식탁을 내리쳤다.

“남자에게 환장하는 미친년들이 못하는 소리가 없군!!”

“흥. 뭐라는 거야? 별꼴이군.”

“언니, 저런 무식한 사내들 때문에 결혼하기 싫다니까요. 힘만 세면 무조건 큰소리를 치기나 하잖아요.”

“그건 못 배워서 그래. 저기 공자님께서는 얼마나 예의를 갖춰 말을 하고 있니.”

고진유는 계단에서 멈춘 채 가만히 그녀들을 지켜보았다.

‘이거 대단한데? 무가의 여인들인가?’

보통의 일반 여인들과 달리, 그녀들의 표정에는 두려움이 없었다.

“저…… 년들이……!! 뭐라고 씨불이고 있어? 내가 계집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줄 아느냐?”

“누가 겁낼 줄 알고? 덤벼봐.”

그녀가 조그마한 손으로 주먹을 쥔 채 앞으로 내밀었다.

“크으으으으…….”

적발 사내가 노기를 참지 못하고 그녀들을 향해 움직이려는 순간.

휘익!

묵경은 한 발 앞서 그의 앞을 막아섰다.

“이보시오. 당신이 원하는 상대는 본인이거늘. 어찌 아름다운 여인들을 상대하려 하는가?”

“이…… 놈이……!!”

적발 사내는 눈에 힘을 주는 동시에 허리에서 철곤을 잡았다.

“좋다. 네놈부터 머리를 부숴주마!!”

부우우웅-!!

철곤이 묵경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휙!

“사람이 대화로 문제를 풀지 않고 몸으로 대화를 하려고 들다니. 상당히 나쁜 버릇이외다.”

묵경이 적발 사내의 몸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철곤을 피했다. 그러고는 어깨로 가볍게 적발 사내의 가슴을 툭 쳤다.

“어……? 어어어!”

적발 사내는 어이없을 정도로 허무하게 바닥에다 엉덩방아를 찧었다.

그 또한 굉장히 당황했는지 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그러고는 민망했는지 괴성을 질렀다.

“이 새끼가!! 죽여 버리겠다!!”

고함을 치며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적발 사내의 얼굴은 그의 머리카락처럼 붉어져 있었다.

그때,

타아앙!!

객잔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나 참! 왜 이리 비가 많이 와. 다 젖었네.”

온몸에 우장(雨裝)을 둘러싼 사내가 투덜대면서 들어섰다.

빗물이 바닥에 후두두 떨어져 내렸다.

어깨를 두른 사의(蓑衣)와 머리에 쓴 사립(蓑笠)을 바닥에 벗어 던진 삼십 대 초반의 사내.

반듯한 이마, 짙은 눈썹에 맑은 눈동자가 이지적(理智的)으로 보였다.

두 여인이 그를 보며 반갑게 소리쳤다.

“큰오라버니!”

“내가 늦었지?”

사내는 반갑게 두 여인 곁으로 움직였다.

“오라비가 비가 너무 많이 오는 바람에 조금 늦었다.”

“괜찮아요. 저어 근데…….”

“왜? 무슨 일이 있어?”

사내는 그녀들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을 비스듬히 내렸지만 잘생긴 얼굴은 가려지지 않았다.

“어?”

그가 손을 올려 묵경을 가리켰다.

“너어…… 혹시 서문의 뺀질이?”

“허어? 서문의 뺀질이가 뭐요?”

“하하하하! 맞구나! 오랜만이다. 근데 너…… 여기에서 뭐 하냐?”

“그런 제갈 형은 이곳에 무슨 일이오?”

“나? 여긴 호북이잖아.”

“아…… 맞다. 그렇군요.”

큰오빠와 잘 아는 사이라니!

묵경에 대한 두 여인의 궁금증이 폭발했다.

“큰오라버니. 저분을 잘 아세요? 누구신가요?”

“저번에 말했잖아. 호남에 알고 지내는 뺀질이가 있다고.”

기억이 난 두 여인이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하……! 저분이 풍류미군 공자님이시군요.”

“맞다. 그 녀석이지. 아 참, 무슨 할 말이 있었지 않아?”

“아, 그게 저기…….”

여인이 적발 사내를 가리켰다.

“빨간 대가리?”

“네에, 큰오라버니.”

그가 묵경을 보며 물었다.

“아는 놈인가?”

“처음 본 놈인데 세상 물정 모르고 날뛰는 놈 같소.”

“그래? 흐음…… 그 빨간 대가리를 보아하니, 최근 이 동네에서 적발인두(赤髮人頭)란 놈이 시끄럽다고 하더군. 네놈인가?”

적발 사내의 몸이 파르르 떨렸다.

‘큰…… 일 났다. 하필이면 제갈세가의 인물을 건드렸어.’

호북성에서 제갈세가의 권세와 위엄은 높았다.

적발 사내는 뒤로 천천히 움직였다.

“어허, 빨간 대가리, 밖에 폭우가 쏟아지는데 어딜 가려고?”

“저어…… 그게…… 약속이 있어서…… 죄송합니다. 제갈세가의 분들인 줄 몰랐습니다…….”

“알면 됐다. 조용히 지내라. 한 번 더 무림에서 이상한 소리 들리면 잡은 뒤 진법에 잡아넣을 테니.”

“…….”

그는 제갈양의 시선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다행이다. 빨리 도망가야 해!!’

하지만,

처억!

묵경은 손을 뻗어 적발 사내의 어깨를 잡았다.

“이보시게나.”

“허억!”

그는 심장이 터져 나갈 듯했다.

“이대로 간다고? 저기 여인들에게 저년들이라고 욕하지 않았나?”

적발 사내의 눈동자가 떨렸다.

“아…… 아닙…… 니다. 공자…… 님께서 잘못 들으셨……!!”

샤아아아악-

등 뒤에서 느껴지는 살기.

“어이, 빨간 대가리. 간 덩어리가 부었군. 감히 제갈세가의 여인에게 저년이라? 요즘 오래 살고 싶지 않은 모양이야.”

적발 사내는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 * *

휘적. 휘적.

적발인두는 객잔 한구석에서 허공에 대고 손을 흔드는 중이었다.

마치 넋이 사라진 모습처럼, 무언가를 잡고자 했지만 잡히지 않는 듯 같은 동작을 수십 번이나 반복하고 있었다.

“오우, 그대가 화산도협이란 말이군.”

제갈양은 앞에 마주 앉은 고진유를 부담될 정도로 똑바로 쳐다보았다.

“흐음, 소문과는 다른데? 겉모습은 전혀 강해 보이지 않잖아? 이건 능구렁이처럼 내력을 숨기고 있다는 말이겠군.”

원래 이런 말은 생각으로만 할 뿐 당사자 앞에 대고 잘 하지 못한다.

‘제갈세가라…… 이 사람도 특이한데.’

고진유가 중원에서 가장 궁금했던 세가 중 하나가 바로 중원 무림의 두뇌라 일컫는 제갈세가였다.

현 무림맹의 총군사 또한 제갈세가의 인물이었다.

제갈양이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제갈양이라 하네. 서문경…… 아니, 묵경하고 형 아우 사이라고 하니 나도 아우라 불러도 될까?”

“허어? 누가 보면 우리가 친한 줄 알겠소?”

묵경이 불쑥 나섰다.

“뭐냐? 그, 어디였지? 야월루에 우리 둘이 같이 갔잖아. 이 정도면 친하지 않아?”

“나 참,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난 분명히 아무런 짓도 하지 않고 그냥 나왔소.”

“누가 그 말을 믿는다고? 열에 열이면 그곳에 가서 바로 나오는 사내는 없어.”

“아, 진짜! 아니라니깐요. 난 지금까지 한 여인을 위해 순결을 지켜온 몸이라고.”

제갈서희가 얼른 맞장구를 쳤다.

“네에! 묵경 공자님의 말씀을 믿어요. 큰오라버니와 다르게 공자님은 절대로 그럴 분이 아니세요.”

“맞아요. 중원에 고결하신 분이라고 얼마나 소문이 나셨는데요.”

“너희들 이럴 거야?”

그는 여동생들의 말에 대꾸도 못하고는 얼른 주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흐음. 흠, 암튼 내가 그 소문을 듣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몇 날 며칠 동안 축하주를 마셨다네.”

“제갈 형, 무슨 소문을 말하는 거요?”

“하하하! 남궁세가를 개박살 냈다는 소문이지! 가슴이 한동안 시원해지더구만.”

“아하, 그건 저도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중원십대세가에 속한 그들이었지만 남궁세가는 독보적인 강함에 타 세가들을 은연히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남궁한, 그놈도 이젠 조용해지겠지? 몇 달 전에 십천세연(十天勢聯)에서 얼마나 까부는지 내가 한번 된통 당할 줄 알았다.”

“그 녀석이 남궁세가주의 막내아들이라며 너무 버릇없게 키운 탓이죠. 완전 안하무인 성격이라…….”

“제멋대로 성격이라면 너도 만만치 않아. 서문의 성도 버리고.”

“에이, 그건 아니죠. 우린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을 뿐이외다.”

“여하튼. 내가 보기엔 같아 보이는데.”

“으으, 내가 이래서 제갈 형을 만나기 싫다니깐. 하필이면 여기에서 보게 될 줄 몰랐소.”

“큭큭. 오랜만에 보면 좋지 뭘 그래. 더구나 만나고 싶었던 도협 아우도 만나게 되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반가워.”

제갈양은 고진유를 보면서 한쪽 눈을 찡긋했다.

고진유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랄까.

묵경과 제갈양은 서로를 두서없이 대했다.

무림인이 아니라도 제갈세가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없었다.

중원에서 가장 똑똑한 무가.

진법에 능하고 하늘까지 다스릴 수 있는 요술까지 가능하다지.

‘이 사람은 악의 없이 선하게 생겼어.’

이런 사람은 둘 중 하나였다.

진실한 사람이 아니면 음흉한 인물.

고진유는 어린 나이였지만 벽화당 시절 수많은 이들을 상대하면서 섣불리 사람을 단정 짓지 않았다.

그건 사람을 믿지 않는 게 아니라, 속마음을 모르기에 판단을 내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우두두두-

폭우는 여전히 멈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아 참, 화산파에 가는 중이라고 했지? 세 사람만?”

“위층에 장절이신 허경 사숙께서 쉬고 계십니다.”

“이런! 큰 실례가 있나? 진작 말을 하지. 인사를 드려야겠어. 올라가세나.”

“따라오시지요.”

제갈양은 고진유의 뒤를 따랐다.

‘흐음.’

제갈양은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고진유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폈다.

발바닥 전체가 바닥에 닫는 동시에 밀어내는 특이한 걸음걸이.

‘화산에서 신기한 녀석을 만들어냈네. 요즘 화산파뿐만 아니라 구대문파가 몇 년 동안 주춤했던 것 같은데, 대문파의 전통을 무시할 순 없지. 역시 쉽게 무너지지 않아…… 흐음, 앞으로 화산파의 시대가 다시 열릴지도 모를 일이야.’

고진유와 만난 지 반시진도 지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건만, 제갈량은 그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