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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3화 (23/425)

23화

남궁용의 완벽한 패배였다.

객잔 주위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숨죽인 채 구경을 했다.

그들 사이에서 무림인들 또한 지켜보고 있었다.

살군검에 이어 호광검까지.

남궁세가 무공 순위 오십 위에 포함된 두 사람이 화산파의 젊은 제자에게 당했다.

화산도협의 명성은 중원에 퍼져 나갈 것이 틀림없었다.

남궁용과 함께 온 무림인들은 믿을 수 없는 사실에,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망할…… 너무 눈이 많아. 화산도협을 상대로 비겁하게 우리들이 전부 달려들 수도 없어.’

부지부장 남궁묘는 바닥의 쓰러진 남궁용을 부축했다.

군중들의 눈을 피할 수 없으니, 안타깝지만 물러날 수밖에 없다.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낫는 데 오래 걸릴 겁니다.”

“……화산도협, 남궁세가는 이대로 있지 않을 것이오.”

“내가 대체 남궁세가에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지만, 이왕이면 말이 통하는 사람이 왔으면 좋겠군요.”

“오늘 이겼다고 너무 자만하지 마시오.”

곧 남궁세가의 인물들이 완전히 물러났다.

그 자리에는 흑귀들만이 남아 있었다.

흑나찰 북소연은 당황했다.

‘이자의 무공이…… 이렇게 강하다고?’

오 년 전 난파선에 잡혔을 때 무영도수는 전혀 무공을 모르는 인물이었다.

무공을 익혔다면 괴도에 표류된 뒤 화산검절 오청석에게 배운 것이 틀림없을 텐데.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어떻게 오 년 만에 남궁용을 꺾을 수 있는 실력을 지니게 됐냐는 것이었다.

‘대체…… 오 년 동안 어찌 수련했기에 이렇게 강하지? 설마 이자가 최고의 무재였다는 것인가?’

그녀는 고진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남궁용을 이긴 자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혼자야.’

그녀의 눈엔 오직 고진유만 들어올 뿐이었다.

북소연은 상황을 빠르게 파악했다.

추혼대의 수하들은 오십 명.

일반 흑귀들에 비해 한 단계 수준이 높다.

‘그리고…… 이것을 이용하면…….’

무리 뒤에서 복면을 쓴 채 바닥에 고정된 듯 미동도 없는 흑귀.

그를 힐끔 본 흑나찰 북소연의 얼굴에 자신감이 생겨났다.

그녀는 고진유의 앞으로 서너 걸음 나섰다.

“화산도협이라고 부를까? 아니면 무영도수라 부를까?”

“지옥혈림 놈들은 모르는 게 없군. 옛날 자료들을 뒤적거린 모양이지?”

‘뭐야? 당황한 기색이 없어.’

한때 도둑놈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당황할 거라 예상했다.

“뭐, 그 시절에는 내가 제법 손이 빨랐지. 지금도 솜씨는 예전 그대로지만.”

“벽화당 밑바닥 출신 도둑놈이 제법이야? 화산의 무공을 펼친다고 다 제자가 되는 줄 아는가 본데, 화산파에서 과연 도둑놈을 받아줄까?”

“이봐, 당신.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아. 하지만 화산파에서 나를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어. 사부님께서 나를 제자로 받아들였으니까. 나도 굳이 화산파에서 도인으로 살 생각은 없고. 이해가 돼?”

“…….”

“또 할 말 있나? 없으면 바로 시작하자고. 네놈들만 보면 화가 나니까.”

휘익!!

고진유의 신형이 순식간에 앞으로 뛰쳐나갔다.

쿠와아아아앙!!

호세보(虎勢步)는 기세였다.

“막아라!!”

북소연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추혼대의 흑귀들이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앞으로 나오며 막아서고자 했다.

하지만 고진유는 이미 흑귀들보다 서너 발자국 앞섰다.

번쩍!!

남궁용과 싸웠을 때와 달리 고진유의 검에 살기가 진했다.

살기에 젖은 매화 잎.

그들 사이로 흑색의 매화 잎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아아악!!”

십여 명의 흑귀들이 비명을 지르며 가슴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허억!”

북소연도 고진유의 기습 공격을 피할 수 없었다.

잘린 상의 자락 속에서 호신갑의가 드러났다.

다행히 목이 아니었다.

“흑살귀진을 펼쳐라!!”

북소연은 남아 있는 흑귀들을 향해 명령을 내렸다.

파파파파파파-

사십 명의 흑귀들이 일사불란하게 삼각진을 형성했다.

북소연은 난감했다.

괴도에서 흑나찰 악공을 죽였다.

게다가 남궁인까지 싸워 이긴 실력을 알면서도 한낱 도둑이라고 폄하했다.

오십 명의 수하들이라면 충분히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한 것은 엄청난 실수였다.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다. 이렇게 어이없게 판단하다니…….’

이미 후회를 해도 때가 늦었다.

‘이건…….’

고진유는 흑귀들이 만들어낸 흑귀살진을 살폈다.

예전에 본 적 있는 익숙한 모양.

‘그놈들처럼 뭉쳐서 공격을 막아내겠다는 수법인데.’

괴도에서 형광 빛을 내며 돼지처럼 생긴 곤충이 있었다.

‘느려도 떼거리로 몰려다니는 통에 공격하기 어려웠지.’

휘익!

그때, 묵경이 뒤로 다가왔다.

“이보게. 아우. 흑귀들은 내가 처리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놈들은 나에게 볼일이 있는 놈들이오.”

“허허, 그래도 내가 한 말이 있으니 도와줘야지.”

“원한다면 맘대로 하시오.”

“좋아. 내가 저놈들의 진법을 부술……!”

타앗!

묵경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진유가 바로 튀어나갔다.

“아, 뭐야? 진법을 깰 수 있는 방법을 내가 가르쳐 준다니까!”

묵경이 소리를 질렀지만 전혀 들리지 않았다.

휘이이익!!

호충신법을 펼친 고진유가 흑살귀진을 돌기 시작했다.

북소연은 진법의 중앙에서 공격하기 위해 빈틈을 찾는 고진유의 움직임을 보았다.

‘흑살귀진은 절대로 혼자서 깨뜨릴 수 없다.’

확신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이 되면서 불안했다.

스윽.

소매에서 둥근 물체를 꺼냈다.

만일을 위해 챙겨온 물건.

천뢰마비폭(千雷痲痹爆).

‘공격한 순간 바로 흑살귀진 안으로 유인해 터뜨린다.’

휘이익-!

휘이이익!!

하지만 그녀의 뜻과 달리 고진유는 계속해서 흑살귀진을 맴돌았다.

‘왜…… 공격을 하지 않지?’

북소연은 그때까지도 흑살귀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다.

묵경도 처음에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허참, 무작정 돌아서 어쩌겠다는…… 엥?’

어느 순간부터 흑살귀진을 형성하고 있던 흑귀들이 바깥으로 빨려나가 내동댕이쳐졌다.

“……어이없구만.”

묵경은 흑살귀진 밖으로 나가떨어지는 흑귀들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십여 명이 당한 뒤에야 북소연도 제대로 상황을 파악했다.

‘대체 저 인간은……!! 어떻게 된 놈이야?!’

저런 식으로 한다면 흑살귀진을 계속 유지할 수도 없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수하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포위하는 순간 천뢰마비폭을 터뜨려야 했다.

“큭, 전부 저자를 포위해라!!”

북소연의 명이 떨어진지는 동시에 흑귀들이 고진유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타아앗!!

묵경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튀어나온 흑귀들을 상대했다.

“당신들은 내가 손을 봐주지!”

차르르르-

그의 허리에 감겨 있던 연검이 풀리며 흑귀들의 허리를 베기 시작했다.

스걱-

“으으윽!”

흑귀들은 신음을 내며 추풍낙엽처럼 바닥에 쓰러졌다.

‘저…… 자가!’

쉬이이이이-

풍류미군의 손에서 펼쳐진 연검의 환영이 그의 신형을 감싸고 있었다.

‘성녀곡의 연화혼미검법(軟花昏迷劍法)을 저자가…….’

성녀곡의 곡주 묵연화.

풍류미군이 그녀의 아들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사실이었어.’

서문세가의 가주 서문당소와 묵연화 사이에 난 아들.

‘그래서 며칠 전 백화궁에서 의뢰를 철회한 거야.’

꼼지락.

북소연은 손에 든 천뢰마비폭을 던지지 못하고 망설였다.

잘못하다가는 묵경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었다.

서문세가와 성녀곡은 지옥혈림에게도 부담스러운 곳이니까.

휘익!!

그때, 그녀의 앞으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손에 든 천뢰마비폭이 순간 사라졌다.

‘이게 무슨!’

“이걸 찾고 있나?”

“……!!”

북소연이 고개를 들자, 천뢰마비폭은 고진유의 손에 들려 있었다.

그가 다가온 기척을 전혀 알아차릴 수 없었다.

“후, 여전히 손이 빠르지 않소?”

휙! 휙! 휙!

“지, 지금 뭐 하는……!”

고진유가 천뢰마비폭을 한 손으로 던졌다 받았다.

바닥에 떨어뜨린 순간 즉사할 터.

북소연의 시선이 고진유의 손에 고정되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위험한 물건 같군. 이런 건 압수. 나중에 당신들에게 유용히 써먹을 때가 있을 것 같아. 좋은 물건 잘 얻었소.”

“…….”

북소연은 감히 덤빌 생각을 하지 못했다.

‘우리 실력으론 저자를 어떻게 하지 못한다. 최소한 흑명군이나 흑신왕께서 나오셔야 해.’

지옥혈림은 화산도협 대해 전면적인 재검토를 해야만 했다.

“오, 오늘은 물러가겠지만, 네놈은 절대로 지옥혈림의 손안에서 빠져나갈 수 없을 거다.”

“당신 착각하고 있군. 누구 맘대로 물러가겠다는 거지? 난 보내줄 생각이 없는데. 지옥혈림에서 누가 오더라도 내 손에 한 놈씩 빠짐없이 목을 베일 것이다. 당신도 당연히…….”

스걱-

고진유는 망설임 없이 그녀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그때,

까아앙!!

순식간에 북소연의 앞에 나타난 흑귀 복면인.

무리들 끝에 있던 그가 북소연을 보호하기 위해 맨몸으로 검을 막아냈다.

‘사람이 아니야?’

고진유는 재차 검을 휘둘렸다.

까아아앙!!

전신 가득한 사기(死氣)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호신병기는 고진유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내면서도 피하지 않았다.

파앗!!

흑귀 복면인이 독수를 뻗으며 고진유를 잡으려고 했다.

“진유 아우! 독강시다!!”

묵경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독강시?’

고진유는 독수를 피하는 동시에 전력을 다해 매화구벽(梅花拘劈)의 초식을 펼쳤다.

하단전의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낸 일검의 위력.

콰아아앙!!!

독강시의 가슴에 직격으로 폭음이 터지면서, 충격에 의해 땅에 긴 꼬리를 만들며 뒤로 밀려났다.

‘이. 이럴 수가……! 독강시로도 막을 수 없어.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여기에서 죽을지도 몰라.’

독강시까지 쉽게 상대하는 인물.

언제까지 제대로 서 있을지 모른다.

그녀는 갑자기 두려움이 생겼다.

“연막탄을 터뜨려라!!”

퍼엉!!

퍼어엉!!!

흑귀들이 던진 연막탄이 사방에서 터졌다.

흰 연기가 사방으로 피어오르며 시야를 가리자, 흑귀들이 그 사이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이것들이 더 안 싸우고 어딜 가는 거야! 이제 몸이 풀렸는데. 야! 야, 서라!!”

묵경은 사라지는 그들을 향해 아쉬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하지만 흑귀들의 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만해요. 벌써 갔소이다.”

고진유도 더는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

휘이이잉-

바람이 불며 앞을 가렸던 연막탄의 연기가 사라졌다.

그리고 고진유와 묵경, 인양의 모습도 함께 보이지 않았다.

* * *

세 사람은 다시 길을 떠났다.

여전히 관로가 아닌 산길을 걸어가면서.

묵경은 뒤에서 힘들게 걷고 있는 인양을 보았다.

보폭을 최대한 줄인 뒤 몸의 상체를 움직이지 않고 무릎을 굽히며 걷고 있었다.

“너무 불편해 보여. 저 동작도 효과가 있나?”

“몸에 익숙해지면 편할 겁니다.”

“진유 아우도 저런 식으로 익혔어?”

“난 저렇게 수련하지 않았소.”

“…….”

묵경은 순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너무하네.”

“너무할 것 없소. 인양이 하는 수련은 속성이니까. 저 나이에 느릿하게 배워서 언제 써먹겠소이까.”

“흐음, 속성이라……?”

“그렇소. 함부로 가르치는 게 아니오.”

“아우는 큰 계획이 있었군. 내가 오해했네.”

“그럴 수도 있지요.”

그리고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는 인양은 죽을 맛이었다.

하지만 그는 도둑의 신분을 벗어던지고 새로운 인생으로 살기 위해 모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도둑 세계에서 무영도수의 이름은 유명했다.

‘진유 형님이 무영도수였다니…….’

왜 자신들에게 도둑질을 그만두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그에게 믿음이 갔다.

스윽-

묵경이 고진유의 곁에 바짝 다가섰다.

“아 참,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도 되나?”

“안 되오.”

단칼에 거절했다.

“이거 참, 아우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성격이 너무 딱딱해. 조금 부드러워지면 나처럼 많은 여인들이 따라붙을 텐데 말이야.”

“관심 없소이다. 아직 할 일이 많아서.”

“에이, 그놈들이 쫓는 이유를 가르쳐 주지 않겠다면…… 해야 할 일은 뭐야?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거든.”

고진유는 고개를 돌려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지옥혈림을 세상에서 지우는 일이오.”

“…….”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혼자서? 지옥혈림을?”

“말도 안 되는 것 같소?”

“그거야…… 아우가 아무리 강해도 혼자서 싸우기엔 지옥혈림은 너무 강대한 세력이야.”

“그들이 거대한 세력이든 아니든 상관없소이다. 한 놈씩 죽이면 될 뿐이오. 시간은 많소. 십 년이 걸리든 백 년이 걸리든 지옥혈림은 결국 나에게 사라지게 될 테니까.”

‘허어…… 이거 완전히 미친 계획 같은데…… 믿음이 가는 게 이상하단 말이지.’

묵경은 황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믿음이 갔다.

‘에이, 설마…… 음, 못한다는 보장도 없잖아?’

그의 말대로 지옥혈림을 홀로 지우게 될지 모른다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좋아. 알겠네. 아우가 혼자서 하기 어려우면 나도 도와주지.”

“이 일은 내 일이오. 굳이 도움은 필요 없소이다.”

“허어, 이런! 또 섭섭해지려고 하네. 우리가 어떤 사이인가. 흑귀들과 함께 싸운 끈끈한 혈맹이지 않은가!”

스윽.

고진유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나를 무시하는가? 아까 봤겠지만 나도 제법 무공 한다네. 안 그런가?”

묵경은 얼른 따라붙었다.

“남궁세가와 안면이 있는 모양인데 괜히 나 때문에 그들과 얼굴 붉히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좋지 않겠소이까?”

“진유 아우가 이 우형을 걱정하는 것인가? 하하허하! 그런데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되네. 난 남궁세가와 아무런 관계가 없거든. 그들과 싸운다고 해도 얼굴 붉힐 일도 없어.”

“문제가 없다면 맘대로 하시오.”

“하하하!! 당연히 문제가 없지. 그럼 계속해서 내가 함께해도 되겠군!”

“안 된다고 해도 따라올 게 아니오?”

씨익.

묵경은 미소를 지으며 팔을 고진유의 어깨에 올렸다.

“우리 앞으로 잘해보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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