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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20화 (20/425)

20화

‘여기가 호남성이구나.’

고진유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광동성을 벗어났다.

마치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모험가처럼 기분이 색달랐다.

하남성의 무림맹으로 가기 위해 호남성을 지나 곧장 북쪽으로 올라갈 계획이었다.

알아보니, 하남성까지는 최소 한 달 이상은 걸릴 정도로 멀다고 했다.

“아이고, 진유 형, 저기 마을이 보입니다.”

인양은 온몸이 쑤시는 듯 힘들었다.

관로를 이용해서 걸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고진유에게 관로는 어쩔 수 없을 때 걷는 길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산길을 이용했다.

“피곤하지?”

“아, 아닙니다! 전 그냥 마을이 나타나서요.”

“하하!”

고진유는 웃음이 나왔다.

무공을 모르는 인양에게 산길은 그의 서너 배 정도는 힘들었을 터.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열심히 따라오는 것을 보니 기특했다.

“마을에 들어가 보자. 오늘은 여기에서 하루 쉬도록 하지.”

‘앗…… 싸.’

인양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호남성의 침주는 예로부터 광물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인지, 사내들의 몸이 다른 지역보다 단단해 보였다.

툭툭.

서로 체격이 좋다 보니 길을 가다 상대방 어깨와 부딪치는 사내들도 많았다.

“이 새끼가 어디서…….”

“뭐라고? 이게 죽을라고!”

덩치가 큰 사내들이 뒤엉켜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이거 참, 어른들이 뭐 하는 건지.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마을 사방에서 크고 작은 싸움들이 군데군데 일어났다.

고진유가 본 다투는 장면만 해도 벌써 세 번째였다.

‘웃긴 동네야. 역시 세상은 넓고 재미있는 곳이구나.’

세상에서 제일 재미나는 게 싸움구경이라 하지만, 고진유는 특별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자아, 오늘은 어디에서 잘까?”

다른 사람들이 싸우든 말든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고진유와 인양은 하루를 보낼 객루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펄럭!

마침 객루를 알리는 붉은 깃발이 바람에 흔들거렸다.

“진유 형, 저기!”

“광천루라.”

삼 층 건물의 고급 객루.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제법 비싸 보이지만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지.’

툭툭.

고진유는 가슴을 가볍게 두드렸다.

채가장에서 얻은 전표들.

그것만 해도 죽을 때까지 일하지 않고 먹고 자도 불편함이 없을 금액이었다.

그때,

멈칫.

광천루로 가던 고진유의 걸음이 돌연 멈췄다.

‘흑귀다.’

흑색 무의를 입은 사내들이 다급하게 광천루로 들어갔다.

‘나를 찾는 것은 아니겠지?’

양산현에서 호남성으로 들어서는 길은 많았다.

지옥혈림의 인원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나, 모든 길목의 마을마다 흑귀들을 뿌려놓을 수는 없었다.

‘흐음, 그래도 찝찝한데. 조용하게 가려면 일단 저놈들을 피하는 게 좋겠어.’

그렇게 고진유가 광천루 앞에서 돌아서는 순간,

콰아아앙--!!

거친 소리가 머리 위에서 터져 나왔다.

“뭐지?”

파아아앙!!

광천루의 삼 층 창문을 깨뜨리며 사내 한 명이 튀어나왔다.

한쪽 얼굴을 가릴 정도로 긴 머리카락이 바람을 맞으며 휘날렸다.

‘잘생겼다.’

그냥 단순히 든 생각.

태어나서 이보다 잘생긴 사내를 본 적이 없었다.

타앗!

사내의 신형이 바로 앞으로 가볍게 내려선 후 곧바로 고진유 쪽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이런.’

스륵.

사내와 부딪치지 않도록 인양을 당기며 얼른 옆으로 물러났다.

찡긋.

사내는 달리면서 고개를 돌려 고진유와 시선을 마주쳤다.

“뭐야, 저놈은.”

휘이익-

새카만 머리카락을 흩날리며 사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오호, 빠른데?’

고진유가 중원에 나와 본 사람들 중 사라진 사내보다 빠른 무인은 없었다.

파아앗!

곧바로 십여 명의 흑귀들이 광천루에서 튀어나오더니 사내의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저놈을 잡아라!”

후다다닥-

그러고는 마찬가지로 고진유을 지나치며 사라졌다.

“내가 아니었군.”

고진유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눈을 깜박였다.

‘쉽게 잡힐 사람은 아닌데. 여하튼 내가 아니라서 다행이야. 그런데 진짜 잘생겼네. 뭘 먹으면 저런 얼굴이 나오지?’

태어나서 부럽다는 생각이 든 건 처음이었다.

“저 사람은 어쩌다 흑귀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걸까요?”

“글쎄? 뭐, 괜찮을 거야. 들어가자.”

“넵.”

끼익-

광천루로 들어서자 객루는 그들로 인해 한바탕 난리가 나 있었다.

“에이, 망할 무림인들.”

“저 무림인 새끼들, 벼락이나 쳐 맞아 뒈졌으면 좋겠다!”

입이 툭 튀어나온 점소이들은 투덜대며 박살이 난 탁자와 의자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럼 오늘 장사 안 하는 겁니까?”

“……흐이!!”

점소이들은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허리에 찬 검.

점소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며 뻣뻣하게 굳어졌다.

“장사 안 하는 건가?”

“아…… 아니, 아니요. 합니다! 저어…… 언제 오셨습니까?”

“나? 무림인 새끼들이 벼락을 처맞을 때부터.”

털썩!

점소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몸을 바닥에 바짝 숙였다.

“아이고, 대협.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인들은 그냥……!”

그가 생각하는 무림인들은 사람 죽이기를 밥 먹듯 하는, 개망나니보다 더한 놈들이었다.

“괜찮소. 그럴 수도 있지. 사실 망할 놈들이 맞거든. 이렇게 만들었으면 보상이나 해주고 가든지. 안 그렇소?”

“…….”

“하루 잘 생각이니 방이 있으면 주십시오.”

“아……! 예, 예, 고맙습니다. 소인이 최고로 좋은 방으로 모시겠습니다요.”

“아, 좋은 방이면 비쌀 것 같은데.”

“아닙니다. 일반 객실 가격으로 특별히 모시겠습니다.”

“그래요? 그럼 사양 않고 부탁하지요.”

점소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이 층으로 안내를 했다.

* * *

광천루에서 편안하게 하루를 보냈다.

점소이는 아침에 떠나는 순간까지 밖에 나와서 정중하게 마중을 나섰다.

“살펴 가십시오.”

“대접 잘 받고 갑니다. 남는 건 자네들 수고비요.”

“앗! 에헤헤, 감사합니다요, 대협.”

점소이의 손바닥에 은자 한 냥이 놓였다.

광천루에서 나온 고진유와 인양은 의장을 지나 북호로 곧장 방향을 잡았다.

넓은 관로보다는 산길이 더 편안했다.

마을에서 운기하는 것보다 산속에서 한 운기행공에서 내력이 더 잘 쌓이기도 했고.

혼자 다닐 때 고진유의 걸음은 보통 사람들보다 거의 서너 배 빨랐다.

“헉, 헉.”

인양은 뒤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그를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다.

‘흐음, 호충신법은 화산파 무공이 아니지. 먼저 빠르게 걷는 방법을 가르쳐 줘야겠군.’

그렇게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난 지 한 시진이 지났다.

뚝.

‘누구지?’

갑지기 걸음을 멈춘 고진유가 전방을 바라보았다.

‘한 명인데.’

커다란 나무 뒤에 누군가 숨어 있었다.

“만일 숨어 있는 것이라면 나오는 게 더 낫지 않겠소?”

“아, 하하! 대단한 아우님이군! 단번에 내가 숨어 있는 장소를 알아냈어.”

스윽.

고목 뒤에서 사내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사람은…….’

의장의 광천루에서 스쳐 지나갔던 잘생긴 사내가 분명했다.

‘흑귀의 추격에서 벗어난 모양인데.’

그의 실력으로 봐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다.

“내게 볼일이 있소? 멀리 도망도 안 가고 나를 기다린 모양인 것 같소이다.”

“아우님께서는 굳이 경계할 필요 없네. 내가 나쁜 사람으로 보이는가? 세상에 이런 얼굴로 나쁜 짓을 할 사람은 없거든.”

“우리가 서로 형 아우 할 사이는 아닌데.”

“하하하! 나를 민망하게 만드는군! 그럼 아우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는가?”

“내 말은 서로 갈 길을 가자는 말이오. 귀찮은 일이 많이 생길 것 같아 당신하고 엮이기 싫소.”

“거참, 아우님은 냉정한 사람이셨군. 생긴 건 귀염상에 착하게 생겼는데.”

미소를 띤 사내가 가까이 다가섰다.

‘뭐야…… 부담되게.’

척!

고진유는 손을 뻗어 더 이상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흑귀에게 쫓기고 있던데. 당신과 엮어 괜히 불똥 맞고 싶지 않소이다.”

“내가 그까짓 흑귀들이 무서워서 도망 다닌 줄 아는가? 심심하니 데리고 다닌 것이지.”

“이유야 어쨌든 서로 갈 길 갑시다.”

휘익!

사내가 재미있다는 듯 휘파람을 불었다.

“뭐 그렇다면야. 여기서 다시 만나게 돼서 운명인 줄 알았는데 자네는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일세.”

“운명은 무슨. 인연이란 억지로 맺는 게 아니오.”

“그럼 자네 갈 길이나 가게.”

사내가 손을 앞으로 흔들며 먼저 가라는 시늉을 했다.

“그럼, 먼저 가지요.”

고진유는 발을 천천히 뗐다.

스윽.

그러자 사내도 동시에 움직였다.

타앗!!

인양을 가볍게 들어 올린 고진유는 호충신법을 펼쳐 순식간에 앞으로 튀어나갔다.

“어라……?”

뒤에서 따라붙으려던 사내는 순간 멍한 시선으로 고진유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 아하하하하!! 엄청 빠르군!”

한바탕 웃어젖힌 사내는 고진유가 사라진 방향으로 여유롭게 움직였다.

“아우님, 어차피 빨리 가도 결국 만나게 되어 있다네.”

사내는 광천루에서 흑귀를 피해 달아나던 순간, 미처 고진유의 존재를 파악하지 못하고 부딪칠 뻔했다.

그런데 그 찰나, 저 청년이 일행까지 챙기며 충돌을 너무나 가볍게 피하는 것이 아닌가.

‘이거, 단지 어떤 사람이 그런 신법을 구사하는지 조금 궁금했을 뿐인데. 꽤 흥미로운걸? 하하.’

* * *

넓은 강이 눈앞에 펼쳐졌다.

포구에는 강을 건너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고진유는 한쪽에 앉아서 배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에게 다가섰다.

“저어, 어르신. 배는 언제쯤 들어오는 겁니까?”

“이각 정도면 배가 들어올 걸세. 여기에 앉게나.”

“고맙습니다.”

고진유와 인양은 노인의 옆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았다.

괴도의 바다가 떠올랐다.

‘그때는 지겨웠는데…….’

저벅저벅.

그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에 고진유가 고개를 돌렸다.

‘하아, 또 만나다니.’

손을 번쩍 들며 환한 표정을 짓는 사내.

‘여기 지형을 잘 알고 있어.’

느긋하게 오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하하! 아우님, 여기에 있었군. 난 또 급히 가길래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

“여기서 배를 타면 북호로 들어간다네. 아우님도 그곳에 볼일이 있는 모양이지?”

“……그렇다고 봐야죠.”

처억!

사내는 넉살좋게 고진유의 옆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세 사람은 마치 한 일행처럼 포구를 바라보았다.

“같은 배를 탈 것 같은데, 이왕이면 통성명이나 하는 게 어떠한가? 난 묵경이라고 하네. 아우님들의 이름은?”

“진유요.”

“저는…… 인양이라 합니다.”

“진유 아우! 반갑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기분이 좋군. 인양 아우도 반가워.”

스윽.

묵경은 손을 내밀어 고진유의 손을 얼른 잡았다.

‘흐음?’

살짝 당황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신법을 보면 내력의 경지가 상당해야 하는데?

‘미미해도 너무 미미한데?’

상대에게 내력을 숨길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정도 수준이 되려면 내공 수위가 절정의 단계를 넘어서야 가능했다.

‘약관 정도 되어 보이는데…… 절정을 넘어선 건가?’

“계속 손을 잡고 있을 겁니까?”

“아, 미안하네. 손이 부드럽구만.”

묵경은 손을 놓자 고진유가 손을 탈탈 털었다.

‘신기한 녀석이군. 뭔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살펴보면 알 수 있을지도.’

오랜만에 재미난 일을 찾아냈다는 듯 묵경이 시원스레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제가 진유 형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가?”

묵경은 다시 물었다.

“진유 아우님은 어디에 가는 중인가?”

“할 일을 찾아 가는 중이외다.”

“그게 뭔가?”

“그건 말할 수 없소. 돌아가신 사부님과의 약속이라.”

“그렇군. 고인의 유언은 꼭 들어줘야 하지. 아, 어려운 일이라면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데.”

“성의는 고맙지만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니 신경 안 써도 됩니다.”

“그런가? 그래도 사람이 많으면 더 수월하지 않을까?”

“우린 아무런 사이도 아닙니다.”

“진유 아우님, 세상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이네. 혹시 아는가! 우리가 정말로 친해져서 함께 다닐지?”

“아마 그럴 일은…….”

“앗! 배가 오는군!”

묵경이 멀리 배를 가리키며 고진유의 말을 끊었다.

포구로 배가 천천히 들어오고 있었다.

쿠우우웅-!

포구에 배가 정박하자 승선했던 승객들이 먼저 포구로 내렸다.

“차례대로 올라타시오!”

선원 한 명이 기다리는 승객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자, 우리도 가세나.”

묵경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이렇게 달라붙어? 어떻게 떼어내지?’

고진유는 순간 일어나길 망설였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 함께했다가는 귀가 따가울 것 같았다.

그때,

‘……이 기운은.’

고진유는 눈에 힘을 주며 시선을 포구 밖으로 향했다.

포구로 다가오는 기척.

지옥혈림의 흑귀들이 뿜어내는 기운이 틀림없었다.

고진유의 이마에 미세한 주름이 생겼다.

‘누구 때문에 오는지는 알겠지만.’

흑귀들의 목표는 묵경일 가능성이 높았다.

묵경도 흑귀들이 무조건 자신을 잡기 위해 오는 것으로 확신했다.

“……이런, 망했는데? 완전히 퇴로가 막힌 것 같군.”

육지를 통해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없었다.

휘휘휙!

흑귀들이 포구를 둘러싸며 포위했다.

모습을 드러낸 흑나찰 소구정이 포구에 있는 묵경을 확인하고 살소를 흘려보냈다.

“크큭, 드디어 미꾸라지 같은 네놈을 잡았군.”

소구정이 흑귀들에게 손을 흔들며 신호를 보내자,

휘익! 휙!

흑귀들은 점점 포위망을 좁히며 다가섰다.

“풍류미군(風流迷君). 오늘로서 네놈의 인생은 끝이 날 것이다.”

“허어, 너무들 하는군.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잘생긴 것도 죄가 된단 말이오?”

“쯧, 잘난 네놈의 얼굴도 지옥혈림에 끌려가는 이상 세상에서 지워지게 될 것이다.”

“아…… 진짜, 그 여자 은근히 뒤끝이 심하네. 서로 좋게 헤어졌으면 됐지. 지옥혈림에 의뢰할 거리도 안 되잖아?”

묵경은 말은 쉽게 하면서도 상황이 나쁘다는 것을 알았다.

“이봐, 아우님.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나중에 예쁜 아가씨 소개시켜 줄게.”

“풋.”

고진유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 상황에서도 농담처럼 말을 건네는 그가 이상했지만, 왠지 못된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진짜 소개시켜 줄 수 있소?”

“당연하지. 내가 누군지 아는가? 세상 모든 여인들의 연인이 바로 나일세.”

“대단하군요. 그런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지만.”

“그럼 우리 계약은 성립된 걸로 보겠네.”

“……그러죠. 사실 나도 저놈들에겐 볼일이 있어서요. 이왕 마주쳤으니 처리하는 수밖에.”

고진유의 마음 한구석에서 흑귀들을 향한 살심이 밀려 올라왔다.

‘어라? 이건 또 뭐지?’

미세하게 느껴졌던 고진유의 내력이 급격하게 차올랐다.

‘정말…… 이 녀석이 내력을 숨길 정도의 수준이라고?’

묵경은 호기심이 가득한 시선으로 앞으로 나서는 고진유를 보았다.

흑귀들을 앞에 두고도 두려움은 보이지 않았다.

흑나찰 소구정은 뜻밖의 인물이 나서는 광경에 인상을 구겼다.

“우린 지옥혈림에서 왔다. 저자와 상관이 없으면 빠져라. 괜히 은원을 만들었다간 다칠 수 있으니.”

“당신들 일엔 상관 안 해. 내가 당신들에게 따로 볼일이 있을 뿐.”

고진유의 시선에서 적개심이 느껴졌다.

“이놈! 지옥혈림에 반항하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가. 중원에서 지내는 이들 중 지옥혈림을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옥혈림이 언제부터 중원의 맹주급이었지? 한낱 무림의 쓰레기 같은 일을 처리하는 주제에.”

“크으…… 감…… 히, 미친 새끼가 어디서 함부로 주둥아리를 나불거리고 있느냐? 뭣들 하느냐! 저놈을 당장 사지를 찢은 뒤 내 앞에 내려놓아라!”

“옙.”

대답과 함께 흑귀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이야, 이거 미치겠군.”

묵경은 상대의 화를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게 만든 고진유를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하, 아우님. 저놈들 완전히 맛이 간 것 같은데? 이젠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텐데. 어떻게 할 생각이지?”

“겁나면 뒤에 계시오.”

“오호?”

슈우우욱-

채애애앵!!

고진유는 허리에 찬 검을 뽑으며 전방 허공 위에서 떨어지는 십여 명의 흑귀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사부 오청석의 원수.

‘흑귀 네놈들은 단 한 놈도 살려두지 않겠다.’

번쩍!

고진유의 검이 공중으로 향해 빛을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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