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연주에서 시작된 소문은 순식간에 광동성 전체로 퍼져 나갔다.
살군검 남궁인의 패배.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대남궁세가의 직계인 무인으로 정도무림의 일백 위에 근접한 무공을 지녔다.
그런 그를 이긴 신비청년의 신분이 과연 누굴까.
현재 중원 최대의 관심사였다.
소문의 주인공은 화산파의 무공을 펼친 청년.
남궁인과 싸우면서 했던 말이 광동성을 넘어 중원 무림으로 퍼져 나갔다.
“남궁세가를 꺾은 화산파의 검이 최고다.”
심지어 사람들은 고진유의 말을 앞뒤 상황도 무시한 채 점점 다른 식으로 와전시켜 퍼 나르기 시작했다.
그 꼬리를 물고 고진유를 연주의 백성들이 칭송한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다.
연주상단은 창운상단과의 대결에서 이긴 후 큰 변화를 맞이했다.
먼저 왕진만의 뒤를 이어 아들인 왕종이 상단주에 올랐다.
그는 상단주에 오른 뒤, 고진유의 뜻에 따라 연주상단을 도와준 대가로 왕진만에게 돈을 빌린 백성들의 빚을 모두 탕감했다.
게다가 그의 또 다른 부탁에 창고를 열어 가난한 백성들에게 쌀과 식량들을 나누어 주었다.
고진유는 물론, 새로운 상단주인 왕종에 대한 연주의 인심 또한 단번에 바뀌며 그를 대상인으로 칭송하는 소리가 자자했다.
그러자 며칠 뒤, 강성의 모든 상인 연합들이 연주상단이 아니면 거래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타아앙!
흑의인이 탁자를 내리쳤다.
“찾았다.”
지옥혈림의 추혼대 소속 흑나찰 북소연.
연주에서 올라온 소문.
강성에서 상권 관할 다툼이 일어나며 창운상단이 연주상단으로 쳐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남궁인까지 합세를 했지만, 본래라면 이겼어야 할 창운상단은 화산파의 무공을 쓰는 인물에 의해 도리어 패배당했다.
“그자가 틀림없다.”
파해도에서 흑나찰 악공을 죽이고 탈출한 뒤, 흑선에서도 흑귀들을 모두 죽이고 달아난 인물.
놈을 찾기 위해 북소연은 오 년 전 지옥도로 가던 배에 오청석과 함께 탔던 죄인들을 모두 조사했다.
오청석이 파해도에 있었다면, 그들 중 한 명이 함께 떠내려갔을 가능성이 컸다.
지금까지 상황을 유추한 바에 의하면, 악공을 죽인 인물은 오청석에게 화산파 매화검법을 익혔음에 틀림없었다.
흑나찰 북소연은 곧바로 상부에 보고했다.
그리고 잠시 뒤, 추혼대 상부에서 긴급한 연락이 왔다.
-비밀리에 그자의 뒤를 쫓아라.
흑나찰 북소연은 전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비밀리에? 잡거나 죽이는 게 아니고?’
그녀의 예상과는 달랐다.
흑망을 펼치면 행적을 찾아내기 편하겠지만, 조용히 움직이라는 명이라니.
‘왜? 다른 곳에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 것인가?’
아무래 생각해도 그 이유밖에 없었다.
여기서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자가 대체 누구이기에 상부에서 이토록 신변을 확보하려는 거지?’
흑나찰 북소연은 지옥혈림의 혈림관 출신이었다.
오 년 전에는 혈림관에서 수련을 하던 중이었고.
그래서 처음 임무를 맡았을 때는 놈을 단순히 지옥혈림에서 도망 나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뭔가 있어. 함께 섬에 있었다는 화산파 도사를 왜 찾는지 알아봐야겠군.’
일반 인물이었다면 지옥혈림에서 오 년 동안이나 찾고자 하지 않았을 터.
‘얼마나 대단한 인물이기에.’
스윽.
그녀는 손을 들어 수하를 불렀다.
“명주,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본 림 죄인들의 명부를 담당하는 부서에 친구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닌가?”
“맞습니다.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잘됐군. 그에게 연락을 해서 그자와 함께 섬에 있었던 인물에 대해 확인했으면 해. 화산파의 도사인데 도명은 허진, 이름은 오청석이라고 하더군.”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수하인 흑귀 명주가 바로 밖으로 나갔다.
‘한동안 심심했는데 재미있는 일이 될 것 같아.’
따분한 생활에서 흥미로운 장난감을 찾은 기분에 북소연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까지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이 일이 무림 전체를 흔드는 시발점이라는 사실을.
* * *
남궁세가 광동성 총지부.
그곳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창운상단의 실패와 남궁인의 패배까지 더해지자 적막감은 배가 되어 흘렸다.
광동성 총지부장 남궁용은 두 손으로 턱을 괴며 수하의 보고를 받았다.
“그에 대해서 알아본 바에 의하면 연주상단주과 친분이 있다고 합니다.”
“현 상단주 왕종이 맞아?”
“네, 맞습니다.”
“그게 전부?”
“여러 명에게 확인했지만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남궁용은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 그자는 상단과 정말 전혀 하나도 상관없는 인물이었단 말이군?”
“그렇습니다. 일하는 사람들도 그날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이야, 어이가 없네. 연고도 없는 놈이 갑자기 나타나서 싸움에 끼어들었다? 거기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듯 화산파가 남궁세가를 꺾었다고 떠들었단 말이고?”
“총지부장님, 그건 들리는 소문입니다. 실제로는 아직 확인한 바가 없습니다.”
“이봐, 그 말을 그자가 했는지 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이미 소문이 나돌았잖아? 세상 사람들은 이제 화산파가 더 강하다고 믿는 거라고.”
“죄송합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양진, 지금 당장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그자를 찾아.”
“그를 보는 대로 죽이면 됩니까?”
“신변만 확보하도록.”
“…….”
“그를 죽이는 건 문제가 아니야. 내가 원하는 건, 남궁세가의 검으로 그를 밟아주는 거지.”
“알겠습니다.”
양진은 이해했다.
무너진 남궁세가의 위신을 빠른 시일 내에 되찾는 것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다.
“빨리 찾고 싶다면 하오문이나 개방에 도움을 청해.”
“곧바로 다녀오겠습니다.”
양진은 빠르게 사라졌다.
툭. 툭.
남궁용은 손가락으로 탁자를 가볍게 두드렸다.
바로 웃음이 나왔다.
“후후후, 엄청나게 간이 큰 녀석이군. 남궁세가를 상대로 제대로 한 건 터뜨렸어.”
이번 사건이 중원 전체에 계속 퍼져 나간다면 두 문파 간 시끄러운 문제가 될 수 있었다.
남궁용은 문제의 인물을 화산파 제자라 확신했다.
“화산파에서 웃긴 녀석을 무림에 내보냈군. 약관 정도밖에 안 되는 인물이 인 형님을 이기다니. 정당하게 이긴 거라면 화산파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된 인물을 만들어냈다는 건데.”
무림인이라면 강자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는 게 당연했다.
남궁인의 이긴 화산파의 젊은 제자.
그를 찾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 도전하여 이긴다면 외부로 돌지 않고 남궁세가의 본 가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을 터.
“나도 광동에 꽤 오래 있었지. 다행히 때마침 하늘이 기회를 주는군.”
남궁인을 패배시킨 인물을 발판으로 삼고 본 가로 돌아간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일이 생겼어.”
으으으으!
남궁용은 기지개를 켰다.
입안에선 저절로 흥얼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 * *
피리리리-
길가에 아무렇게 자란 풀잎을 입에 물고 풀피리를 불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산과 들.
‘좋다.’
푸른 바다 보다 진한 녹색이 더 좋았다.
고진유는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행복했다.
이젠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던 원한은 사라졌다.
느긋하게 걷는 모습은 천하태평.
행복함을 만끽하면서 세상팔자 편하게 걸었다.
고진유는 당분간 산길을 주로 이용하기로 했다.
육지의 산과 들을 더 맘껏 가슴에 두고 싶었다.
그리고 무공을 수련하는 데 소홀히 할 수 없었다.
앞으로 남궁인보다 강한 무인들을 상대하려면 시간이 날 때마다 수련을 해야 했다.
중간중간 무공을 수련하거나 운기행공을 위해서는 사람들이 없는 산길이 편했다.
운기행공을 하는 도중에는 새로운 사실도 알아냈다.
육지에서 얻은 수련의 결과는 파해도에서 느꼈던 내기의 질과 양도 미치지 못했다.
‘큰일인데. 좀 더 운기행공을 열심히 해야겠어. 반시진 동안 수련했는데 괴도에서 얻는 내력의 십분의 일도 안 되잖아.’
운기하며 주화입마를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음의 안정이 중요하다.
다행히 이젠 어떤 걸림돌도 없었다.
복수.
복수를 하면서 가슴을 짓누르던 응어리가 사라졌다.
왕진만은 모든 것을 잃었다.
연주상단에서 물러나야 했던 그는 한차례 발작한 뒤 몸에 마비가 일어났다.
혼자서 밥을 먹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을 정도로 심하게.
‘내 원수를 처리했으니 이제 사부님의 원수를 찾으러 가야겠지.’
산길을 걸으면서 머릿속으로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차례대로 나열했다.
우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무림맹이 있는 하남성으로 올라간다.
그다음 사부 오청석이 숨긴 물건을 찾는다.
다만 그 뒤로 오 년이 넘었으니, 사부가 숨긴 그 자리에 물건이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
‘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지. 일단은 가서 확인을 해 보는 수밖에.’
휘이익!
고진유의 뒤로 바람 소리가 강하게 스쳤다.
고진유의 움직임은 느릿해 보였지만, 실상 호충신법을 시전 중이었다.
샤샤샤샷-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는 발놀림은 겉으로 보기엔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산길을 따라 움직이니 관로를 지나는 시간보다 훨씬 단축되었다.
고진유는 이미 광동성과 호남성의 접경 마을에 들어서고 있었다.
“여기가 양산현이 맞겠지?”
마을 초입이 가까워지자 작은 팻말이 길가에 박혀 있었다.
삼 일 동안 산을 넘어서 내려왔다.
“다행이야. 우선 객잔을 찾아서 씻어야겠다.”
접경지대는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많아 어느 지역이든지 사람들이 많았다.
이곳도 마을 중앙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크으…… 이게 사람 사는 맛이지.’
수많은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중앙 시장으로 들어서자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며 걸어 다닐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이런 곳엔 도모(掏摸)놈들이 꼭 있는데.’
생각과 동시에 고진유의 시선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저놈들이군.’
사람들 사이로 지나가다 어깨를 툭 치며 걷는 일행들.
거의 자신과 비슷한 정도의 나이이거나 한두 살 어려 보였다.
그들은 소매치기가 확실했다.
피식.
고진유는 예전 생각이 났는지 미소를 지었다.
‘제법 솜씨가 좋네. 다섯 놈이 한 조로 움직이고 있어.’
힐끔.
소매치기들 중 한 명이 신경 쓰이는지 주위를 살폈다.
이내 곧 고진유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는 동료 일행과 속삭이더니 손을 가리켰다.
‘내가 지켜봤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군. 감도 좋아.’
고진유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허리에 찬 고진유의 검을 본 다섯 명 모두 당황했다.
그들에게 무림인은 저승사자와 같은 존재였다.
동종업계 사람들에게 간혹 들은 바로는 무림인들의 물건을 잘못 훔치면 팔이 잘린다고 했다.
그만큼 조심해야 하는 인물이 무림인이었다.
“헉!”
당장 도망치려 하는데, 멀리 있던 그가 단숨에 그들 앞으로 불쑥 나타났다.
신법을 펼치는 것을 보아 무림인이 확실했다.
“제법 솜씨들이 좋던데?”
“…….”
그들은 당황하면서 눈빛이 흔들거렸다.
“괜찮아. 안심해. 모른 척해주지.”
“아……! 넵. 가, 감사합니다.”
“이름이 뭐냐?”
“인양…… 입니다.”
“그래? 내가 하룻밤 머물 객잔을 찾거든. 괜찮은 곳이 어디지?”
“호양객잔이라고 있습니다. 깨끗하고 식사도 좋다고 합니다.”
“어디에 있지?”
“저기로 가면…… 아닙니다. 제가 바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해주면 좋고. 자, 좋은 곳을 가르쳐 줬으니 사례비로 주는 거야.”
휙!
고진유는 그에게 작은 주머니를 던졌다.
인양은 눈앞으로 날아오는 흑색의 주머니를 냉큼 받았다.
‘이건…….’
눈에 익숙했다.
빠르게 허리춤을 만지자 분명 있어야 할 돈주머니가 사라져 있었다.
“어때? 솜씨가 괜찮지?”
“아…… 아, 네에.”
“뭐 하고 있어? 가자.”
“아, 알겠습니다.”
그가 움직였던 기척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대체 언제 빼내갔지?’
인양은 얼른 뒤를 따라가며 고개를 갸웃했다.
이 정도의 솜씨라면 세상에 훔치지 못할 물건이 없을 듯했다.
‘대체…… 누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