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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대도-14화 (14/425)

14화

고진유의 등장으로 싸움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홀연히 나타난 청년은 화산파의 무공을 쓰고 있었지만, 그 분위기는 전혀 도사가 아니었다.

남궁인의 놀란 눈동자는 이내 원래대로 평정심을 되찾았다.

“이곳이 화산파와 관련이 있었던가?”

“내가 화산파라고 하면, 달라지는 게 있소?”

“아니, 없다. 오히려 더 잘된 일이지. 화산파의 검을 꺾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으니.”

“그건 나도 마찬가지외다. 남궁세가의 검을 상대할 수 있는 기회군요.”

고진유도 배짱 있게 나섰다.

사부 오청석에게 무림에 대해 많은 지식을 배웠다.

그중 안휘성의 지존 남궁세가 또한 당연히 빠지지 않았다.

중원 십대세가 중 검문일존(劍門一尊).

검문의 지존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하지만 멀리서 지켜봤을 때 강해 보이지 않았다.

충분히 이길 자신이 있었다.

“겨우 어쭙잖은 무공만을 믿고 본인에게 대항하려는 겐가? 보아하니 십사수매화검법인데 속가제자인 듯하군.”

“화산파의 무공을 얕잡아보는군요. 남궁세가의 검이 강하다고 소문은 났지만, 당신이 그 남궁세가는 아니지 않소?”

“……!”

그는 고진유의 말뜻을 이해했다.

네놈 정도는 이길 수 있다.

남궁인은 점점 평정심이 무너져 갔다.

“건방진 놈! 입만 살았군. 남궁세가의 검은 중원 최고이다.”

남궁인은 창천내신공(蒼天內神功)을 극성까지 끌어냈다.

상대는 화산파의 무공을 펼치는 인물.

속가제자라고 하나 가볍게 생각해서는 곤란한 상황을 맞이할 수 있다.

‘방심은 금물이다. 미천한 놈이라도 한 수 정도는 가지고 있을 터!’

여유를 가지고 무공을 펼쳤던 지금까지와 달리 진심을 다해 살군검을 들었다.

우우우웅-

남궁인의 신형에서 자연스럽게 내기의 공명음이 흘렀다.

“놈! 이것을 받아보아라!”

극성의 내력에 미조풍침(迷操風針)의 초식이 펼쳐졌다.

피이이잇-

살군검이 일직선으로 뻗었다.

‘네놈이 아무리 뛰어나도 내력의 차이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겨우 약관의 나이로 보이는 청년이다.

아무리 내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육십 년 공력인 일갑자의 힘에 미치지 못할 것은 자명하다.

초식이 강하고 신체적인 힘이 강하다고 해도, 내력은 차원이 달랐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남궁인의 검기가 고진유의 가슴에 벌써 닿는 듯했다.

스륵.

고진유는 부드럽게 회전하며 남궁인의 일검을 다시 비켜냈다.

‘역시 느려.’

상대방이 무공이 강하고 약함을 떠나 고진유에게 모두 보였다.

‘허, 이걸 피한다고? 우연인가?’

남궁인은 믿을 수 없었다.

연이어 살군검이 고진유를 찔러갔다..

핏핏핏.

매섭게 검기가 쏟아졌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고진유는 미조풍침의 파훼를 알고 있다듯 가볍게 물러나면서 피했다.

‘우…… 연이 아니야.’

그는 고진유의 눈을 보았다.

허공을 따라 검기를 피하는 움직임을 보면서 확신했다.

‘내 공격을 모두 읽고 있어.’

타아앗!

“이놈……! 더는 못 피할 것이다!”

창천신보(蒼天身步)를 시전하며 고진유와 거리를 좁혔다.

살군검이 고진유의 목을 향했다.

까아아앙!!

고진유의 검이 어느새 목 앞까지 다가온 살군검을 막아냈다.

“못 피하면 막으면 되는 게 아니오?”

“……크억.”

숨이 턱 막히는 듯한 고통.

복부에 가해진 강한 충격이 남궁인의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대체…… 언제?’

고진유의 왼손이 닿아 있었다.

휘이익!

“휴우…….”

남궁인은 뒤로 물러나 곧바로 호흡을 가다듬었다.

‘저…… 청년이 남궁인을 뒤로 몰아냈어.’

영한도 어떻게 고진유의 왼손이 움직였는지 보지 못했다.

‘보기에는 내력이 거의 없을 정도였는데…… 이런 내기를 외부에 드러나지 않게 다스릴 수 있을 정도의 고수였다는 것인가?’

그건 최소 일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녔다는 의미였다.

저 화산파의 제자라면 남궁인을 이길 수 있다.

일격을 당한 남궁인은 쉽게 움직일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상대가 너무 빠르다는 것.

‘실전 경험은 내가 더 많다. 이 녀석을 이길 수 없는 이유는 없어!’

타앗!

남궁인은 생각과 동시에 창천풍검법을 시전하며 다가섰다.

“풍와속장(風渦速障).”

쏴아아아-

고진유의 주위를 감싸며 살군검의 검기가 날뛰었다.

‘이건 애매한데…….’

고진유는 순간적으로 살기를 뿜어내는 살군검을 막아야 할지, 아니면 피해야 할지 망설였다.

‘네놈이 원하는 게 뭐지?’

타앗!

고진유는 곧바로 호충신법을 펼치며 수십 개의 비검기를 피했다.

그와 동시에 매화영음(梅花影陰)이 뻗어 나갔다.

샤아아아아-

매화 잎이 화하게 피어오르며 검을 따라 매화 향이 뒤를 이었다.

까아아앙!

남궁인의 공격이 막혔다.

하지만 그는 대소를 터뜨렸다.

“걸렸다. 이놈, 역시 넌 강호초출이 확실하구나.”

그가 펼친 건 고진유를 유인할 허초의 공격.

남궁인은 득의에 찬 미소를 지었다.

뜻대로 살군검이 들어갈 수 있는 완벽한 빈틈이 생겼다.

“죽어라!”

휘이이이잉-

고진유의 허리에 죽음의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살군검이 고진유의 허리를 베기 직전.

번쩍!

남궁인의 눈앞에서 검광이 터지면서 매화가 빛을 뿌렸다.

살군검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편친 매화비광.

푹!

“아아악!!”

남궁인이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검이 손등을 깊숙이 찌른 상태.

“크으…… 이놈이…….”

그는 재빨리 지혈을 하며 뒤로 물어났다.

‘허억, 허억, 완벽했을 텐데.’

손등이라 하지만 경미한 부상이 아니었다.

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며 제대로 서 있을 수 없었다.

‘내가 고작 십사수매화검법에…… 당하다니.’

이는 화산파 제자들 중 평검수가 익히는 검법이 아니었던가.

“벌써 그만두려는 것이오?”

“…….”

“겨우 부상당했다고 곧 죽을 것처럼 인상을 쓰는 건 아니지 않소? 당신은 남궁세가의 검이 중원 최고라 했는데 내가 보기엔 틀린 것 같군. 지금 보니 중원 최고의 검은 남궁세가를 꺾은 화산파가 틀림없군요.”

고진유는 눈빛은 당당했다.

화산을 품는 자 천하를 품을 것이다.

사부 오청석이 자신 있게 했던 말이었다.

“화산의 검은 한 번 뽑으면 상대가 원하는 만큼 되돌려 줘야 한다.”

검법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적을 상대해야 하는지까지도 생생히 기억났다.

“……남궁세가의 검이 무림 최고이다.”

남궁인은 고통을 참아내며 손에 힘을 주었다.

스팟!

그때, 고진유의 신형이 남궁인 앞에 불쑥 다가섰다.

‘헉, 무슨 신법이 이리……! 화산에 이런 신법이 있었다고?’

마치 호랑이처럼 달려드는 듯한 모양새.

“사부님께선 사람이라면 당연히 측은지심을 지녀야 하지만, 검을 뽑은 이상 무정지검(無情之劍)이라 하셨지.”

‘사부? 네놈 사부가 누구란 말이지?’

파앗!

휘이익!

고진유와 남궁인의 검이 동시에 움직였다.

그리고,

스걱.

고진유의 검이 먼저 살을 파고드는 소리를 냈다.

주르륵.

허리에서 흘러내리는 따뜻한 액체.

“피…… 피가…….”

남궁인의 손에 따뜻한 피가 묻어 나왔다.

쿵.

남궁인은 한쪽 손으로 허리를 감싸고 휘청거리며 쓰러졌다.

살군검 남궁인의 패배.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사건이 터졌다.

안휘성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강자로서 이름을 날린 남궁세가 외남당 부당주가, 화산파의 무공을 펼친 이름도 없는 애송이에게 졌다.

‘망했군.’

남궁소경은 두려운 시선으로 힘겹게 일어나는 남궁인을 부축했다.

“끝난 것 같은데 당신들은 그만 돌아가시오.”

남궁인은 남궁소경의 부축을 받으며 물었다.

“화산파의 제자가 맞는가?”

“맞소.”

“그렇군…… 나를 이겼다고 해서 화산파가 남궁세가를 이겼다고 생각하지 말게. 단지 내가 무공이 약해서 진 것뿐이니.”

“맘대로 생각하시고 빨리 가서 치료나 하시오. 괜히 그러다 죽으면 내가 죽였다고 하지 말고.”

“네놈이 무림에 있는 이상 언젠가는 만날 것이다. 그때 보자.”

“갑자기 측은지심이 사라지려고 하네. 그만 가시오.”

남궁인과 창운상단은 패잔병처럼 고개를 숙이며 연주상단을 빠져나갔다.

* * *

왕종이 다가왔다.

그는 연신 감사의 말을 끊임없이 내뱉었다.

“은공,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고맙긴. 어차피 서로 계약한 것이 아니오.”

“계약했지만 은공이 계시지 않았다면 창운상단에게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이젠 그대가 나설 차례요. 어떻게 할지 지켜보겠소이다.”

“알겠습니다.”

왕종은 결심한 눈으로 무릎이 깨진 채 의자에 앉아 있는 왕진만의 앞으로 다가섰다.

“아버지, 보셨습니까?”

“시끄럽다. 여하튼 저놈들이 져서 물러가지 않았느냐?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아버지!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들어 놓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셨습니까? 앞으로 얼마나 더 최악으로 본 상단을 밀어 넣고자 하십니까?”

“이놈이……! 누구 앞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이냐? 썩 물러가지 못할까?”

왕종의 얼굴이 슬픔으로 일그러졌다.

왕진만은 절대로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아버지, 이제 저도 어쩔 수 없습니다. 상단주의 직책에서 그만 물러나십시오. 지금부터 부상단주의 권한으로 상단주 왕진만에 대한 선탄핵권을 발동하겠습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아버지는 상단주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뭐? 뭣이? 이…… 노오오오옴!! 누구 맘대로 나를 탄핵한단 말이더냐? 누가 이놈을 끌어내지 못할까?”

왕진만은 소리를 지르며 흥분했다.

하지만 엉망이 된 경내에 그의 목소리만 울릴 뿐,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왕종의 뒤에 선 고진유의 존재가 두렵기도 했지만, 그들 또한 이미 오래전부터 왕진만의 탐욕에 마음이 멀어져 있었다.

“아버지, 끝났습니다.”

“영한, 보고만 있을 테냐?”

영한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게 됐소. 난 상단주의 호위를 책임지는 임무를 맡고 있을 뿐이외다.”

“감히……! 네놈이……! 사파 놈을 받아줬더니…….”

휙.

영한의 검이 왕진만의 목 앞에서 멈추었다.

“왕진만, 더 이상 추하게 행동하지 맙시다.”

“아아아악아아아아악!!”

왕진만은 목이 터져라 괴성을 질렀다.

푹.

고진유는 그의 앞에 다가서 손가락으로 혈을 찔렀다.

“이제 조용하군.”

그러고는 왕진만의 귓가로 얼굴을 바짝 붙였다.

“……?”

“내가 누군지 알겠소?”

그만이 겨우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히 속삭이는 목소리.

“오 년 전 벽화당 두목과 함께 작당하여 나를 지옥혈림에 넘기지 않았소이까.”

“……!!”

기억이 났다.

왕진만의 두 눈알이 빠져나올 정도로 커졌다.

“당신은 이젠 끝났소. 당신의 모든 것이었던 연주상단은 이제 당신 것이 아니니까.”

말하고자 온몸을 버둥거렸지만, 결국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고진유는 가슴이 홀가분해졌다.

오 년 동안 묵혀 놓았던 마음의 응어리가 소리 없이 녹아내렸다.

후루루루-

소면의 국물을 넘기는 소리가 맛있게 들렸다.

노점 객잔에 홀로 앉아 소면을 먹는 청년.

‘그놈이 틀림없어.’

노파는 조용히 한 그릇을 더 만든 뒤 청년의 앞에 툭 내려놓았다.

“안 시켰는데요? 요즘 이런 식으로 강매를 하시오?”

“맞지?”

“무슨 말입니까?”

“맞잖아. 내 눈은 속일 수 없어.”

“귀신이네요.”

고진유는 소면을 앞으로 당기며 면을 한입 가득 넣었다.

“음식은 여전히 맛이 없는 게 변함이 없네요. 좀 더 잘 만들면 안 됩니까?”

“싼 맛에 먹는 건데 어떻게 맛있게 만드냐?”

“그건 귀파가 음식 솜씨가 없는 거요. 때려치우시오.”

“크크크, 밉살맞은 놈. 살아 있을 줄 알았다. 네놈은 요절할 상이 아니었거든.”

“어라? 관상도 볼 줄 아시나 봐요?”

“여기에서 사람 장사만 한 지 반평생이다.”

“맛없는 가게나 때려치우고 점집이나 차리시죠. 돈 많이 벌겠네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구나.”

“귀파도 솜씨 없는 건 여전하시잖아요.”

“에라이, 나쁜 놈.”

노파는 화를 내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아 참…… 그거 네놈 짓이지?”

“뭐가요?”

“두 놈이 죽었다고 하던데?”

“움직이는 것도 불편한 분이 소문은 엄청 빠르시네.”

“하루에 여기를 지나가는 놈들만 해도 수백 명이다. 어떤 집에 누가 방귀 뀐 것까지도 안다고.”

“뭐…… 그렇게 됐어요.”

“잘했다.”

“웬일이세요? 칭찬까지 해주시고?”

“잘한 건 잘한 일이니깐. 그 애들이 편해지겠네.”

“앞으로도 잘 좀 해주세요.”

“네가 안 하고?”

“전 할 일이 있어서요. 여기에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고. 오래 사세요. 다음에도 맛없는 소면을 먹을 수 있게요.”

“홀홀, 그렇구나. 아쉽구먼.”

“이걸 받으세요.”

고진유는 노파의 품 안에 무엇인가를 넣어주었다.

“뭣이냐?”

“배고픈 놈들이 오면 따뜻하게 한 그릇씩 말아주세요.”

“할 일도 많아 보이는데, 네놈이 더 필요할 게 아니냐?”

“전 더 많아요. 두목이 숨겨 놓은 것들을 조금 챙겼거든요.”

“홀홀홀, 하긴 무영도수가 가만히 있을 리 없지. 고맙게 받으마.”

“귀파, 잘 먹고 갑니다.”

스윽.

고진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래도 고향에 한 명이라도 자신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혹시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주상단에 왕종이란 분을 찾아가세요.”

툭툭.

고진유는 노파를 가볍게 안은 뒤 걸어갔다.

노파는 멀리 사라지는 고진유를 한동안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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